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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83화 (83/305)
  • 제83화

    [명경지수에 대한 환상은 동서고금 늘 있어 왔습니다, 주군. 첫 명상 때 머릿속 유행가를 끄기 위해 애쓰지 않았던 자는 없지요. 인간은 그런 존재입니다. 불완전하나, 네. 성장해 나가는 존재지요.]

    결론은 엉덩이 붙이고 일단 계속해라?

    [네. 대단한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주군께서는 이미 어느 고수들보다 노력하고 계시니까요.]

    으음. 글쎄, 원수를 갚기 위해 죽은 듯이 수련을 한다거나 한 건 없었던 것 같은데?

    [하하하, 옛 고사에는 그런 일화들이 전해지지요. 하지만 그분들도 수련 과정과 시간은 비슷합니다. 인간의 체력은 정해져 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꾸준히, 그리고 멈추지 않는 것이지요.]

    신기하네.

    멀게만 느껴졌던 산이, 오르는 방법을 알게 되니…….

    음, 여전히 멀군. 그래도 멀어.

    [이번 일주일의 수련 삼매경은 상당히 도움이 되었겠군요. 주군.]

    응. 무공이 어떤 원리인지 그걸 파악할 수 있게 되었어.

    그러니까 옛날에는 몸으로만 막연히 알던 게 반복하다 보니 이론화가 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주군은 그쪽에 재능이 있으시지요.]

    그런가.

    무공에는 소질이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다행이야.

    “그나저나, 슬슬 동료들과 다음 던전에 들어갈 때가 된 것 같은데 연락이 없네?”

    다른 동료들은 마력을 거진 다 회복했을 텐데 말이지.

    [시기가 되었긴 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다른 던전에 먼저 들어가시는 건 어떠십니까?]

    던전? 저번처럼 혼자? 저번처럼 누가 공격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던전 입구에 호위 병력을 두면 됩니다. 아예 정지한 쪽에 부탁하여 그쪽 사람을 호위로 넣으면 되겠지요.]

    흐음. 하긴 공무원은 일반인이 많으니 각성자가 작정하면 막기가 쉽지 않지.

    특히 비인기 던전은.

    [거기다 이번 수련으로 얻으신 것을 체화하시기에도 이쪽이 더 좋다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따로 하셔야 할 일도 있습니다. 저들에게 적절한 답을 보내 두셔야 합니다.]

    “저들? GOF랑 ABM?”

    [예.]

    하긴, 둘 다 제정신이 아닌 조건을 보내주긴 했지.

    하지만…… 흐으으음. 그들의 손을 잡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

    지금 세상이 튜토리얼이라면, 본게임이 어떤 식으로 될지 알 수 없는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강해져야 해.

    거기다 미국 두 길드라면 내가 강해지는 데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긴 하겠지.

    몬스터 웨이브가 터진 직후, 이제 미국 NASA와 CIA는 원래의 목적과는 다른 부서가 되었다.

    이제 그들은 별을 관측하던 렌즈를 게이트를 향해서, 사람을 관측하던 통신기기를 몬스터들을 향해 틀었으니까.

    그 기술력은 제아무리 대한민국이 정비가 보유국이라고 해도 따라갈 수 없을 테고.

    그 두 길드는 인류 지식의 총아가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손해를 보는 게 있지 않을까?

    왜일까.

    눈앞의 이익을 보고 넘어갔다가는 크게 엿 될 것 같은 그런 킹리적 갓심이 든단 말이에요.

    수없이 많은 헌터 시체를 치워 온.

    헌터 보조원의 직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논리와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판단이십니다만, 주군께서 군주의 직감을 가지고 계신다면 가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척량은 직감을 믿어?

    [의외로 전장에서는 그러한 직감이 승패를 가르곤 하지요. 또한 제가 지켜본 바로 주군께서는 기이할 정도로 감이 좋으신 편이니까요.]

    오? 그래? 의외네.

    [그때 다른 신에게 공양하지 않고, 시스템에 공양하여 저를 선택한 것도 어찌 보면 그 ‘직감’ 때문일 테니까요.]

    그건 그렇지.

    [주군께서는 헌터 시체를 하도 많이 치워서 생긴 게 아닌가 하시는데, 저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어떤 죽음은, 어떤 삶보다 교훈적입니다.]

    섬뜩한 말이군.

    그래서 말인데 그런 직감 관련 스킬도 혹시 있을까?

    예지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말이지.

    [검색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척량이 창 하나를 띄웠다.

    [사소한 직감 - 10,000따봉]

    등급 : 레어 (비성장형 B)

    사소하게 작용하는 직감. 두 가지 경우의 수 중에서 더 나은 것을 고르게 해줄지도……?

    ‘해준다’도 아니고, ‘해줄지도’?

    뭐 이딴 미심쩍은 스킬이 다 있어?

    “이것밖에 없는 거지?”

    [다른 스킬들도 존재하지만, 요구되는 따봉이 너무 큽니다. 예지 관련 스킬들은 원래 그런 편이지요.]

    “어느 정도인데?”

    [예를 들면 이런 스킬이 있습니다.]

    [미래를 보는 눈 - 9,999,999,999따봉]

    등급 : 인피니티 (비성장형 S)

    미래를 예언하는 눈. 시각적 정보로 미래를 들여다본다. 미래를 보기 위해서 여러 대가를 필요로 한다.

    미쳤군요. 이것은 사서는 안 되는 스킬입니다.

    사실상 100억 따봉을 달라는 소리인데 머리 총 맞았습니까, 휴먼?

    “일단 저 일만 따봉짜리 구입해 본다.”

    내 피 같은 따봉이 쭉 빠지더니 스킬 북이 나타났다.

    펑!

    그것을 익히자마자 곧바로 생각했다.

    자, 나의 일만 따봉짜리 [사소한 직감]이여.

    내가 성장하기 위해 미쿡 물을 먹는 것이 좋을까?

    그리고 바로 느낌이 왔다.

    “……안 당기는데?”

    [네. 그렇군요.]

    “이거 스킬 제대로 돌아가는 거 맞아?”

    [스킬 설명에도 있지만 ‘고르게 해줄지도……?’라고 했지. 해준다는 소리는 안 했습니다.]

    망할.

    [그래도 기분이 확 별로라는 느낌이 온 걸 보면 아니긴 한 것도 같습니다.]

    그러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건가?

    [네. 아마도요……?]

    척량은 스킬 설명처럼 갸우뚱했다.

    이윽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일만 따봉에 약간의 예지를 얻는다고 생각하면 제법 쓸 만한 가격에 쓸 만한 능력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헌터 상점에서 이걸 살 놈은 없겠지만 말이지.

    [설명이 이러니까요. 주군께서 기이한 직업을 가진 덕에 이런 모험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소득이 있군요.]

    다행이군.

    이것으로 국내에 남는 게 더 낫다로 확정!

    “거절 답변이나 써서 보내야겠다.”

    [제가 적절하게 작성하여 보내겠습니다.]

    “그래주면 좋지. 고마워, 척량.”

    [별말씀을요. 마땅히 군사가 할 일입니다.]

    그리 말하며 여우 앞발로 타자를 다다닥 친다.

    음, 귀엽군.

    “그나저나 따봉 남은 게…….”

    [꾸준히 회복하여 약 12만 따봉 정도 남았습니다.]

    제법 많은걸? 일단은… 이건 혹시 모르니 남겨 두자.

    다른 스텟에 투자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맥주를 꺼내서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마침 브라운관에 나오고 있는 것은 천사의 헤일로처럼 일렁거리고 있는 포털의 모습.

    하필 편의점 안이네?

    하필 지금 마시고 있는 캔 맥주 매대 옆에서 포털이 일렁거리며 빛을 냈다.

    주인이 물건 치울 겨를도 없었는지 아주 전부 그대로야. 그대로.

    붉은 띠가 둘러져 있는 걸 보니 일단 주변을 통제하긴 한 모양이군.

    아나운서가 다급히 말했다.

    -보시다시피, 여의도 A빌딩 1층 편의점에 모습을 나타낸 특수 던전. 심지어 레벨 제한입니다!

    주변 경찰들의 불안한 표정이 비친다.

    이상하다, 여의도라면서 어째 행인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

    그리고 대머리 아저씨의 정신 나간 표정도 잠깐 지나간다. 아래에는 이렇게 써져 있다.

    「건물주」

    음, 저 빌딩은 임대 수익 받기는 텄군. 텄어.

    -20레벨 미만 각성자만이 출입 가능한 상태로, 이미 2팀이 전멸했다고 정부는 발표했습니다. 얼마 후면 던전 브레이크 시간이 임박하는데 그렇게 되면 여의도 일대는…….

    내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척량이 물었다.

    [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가야지.

    뉴스는 계속 말했다.

    -만약 더 자원자가 나오지 않으면 긴급 소집을 발령하여 근처의 20레벨 이하의 헌터를 징발하는 대책도 고려 중입니다.

    사실상 산제물이다.

    아직은 대한민국이 거기까지 가지 않았지만, 해외는 이미 그러고 있고.

    아마, 레벨 제한 던전이 계속 늘게 된다면 인류는 그렇게 해서라도 생존을 도모하기 시작하겠지.

    척량은 빠르게 인터넷을 검색했다.

    [주군. 레벨 20 미만 제한 던전이 결계석을 뚫고 생긴 겁니다. 거기다 팀이 전멸되는 속도를 봐서는 악의마저 느껴지는군요.]

    이제 세상은 어떻게 흘러가는 걸까?

    척량, 만약에 여의도 중심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생기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동안은 그래도 결계석 밖의, 사람이 안 사는 외곽 지역에서 던전이 열린다고 다들 믿어 왔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란 말이지.

    그것도 레벨 20 제한이야.

    다른 나라 중에 우리 같은 일을 겪은 곳이 있어?

    [네. 찾았습니다. 서유럽 쪽이군요. 정예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고, 해당 국가는 ‘관리’에 나섰으나 곧바로 근처에 다른 던전이 등장했다는 뉴스가 있군요. 한번 결계석이 던전으로 뚫리니 다음 던전이 생기는 구조가 아닌가 전문가들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지옥이군.

    [그 이상은 통신망이 끊겨서 알 수는 없으나, 주변국도 난민 구조를 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정말로 그 ‘튜토리얼’이 끝나가고 있기 때문인 건가.

    그렇다면 본게임이 일어나면 인류는.

    나는 장비를 챙겼다.

    [주군, 이걸 해결해 버리신다면… 앞으로 주목을 더욱더 받게 되실 겁니다.]

    척량의 걱정은 나도 안다.

    레벨이 상승하지 않음에도 강해지는 헌터.

    유일한 한 명.

    내가 더는 밝히지 않는다고 해도 어쨌든 사람들은 내가 레벨이 이상하게 느리게 오른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될 터다.

    설마하니 아예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까지는 짐작하지 못하겠지만.

    레벨 20 미만 제한 던전을 안전하게 클리어할 수 있는 자.

    그 가치는 분명 높겠지.

    [레벨 20 미만 던전에서 정예 몬스터가 튀어나온다고 하더라도 제압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고레벨 헌터들이 ‘관리’하는 방법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군.]

    맞아. 하지만 결계가 깨지면 또 다른 던전이 튀어나올 수 있다고 네 입으로 말해 줬잖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인류는 아직 던전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으니까요.]

    그래. 네 말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 몰라.

    지병 환자가 꾸준히 약을 투여받듯이 어쩌면 ‘관리’를 할 수도 있지.

    하지만 최소한 여의도 지역 일대는 사람이 살기 어렵게 될 거야.

    아까 아나운서가 그러더라.

    저 빌딩은 여의도에서 500미터 거리에 있고, 국제 무역 센터며, 뭐며 전부 싹 다 가깝다고.

    그러면 이사 가야겠지?

    그게 쉬울까.

    다른 나라는 어찌 될까?

    만약 백악관 한쪽 화장실에 레벨 20제한 던전이 생기면 어떻게 되는 거냐?

    백악관을 이사 보내나?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나?

    책상 위 북극곰 인형이 콜라를 들고 있다.

    나는 콜라를 든 북극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단하게 뭔가를 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나는 [갓튜브 소셜 스타]니까. 따봉 벌이나 좀 하겠다는 거야.”

    그리고.

    던전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정보.

    [던전 소멸 정보]

    등급: S

    10,000,000따봉

    1천만 따봉.

    이걸 반드시 구입한다.

    부활 스킬과 동급의 가격을 가졌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겠지.

    그걸 생각하며 장비를 갖춰 입고, 폰을 들었다.

    정지한에게 던전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연락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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