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잘린 팔도 붙이면 붙는 거 아니야?
[궁금하다고 거기까지는 실험하지 마시죠.]
그치. 호기심 때문에 내가 내 팔을 잘라 볼 수는 없지.
[거기다가 가격도 저렴합니다. 랭크 A 물건이 이 정도 가격이라는 것 자체가 피를 만드는 것 말고는 아무 쓸모가 없다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12억이라는 금액이 그나마 붙어 있는 건 혈액팩 제작용으로 쓰이는 것이라 판단됩니다.]
그게 된다고? 이걸로?
[네. 혈액형별로 만들어 낸다고 하더군요. 이런 아이템들은 나름대로 중요한 자산입니다.]
그렇군. 헌터용 아이템으로 평가하기에는 가격이 낮지만, 의료 기기로 평가하자면 이 정도 가격은 줄 만하다는 거군.
이것으로 척량이 어떤 콘셉트로 아이템을 준비했는지 알 것 같다.
트롤과 같은 막강한 재생력, 거기에 강완의 팔찌로 근력을 보충하고, 일정 확률로 내 공격이 2배 들어가는 아이템을 낀다?
네 대가리가 먼저 깨지나, 내 대가리가 먼저 깨지나 어택 땅을 하라는 거지?
“혼원건곤신공 들고 근접해서 막싸움을 벌여라?”
[그렇습니다. 염혼염동 역시 같이 사용하면 시너지는 더욱 상승할 것이고, 파괴되지 않는 장난감 소환 스킬까지 병용하면 몹시 강력해지겠군요.]
하지만 트롤의 신체 때문에 근력이 B 이상 오르기 힘들 텐데?
[위의 강완의 팔찌를 보시면 ‘무조건 근력을 15% 상승시켜 준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무조건’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고정 페널티를 무시할 수 있죠.]
호오, 그런 숨겨진 설명이?
[네. 수억, 수십억 하는 비싼 아이템을 이것저것 걸쳐 봐야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정보는 인터넷으로 풀리지는 않습니다.]
역시 내가 쓴 따봉 중에 가장 잘 쓴 건 척량이 너란 소환수를 얻은 거야.
[뭘요, 주군. 책사로서 주군의 신뢰만큼 큰 상도 없지요.]
척량은 앞발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흐읍, 미친, 이렇게 귀여워도 되냐!
나는 척량의 뺨을 잠깐 잡아당기는 시간을 가졌고, 척량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부처의 마음으로 받아주었다.
“그나저나, 이걸로 좋은 생각이 하나 났어.”
[주군의 심모원려!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심모원려까지야. 그냥 간단한 거야. 확률 더하기를 하자고.”
[두 번 타격하는 장화].
확률은 분명 15%.
15% 확률로 대미지가 두 배 들어간다는 의미인데…….
상당한 사기 아이템이다.
그래서 가격도 빌딩 한 채 정도는 달라는 거지.
“따봉 상점 오픈. 두 번 타격하는 스킬 및 아이템 목록을 출력해 줘.”
-따봉 상점이 오픈됩니다.
-스킬 검색 중…….
목록이 주르륵 나타난다. 그중 적절한 따봉 가격에 확률 100%를 맞출 수 있는 스킬을 찾아본다.
[두 번 공격 - 40,000따봉]
등급 : 에픽 (비성장형 B)
20% 확률로 공격이 두 번 타격한다.
[환영검 - 62,000따봉]
등급 : 유니크 (성장형 B+)
환상의 신이 시스템에 내린 조각. 현실을 복제한 환영의 검날이 생겨나 적을 공격한다.
15% 확률로 두 번 타격한다.
제한 : 검 외의 공격에서는 스킬이 발동하지 않음.
진화 예정 : 환영마검(성장형 A)
[두 번째 기회 - 65,000따봉]
등급 : 에픽 (비성장형 A)
언제나 기회는 한 번 더 있다. 기회의 신의 가호로 만들어진 스킬.
25% 확률로 공격이 두 번 타격한다.
[검의 잔영 - 63,000따봉]
등급 : 에픽 (비성장형 A)
검의 신은 생각했다. 한 번 더 베면 좋을 텐데.
25% 확률로 공격이 두 번 타격한다.
들어가는 따봉은 정확히 23만.
이걸 다 쓰면 다시 내가 모든 따봉들은 거진 다 털리게 되겠지.
따봉만큼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내 목숨값이니까.
하지만…….
[주군. 이건…….]
그래. 확률 100%를 맞추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흥미진진하지 않아?
좋아. 모조리 구입!
* * *
아이스 아메리카노 석 잔에 하루가 흘러간다.
아침 한 잔, 점심 한 잔, 저녁 한 잔.
숙면을 위해 오후 6시 이후로는 마시지 말라고는 하지만, 정신력으로 버티려면 이거라도 있어야지 도리가 있나.
스킬들을 구입하고, 트레이닝 룸에서 수련을 거듭하고.
구매한 아이템들은 연금술로 어떻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지 고민 좀 하고.
물론 바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한번 강화하면 끝이니까 최대한 연금술 숙련도가 오른 후에 모색해 보는 게 맞겠지.
그렇게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나야 내공 회복이 바로 돼서 던전에 바로 가도 되긴 한다. 따봉도 벌 수 있고, 아이템이나 돈도 벌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수련이 우선이라고 판단해서 던전은 잠깐 뒤로 미루고 수련에 매진했다.
마치 피라미드 쌓는 노예처럼 매일 죽어라 내공 수련을 하고, 그 내공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 초식의 수련에도 땀과 열정을 쏟았다.
이건 뭐 거의 무협 소설의 폐관 수련인 줄?
[주군. 피라미드는 노예가 아니라 양민이 쌓았고, 제대로 휴가도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 이집트만도 못한 노동 인권.
목화밭의 노예라고 하자.
[그건 맞습니다.]
목화를 따듯 내공을 쌓고 다시 수련하고.
저녁에는 바이크를 조립하고 업그레이드하고. 그냥 그거 반복.
수련 영상은 업로드하지 않았지만, 따봉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과거 영상들에도 계속 따봉이 붙기 때문. 그래서 일전에 소모한 따봉을 어느 정도 복구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동생인 무척이가 날 위해 요리한 음식들이 SNS에서 화제가 되었지.
녀석의 영상 따봉이 내 거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인기가 좋으니 내 기분도 으쓱하네.
무척이는 트레이닝 영상을 올렸는데 상의를 탈의하고 쇠질을 했더니 성난 근육이 그대로 잘 찍혀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팬들은 무척이를 캥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캥거루+무척의 합성어다.
캥긔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캥거루+애기의 뜻이다.
이쯤 되니 엄무척이라는 이름이 아예 안 들어가기는 하는데 뭐 그걸로 됐나?
성난 근육의 캥거루와 동생 얼굴이 합성된 짤이 돌아다니면서 밈을 만들었다.
[오늘은 갈비 도시락. 형은 폐관 수련 중.]
-캥긔 오늘도 고생 많아. 요리 너무 금손이야.
-캥척이 트레이닝도 하고 형 도시락도 싸고 너무 착해 ㅠㅠㅠㅠㅠ
-신부 손등 조심하라.
-아름다움.
-도시락 조심하십시오.
-이것은 좋아함.
엔스타는 번역 기능을 갓튜브처럼 지원하는 게 아니다 보니 해외 팬이 따로 번역기를 돌려서 한국어로 올리기도 했다.
개중에는 익명 사이트에서 형이 동생을 부려 먹고 있는 거 아니냐.
엄지척은 나쁜 형이라고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먹금하고 있다고 한다.
먹금이라는 말은… 어… 무시한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일부러 직접 찾아가서 읽지는 말라네.
아무튼 동생의 엔스타가 소소하게 흥하고 있고, 요리 영상도 업로드하니 인기가 더 좋아졌다고 하고.
나중에 먹방이라도 올려야겠네.
[15만 따봉이 모였군요. 주군.]
그러게.
그렇게 털었는데 다시 모이고 있어.
[갓튜브 영상이란 신기합니다. 주군이 굳이 몬스터를 잡지 않아도 사람들이 주목하는 한에는 계속 따봉을 눌러 주니까요.]
그게 내 직업의 최고 장점이겠지.
척량은 트레이닝 룸을 나오는 내게 타월을 건네주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주군. 무공의 수행은 마치 우공이산(愚公移山)과 같아서, 긴 인내와 시간을 들여야 하는 법이지요.]
“나도 알아.”
우공이산의 고사는 나도 안다.
옛날 북산이라는 지역에 우공이라는 아주 나이 많은 노인이 살았더랬다.
이 노인의 집 앞은 엄청나게 커다란 태행산과 왕옥산이라는 두 개의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우공의 집에서 외부로 나가려면 이 두 산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니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지? 그래서 어느 날 우공 노인이 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얘들아. 우리 가족이 힘을 합쳐서 산을 옮겨 버리자꾸나.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산을 어떻게 옮겨? 당연히 가족들은 그런 헛소리 하지 말라고 면박을 주었는데, 우공 노인은 가족들의 그런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날부터 산을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묵묵하게 몇 년을 계속했다…….
그것은 광기(狂氣).
주변의 사람들이 미쳤다고 수군거리다가 묻기를.
-당신은 오래 살지 못할 노인인데, 왜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하는 거요?
그러자 우공이 답하기를.
-내가 죽으면 내 아들이, 그리고 손자가 계속할 거요. 그리고 그 손자의 자식이, 그 아이의 아이가 계속해서 대를 이어서 산을 옮길 것인즉. 언젠가는 길이 날 것이오.
라고 했다더라.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이야기.
‘사실 사람들은 잘 모르는 뒷이야기가 따로 있지.’
그 말을 몰래 들은 두 산의 산신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더니, 즉시 세상을 다스리는 신인 상제에게 달려가 자기들의 산을 구해 달라고 청원하게 돼.
상제는 그 말을 듣고 이거 참 골치로세~ 이러면서 산을 옮겨 주었고 우공 노인의 집 앞은 휑해져서 도로가 뻥뻥 뚫린 금싸라기 땅이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교훈?
쉬지 않고 꾸준하게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라?
물론 그것도 있겠다.
하지만 역시 가만히 있다고 집값이 오르지 않으니 개발을 위해서는 직접 나서야…….
[주군.]
알고 있어.
결국 이건 어찌 보면 무공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는 거.
사실 유혹은 있다.
이렇게 수련하지 말고 그냥 따봉을 들이붓는 게 훨씬 빠르지 않나 하고.
따봉 상점은 그만큼 무궁무진하니까, 그걸 써서 쉽게 가는 게 어떤가 하고.
이런 짓 한다고 내가 강해지는 게 맞기는 한가 의심도 생기고 말이지.
그래도 별수 있겠나.
그게 무공인데.
힘든 일은 잡생각이 적을수록 좋지.
알고는 있지만 사람 천성이라는 게 어딜 가는 게 아닌 게, 이 와중에도 머리 한구석에서는 자일X톨 휘바송이 울리고 있고, 다른 한구석에서는 이 엿 같은 수련이 언제 끝나나 세고 있네.
그래. 알고 있어.
나는 영웅이 아니야.
무념무상으로 몰아의 경지에 들어갈 만한 수준의 인간이 아닌 거지.
그럼에도 이렇게 반복하는 것은.
‘평범하게 노력해서는 사람들이 관심을 주지 않으니까.’
나는 관심을 받지 않으면 죽는 직업이고, 매끄러운 검로 한 번에 누군가가 감동을 받아 ‘좋아요’를 눌러 주면 그게 구명줄이 될 테니까.
거기다 다른 헌터 보조원이 내 시체를 치우게 하고 싶진 않아.
그러니까.
죽더라도 먼 훗날, 잘 늙어서 가족들의 손을 붙잡고 침대 위에서 죽고 싶으니까.
“아, 해가… 졌구나.”
얼마나 수련을 한 걸까.
온몸이 땀으로 샤워를 했네.
[대단하십니다. 이만큼 오래 집중하시다니.]
집중? 내 머릿속에서 울렸던 광고송 척량은 안 들리는구나?
[사람은 한 번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니까요. 제게 말을 전달하려고 집중하신 게 아니면 저도 모릅니다.]
그렇구운.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쉬지 않고 계속하는 건 대단한 일이지요. 고수들도 병아리 때에는 그런 집중력이 없으니까요.]
집중력도 수련하다 보면 느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