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일단 이 영약을 척량에게 먹였다.
띠링-
-소환수가 [묵직함의 영약]을 섭취하였습니다.
-스킬 반영 중…….
-소환수 등급과 영약의 등급의 차이가 커서 시간이 걸립니다.
[제가 레벨이 낮아서 소화할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인데요? 주군.]
으음, 역시 그런가. 바로 보고 싶은데 아쉽네.
일단 방송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제 남은 건 이놈들인가.
“척량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는 던전 앞에 임시로 차려 놓은 천막. 본래라면 헌터들은 사냥 후에 차 타고 집에 가는 게 보통이지만, 나는 여기에 임시 천막을 하나 차려 달라고 했다.
아직도 잠에 빠져 있는 이 둘 때문에.
날 죽이러 왔던 이놈들.
중간에 라이브까지 찍어 버린 나도 보통 멘탈은 아니지만, 아니, 그건 아니지.
내가 이 두 놈을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따봉 때문이고, 따봉은 기회 될 때마다 벌어야 하지 않나?
이놈이 신경 쓰여서 일 못 하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공론화와 비공론화의 방향이 있습니다.]
“그거야 나도 알아. 어느 쪽이 더 좋겠느냐는 거지.”
[방금 번 따봉을 보면 아시겠지만, 따봉을 모은다는 측면에서는 공론화가 더 좋습니다. 콘텐츠를 하나 올리는 것만으로도 몇만 따봉은 벌어들이니까요. 지금 구독자가 벌써 50만 명을 돌파했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랬지.
이른바 미쿡 쌍놈 [A/B]까지 가세하니… 구독자가 50만 명을 안정적으로 넘어버렸다.
나는 한참 턱을 문지르며 생각을 정리했다.
40레벨 제한 특수 던전.
그걸 클리어할 때의 영상을 올렸더니 반응이 아주 엄청났다.
GOF에서도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고, 그 외에도 영입 메시지가 폭주 중이다.
여기에 방금 핵폭탄을 터뜨렸으니 말할 것도 없어졌지.
어떻게 내 폰 번호를 알았는지 모르는 곳에서도 문자가 수시로 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주변 사람만 아는 헌터용 폰을 따로 팠을 정도.
[과거 영상들 따봉도 차오르고 있습니다. 주군!]
흠, 내가 어떻게 저걸 알아냈는지 궁금해진 건가?
[그래서 본 걸 수도 있지만 그냥 순수하게 A/B로 인해서 유입된 시청자들이 지난 영상들을 보는 경우도 있고요.]
후우, 22만 따봉인가?
[네. 그렇게 많이 쏟아부었는데 다시 22만 따봉이 되었군요. 주군.]
이거, 현실감이 없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계속 더 유명해진다면 시청자도 늘고 따봉도 더 늘겠지만.
반대로 인기가 시들해진다면?
으음…….
[대부분 갓튜브 헌터들은 인기가 계속될 거라 믿는데 주군께서는 걱정이 많으시군요.]
내가 어리다면 그럴 수 있겠지.
다른 이들처럼 어린 나이에 각성을 하고, 아르바이트 한두 번 겨우 해볼까 말까 하거나, 고등학교 다니다가 각성한다면 그럴 수 있어.
하지만 글쎄다.
몰락한 헌터들을 너무 많이 봐왔어.
그리고 그 종착지가 죽음이란 것도 너무 많이 알아버렸거든.
그러니.
“공개하는 게 좋겠어.”
“글쎄요. 그건 그렇게 좋은 생각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천막을 들추고, 한 사내가 냉막한 표정과 함께 들어선다.
여전히 칼처럼 날카로운 슈트 차림에 기계 같은 얼굴을 하고 들어온 우리 물주.
정지한 이사님이다.
“정 이사님, 오셨어요?”
“이런 대형 사고가 일어났으니, 제가 안 올 수가 없었죠. 그나저나… 아이템이 문제가 아니군요. 이 둘이 여기서 잡힐 줄은 몰랐습니다.”
참 바쁘다 바빠.
방송 보고 [묵직함의 태도] 사랴, 내가 있을 던전까지 달려오랴, 심지어 돌아오니 일거리도 있지요.
“이 둘에 대해서 아세요?”
거기다 아는 눈치다.
“예. 나름대로…… 인연이 있죠. 남자 쪽은 그랜트. 여자는 레이나. 둘 다 청부살인업계에서 제법 유명합니다. 특히 이 둘이 레벨 80대의 파티 5명을 처리한 일이 있어서 더 유명하죠.”
“진짜요?”
“예. 대인전 특화 능력자들이니까요. 이런 흉악한 자들을 어떻게 쓰러트리신 건지 제가 더 궁금할 지경입니다.”
“오토바이로 들이받으니까 쓰러지던데요?”
내 말에 정지한이 약간 멈칫한다.
이 인간 표정이 이런 식으로 랙 걸리는 거 보는 것도 웃기네.
“어… 당황하셨군요. 하긴. 이런 초인들이 오토바이에 치였다고 이 모양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아니… 네……. 당황했습니다. 그… 지척 씨는 볼 때마다 저를 놀라게 만듭니다만. 오토바이라니…….”
그는 안경을 벗고, 눈가를 쓱쓱 문질렀다.
이 남자는 하루에 몇 시간을 자는 걸까?
잘은 모르겠다만 아무튼 잠을 죽여 사는 건 틀림없어 보이네.
심지어 방금 말에는 뭔가 묘하게 눅눅한 감정이 끼어 있는 게 느껴진다.
“제가 그렇게 자주 놀라게 해 드렸던가요?”
“캠으로 영상 촬영을 하고 싶다고 저에게 찾아오셨을 때부터 이미 저를 놀라게 해 주셨었습니다.”
“아. 그랬었네요.”
하긴. 헌터 보조원 주제에 찾아와서 캠으로 방송 촬영을 하고 싶다고 요구하는 게 제정신은 아니었을지도.
그때는 소소하게 따봉 좀 얻으려고 했던 건데.
“그런데 왜 공개하지 말라고 하시는 건지 가르쳐 주시겠어요?”
“윗분들과 협상을 해서 뜯어낼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예?”
여기서 갑자기 정부가 왜?
“이런 범죄자가 돌아다닌다, 그리고 암살까지 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갓튜브로 뿌리는 건 높으신 분들이 또 싫어하니까요. 오히려 약점을 잡고 실속을 얻어내는 게 좋겠지요.”
으음, 그런 일이 있나.
각을 세울 필요는 없나. 괜히… 으음.
“아. 그런 이유군요. 비밀로 하는 대신에, 뭔가 대가를 챙긴다? 그런 거죠?”
“일단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비공식적으로 이들을 처리하게 되면 우리 쪽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거든요.”
“할 수 있는 일이요?”
“생각해 보십시오. 이들은 국제적인 범죄자입니다. 청부업자이기도 하죠. 무수한 범죄의 증인이거나 증거가 됩니다. 다른 국가의 범죄를 해결할 단서가 될 수도 있고요. 외교적으로도 이득을 볼 만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공식적이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은밀한 일들도 제법 되죠.”
이건 뉘앙스만 들어 보면 고문으로 정보를 토설하게 한다는 느낌이 드는데……. 뭐, 거기까지는 내가 터치할 바가 아니려나.
“알겠습니다. 정 이사님의 말씀에 따르죠.”
“좋습니다. 이 둘은 제가 데려가죠.”
“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에게 인사하고서 천막 밖으로 향했다.
“그런데 지척 씨.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그런데 나가던 나에게 정지한이 뭔가를 물어보려고 했다.
“헌터 상점이 아닌 다른 종류의 상점을 가지고 계신 건 알겠습니다만, 어떤 종류든 상관없이 구입할 수 있는 겁니까?”
그리고 나는 덜컥 멈춰 섰다.
[주군. 집중하셔야 합니다.]
그래. 알아, 척량아.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냉막한 표정의 정지한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본래 가지고 있지 않았던 스킬이 생긴다. 자신의 직업과 관련 없는 스킬도 사용한다. 일반적인 헌터 상점을 가지고 있는 분들과는 다른 점이죠. 이런 종류의 직업을 제법 압니다. [바빌론 도서관의 사서], 혹은 [전지의 조각을 받아들인 마도사] 같은 직업이 그렇지요.”
그… 그런 직업도 있었어?
딱 들어봐도 나에 비해서 뭔가 대단해 보이는 직업들 같은데.
어… 나는 그냥 [갓튜브 소셜 스타]에 반짝이는 작은 갓튜버 등급인데?
왠지 이런 대단한 직업에 갖다 대자니 좀 마음이 스몰해지는군.
나의 갓튜브 소셜 스타, 반짝★이는 작은 갓튜버…….
“반응을 보니 이 두 직업은 아닌 모양이군요. 제가 모르는 종류의 새로운 직업을 얻으신 것 같은데. 처음부터 그랬습니까?”
“…….”
[주군.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건 나도 알아.
“그건 조금 곤란한 질문인데요.”
내 말에 그는 잠시 말이 없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능력 정보는 중요하죠. 훌륭한 태도이십니다. 그러면, 일단 이 둘은 제가 데려가지요. 정부 측에서 보상을 받아낸 후,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죠.”
“예. 그러면 이만.”
그가 손목의 시계를 톡톡 건드린다. 그러자 천막 밖에서 사람들이 들어와서는 두 명을 들쳐 업고 나갔다.
그 뒤를 따라서 그가 먼저 나간다.
잠시 그가 나간 자리를 바라보다가, 나 역시 천막을 나왔다.
정말… 방심할 수 없는 사람이라니까.
* * *
‘그랜트와 레이나. 백해무익(百害無益)한 것들이 이리 쉽게 들어오다니…….’
정지한은 트럭의 짐칸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래에는 여전히 잠에 빠진 채로 구속구에 휘감긴 두 명이 있었다.
정지한이 손바닥을 한 명의 얼굴 위에 가져다 댄다.
그러자, 그의 손등 위로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환영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펑!’ 하는 소리가 울리고. 근육의 사내 그랜트가 눈을 떴다. 잠시 두 눈을 끔벅이고, 목을 움직여 주변을 본다.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실패했군.”
“오랜만이군.”
“뭐? 나 알아? 나는 네놈을 처음 보는데.”
그랜트가 실실 웃으며 말을 늘어놓는다.
잡혔다지만 여유롭다. 그러나 그 여유는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랜트 마이어. 42세. 21세에 각성. 첫 살인은 아버지.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은 에이미. 마약상 빌리에게 에이미가 살해당한 일이 계기가 돼서 범죄자가 되었다.”
“너…….”
그랜트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처음 보는 상대가 자신에 대해서 상세히 알고 있기에 보이는 분노였다.
그런 그랜트를 바라보며 정지한은 냉정하게 말했다.
“궁금한 건 단지 하나다. 네가 지금 이 시점에 여기에 온 게 이상하다는 거지. 지금 시기면 너는 마피아들 사이에서 용병 노릇을 하고 있을 텐데.”
“웃기는군. 내가 말해 줄 거 같나? 경찰에 넘기기나 하시지?”
“진실을 말한다면 편안히 죽여 주겠다. 반항한다면 끔찍한 최후를 겪게 해 주지.”
한국의 공권력에 넘어간다면 죽지 않을 것이고, 그랜트는 충분히 보석금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미국에서 변호사가 헌터 인도 조항을 들고 와서 그를 꺼내줄 테니까.
“어이. 여기는 한국인데 그런 게……. 으아아악!”
비웃으며 한국을 거론하려던 그랜트.
그러나 손을 뻗어온 정지한의 검은 장갑을 낀 손이 그의 어깨를 잡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뼈가 으스러지고, 근육이 파열된다.
그 고통은 그야말로 끔찍한 것.
“그래. 한국이지. 재벌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 그리고 나는 그 재벌 가문의 일원이거든.”
“허억… 허억…….”
“그래서. 왜 여기까지 왔지?”
“보… 보스가 투자자의 의뢰라고 했어. 그거 때문이야. 그것 외에는 몰라.”
정지한의 미간이 천천히 찌푸려졌다.
그리고 이마를 마치 시계의 초침처럼 툭툭 건드린다. 기묘하게도. 그 손짓에 시계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것이 그랜트에게는 이렇게 들리는 것 같았다.
TiK. ToK. TiK. ToK. TiK. ToK.
그리고 이윽고 손가락이 정지한다.
“기억났다. 오차는 있겠지만, 그리모어(Grimoire)에 소속되어 있을 텐데. 맞나?”
“다 알면서 묻는 악취미가 있나 봐?”
그랜트의 말에 정지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 정도면 됐다.”
그리고 그가 손을 펼쳐 그랜트의 이마에 가져다 댄다.
“후…… 지옥에서 보자고, 친구.”
그랜트가 죽음을 직감하고서 덕담을 건넸다.
그런 그랜트의 이마 위에서 시계의 환영이 나타나더니, 엄청난 속도로 시곗바늘이 움직였다.
“네놈의 시간, 잘 받았다.”
정지한이 손을 뗐을 때.
그랜트는 이미 죽어 있었다.
“정수기가 그리모어 쪽과 손을 잡으려고 한다는 건데… 어디서 생겨난 변수일까…….”
정지한의 두 눈은 음울하게 빛난다. 그리고 이내 레이나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레이나는 그랜트에 비해 많은 것을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금제라도 받았는지 어느 순간 입이 굳었고.
간단하게, 또 한 명에게 죽음이 선고된다.
“지척 씨에게 보상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해 버렸으니… 적절한 대가를 따로 준비해 두어야겠어. 그리고 조금 더 빨리 움직여야겠군.”
그는 무심한 눈동자로 두 시체를 내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