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74화 (74/305)

제74화

[…….]

척량이는 침묵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척량이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했다.

[죽음을 거부하는 자]는 신이잖아?

그리고, 이 땅에 간섭하려고 수작을 부리던 개진상이었단 말이지.

근데.

내가 예전에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했거든.

무척이를 번듯하게 키우려고 안 해본 일이 없어요.

그때 느낀 게 뭔지 알아?

[모르겠습니다. 주군.]

진상은 끝이 없더라.

[아…….]

그래. 끝이 없어.

바퀴벌레처럼 어디선가 계속 나오더라고.

오늘은 오늘의 진상이, 내일은 내일의 진상이 나와.

신이라고 다를 것 같지 않더라.

정지한도 그랬잖아?

레벨 제한 던전은 계속 나올 거라고.

그런데 동료들은 전부 레벨을 올릴 거고.

그러면 어떻게 될지는 뻔해.

레벨 제한 던전은 계속 나타나고, 그건 번번이 터지겠지.

몬스터는 끝도 없이 튀어나오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점점 줄어들 거야.

그걸 내가 왜 걱정하냐고?

그러다가 결국 전부 다 망할 거 같아서.

[주군. 훌륭하신 혜안이십니다.]

그래. 기후가 맛이 가서 인류의 미래가 위험하다고 해도, 일반적으로는 체감이 안 되잖아?

나도 그래.

[죽음을 거부하는 자]를 안 만났으면 체감이 안 되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미 경험해 버려서. 너무 뼈저리게 느껴져.

이게 그 심연을 보면 그 심연도 나를 본다는 느낌인가 뭔가일까?

크툴루식으로 말하자면 영구적으로 정신력(Sanity)이 깎이는 느낌이려나?

그래서 아주아주 진지해져야겠다고 생각했어.

더 빠르게, 더 확실하게 강해져야 해. 그래야만 나를 지킬 수 있어.

그리고 세계를 지킬 수 있어.

도와줄래?

척량이 듣기에는 입에 발린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어쩌면 각성병이라도 와서 한창 내가 세상을 바꿀 거라고 기고만장해져 있는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진심이 전해지기를 바랄 수밖에.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모두를 위해서.

지금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고.

각오를 다져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걸 깨달았다.

[금지 항목 해제. 추가 정보 열람 가능.]

그래, 네가 동의…….

엥? 아니. 잠깐.

지금은 감동적으로 네가 내 말에 동의해 줘야 하는 타이밍이잖아! 그런데 이게 무슨…….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공 수련은 멈추지 않은 채로 내 앞에 선 척량을 보았다.

척량의 두 눈에서 광채가 쏟아져 나오고, 이상한 소리가 났다.

우오오오오--

그리고 잠시 후. 척량의 두 눈이 감겼다가 다시 떠지더니 정상으로 돌아온다.

[오오오. 주군! 경하드립니다! 스스로 비밀에 접근하시다니요!]

척량아. 네 주군은 지금 치약을 열 숟가락은 퍼먹은 거 같아.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험험. 제가 너무 급하게 말씀드린 모양이군요. 사죄드립니다.]

사죄할 것까지야. 그래서, 무슨 일이야?

[제 안의 정보 열람 권한 몇 개가 해제되었습니다. 그 결과. 조금 더 폭넓은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오…… 그래? 그래서. 그게 뭔데?

척량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윽고 단호하게 다음 판결을 내렸다.

[인간의 세계는 멸망하게 됩니다.]

단언(斷言).

내가 생각하는 추측. 혹은 위기의식 같은 게 아니었다.

확정된 미래를 말하듯. 바뀌지 않는 진실을 발설했다.

그런데 어째 어감이 이상하다?

‘인간의 세계’는 멸망한다? 그건…….

[역시 영민하시군요, 주군. 그렇습니다. 인류의 멸절이나, 멸종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사태는 위대한 ‘축복’이니까요.]

축복?

추보오옥?!

크툴루의 ‘축복’도 축복은 축복이지?

그게 사람의 관점이냐, 오징어의 관점이냐의 차이가 있지만?

“후욱.”

잠시 흥분해서, 듀얼 스펠 캐스팅에 의한 동시 사고 멀티태스킹이 무너질 뻔했다.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공 수련을 중지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설명해 줘.”

[지구라는 행성은 연약한 아이와 같습니다. 탄생한 이후 약 46억 년이 지났지만, 아직 성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연약해서 신적 존재가 하나만 강림해도 산산조각이 날 정도이지요.]

갑자기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거 진짜야? 그…… 위대하신 신 중에서 하나만 강림해도 가루가 된다는 거?”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째서 이게 축복인 건데?”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신들이 전부 강림한다 할지라도 유지 가능한 세계가 되기 위한 과정이 지금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던전이 생기고, 그것들이 이 행성을 강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하… 하하하…….”

이해가 갔다.

[주군…… 지구는 인간 한 개체만의 것이 아닙니다. 멸망은 관점의 차이입니다.]

이 지구는.

그들에게 화분에 기르는 식물 같은 거다.

화분에서 식물을 기를 때 흙을 갈아 주고, 영양제도 주고, 살충제 같은 것도 친다.

식물을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인간은 어찌 보면 뿌리파리와도 같은 존재다.

박멸하려고 애를 써도 지긋지긋하게 살아남는 뿌리파리.

하지만 화분 소유자도, 식물도 그 뿌리파리의 생존 여부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 아닌가.

오히려 없애면 없앴지.

신이라는 위대한 것들의 눈에. 우리는 그저 작은 해충 정도로만 보였을 거다.

혹은 재미난 장난감이거나.

“그래서. 인류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거구나?”

[아마도요. 이 변화가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일어난다거나, 또는 인류를 진화시키기 위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뱀이 허물을 벗듯 하나의 죽음이 끝나고, 하나의 생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 인간은 멸망조차도 자기 멋대로 자기 관점에서 생각해 오는 걸지도 모른다.

죄 많은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신이 징벌을 내리는 것이라고.

하지만 아니라는 건가.

지구도, 신도, 그 누구도 인간에겐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환경이 극단적으로 변화해서 인류 문명을 파괴하고 사회 체계를 붕괴시키겠지만. 인류 중 극소수는 어쨌든 적응해서 살아남을 겁니다. 더 이상 이 지구의 주인을 자처할 수는 없겠지만요.]

“그게 튜토리얼이 끝나는 시기려나?”

[열람 불가능한 정보입니다.]

거기까지는 아직 해금되지 않은 모양이네.

어쨌든.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던전이 늘어나는 것을 이대로 내버려 두면 인류 멸망은 확정적……이라는 거겠지.

“척량. 혹시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아도 쉽게 소멸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있어?”

던전 소멸.

던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클리어 후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 단발형 던전.

클리어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재생성형 던전.

재생성형 던전이든 단발형 던전이든 결국 클리어를 하지 않으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다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재생성형 던전은 그렇게 클리어를 해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나타난다.

한 번 클리어하면 사라지는 단발형 던전도, 이것을 완전 소멸로 봐야 할지 아닐지 의견이 분분하다.

100년 후, 200년 후처럼 당장 관측하기 어려운 주기를 가진 것인지 아닌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다.

물론 그 특수성 덕분에 지금의 문명을 이룩하긴 했다.

던전이란 무한한 에너지와 자원의 보고나 마찬가지니까.

마력을 띤 금속, 계속해서 전기를 발산하는 신기한 보석.

지구에 없는 것들을 그곳에서 가져온다.

각성자들은 던전의 몬스터로부터 인류를 지키는 방패이자, 던전이라는 광산을 채굴하는 광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지금까지 인류는 그럭저럭 해 왔다.

자본주의가 모두를 소집하여 방산 업체와 정치권, 그리고 심지어 갓튜브 같은 막장 엔터테인먼트까지 결합되니 무적의 전대물이 되었다.

그러나 레벨 제한 던전 중에서도 특별한 녀석들이 나타난 데다가 새롭게 던전 그로잉 현상이 일어나면서 문제가 되는 것.

그러니 묻는다.

그렇기에 질문한다.

설령.

척량이 다시금 열람 불가능한 정보라고 말할지라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작은 희망에 기대서 의문을 던진다.

자! 그래서 어떤 거냐, 척량!

[따봉 상점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오?!

여기서 따봉 상점이?!

“이야…….”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오고 만다.

“이 집 장사 잘하네.”

어이가 없다. 정말.

* * *

“감개무량하군요. 이로써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날 겁니다.”

“그렇게 되기를 저도 바랍니다.”

나이는 오십 대로 보이는 중년의 외국인.

고집이 느껴지는 그가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마주 잡는 것은 서른 초반 정도로 보이는 혼혈계 미남자였다.

외국인의 뒤로는 그를 수행하는 자들이 서 있고, 그의 뒤에는 미남자를 수행하는 이들이 있었다.

둘이 대표로 손을 잡자, 대기하고 있던 사진사가 사진을 찍어낸다. 그리고 잠시 후. 외국인들이 우르르 회의장을 나간다.

그들이 나가고,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미남자는 다른 이들에게 손짓했다.

“업무 제휴가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군요. 다들 나가서 일 보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사장님.”

“그러면, 저는 회장님께 보고를 하러 가 보겠습니다.”

상무이사, 전무이사, 그런 이들이 다시금 인사를 하고 회의실을 나간다. 그리고 그와 비서들만이 남았을 때.

그의 화사한 미소 띤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지며 흉신악살의 표정으로 변한다.

“다시 말해봐.”

정수기.

정하 그룹의 사장 중 한 명이며, 다음 황좌를 노리는 야심가.

그리고 사촌 정지한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이.

“하나도 안 죽었다. 이거지?”

그의 옷이 단번에 얼어붙는다. 그의 발밑 지면 역시 새하얗게 변하며 지독한 냉기가 주변으로 번져 나간다.

순식간에 회의실 내부가 냉동고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비서들 대다수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단 한 명만이 제자리를 지킨 채로 고요하게 대답한다. 그는 뼈 저리는 한기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하다.

정수기의 심복으로 알려진 김영인이라는 사내였다.

“하…… 내 사촌 동생. 재수도 좋네. 그래서, 전에 시킨 일은 어떻게 됐어?”

“접근조차 하지 못하여 영입할 수 없었습니다.”

“그 정도야?”

“예. 철저하게 차단되고 있습니다.”

“내 사촌 동생이 그렇게 철저한 녀석이 아닐 텐데…….”

“막내 도련님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망나니가 아닙니다. 사람이 바뀐 지가 제법 되었습니다.”

“그으래. 우리 사촌 동생이 철이 들었다…… 이거지?”

“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입니다.”

일그러졌던 얼굴이 다시 빙긋 미소 짓는 얼굴이 된다.

그 잠깐의 사이. 정수기의 등 뒤로 얼음 기둥이 빠르게 솟아나 그대로 의자의 형태로 변했다.

경이로운 모습이지만, 김영인을 제외한 모두는 사색이 된 채로 더욱 물러섰다.

털썩.

정수기. 그가 얼음 왕좌에 앉는다. 그리고 말했다.

“영인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의 투정 섞인 목소리는 CF에서도 인기가 좋다.

하지만 그의 직속 부하들은 세상 최악의 목소리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여기서 대안을 내지 못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기 싫으니까.

“막내 도련님의 말을 하나둘 떼어내야 할 듯합니다.”

“가능하겠어?”

“엄지척은 가능합니다.”

“왜? 다른 애들은 불가능한데 걔만 되는 이유가 뭔데?”

“마력 회복력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서 솔로 플레이를 즐긴다고 하더군요.”

“아하. 그거 위험하네.”

“그렇습니다.”

정수기가 더욱 환하게, 마치 햇살처럼 웃으며 말했다.

“던전에 혼자 들어가면 정말 위험한데……. 우리 사촌 동생이 친구를 잃을지도 모르겠는걸?”

정수기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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