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72화 (72/305)

제72화

그나저나 이런 데서 일 이야기를 해도 되나?

“……?”

주변을 돌아보니 우리 외에는 사람이 없다.

잠깐, 설마 아침 뷔페를 전부 대여한 건가?

아무리 이른 아침이라고 해도 그게 가능해?

정지한이 말했다.

“아, 안심하십시오. 호텔에는 저희와 이번 임무 관련 보조원을 비롯한 스태프들뿐이니까요.”

아… 그렇구나. 한 채 전부를 대여했…….

“…….”

드라마에서 본 적 있다.

천만 원을 하룻밤에 태운 줄 알았는데 억을 태웠네……?

몇 억을 태웠는지 모르겠지만 하와와와, 서민 헌터는 살이 떨리는 것이에요.

그런데 의외로 정지벽도 별하나도, 성광도, 심지어 내 동생조차도 태연하다.

‘아니… 나는 보조원 하면서 호텔 한 채 대여받아서 투숙한 경험이 없다고! 이놈들아! 공략 불가 던전은 그런 거냐? 혹시 정부 돈으로 지원해주는 그런 게 있는 거야?’

아니면 그놈의 빈부 격차인가.

인터넷으로는 늘 봐 왔으면서 사실 전혀 체감하지 못한 건가.

부자 놈들이 얼마나 돈이 많은지?

일단 내 동생 무척이가 가져온 것은 놀랍게도. 컵라면이다.

거기에다가 닭 가슴살을 쭉쭉 찢어서 위에 얹었다.

이 녀석은 운동선수들처럼 식사 제한은 하지 않는다.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몸매 관리나 체중 관리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근육도 결국 전투에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일 뿐이고.

“나도 라면 먹자.”

“더 먹게?”

“응. 같은 거.”

“알았어.”

무척이는 길게 말할 것도 없이 가서 내 컵라면도 끓여 온다.

그러면서 형 입이 심심할까 싶어 오렌지 착즙 주스도 따라 왔다.

“나는 치즈 찢어 줘.”

“애 입맛인 건 여전하네.”

덕분에 아침부터 컵라면을 먹게 되었다.

물론 컵라면‘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먹는 김에 컵라면‘도’ 먹는 거지만.

무척이가 끓여준 컵라면은 매콤한 향이 나서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인다.

후르륵-

조금 덜 익은 면이 혓바닥 위를 구른다.

크으, 이 맛이지.

모두가 어느 정도 식사를 마무리하고 각자 후식을 먹기 시작했다.

정지한이 입을 열었다.

“이번 던전 토벌은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정부 측에서도 굉장히 만족했고, 우리에 대한 각계의 평가도 성공적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짝짝짝짝-

모두가 앞다투어 박수를 쳤다.

“이번에 생긴 던전들을 최초로 클리어한 것도 우리 팀이지만, 가장 큰 건 희생자 없이 클리어를 성공한 것이겠죠. 이 부분, 모두 여러분들의 덕입니다.”

그리 말하며 90도로 고개를 숙인다.

타이밍도 좋네.

정지한 뒤로 모 유명인 아들이 사람 패고 5만 원권을 면전에 던지는 블랙박스 영상이 나오고 있었으니까.

피해자는 합의를 원한다고 하니 정말로 매값을 준거냐, 아니냐 이야기하고 있다.

요즘 세상에서 이건 9시 뉴스거리도 안 된다.

기껏해야 아침 가십 프로에서나 나올 정도지.

경찰도 매수가 되는 세상에서 재벌집 손자란 발 차기로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주먹으로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신의 아들 아닌가.

반면 정지한은 좀 이상하다.

이런 걸 보면 아무리 봐도 매체에서 이야기하던 양아치 재벌 3세라기보다는 밑바닥부터 올라온 사원 출신 CEO 같단 말이지.

“정부 쪽에서 보낸 자료에 의하면 희생자가 나온다고는 해도 던전 클리어를 달성한 국가가 20곳밖에 안 된다고 하는군요.”

엥? 그 정도야?

“전 세계 남아 있는 국가가 200여 개 정도. 이 중에서 20곳만이 막아낸 셈이죠. 물론 한국도 희생자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팀에서 희생자가 없었을 뿐. 우리보다 먼저 들어갔던 팀은 몰살당했으니까요.”

레벨 제한 던전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제아무리 강한 헌터라고 해도 레벨 상한을 넘어버리면 들어가지를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저레벨 헌터밖에 갈 수가 없는데, 레벨 낮은 헌터는 낮은 이유가 있다.

정체되어 있다는 뜻이다.

아니면 무척이처럼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그……. 나머지 국가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결국 참지 못하고 물어버렸다.

정지한은 담담히 답했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습니다. 각 국가들은 그들의 국토로 쏟아진 몬스터와 전쟁을 벌이고 있지요. 다행히 진압한 곳도 있고, 아직 전투 중인 곳도 존재합니다. 물론 전부 진압이야 될 겁니다.”

2성의 최상급 던전이라고는 해도 몬스터가 현실에 나오게 되면 고레벨 각성자들도 투입할 수 있다.

걔들이 나서서 때려주면 되기야 하지.

하지만…….

“네, 레벨 제한에 맞는 헌터를 투입해 던전 자체를 파괴하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화근이 될 겁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남아있는 여러 던전들과 같은 상태일 거다.

‘관리 상태.’

그것은 다른 말로 그 근방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라는 거다.

던전을 없애지 않는 한 병력은 계속 소모가 될 거고.

자연히 저레벨 헌터도 소모가 될 거다.

엿 같은 상황 속에서 모두의 표정이 굳어만 가고 있다.

정지한이 밥 먹고 나서 말해줘서 다행이야.

슬슬 지금 씹고 있는 사과 과육이 종잇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으니까.

“희생자 집계는 곧 나오긴 할 겁니다만, 뉴스로 나오는 것은 사실보다 축소한 수준일 겁니다. 하지만 경제적 충격은 축소가 어렵겠죠.”

그 말에 무척이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이놈은 주식부터 해서 내 자산의 일부를 관리해주고 있으니까.

“하필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곳이 중동 유전 쪽이라면서요?”

“네. 그리고 생산 공장 쪽도 타격이 있는 상태죠.”

에너지 자체는 태양이나 풍력, 또는 마정석으로 만들 수 있지만 석유로 에너지만 만드는 게 아니다.

당장 플라스틱도 석유에서 뽑고 있고, 아스팔트도 거기서 나오고 있고.

심지어 입고 있는 트레이닝복도 석유 원료가 들어간단다.

지금 먹고 있는 곡물도 드론이 만들고 있는데, 그 드론의 재료와 생산 공장 재료에도 석유가 들어가고 있고.

“당장 경제적 충격 때문에 죽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일단 지켜봐야죠.”

어느 정도 쇼크가 오는 걸까?

무척이같이 대학물 먹은 놈들은 좀 잘 알려나.

확실한 건 하나 있다.

방금 먹은 컵라면 값이 200원 정도 더 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

건더기는 개미 눈곱만큼 증량하고 미묘하게 전체 그람 수는 줄어들었는데 가격은 200원 더 받아가겠구나.

“너무 암울한 이야기만 한 것 같군요. 하지만 짚고는 넘어가야 하는 거니까요.”

그 말에 내가 바로 물었다.

“혹시 스카우트 때문입니까?”

“네. 역시 이쪽으로는 눈치가 빠르시군요. 맞습니다.”

-능력자, 정지한이 당신의 질문에 기뻐합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뭐, 내가 고등학교도 거의 못 가서 공교육은 잘 모르지만 실무 쪽은 빠방하지.

“스카우트? 그게 왜?”

무척이와 함께 다른 이들도 약간 놀란 눈치다.

“피해 없이 해결 불가능한 던전,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그걸 우리가 해냈잖아. 당연히 몸값이 올라갈 게 뻔하지. 국제적인 관심을 갑자기 받기 시작했다고 할까?”

그렇게 말하자 정지벽이 한숨을 쉬었다.

“하……. 렙업 좀 늦게 해야 하나.”

레벨 제한이 간당간당하시려나.

하지만 그렇다고 레벨 업을 늦출 수는 없는 법 아닌가.

강해질 수 있는 것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없고, 결국 던전을 클리어하다 보면 자연히 레벨은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

무척이는 생각에 잠기다가 물었다.

“정지한 이사님.”

“예. 말씀하시죠.”

“우리가 레벨 업을 하고 난 이후, 저런 던전이 생기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

그 말에 모두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

당장 우리 팀이 저레벨 구간의 던전은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할 거다.

하지만, 언젠가는 성장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그다음은?

“……그건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닙니다.”

“대책이 없다는 뜻이군요.”

성광이 말했다.

“미국 같은 곳은 아예 각성자 수가 많고, 지금도 많이 생기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여기서 ‘어떻게든’이라는 뜻은 많은 저레벨 각성자가 사망한 후를 뜻한다.

미국은 자유를 내세워서인 건지 모르겠지만, 각성자 입장 조건이 우리나라보다 느슨하고. 또 그에 따른 책임도 본인이 진다고 들었으니까.

인구가 많은 곳이기에 가능한 일.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 뒤는 어찌 되는 걸까.

정지한이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레벨 업을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던전 브레이크가 오는 경우가 있을 거고. 또한, 등급이 높은 던전으로 올라갈수록 보상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니까요.”

정지한은 빠르게 화제를 넘겼다.

“……일단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앞으로 스카우트 제안이 올 경우…….”

정지한은 우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정산이 어떻게 되는지.

게다가 이번 던전 클리어 대가로 정부에서 받은 낮은 레벨 구간에서 사용 가능한 유니크 아이템들에 대한 정보도.

그러나 가슴이 조금 묵직했다.

차후에 레벨 제한 던전이 나타났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괜찮아. 나는…… 괜찮아.’

이 사람들이 모두 고레벨이 되고 더 이상 던전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해도.

‘나만은 계속해서 남아 있을 수 있어.’

나는 레벨 1로 영원히 고정되어 있으니까.

언젠가 혼자서 던전을 깨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겠지만…….

탱커, 딜러, 힐러 전부 다 익힐 수 있으니 혼자라도 괜찮을 거니까.

어쩌면 내 직업은 사기일지도 모르겠다.

모두를 지킬 수 있는 부분에서만은 특히나.

* * *

‘시간선이 비틀린 것은 확실하군. 상정 외의 사건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정지한은 기다리고 있던 리무진에 탑승하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 튜토리얼이 끝나는 것은 몇 년 후일 텐데?’

그는 미래를 알고 있다.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던 것도 원하는 형태로 미래를 조금씩만 바꾸기 위해서라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은 명백한 이상 현상이었다.

‘레벨 제한 던전… 결국 감당이 불가능해져서 세계 여기저기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다. 서서히 인류는 그나마 남았던 자신의 터전마저 잃기 시작하고 결국…….’

정지한의 노트북에는 북극곰이 그려져 있었다.

과거 빙하가 녹는 가운데 북극곰이 살아갔듯이 인류 역시 녹아내리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

변화를 하든가 멸종하든가.

늘 그래 오지 않았나.

‘하지만 너무 빨라. 적어도 몇 년은 더 여유가 있었어야 할 텐데?’

리무진은 부드럽게 도로로 미끄러졌다.

던전에서 나온 이후로 결국 수면 시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아무리 HP가 찬다고 해도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결국 정신이 못 견디게 된다.

하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앞당겨진 일정을 따라잡을 수밖에…….’

그는 피로를 담아 고개를 뒤로 젖혀 눈을 감았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수없이 많이 남아있다.

황금 같은 튜토리얼 기간이 지나가고 있다.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이는 엄지척뿐인가.’

기이할 정도의 성장 속도에 혀를 내두를 정도.

자각 없이 하고 있는 일이라고는 해도 그것 하나만은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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