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팬들의 반응이 아주 뜨거웠고, 따봉이 계속 올라갔다.
“던전에 들어갔더니 방송 스킬이 중단되어서 생방송으로 보여드릴 수 없었는데요. 그 점 우선 사과드립니다.”
-엄깅이가 뭘 잘못했냐. 시스템 대가리 박아라乃乃乃
-그래서 던전은 클리어한 거 맞아? 혹시 중간에 딴 놈이 대신 주작한 거 아니야?
-응~ 아니야. 엄지가 직접 깼어.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들이지만, 이제는 인간을 살짝 초월해 버렸기 때문에 제대로 다 볼 수 있었다.
이 중에서 적당히 답을 해 줘야겠지?
“예. 던전은 무사히 클리어했구요. 저희 이사님이 활약을 아주 많이 하셨어요.”
화면을 살짝 돌려서 정지한을 보여 주었다. 채팅 창에서도 난리가 난다.
-관상을 봐라. 이마가 곧고 반듯한 게 PDF 잘 딸 상이다.
-★정지한과 50명의 변호사들★
-아니, 엄지가 깬 게 맞냐고. 왜 입막음을 하고 난리야.
-시스템 뜨는지는 확인하면 되잖아. 어차피 클리어 기록은 거짓말 안 하는데 그냥 어그로는 PPT 준비하고요. 내일까지 발표해~
정지한이 옛날에 망나니였다는 소문은 나도 들었지만, 사람들도 제법 아나 보네.
요새 보면 절대 그럴 것 같은 사람은 아닌데…….
그런 생각은 속으로 꿀꺽 삼키고, 다시 화면에 내 얼굴을 들이밀었다.
“보이시죠? 지금 저희 대표님이 기자들과 간단하게 인터뷰하고 계시거든요. 저랑 팀원들은 일단 이동해서 휴식하고, 건강 체크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오늘 방송은 죄송하지만 여기까지. 내부에서 있었던 것은 나중에 편집해서 방송 올릴게요.”
-엄지 조금만 더 하고 가라.
-주작 아니면 더 보여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시스템 클리어 기록 확인하라고. 원투 데이 하냐고乃乃乃
-그래, 맞다. 주작 아닌 것을 증명하려면 엄지 10분만 더 방송해야 한다. 아니 그냥 한 시간만 더 해야 한다.
-ㄴㄴㄴ 하루만 더 이대로 방송해야 주작이 아님을 알 수 있음.
-우리 엄지! 도네 줄 테니까 빨리 쉬어!!
-[엄지안전중요해乃] 님이 1,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엄지안전 중요해乃] : 乃乃乃乃乃乃방송 끄고 푹 쉬어~ 사랑해!!!乃乃乃乃乃乃
-[엄깅이_살아서_고마워乃] 님이 3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엄깅이_살아서_고마워乃] : 乃乃乃乃채팅 보지 말고 이제는 가서 누워. 괜찮으니까乃乃乃乃
“후원 감사합니다. 그…… 말씀대로 동료들도 있고, 뒷정리도 해야 하니까요. 그러면. 아쉽지만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간단하게 인사하고, 방송을 종료했다. 그리고 지금도 따봉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촬영은 껐지만 따봉은 누르고 있는 모양.
이번에 얻은 따봉이 대체 몇이나 되는지 나중에 체크를 해 봐야겠는걸?
“형.”
“어.”
“촬영 끝?”
“응.”
“잘 끊었네. 안 그래도 이동 바로 해야 할 것 같았어.”
정지한이 기자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고, 고급 외제 밴이 두 대 들어오고 있었다.
“현장은 제가 대충 정리했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동하시죠. 칠성급 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으로 예약해 두었습니다. 그곳에서 피로를 풀고, 정리도 하죠.”
“와우! 역시 이사님! 화끈하시다니까!”
별하나가 몹시 좋아했다. 성광도 기쁜 얼굴이다.
이놈은 신관이라면서 사치도 좋아하네. 괜찮은 건가?
생각해 보면 농장의 젖소, 닭, 염소들도 그리 평범하지는 않았지 아마……?
다만 우리 중에 탱커인 정지벽만 그렇게까지 기쁜 얼굴은 아니었는데, 그녀도 재벌가의 혈족이니 스위트 호텔 따위는 대단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도.
나? 나는 위대하신 수령님 정지한께서 우리 파티를 스위트룸으로 영도하시고 돈도 뿌려 주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중이다.
마음(=돈)을 담아 무척이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무척아.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이라는 거 대단한 거겠지?”
사실.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이라는 게 뭔지 나 같은 서민은 잘 모른다.
갓튜브에서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을 가보자!]라며 유명 BJ가 촬영한 게 몇 번 알고리즘에 뜨긴 했는데 클릭을 안 하니 나중에는 안 보이더라.
대충 어감을 봐서는 아마도 쩔어 주는 무언가겠지?
이 자본주의 세계에서 기업가들은 쩔어 주는 것에는 영어 단어를 붙이는 습관이 있으니까.
“호텔에서 최고로 비싼 방이야, 거기.”
“그래? 첨 들어 봐서.”
“나도 예전에 한번 갓튜브로 봤던 게 전부야. 1박에 천만 원, 이천만 원 하는 곳들이라던데? 하지만 메이저 헌터들 중에서는 아예 전세 내는 사람들도 많아.”
이 미친 세상에서는 빈부의 격차가 이런 식으로 벌어진다.
어떤 능력은 돈이 되고, 그 능력이 돈이 되는 기간에 저축을 하거나 부동산을 사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현재를 즐기고도 저축이 되기도 한다.
“어우야. 우리가 돈을 잘 벌었어도, 그건 아니다. 너무 과소비야.”
나의 소시민 알람이 마구 경종을 울려댄다.
그런 데는 남이 해 주면 모를까, 내 돈 내고는 절대 못 갈 것 같다.
차라리 집을 사지. 집을 사면 나중에 팔 수라도 있잖아?
“자. 그러면. 모두 이동합시다.”
정지한의 말에 엉망진창으로 더러운 상태로 밴에 올라탔다.
이런 비싼 차에 이렇게 더럽게 올라타도 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의자에 앉자마자 중력 열 배가 느껴지는군.
그래. 피로다.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것을 실감하니 근육이 풀어지는 기분.
리무진은 거의 흔들리지 않았고 몸을 폭신하게 감싸주었다.
내가 있는 곳이 던전일까, 현실일까.
눈을 감았다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깨기도 한다. 하지만 리무진 카시트가 얼마나 안락하던지 곧바로 잠이 들고 말았다.
* * *
“R일보의 김서기 기자입니다! 던전 클리어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사Q채널에서 왔습니다! 한 말씀 해 주시죠! 던전 내부는 대체 어떤 형태였는지…….”
“A미디어의 박민재 기자입니다! 전원 큰 피해 없이 클리어하셨는데요, 그 노하우가…….”
정지한.
그가 나서자 경찰들이 적당히 길을 비켜주고,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는 뒤에서 엄지척이 개인 방송 하는 소리를 듣고는 안경을 고쳐 썼다.
‘역시. 그는 전과 달라. 전에는 방송 같은 것을 한 적이 없는데…….’
생각을 정리하고, 시선을 앞에 두었다.
“지금 저희 팀원들은 방금 막 전투를 끝냈습니다. 부상은 없습니다만, 피로가 가중된 상태라 질문은 세 가지만 받겠으니 양해 바랍니다.”
정하 그룹의 망나니 손자.
그리고 최근에 주가를 올리고 있는 슈퍼루키 각성자.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강력한 능력자라는 소문은 돌고 있었다.
그 정하 그룹의 망나니다.
어떤 능력이든 각성했을 거라는 추측은 당연한 것. 하지만 대체 무슨 능력일까?
사실.
능력의 종류를 숨기는 사람들은 제법 많아서,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기자들은 뻗대지 않고 말을 잘 들었다.
다만 정하 그룹의 회장의 손주 정도면 보통 이름과 관계된 능력일 가능성이 높다.
엘리멘탈 마스터이자 물의 권능자 정수기라든가.
메카닉 마스터인 정비가라든가.
정지한도 긴가민가 싶은 능력 몇 개가 추론되긴 한다. 하지만 증거가 없는 이상에야 결국 지라시 언론 소리를 면치 못할 터.
뭐 한마디라도 받아내야 할 텐데 싶어 모두가 발을 동동 굴렀다.
“제가 호명한 분이 먼저 질문 주시면 됩니다. 던전 내부의 자세한 정보는 기밀이니 당연히 말씀드리지 못한다는 것을 주지해 주시고요. 그러면 A미디어의 박민재 기자님. 질문 주시죠.”
던전의 정보.
그것은 곧 돈이 된다.
클리어됐다고 해서, 던전이 영구적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재생성형 던전’이라면 다시 시간이 지나면 활성화될 터.
때문에 이 정보를 아무렇게나 발설할 수는 없었다. 목숨을 걸고 던전을 클리어한 이들에게 있는 권리이니까.
“예, A미디어의 박민재 기자입니다. 이번에 슈퍼루키로 떠들썩한 엄지척 각성자와 같이하셨는데요. 그분의 활약이 어떤 식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소문대로 올라운더라는 게 사실입니까?”
“한 가지 질문이라고 했는데, 두 가지를 물어보시는군요?”
정지한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이 정도는 답해 드리겠습니다. 엄지척 씨는 아주 우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선 [기동] 능력을 갖추었기에 ‘정찰’을 충분히 수행하실 수 있었고, 힐러만큼은 아닙니다만 [치료] 능력도 갖추었으며, 공격력 역시 충분해서 [전투] 능력도 출중했습니다. 특히, 이번 던전에서의 활약은 그가 중점이었죠.”
지나칠 정도의 띄워 주기. 기자들의 표정도 변했다.
정지한의 선언은 엄지척이 요즘 흔치 않은 「다중 능력자」라는 것을 확실히 하는 것이니까.
“자, 그러면 다음은…… B일보의 이세진 기자님.”
“예! B일보의 이세진입니다. 던전의 정보는 기밀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 정도는 가르쳐 주셨으면 하는데요. 던전의 몬스터는 어떤 종류였습니까?”
“언데드였습니다. 그 외의 정보는 아직은 기밀입니다.”
언데드! 그 말에 기자들 사이에서도 웅성거림이 심해졌다.
한 기자가 전화로 소리쳤다. ‘팀장님, 연금술 쪽 재료나 흑마법 계열 아이템이 발견될 수도 있겠는데요?!’라고.
그만큼 언데드 계열 던전은 가치가 크다.
정지한의 뒤로 직속 보조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저 사람들이 채굴해 오는 뼈와 마정석의 가치는 얼마나 될 것인가.
만약 신소재라도 발견된다면 잭팟!
벌써부터 주식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렸다.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R일보의 김서기 기자님.”
“예. R일보의 김서기입니다. 정지한 이사님의 능력이 ‘시간’계 능력이라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만, 사실입니까?”
정지한이 물끄러미 김서기 기자를 본다.
아주 잠깐. 다른 이들은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시간.
“그 정보는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답하지 않겠습니다.”
정지한은 그렇게 단답했다.
“그러면, 자세한 사항은 나중에 따로 발표하겠습니다.”
“잠시만요! 정지한 이사님! 시간계 능력이 아니라면…….”
“한 말씀 더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정지한은 경찰과 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의 도움으로 밴에 올라탔다. 그가 올라타고, 밴이 출발한다.
그리고 질주하는 밴 안의 편안한 의자에서 정지한은 생각했다.
‘가족들의 견제가 벌써 시작되다니… 시간 축이 생각보다 빨리 어긋나는군. 계획을 앞당겨야겠어.’
그만큼 엄지척, 그 특이점이 상상 이상으로 강력해지고 있다는 뜻이겠지.
‘대체 어떻게 그만큼 강해진 거지?’
볼수록 신기할 지경. 지금의 엄지척은 규격 외의 무언가였고.
그걸 자기 혼자만 모르고 있다.
‘타고난 센스, 아니.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다. 마치 죽을 분기를 스스로 예측해서 넘기는 것 같아 보일 지경이니.’
여태 있었던 수많은 루트들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루트만 밟아 가고 있는데,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남고 강해지고 있다.
이제는 상상도 못 할 신들까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정지한의 의문만 깊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