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그것은 하나의 사람 형상이다.
머리는 달걀형의 투명하고 텅 빈 유리처럼 생겼고, 그 안쪽에는 오벨리스크 하나가 둥둥 떠서 빛을 낸다.
머리 아래는 검은 로브를 입었고, 한쪽 손은 새하얗고 아름다운 반면, 다른 반대 손은 뼈로 이루어져 있다.
[오오라라생생명명이이여여…… 내내가가너너희희를를부부르르노노라라.]
신, 죽음을 거부하는 자.
그가 손을 뻗으며 하는 말이 끝나자마자, 극심한 격통이 전신에 번져 나갔다.
“컥?!”
온몸이 불타는…… 것 같아! 이건 대체?!
츠츠츠츠.
이게 뭐야?!
내 몸 전체에서 에너지가 슬슬 뽑혀 나온다.
그것이 [죽음을 거부하는 자]에게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게 보인다.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는 죽는다!
“모노 블레이드!”
검기로 둘러진 검에서 스킬이 발동. 동시에 앞으로 몸을 던지려던 순간.
나보다 먼저 정지한이 앞으로 나선다.
기괴하게도. 그의 움직임은 나보다 몇 배나 빨랐다.
그 혼자만 빨리 감기를 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의 검이 [죽음을 거부하는 자]와 우리의 사이를 단번에 그어 내린다.
쩌억.
와, 씨. 저게 뭐냐?
검이 그어진 궤적에 공간이 갈라진 것처럼 허공에 검은 선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벌어져 그 안쪽으로 아무것도 없는 심연의 공허가 엿보였다.
그러자.
몸에서 흘러나오던 에너지가 뚝 멈춘다.
고통도 사라졌다. 이건, 상대의 스킬을 캔슬한 건가 본데?
신이 사용한 힘을 중간에 잘랐다고? 아니, 이게 대체…….
[필필멸멸자자아아!! 네네어어찌찌차차원원을을베베어어…….]
[죽음을 거부하는 자]역시 놀라운 듯 소리를 높일 때였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시스템 오류 발견.
-신격에 의한 강제 간섭.
-시간 조작 징후 포착.
[아아쉽쉽구구나나……. 허허나나…… 다다시시보보게게될될것것이이다다…….]
콰직.
그의 영체가 우그러진다. 거대한 보이지 않는 손이 쥐어짜는 것 같은 모습.
또한 그 뒤의 거대한 오벨리스크 역시 우그러지며 박살이 났다.
그리고 그대로 빛이 되어 사라진다.
“헐… 뭔가, 허무하네…….”
아까까지만 해도 충격과 공포다, 그지 깽깽이들아! 하던 게 갑자기 사라지는 건 대체?
“후…… 잘 버티셨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아셨어요?”
“예. 신은 분명 강대한 존재지만… 시스템은 많은 신들이 서로 힘을 ‘합쳐서’ 만든 것이니까요.”
아하…….
“신들은 특정한 조건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들에게 직접적으로 힘을 행사할 수 없다… 라는 건 아시죠?”
“예. 헌터 시험 때 배우는 일이죠. 그런데 그게 이렇게 체감될 줄은 몰랐네요.”
정말이지 심장이 쫄깃했다. 잘못했으면 강제로 사도가 돼서 노예처럼 굴려질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파앗.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세계가 제대로 된 색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다른 동료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지된 세계가 끝나고, 움직이는 세계가 돌아온 것이다.
“이야~ 이번 던전 확실히 위험하긴 했지만 보상은 최고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별하나와 정지벽이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었다.
나와 정지한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모르는 모양.
정지한이 손가락을 자기 입에 가져다 댄다.
쉿.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굳이 알릴 필요는 없겠지.
-던전 클리어!
-기여도에 따라 정산을 시작합니다.
-[죽음을 거부하는 자]의 부정행위에 대한 대가를 정산합니다. (해당 메시지는 정지한, 엄지척 플레이만 볼 수 있습니다.)
-최초 던전 클리어!
-추가 보상이 내려옵니다!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히든 퀘스트 보상을 정산합니다.
-히든 퀘스트 정산이 끝났습니다.
-1위 엄지척 공헌 점수 3,421,450점!
-1위 보상 [랜덤 유니크 스킬 북]이 주어집니다!
-1위 보상 [랜덤 유니크 스킬 북]이 주어집니다!
-1위 보상 [랜덤 유니크 아이템 박스]가 주어집니다!
-1,000따봉을 받았습니다!
-1,000따봉을 받았습니다!
-1,000따봉을 받았습니다!
…….
어마어마한 메시지의 향연. 그걸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거 뭐야? 신이 나왔다고 던전 클리어한 건가?
“와아… 아까 폭발에 보스도 죽었나 본데요?”
성광의 감탄에 무척이가 의문을 드러낸다.
“보스가 보스 룸에서 나와 있었단 겁니까?”
그래. 나도 그게 궁금하다.
“여기는 아무래도 이레귤러인 던전이니까요. 그럴 만도 하죠?”
“그렇습니까…….”
무척이가 뭔가 납득되지는 않는 모양이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속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신이 직접 나타난 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아니면, 보스가 폭발에 박살이 나서 신이 튀어나온 거려나?
위우우웅.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검은 공간의 문이 열린다. 보스가 쓰러졌으니, 얼마 동안은 저 통로가 열린 채로 유지가 될 것이다.
그사이에 헌터 보조원들이 들어와서 아이템을 싹 수거하겠지.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정지한의 목소리다.
“자, 그러면.”
그가 포털의 앞에 가 선다.
“나가 보실까요?”
* * *
-들어간 지 얼마나 지났냐? 3시간은 넘은 것 같은데…….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엄지척 걔가 설마 무적이겠어? 남들 다 뒈져 나가는 곳이잖아. 죽었나 보지, 뭐.
↳이 새끼 간첩이지? 어디 길드서 보냈어? 어? 이 개잡놈의 새끼.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방송 스킬 꺼지는 거면, 이게 진짜 장난 아닌 던전이라는 거거든? 그런 데 가서 엄지척이 무슨 수로 살아오겠어? 재벌가인 정지한이나 좀 어디 부러지고 돌아오겠지.
↳응~ 아니야. 지척이 절대 생존해.
-내 새끼 절대 살아있어. 어그로 절대 병먹금해.
-응~ 어그로들 부디 치질길만 걸어.
-엄지척 乃 내 새끼 살아있지 乃 클리어 못 해도 돼 乃
갓튜브의 엄지척의 채널.
포털에 들어가는 것으로 방송은 중단된 상태.
그 상태로 엄지척의 팬클럽인 ‘검지’들이 모두 모여 엄지척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었다.
-엄지는 살아온다乃
-그럼그럼. 완전 존멋으로 돌아올걸乃
-엄지가 캐리할 거야. 응응. 완전 캐리해乃
-엄지 관상이 명줄이 긴 관상이다. 인중선이 좋아乃
-내 새끼 관골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백 살 넘게 산다乃
드디어 야매 관상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당연했다. 이 미친 세상에서는 내가 파고 있는 이 새끼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른다.
미친 세상에서 미친 팬심으로 미친 기다림을 해야 하는 이 과정 동안 팬들은 저마다 자신이 믿는 것을 근거 삼아 말했다.
-나 지금 108배 기원 들어감.
-나 냉수 폭포에서 기도할 건데?
-나는 이미 제사상 차렸어.
-응~ 어그로 유병장수해乃
누군가를 기약 없이 기다리는 건 엿 같은 일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오랫동안 헌터를 파 왔던 자들에게는 익숙한 일이기도 했다.
마음 한편으로는 장례식을 떠올리면서도, 그래도 댓글이라도 살아 돌아온다고 쓰고 싶었다.
미친 소리지만 그랬다. 이런 세상에서는 팬질도 강렬하고 짧다. 하지만 그 점을 알면서도 매혹되지 않던가.
-어? 저거 뭐야?
정지 화면 같았던 검은 포털. 던전의 입구가 일렁거리며 흔들거린다.
-엄지야아아아!
-설마…… 설마는 아니겠지?
-안 돼에에에!
이윽고 일렁거리는 포털에서 누군가의 신발이 쑥 튀어나온다.
한 명의 사람. 그것은 당연하게도.
엄지척이었다.
-엄지 떴다아아아아!
-내가 뭐랬어? 우리 엄지는 관골이 발달되어 있어요?!
-최강 엄지乃
-최강 엄지乃
-최강 엄지乃
그것은 광란의 도가니 탕 그 자체였다.
* * *
펑! 퍼펑!
시력이 나빠질 것 같은 어둠침침하고 어둑한 던전을 나왔더니 보이는 것은 기자단의 불타는 플래시 세례.
거기에 수십 대가 넘는 카메라에 피사체의 각막 건강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촬영용 스포트라이트들이었다.
격세지감……이랄까.
-1따봉을 받았습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1따봉을…….
헛, 놀랐네. 따봉이 아주 폭발하잖아?
촤르르륵!
초속으로 따봉이 수백 개씩 올라가서, 초인적인 시력을 가지게 된 지금의 나로서도 확인 불가능한 상황!
실화냐?
지금 혹시 생방송 중인가? 그래서 그런가? 의문을 가지고 고민하는 사이. 별도로 다른 메시지도 내 앞에 표시된다.
-갓튜브 방송이 연결되었습니다.
-엄지야아아아!
-살아 있구나아아아!! 우리 엄깅이!!!!!!!!
-내 새끼 사지 멀쩡한 거 맞아????!
내 채널 시청자들. 소중하신 1따봉의 주인분들께서 폭발적으로 채팅을 써 주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따봉이 춤을 추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따봉으로 가득 채워져 가는 기분이 들어. 이것이, 따봉의 천국?
“나왔다! 야! 뭐 하냐! 카메라 돌려!”
“전부 살았다고? 모두 귀환한 거야?”
귀에 생생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프로 정신 끝내주네.
“정지한 각성자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던전 내부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한 명의 팀원도 희생하지 않고 나오셨는데 비결이 있으십니까!”
성난 기자들이 경찰과 군이 쳐 놓은 라인을 뚫으려고 안간힘을 쓰는군.
“물러나세요! 김 일병! 줄 놓지 마!”
“물러서세요! 공무집행방해입니다!”
와, 이렇게 경쟁이 치열할 줄이야.
정작 함께 사진을 찍는 동료들은 기쁜지 히죽히죽 웃는다.
인기가 있다는 것이니까 기분이 좋은 것이겠지.
그러고 있는 사이. 정지한의 비서가 비호처럼 달려왔다.
“대표님! 수고하셨습니다! 부상자는 없으십니까?”
“없습니다, 김 비서. 그리고 준비해 두라는 것은 준비했습니까?”
“예. 통째로 빌려 두었습니다.”
“그러면 던전 보조원들 진입하세요. 전리품이 많을 겁니다.”
“역시……. 클리어하셨군요.”
“물론이죠.”
비서는 감동에 젖어 우리 대표님, 하고 눈을 빛내고 있지만.
아이고오~ 이 기자들부터 어떻게 해 주십시오.
거기다 내 채널에서도 팬들이 아우성이고.
[주군. 저쪽은 정지한 저자에게 맡겨 두셔도 될 듯합니다. 우선은 주군을 추종하는 이들부터 챙기시는 것이 좋을 듯하군요.]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정지한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내 채널의 시청자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시청자 여러분들, 안녕하세요~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의 기원 덕분에 저희 모두 무사히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올 수 있었는데요. 자, 보세요. 어디 하나 다치지 않았죠?”
“캉! 캉!”
척량이도 마침 목에서 여우 소리를 냈다.
-말했잖아…… 우리 엄깅이 인중이 곧아서 오래 산다고!!! 乃乃乃乃
-하관을 봐라. 단명할 상이 아니다乃乃乃乃乃
-소속사 이딴 던전 넣지 말고 반성해乃乃乃乃
-척량이 수호대에서 왔습니다. 우리 척량이 무사한가요?
-내 새끼 수척해진 거 봐라. 그사이에 100킬로는 빠진 듯. 누가 고기 맥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