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보통이라면 놀라서 눈을 돌리겠지만, 나는 그냥 일부러 눈에 힘을 주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지한도 크게 신경 쓰는 것은 아닌지 그대로 몸을 돌려 포털을 등지고 섰다.
저 인간은 나를 살리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하지만 반대로 가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시험하기도 하지.
포털 주변은 군인들이 지키고 서 있었고, 주변에서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벽을 세우고 지뢰를 매설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각종 화기를 부랴부랴 가져다 놓고 있군.
물론 그리 소용없는 물건들이다.
몬스터들 특성상 일반적인 물리력은 그다지 통하진 않으니까.
그래도 혹시나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때를 대비해서 30분, 아니 10분이라도 시간을 벌기를 바라는 마음일 테니.
“자, 그러면. 들어가기에 앞서서 점검하겠습니다. 체력 포션, 마력 포션 전부 있습니까?”
정지한이 물건 및 컨디션을 하나하나 점검한다.
“좋습니다. 그러면 진입하죠. 일전에 훈련한 대로 오늘부터는 제가 확실히 지시를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가 포털 안으로 들어간다.
일렁거리는 차원의 문으로 그의 몸이 사라지고, 다른 이들도 하나둘 그 안으로 들어갔다.
위우우웅.
달팽이관이 흔들리는 느낌과 함께 공간이 일변한다.
우리는 눈 한 번 깜박이기도 전에 이계적인 풍경의 세계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이건…….”
무감정한 회색빛 벽돌이 쌓여 있다.
가운데에는 새하얀 대리석을 통째로 쓴 듯한 기둥이 천장까지 뻗어져 있는데, 높이만 해도 적어도 삼십 미터는 되어 보였다.
벽면에는 해골이 양각되어 있고, 어디서 들어오는지 모를 불빛이 우리가 있는 공간을 밝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여어, 괜히 공략 불가 던전이 아니라고, 벌써부터 힘을 주는 게 느껴진다.
이 앞은 죽음뿐이라고 아주 그냥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달까?
어쨌든 이 미친 세상 속에서 인간은 죽으러 달려간다.
흡사 설탕을 본 개미처럼 개미지옥으로 향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할 때, 하나의 메시지가 내 앞에 나타났다.
-특수 던전에 진입하셨습니다.
-갓튜브와의 접속이 끊어집니다.
-갓튜브로의 방송 송출이 불가능합니다.
방송이…… 안 된다?
이런 곳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다.
던전들은 여러 가지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렇게 스킬을 가진 이라고 할지라도 외부와 통신이 안 되게 만드는 것.
그렇다고 해서, 신들의 시선이 없어진 건 아니지만.
그렇군. 그러니까 매우 시크릿 데인저러스한 헌터 무덤이다 이거지?
시작부터 얼마나 엿 같은 던전인지 시위를 하는 게 목적이라면 성공했네. 다들 긴장했으니까 말이지.
“여기는 신전 타입인 것 같습니다.”
나에게만 보이는 메시지 때문에 잠깐 생각을 하는 사이 탱커 정지벽,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허리춤에서 육포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긴장했을 때 나오는 버릇이다.
“신전 타입이라… 풍경만 보면 그렇긴 한데 말이죠…….”
“신전 타입은 골치 아픈데…….”
동료들이 모두 한마디씩 하는데, 그 말에 나 역시 공감이 갔다.
신전 타입의 던전은 좋은 꼴 보기 어렵지.
내가 헌터 시험 본 곳도 하필 신전 타입이었고.
“형, 신전 타입이 뭔데?”
무척이는 잘 모르겠구나.
하긴, 던전도 저번에 간 게 처음이니까.
“말 그대로야. 신을 모시는 신전이 통째로 던전이 된 곳이지. 이런 곳이 골치 아픈 게 뭐냐면…… 상대가 신의 힘을 쓸 수 있다는 거지.”
“엑?”
“적이 신관이라는 거야. 혹은 신의 창조물이거나. 일반적인 몬스터 보다 악랄하고, 머리도 잘 써.”
거기다가 그 신전의 신이 지켜보고 있다면 알아서 자기 수족들을 막 강화시켜 주십니다?
이게 얼마나 지랄스러운지는 당해 본 사람만이 안다.
이것도 전부 내가 짐꾼으로 일할 적에 들었던 지식들이고.
실제로 신전 타입 던전에 들어가서 작업했던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몬스터 배 속에서 꺼낸 헌터들의 시체는…….
‘공포에 차 있거나 광기에 차 있었지.’
신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굳이 그리스 신화까지 갈 것도 없다.
저 어디 구석진 곳 대형 교회 목사도 마음만 잘못 먹으면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 있지 않나. 그런 세상이다.
몬스터가 나오고 던전이 생긴 이후로 나날이 광신은 심해져만 가고 있고.
신전형 던전에서 죽어나가는 헌터들의 표정도 대충 그거랑 비슷하다. 그래서 나 같은 요원들은 신전형 던전을 기피한다.
그런 헌터들의 죽은 사체를 보면 치우는 사람도 제정신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 첫 던전이라고 할 수 있는 [비늘 악마의 신전] 수준이면 좋겠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
그랬다면 다른 사람들이 클리어했을 테니까.
여기는 기본 레벨 제한부터 40.
단순 계산으로 쳐도 지난번 버섯 던전의 두 배.
하지만 강하기로 본다면 세 배는 족히 각오해야 되겠지.
“예전에 그런 데서 작업하면서 얻어들은 거지. 일반적인 몬스터하고는 다르다고 하나 봐.”
적당히 덜 충격받을 수준으로 말해야겠네.
성광, 정지벽, 별하나. 이 세 명의 표정만 봐도 썩 좋아 보이지 않으니까.
“조심해야겠네.”
“그래야지.”
우리가 몇 마디 하는 사이 정지한이 우리를 봤다.
정지한. 그는 자신의 능력을 ‘가속’과 ‘강화’라고 대충 소개한 적이 있다.
빠르게 움직이고, 강하게 친다. 심플하지만 강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능력이 그게 아님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는 않겠지만서도…….
“여기는 [죽음을 거부하는 자]의 신전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이지만, 그의 권능을 내려 받은 자도 지구 어디엔가 있죠.”
정지한의 말에 다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무척이만 모르는 얼굴이다.
“엄무척 씨는 아직 모를 테니 설명드리겠습니다. 신들은 우리들 인간에게 간섭하지만, 동시에 세계에도 간섭하려고 듭니다. 그러나 그들만의 어떤 규칙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대놓고는 활동하지 못하죠.”
“그렇군요.”
“네. 그래서 신들이 세계에 간섭하고자 교두보를 마련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게 이런 던전이죠.”
“말도 안 돼. 신들이 어째서 그런 짓을 한다는 겁니까? 그런 이야기는 외부에…….”
무척이가 어이없다는 듯 말하려는데 정지한이 그의 말을 끊었다.
“대외비입니다. 헌터들 중에서도 상위 고레벨 헌터들만 알고, 정부에서도 소수만 알고 있는 사실이죠.”
‘한마디로 강제 개종 코스다 이거지.’
이 던전을 내버려 둔다?
던전 브레이크가 터져서 현실에 이 신전의 언데드가 퍼져 나가게 될 것은 자명하다.
언데드의 신인 것을 보니, 하는 것은 딱 이거지.
죽어서 개종되어라. 죽음천국! 생명지옥!
이런 느낌이려나?
죽기 싫어서 개종하겠다고 나선다고 해도 바로 ‘오케이, 오늘부터 신앙생활 잘해라~’라고 할 리는 없겠지.
이런 종류의 신이라면 개종한다고 선택하는 순간 내 뇌를 촉수로 따끈따끈하게 만져줄 가능성이 높다.
“그건 그렇다 치죠. 그런데 정지한 팀장님도 여기는 처음 들어오신 것 아닙니까. 여기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아시는 거죠?”
동생도 나와 같은 궁금증이 생긴 건지 고맙게도 먼저 물어봤다.
정지한이 답했다.
“제 나름의 정보 라인이 있습니다. 신들과도 거래를 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아시겠지요?”
우와… 이 인간. 신들과 거래도 하고 그래?
애초에 신들하고 대화 소통이 된다는 거 자체가 놀라운 일 아닌가.
각성자는 자연 각성에 의해서 헌터 시스템이라는 것을 얻게 되니까.
레벨, 능력, 그리고 헌터 상점.
이상하지만, 내가 가진 따봉 상점과는 크게 다르지.
구입 가능한 것들도 제한적이고, 헌터 자신에게 맞는 종류의 것 외에는 팔지도 않는다고 알고 있다.
거기다가 계약한 신이 제멋대로 상점을 꾸미기도 한다고 하니, 어느 신과 계약하느냐도 그래서 중요해.
이런 건 상업신 계통이 좋은 물건이 들어와서 계약자들이 유리하다고 듣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이 헌터 상점을 이용하면 신과 소통하는 게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것도 소수만 가능하다던가?
그러고 보니 내 따봉 상점은 어떻지?
돌아가면 알아봐야겠는걸.
“밖에서 브리핑하지 않은 것은 비밀을 엄수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이 장소는 스타팅 포인트. 여기는 일시적으로 안전하니, 여기서 브리핑을 하죠.”
다들 정지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던전의 명칭은 [죽음을 거부하는 자를 신앙하는 신전]입니다. 그리고, 신성력을 사용하는 언데드가 나오는 곳이죠.”
“미친…….”
“실화인가요, 이거?”
“오… 신이시여…….”
무척이, 별하나, 성광이가 차례로 한탄 비슷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정지벽만이 묵묵한 얼굴을 하고 있을 뿐.
그리고 나도 아무 말 안 했지만, 속으로는 붕어빵 먹은 붕어처럼 놀라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홀리 언데드라니? 이 무슨 언어도단 같은 소리가 다 있어?!
언데드 하면 해골이나 좀비 같은 걸어 다니는 시체잖아!
그런데 신성하기까지 하다는 게 뭔 개소리야?!
언데드의 약점 하면 신성력 아닌가? 그런데 지가 신성력을 사용하면 이 새끼를 뭘로 조지라는 거지?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신적 존재들 중에는 죽음에 관한 권능을 행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신성력은 언데드 상태에서도 발휘되죠. 이 던전에 진입한 이들이 모두 돌아오지 못하고 죽은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만큼 강하다는 거군요.”
정지벽의 말이었다.
그녀의 말에 정지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이 던전에는 적어도 세 가지 타입의 적이 등장합니다. 성기사 언데드, 신관 언데드, 신전 병사 언데드죠. 그나마 신전 병사 언데드는 신성력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적을 부리지는 못합니다.”
“알 것 같네요. 성기사 언데드는 말 그대로 성기사의 능력을 쓰는 거죠? 신관 언데드는 신관이고.”
“정답. 바로 그겁니다, 성광 씨. 물론 특색이 있으니, 이제부터는 주의해서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야… 광신도 신전에서 시체들하고 파티를 벌이게 생긴 거야, 지금?
사람 여럿 잡아먹었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걸.
“이 던전은 보통 일곱의…….”
정지한이 브리핑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려던 때.
통로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음산하고 기괴한, 그런 목소리. 듣는 순간 솜털이 쭈뼛 서는 목소리였다.
[죽죽음음을…….]
[평편안안이이…….]
와… 말세다. 말세의 천사가 내려와서 트로트를 부르면 이런 사운드가 울릴 것이다.
한마디로 이놈들에게 개종이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놈들은 사람을 죽인다기보다는 전도를 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우리를 공격하려고 하는 거다.
와아, 끝내주는 포교구만, 이거.
정지한이 인상을 쓰고 통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통로 저편 어둠의 끝자락에, 조그마한 빛이 점점 다가오며 커져가고 있었다.
어둠을 살라 먹는 빛은 밝았으나, 그 아래에 있는 것들은 빈말로도 반길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