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화
성광은 어디선가 햄을 꺼내 왔다.
이 목장 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묻지는 않았다.
성광이 모시는 신은 목축의 신이지, 채식의 신이 아니라고 했다.
저마다 자기만의 신앙에 따라 움직이는 거겠지.
‘맛있네.’
두껍게 자르면 짤 수가 있다.
최대한 검기를 이용해 얇게 썰어 카나페를 만들었다.
종잇장처럼 얇은 햄.
거기에 치즈와 크래커가 어우러져서 미각의 향연을 만들어냈다.
정지벽이 말했다.
“신기합니다.”
“뭐가요?”
“검기를 써서 음식을 자르다니, 거기다 도마는 전혀 다치지 않고. 이거 요리 스킬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한 겁니까?”
“음…… 스킬 없이 하면 돼요.”
내 대답에 정지한을 제외한 모두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스킬 없이? 그러면 아까부터 사용한 칼놀림 모두 그냥 사용한 거였던…….”
“건곤신공 중에 햄 자르기 스킬은 없습니다.”
“그야, 그렇겠죠. 그렇겠지만…….”
‘그 미친 노가다를 한단 말이야?’란 눈으로 보았다.
그도 그랬다.
나도 스킬이 정해준 대로만 적을 물리치지 왜 이런 검로가 나오고, 어떻게 검을 써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헌터 정지한에게 1따봉을 받았습니다.
“좋은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내 활약 덕분일까?
우리는 한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회의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이번에 레벨 제한 던전이 등장했는데 정부에서 직접 요청이 왔습니다. 비교적 낮은 레벨에 가장 실력이 뛰어난 팀을 찾다 보니 우리가 선정된 것 같더군요.”
정지한은 모두의 태블릿으로 파일을 보냈다.
내가 썰고 있는 햄만큼 얇은 태블릿 위로 던전 사진이 떠올랐다.
그 아래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인원 제한 10명 이하]
[레벨 제한 40]
[예상 난이도 : 공략 불가]
“아시다시피 정부 요청은…….”
“……사실상 요청이 아니라 명령이겠네요. 헌터의 첫 번째 의무는 던전에서 시민을 보호하는 거니까.”
별하나의 말에 정지한이 쓰게 웃었다.
“네. 그렇습니다. 물론 그만큼의 보상을 준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
분위기가 긴장된다.
“보상이 뭐죠?”
“우선 포상금…… 기존 포상금의 3배가 되네요. 하지만 이건 그리 중요한 건 아니죠.”
‘아니, 뭐 돈보다 중요한 게 뭔데?’
정지한이 말을 이었다.
“10년 동안 완전 면세권. 또한 무기 신고 의무 면제.”
“우와…….”
그 말에 모두가 탄성을 내뱉었다.
완전 면세권이란 단순히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세금은 국가에서 돈을 징수하는 것과 동시에 이 헌터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거기다가 무기 신고 의무.
내가 어떤 무기를 소유하고 있는지 국가에서 기록한다.
내가 들고 있는 모노 블레이드에 관한 정보도 국가가 대략적으로 알고 있긴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걸 할 필요가 없다는 뜻.
상위권 헌터들, 그것도 극소수만이 받는 혜택이다.
‘이것만 성공하면 목줄을 완전히 풀어줄 테니 활개 쳐 보라는 거네.’
하지만 추정 난이도가 공략 불가다.
정상적인 파티로는 깰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미 들어간 이들이 전멸을 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던전.
10명 이내. 그리고 40레벨 제한.
사망 확률은 진입하는 구성원에 따라 다르겠지만, 데이터만 보면 죽으라고 보낸 것과 다름없겠지.
때문에 나는 잠시 생각했다.
저 하늘 높은 곳의 신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이 모든 것은 저들 신들의 영향일 텐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정지한이 말했다.
“엄지척 님이 레벨 80대를 포함한 몬스터 군락을 털어버렸던 게 큰 감명을 준 모양입니다.”
“저도 봤습니다! 완전 멋있었습니다.”
탱커 정지벽이 말했다. 지지 않겠다는 듯 힐러 성광도 말했다.
“저는 아이디 세 개로 전부 구독과 좋아요 눌렀습니다.”
두 남녀가 서로를 바라더니 왠지 모를 기 싸움을 했다.
대체 왜인지 모르겠다.
별하나가 말했다.
“아, 저도 그거 보긴 했어요. 척량이 너무 길을 잘 찾아서 위기감 들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과격하게 은신 수련을 했던 거구나.
척량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헤헤헤헤, 별하나 님은 저한테 안 지려면 열심히 수련하셔야 할 겁니다.
뭐, 덫 놓기나 은신 스킬만으로도 충분히 밥값 하시는 분 아닌가.
척량이 길잡이를 더 잘한다고 해도 별하나 님이 잘릴 이유는 없지.
‘그러니 그렇게 조급해하실 건 없는데.’
정지한이 말했다.
“아무튼 엄지척 님이 우리 팀의 스타플레이어로서 조명을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죠.”
“맞아요!”
“인정, 인정!”
“엄지척 형제님은 제 보물이십니다.”
성광은 이제 나를 형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썰어준 햄 치즈 크래커가 큰 감명을 준 모양이다. 척량이 말했다.
-성광 님의 말을 한 번에 믿어준 사람이 우리 주군밖에 없다고도 했고요.
음, 그것도 큰가?
띠링-
-정지한, 정지벽, 성광, 별하나, 엄무척이 당신을 진심으로 칭찬합니다.
-12따봉을 받았습니다.
음. 따봉 짤짤이로 잘 들어오네.
정지한이 태블릿을 껐다.
“그리고 이 이야기부터는 기밀입니다. 밖으로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오.”
“……?”
“아마 앞으로 정부 의뢰는 계속 어려워질 겁니다.”
“왜죠?”
“제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그쪽에 끈이 있으니까요.”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각오가 담겨 있기도 했다.
‘정지한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추렸다고 했지.’
그랬기에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으리라.
정지한이 말을 이었다.
“반년, 아니 몇 달 후면 우리가 의뢰를 골라서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꽤 많은 말이 함축되어 있었다.
-그 안에 후계 기반을 다지겠다는 뜻. 그리고 정부 쪽에 끈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는 모양이군요.
“…….”
척량은 생각에 잠기다가 이렇게 말했다.
-조만간 정하 그룹에 피바람 좀 불겠군요, 주군.
피바람? 죽인다는 뜻이야?
-정지한은 주인님에게나 상냥하지, 본질 자체는 냉혹한 자입니다. 받았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돌려주겠죠. 표현은 안 하고 있지만 꽤나 분노하고 있을 겁니다.
으음, 나는 난이도 있는 편이 따봉 벌이가 편해서 어차피 쉬운 던전 고를 생각은 없었어.
-네. 그게 헌터로서 주군의 방식이니까요. 편한 길을 거부하고, 남과 다른 길을 가서 천하를 평정하실 분 아닙니까.
……꿈보다 해몽이 좋네.
어쨌거나 나는 괜찮아. 어려운 던전 갈 생각이었어. 그러니 그렇게 말하면 좀 덜 화낼까?
-별로 도움 안 될걸요. 오히려 이렇게 착한 주인님을 건드린 놈들에게 분노의 방향을 더 돌릴 겁니다.
음… 그 부분은 그냥 닥치고 있어야겠군.
나는 방향을 바꿔 환하게 말했다.
“이번 갓튜브 라이브는 ‘공략 불가 던전을 공략한다!’로 하겠습니다.”
“앗! 저희도 출현하는 거죠?”
정지벽이 말했다.
“네. 혹시 출현하기 싫으신 분 있으시면 녹화로 바꿔서 편집하면 되니까 지금 말해 주세요.”
내 말에 정지벽, 별하나, 성광이 동시에 말했다.
“출현하고 싶어요!”
반짝거리는 눈을 보며 척량이 말했다.
-유명해지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죠, 주인님.
* * *
다음 날 엄지척 채널에서 라이브 공지가 떴다.
이번 역시 간결한 공지였지만 내용은 무엇보다 묵직했다.
[레벨 제한 40, 난이도 공략 불가 던전을 공략한다!]
타이틀이 뜨는 순간, 조회 수는 순식간에 폭발했다.
-헐, 엄지척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40레벨 이하였어?
-그러면 시기상 그때 트윈 헤드 놀 잡았던 건 20레벨 전후였다는 가설이 맞았네.
-사람이냐……?
-국내에 그게 된 헌터가 있었나?
그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레벨이 곧 강함의 척도였다.
그 룰을 파괴한 게 엄지척이다.
주목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동시에 장난 리플을 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엄지척 본업이 먹방튜버 아니었음?
-먹방천재 엄지척 乃 앞으로 먹방길만 걸어줘 乃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지. 딴 거 하는 거 아니다. 엄지야. 먹방이나 하자乃
-전투형 먹튜버乃
-됐고. 그래서 이번에는 척량이 먹방 레시피 안 뜨는 거임?
↳ 몬스터 먹방은 할 듯.
↳ 이번 먹방 메뉴는 몬스터 육회일 듯.
↳ 엄지가 참기름 몬스터 머리에 부어줄 듯.
먹방으로 유입된 시청자들도 기존 분위기와 잘 융합이 되었다.
-살아 와라. 엄지야. 네가 살아야 내 혼밥이 완성된다乃
-혼밥 점심의 수호자乃
반농담, 반진담.
팬들은 엄지척의 새 소식에 기뻐하는 것과 동시에 무사히 살아오길 바랐다.
이런 미친 세상에서 헌터를 응원하는 팬들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
단순 운동 경기와는 달랐다.
오늘 빛나던 헌터가 내일 시체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작은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만든다.
-살아오겠지. 엄지 잘 살아오겠지乃
-쉬운 길 안 가는 스타일인 건 알고 있었음. 사지 멀쩡하게 돌아오길乃
-엄지는 숨만 쉬어도 멋지니까 괜히 자존심 챙기지 말고 위험하면 도망쳐乃
-죽으면 끝이다. 엄지야. 너 실패해도 탈덕할 팬들 아무도 없어乃
-나 좋은 꿈 꿨는데 이 꿈 엄지한테 줄게. 무사히 와라乃
이제는 악플 정도는 화력으로 밀어버릴 만큼 많아진 팬들이 엄지척의 무사 공략을 기원했다.
그렇게 약속한 공략 날짜가 되었다.
* * *
리더는 정지한.
그를 필두로 해서, 우리 팀원이 모두 던전의 입구.
포털의 앞에 모였다.
탱커 정지벽, 힐러 성광, 딜러 서포터 별하나, 딜러 서포터 엄무척. 거기에 탱딜힐에 서포트까지 다 할 줄 아는 만능 캐릭터인 나.
총합 여섯 명.
소규모 공격대로서는 아주 바람직한 구성이군.
탱커 둘에 딜러 둘.
그리고 힐러 하나가 정석적인 소규모 공격대의 규모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서포터를 넣어서 여섯이나 일곱으로 가는 경우도 있지.
하지만 우리는 딜러이면서 서포터인 사람이 둘인 데다가, 내 능력은 이것저것 전부 다 할 줄 아니 더 호화스럽다고 할 수 있으려나.
저 앞에 걸어가고 있는 우리 물주님이자 고용주님이신 정지한의 능력은 이레귤러라고 할 만하다.
시간을 제어한다.
대체 어떻게 써먹는 능력인지 감도 안 오는 능력이지만, 일전 버섯 악마도 그걸로 처리했을 거라는 건 P카츄 십만 볼트처럼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
아마도 [시간 정지]라든가, 혹은 [시간 정지]에 가까운 [시간 가속] 같은 게 아닐까 추측이 되긴 하다만.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도 팀원들에게 능력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단 말입니다.
아마도 집안의 내부 다툼 때문이 아닌가 싶긴 한데…….
그렇다 해도.
일단은 리더다. 나, 그리고 우리는 리더의 말을 잘 따라야만 한다.
사실 버섯 던전에서 던전 그로잉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적당히 손발을 맞추던 작업에 가까웠다.
피아노로 치면 조율 작업이랄까?
그리고 이 레벨 40 제한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도 손발을 맞추려고 훈련을 거듭했으니, 그 결과물을 보여야 할 때다.
슥.
슬쩍 돌아보는 그와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