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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53화 (53/305)
  • 제53화

    디저트를 먹을 때쯤 화가 좀 풀렸다.

    이 녀석은 내게 커다란 배를 깎아 주고는 폰으로 나에 관한 기사와 짤방들을 스크랩했다.

    “형, 이번 영상 많이들 짤방으로 만들었더라.”

    “스크린샷으로 찍어서 문구 박아 넣고 하는 거 말이지? 나도 잘 알아.”

    “그렇게 말하니까 왠지 세대 차이 느껴진다, 형…….”

    너무 그러지 말아라.

    이 형도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게 뭔지 열심히 알아보면서 살아.

    “특히 이 짤방이 인기야.”

    동생이 폰을 내밀었다.

    내가 어둠의 정령을 소환할 때의 영상이었다.

    짤방에는 궁서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크크큭, 나와라! 사천왕 중 최약체]

    근본이 없는 멘트였다.

    “이것도 있어.”

    내가 놀을 향해 통나무를 붕붕 휘두르는 영상 짤방이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관종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이건 커뮤니티 분탕 종자 글에 다는 짤방인가 봐. 리플 달지 말라는 뜻으로…….”

    “나도 그 정도는 알아, 동생아.”

    “……그, 그치. 그래. 형도 그 정도는 알지.”

    약간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동생은 다음 짤방을 찾아서 보여 줬다.

    “이것도 인기 좋더라.”

    내가 마지막, 바이크를 타고 뛰어올라 필드 보스, 트윈 헤드 놀에게 쌍검을 내리꽂는 장면이었다.

    스타일리시한 액션으로, 그야말로 마치 영화 같은 영상미가 있었다. 거기에 놀의 두 개의 머리 대신 이 글자가 있었다.

    [★돈★] [★명예★].

    조잡한 합성이었지만 놀의 머리 대신 이 두 글자를 시원하게 잘라 냈다.

    “……대체 왜 거기에 이런 말이 붙어 있는 거야?”

    “돈과 명예를 다 가지시고 행복한 한 해 보내라는 뜻이야.”

    “…….”

    “깊이 생각하면 지는 거야, 형!”

    “이 세 개의 짤방 중에서 가장 잘나가는 건 [크크큭, 나와라! 사천왕 중 최약체] 짤방이고?”

    “응. 중2병이 원래 전통적으로 잘 먹혀.”

    “…….”

    척량이 다급하게 말했다.

    “주군! 어둠의 정령은 매우 유용한 스킬입니다! 버리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척량, 이러다가는 나 어린 중2병들의 별★이 되고 만다고!”

    “걔들 따봉도 1따봉이옵니다, 주군! 벌 수 있는 건 전부 버소서!”

    이 사악한 여우는 앞발을 뻗어 상체를 납작하게 엎드렸다.

    흡사 석고대죄와 같은 자세였다.

    동생도 말했다.

    “따봉만 벌면 별★이 되든 블랙 스타★가 되든 무슨 상관이야! 형의 각오가 고작 이 정도였어? 아니잖아!”

    나는 3초간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 헌터 생활을 되돌아보는 짧지만 긴 시간이었다.

    이제 와서 어둠의 정령을 안 쓸 수는 없다. 이번에 트윈 헤드 놀을 잡을 때도 큰 공을 세우긴 하지 않았나.

    그렇지만 계속 이놈들을 부리다가 나는 언젠가 진짜 별★이 될지도 모른다.

    다크 스타★든, 블랙 스타★든 뭐든 될 가능성이 높다.

    짤방으로 유명해질 거고.

    사람들은 그 짤방이 궁금해서라도 갓튜브에 와서 좋아요를 누르게 될 것이다.

    완벽한 계획이었다.

    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만 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손가락이 펴지질 않는군.’

    죽고 싶다.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상징적인 뜻으로 말이다.

    다 때려치우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이지.

    “강해져야겠다.”

    저 스킬에 의지하지 않을 만큼 강해지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척량이 말했다.

    “봉인하시겠다는 말입니까, 주인님?”

    “그래. 그 스킬은 너무 위험하다. 방송에 너무 자주 노출되면 결국 (내 이미지는) 그 힘에 먹히고 말 것이다.”

    “주인님, 그게 뭐가 나쁜 일입니까.”

    “시끄럽다. 척량!”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둘을 보며 동생이 말했다.

    “형, 재능이 이렇게 출중한데 왜? 3초에 한 번씩 짤방 뽑겠는데 그냥 하지?”

    아니다. 그 힘은 너무나 위험하다.

    나는 미간에 힘을 주었다.

    “원래 계획인 무공에 최선을 다해야겠어.”

    내가 좀 더 노력을 한다면. 내가 좀 더 강해진다면!

    그놈의 어둠의 정령과 작별할 수 있을 터!

    “일단 봉인, 무조건 봉인.”

    “하지만 위험해지면…….”

    “그래. 위험해지면 생각해 볼게. 어쨌든 봉인.”

    척량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아마 영원히 봉인한다고 하면 자기 목을 베고 넘어가라고 할 것 같다.

    거기서 타협점을 잡고 나는 정지한에게 전화했다.

    수련에 필요한 기구들을 트레이닝 룸에 설치해 주고, 우리 집에도 설치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더불어 트레이닝 룸 한 층을 온전히 내가 쓸 수 있게 해 달라는 파격적인 부탁을 하기 위해서도.

    ‘쉽지 않겠지만 설득시켜야겠군.’

    * * *

    얼마 후.

    정지한은 너무나도 쉽게 내게 한 층을 전부 다 주었다.

    연락을 받고 트레이닝 룸에 도착하니 내가 부탁했던 기구들이 전부 갖추어져 있었다.

    ‘그사이에 이걸 다 구해 왔다고?’

    허락해 준 것도 고마운데 구해 오는 시간도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지경이다.

    “주인님 약속대로 CCTV는 전부 제거해 줬습니다.”

    헌터들 중에는 수련 모습을 타인에게 노출하는 걸 꺼리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큰 절차 없이 이 층의 CCTV를 모두 철거했다.

    척량이 확인까지 해줬으니 완벽할 터였다.

    “이제 여기서 건곤검법과 건곤신행보, 마지막으로 건곤금강공을 익히는 거군.”

    무공 자체가 따봉을 워낙 많이 먹는다.

    이거 세 개를 한꺼번에 익히니 뼈 빠지게 번 따봉이 다시 홀라당 날아갔다.

    “따봉이 모자라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라이브에 녹화 영상에 신들이 준 따봉까지 합치니 세 가지를 모두 살 수 있는 따봉이 모였다.

    [건곤검법 - 72,000따봉]

    등급: 유니크 (성장형 F)

    하늘과 땅의 묘리를 검에 담아 적을 공격하고 자신을 보호합니다. 검의 심득을 깨치고 스킬 숙련도가 오르게 되면 마침내 천지를 가를 수 있게 됩니다.

    *해당 스킬은 건곤신공 스킬을 미리 익혀야만 습득 가능합니다.

    아무리 봐도 뜬구름 잡는 소리다.

    이걸 72,000따봉이나 달라고 하는 게 미친 짓이다.

    하지만 건곤신공도 원래 스킬 설명이 이따위였기에 크게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

    [건곤신행보 - 70,100따봉]

    등급: 유니크 (성장형 F)

    천지간의 묘리를 깨쳐 빠른 속도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극성에 이르게 되면 대지보다 무겁게 버티며 공기보다 가볍게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해당 스킬은 건곤신공 스킬을 미리 익혀야만 습득 가능합니다.

    대충 잘 막고 잘 피한다는 뜻인가.

    ‘무공은 이게 문제야. 나 같은 인간들은 스킬 설명을 봐도 얼마나 강하다는 건지 짐작이 안 가니 원.’

    마지막…….

    [건곤금강공 - 70,080따봉]

    등급: 유니크 (성장형 F)

    근력, 지구력을 상승시킬 뿐만 아니라 몸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어 적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극성에 이르게 되면 이 세상 광물로 만든 어떤 무기도 피부를 뚫지 못하게 만들 수 있으며, 검기와 검강도 막아낼 수 있게 됩니다.

    *해당 스킬은 건곤신공 스킬을 미리 익혀야만 습득 가능합니다.

    건곤신공도 7만 따봉이 넘었는데 얘들도 다 7만 따봉이 다 넘네.

    다 익히는 데 무려 21만 따봉이다.

    원래 들고 있는 건곤신공까지 하면 28만 따봉!

    따봉 수와 포인트는 비례한다. 따봉 상점에 있는 비싼 물건은 헌터 상점에서도 비싸다.

    1따봉은 1포인트.

    28만 포인트를 들이붓는 미친 헌터 놈이 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그것도 내 직업이 [갓튜브 소셜 스타]여서 망정이지, 이런 검법은 전사 계열만 익히는 게 가능하다.

    ‘이름은 병맛이지만 성능은 끝내주지.’

    몬스터 잡아서 28만 포인트 벌 생각을 하니 아득하다.

    “원래라면 나도 이 따봉 다 못 모았어, 척량.”

    “네! 이게 다 [크크큭, 나와라! 사천왕 중 최약체] 짤방 덕분입니다. 그 짤방이 이렇게 대박 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그러했다.

    라이브로 얻은 따봉은 약 9만. 그리고 정규 편집본으로 얻은 따봉이 약 15만!

    원래도 20레벨(추정) 헌터가 80레벨대 필드 보스를 잡은 것 자체가 경이적인데 여기에 이른바 병맛 짤방까지 더해지니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사람들은 뉴스보다 병맛을 더 좋아하는구나.”

    “그렇습니다. 인간이란 본디 병맛에 사족을 못 쓰는 법! 영웅적인 희생을 그린 주인님의 첫 데뷔 영상보다 [크크큭, 나와라! 사천왕 중 최약체] 짤방에 반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본능입니다!”

    그렇군.

    척량은 이제 그만 어둠에 승복해 별★이 되라며 나를 저 알량한 꼬리로 유혹하고 있는 거군.

    ‘하지만 그 노선은 인간을 버려야 하는 수라의 길. 차마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척량의 유혹을 모르는 척 화제를 바꿨다.

    “이제 이것들을 극성까지 익히는 것만이 남았군.”

    보법으로 적과 거리를 벌리고, 검법으로 공격. 여기에 외공까지 더해져 신체 능력을 강화한다!

    완벽했다.

    -스킬 북을 전부 익히시겠습니까?

    “응.”

    -[건곤검법] 스킬을 깨달았습니다!

    -[건곤신행보] 스킬을 깨달았습니다!

    -[건곤금강공] 스킬을 깨달았습니다!

    좋아, 전부 다 익혔다!

    여기에 나는 패시브 스킬인 [트롤의 신체]까지 발동시킨 상태.

    사실 근력과 체력은 상관없다. 중요한 건 회복력이다.

    “여기에 지구력을 더하면 좋겠지만…….”

    척량이 말했다.

    “지구력은 몸이 지쳐 있어야만 증가하는 능력치입니다. 몸을 더욱 혹사시켜야 합니다. 반대로 회복력은 어차피 주인님이 인간인 이상, 상처를 치료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사용하면서 수련하는 게 좋죠.”

    “응.”

    나는 자세를 잡고 수련을 시작했다.

    * * *

    같은 보법을 수없이 밟았지, 아마?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 운동을 하고 센터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이것부터 했어.

    처음에는 왜 이렇게 발을 내디뎌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그저 최대한 시키는 대로 밟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전부였으니까.

    거기다가 내 머리가 워낙 나쁘다 보니 순서를 외우는 것만으로도 어려웠고.

    그다음. 미리 설치해 둔 장대 위를 걸었지.

    무수하게 늘어서 있는 장대 위를 걷는 건 미칠 짓이었고.

    발꿈치와 발가락, 발목의 압력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떨어졌는데 ‘ㄱ’과 ‘ㅈ’으로 시작하는 욕만 나오더라.

    쿵!

    “괜찮으십니까, 주인님?”

    “에구구. 괜찮아. 어째 이번에는 낙법도 못 했네.”

    “피곤해지셨으니까요.”

    “몸은 멀쩡해.”

    “정신이 피곤하신 겁니다.”

    그 말에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정신.

    무공은 이게 문제야.

    내가 왜 이곳을 밟는지 이해해야 한다는 것. 이해하지 못하면 외우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

    둘 다 너무 어렵고 효율 빠진 짓이지.

    “나는 그동안 스킬에 너무 의지했구나.”

    “주인님이 이상한 게 아닙니다. 대부분의 헌터가 그래 왔으니까요.”

    단 한 번도 내 걸음걸이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스킬은 마치 자전거 보조 바퀴와도 같다.

    어디로 가든 나를 데려다주지만 거기까지다.

    ‘속도를 내기 위해서 결국 언젠가는 이 보조 바퀴를 떼야 해.’

    나는 다시 장대 위에 올라갔다. 그러고는 구결을 생각하며 다시 왼발을 사뿐히 내딛기 시작했다.

    ‘천천운보, 하늘의 구름처럼 걸음을 내딛고.’

    구결을 떠올리며 반복한다.

    ‘지지중보, 대지가 지탱하는 무게처럼 내디뎌라.’

    그 순간, 다시 미끄러져 넘어진다.

    쿵!

    “주인님!”

    “아냐, 아냐. 괜찮아. 이해가 안 가서 그래.”

    왜일까. 대지의 무거운 걸음걸이를 걷는데 어째서 이렇게 가느다란 장대 위를 걸을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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