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생각보다 악의가 많네.’
원래도 인기를 얻으면 악플러는 생긴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정하 그룹의 후계 싸움도 얽혀 있다.
이들 중에는 모태 악플러도 있겠지만 정지한의 숙부, 고모, 사촌 형, 동생 기타 등등에서 보낸 알바생들도 있겠지.
고작 나 하나 주목받는 게 그렇게 문제인 건가?
솔직히 이해는 안 가네. 고작 이런 악플 좀 두드린다고, 정지한이 주목을 좀 못 받는다고 후계에 영향이 가?
높으신 분들 생각을 도무지 모르겠다.
가진 놈이 더하다는 것만 알겠네.
시작부터 2,000만 원.
심심풀이로 라이브 보러 올 일반인이 꽂아 넣을 돈은 아니지.
‘방금 전까지는 긴장으로 심장이 덜덜 떨렸는데 이걸 보니 왠지 웃음만 나오네.’
왜일까.
오기라는 게 생겼다.
“아, [방송족같이하네] 님, 감사합니다! 우와, 방송 끝내는 것만으로 2천을 버는 건가요?”
-엄지야 받지 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지지야 지지 그런 거 먹는 거 아냐!!ㅠㅠㅠㅠ
-아이고 내 새끼 죽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심지어 팬들조차 걱정으로 멘탈이 나갔다. 하지만 오래 끌 게 아니다.
“우선 사냥에 앞서 몇 가지 준비를 해볼까 합니다. 척량!”
-네, 주군!
컁!
아기 여우가 내 어깨에서 뽀르르 내려왔다.
보통이라면 척량의 귀여움에 채팅 방이 도배가 될 상황이었으나 지금은 달랐다.
-척량아 너라도 튀어 니 주인 미쳤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거 동물 학대 아닌가요?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도 그렇게 해서라도 말리고 싶은데 척량이 소환수라 동물 보호법 적용 안 됨ㅠㅠㅠㅠ
이렇게까지 나를 못 믿나, 이 인간들이?
“거 너무하시네요! 척량아, 시청자들이 불안해한다. 보약 먹자.”
내가 꺼낸 건 바로 [악마의 정수]다.
과거 정지한이 버섯 던전에서 히든 보스 ‘악몽의 큰 악마’를 잡아서 나온 아이템.
그는 그 던전에서 드롭된 아이템들을 모두 나에게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팔았다.
특히나 [악마의 정수]는 사용법을 알 수 없기에 정지한이 쓸 수가 있는 물건이 아니었겠지.
나중에 고레벨이 되거나 새로운 스킬을 입수하면 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사용 방법을 아는 게 없었다.
딱 하나를 제외하면.
‘대표님, 감사합니다. 정수는 잘 쓰겠습니다.’
자회사를 무사히 잘 설립해 이제 대표가 된 정지한.
그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표하며 악마의 정수를 꺼냈다.
-저거 뭐임?
-지난번 던전 보상 같은데?
-까만 게 연기까지 나네.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에게서 반응이 제법 온다.
그걸 지켜보면서 척량에게 악마의 정수를 내밀었다.
척량이 가르쳐 준 ‘악마의 정수’ 사용 방법.
[공양 의식]
일찍이 시스템이 악마의 정수를 가져가고 척량이를 내려준 것이 바로 그것.
신적 존재들에게 공물을 바치는 [공양 의식]을 치르면 그에 대한 대가를 내어준다.
사실 이것은 매우 비밀스러운 지식이라고 한다.
실제로 나 역시 [공양 의식]이라는 걸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윽고 척량이 내가 건넨 악마의 정수를 향해 입을 벌렸다. 그리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신공정령, 척량이 두 번째 정수를 섭취했습니다.
-소환수가 진화합니다!
척량의 몸이 점점 더 커진다.
아기 여우는 어느새 중형견 정도의 크기로 성장했다.
-소환수가 저렇게 진화할 수 있는 거였어?
-미친… 척량아!!!!! 외쳐! 乃최강 척량乃!!!!
-아니 근데 그러면 뭐 함? 그러면 뭐 하냐고…. 저기가 묫자리인데…….
척량이 내 앞에 그 멋들어진 몸으로 착지하고서 포효를 터트린다.
이걸로 실제적인 공격력을 갖추고, 나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전천후 소환수가 완성되었다.
* * *
같은 시간.
대한민국 5대 기업.
신성 그룹 오너 일가 장녀.
신주란.
그녀는 업무를 보다 피곤한 표정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각성석 없이 최상급 능력을 자연 개화 시키고 대한민국 최정상급 헌터가 되었음에도 일은 줄지 않는다.
신성 그룹은 운송과 택배를 주 업무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 최대 물류 회사다.
신성 백화점, 신성 마트, 신성 면세점, S마켓.
이 모든 것들이 신성 그룹의 손에 좌지우지된다. 그리고 장녀이자 차기 후계자인 신주란의 권력은 막강했다.
그런 그녀가 노트북을 앞에 두고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엄지척…… 지금 라이브 하고 있겠지?’
과거 헤드헌팅으로 경매를 했을 때, 신주란은 맞선 제안을 했다.
물론 오너 그룹의 누군가라고만 했지 그녀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그만큼 반대가 크고 파급이 클 일이었으니까.
‘보아하니 시댁 걱정할 것도 없고 착해 보여서 덜컥 던져 봤는데…….’
당연히 거절.
그때 제안했던 사람이 신주란 자신인 걸 알았다면 좀 달랐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녀 자신도 집에서 오는 맞선 압박에 도피성으로 낸 제안.
이런 식으로 벌이는 일이 잘될 리가 없다.
하지만 차였다는 기분도 좀 든다.
‘아니야, 아니야. 잘생긴 애들은 많아. 신경 쓰지 말자. 거기다가 정지한 쪽에 붙었어. 하필 정하 그룹 그 진흙탕에 뛰어든 애를 뭐 하러 내가 신경 써.’
정하 그룹 오너 일가가 콩가루인 건 같은 재벌들끼리도 다 아는 사실 아닌가.
그것도 망나니 취급을 2대째 받아온 정지한 소속이다.
잘될 리가 없지.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말자……. 재벌 사위 자리도 버리고 간 놈이야. 신경 쓰지 마.’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녀의 ‘오목눈이’ 폴더에는 공식에서 풀어 주거나 홈마들이 찍어 준 엄지척의 사진들이 차곡차곡 쌓여 간다는 것을.
‘아니야. 이건 그냥 잘생겨서, 눈 정화하고 싶어서 모으는 거야.’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 생각해도 연애 감정은 절대 아니다.
진지하게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자꾸만 사진이나 동영상을 검색하고는 한다.
“그래. 맞아. 별거 아닌데 뭘 그렇게 고민해. 보면 되잖아. 별것도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
그녀는 홀린 듯 엄지척의 채널을 클릭했다.
“…….”
그리고 3초 후, 잠깐 그녀는 도로 브라우저를 껐다.
“……미쳤나?”
10초 후, 다시 브라우저를 켜서 접속했다.
“……또라이인가?”
연애 감정과는 달랐다. 하지만 크게 다른 것도 아닌 그 기분.
“트럭도 없이 저길 혼자 내려가겠다고? 미친 거 아냐?”
그녀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지었다. 하지만 왜일까.
엄지척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가슴이 자꾸만 뛰었다.
이 기분이 뭔지 그녀는 깨달았다. 남녀의 사랑과는 다르면서 한없이 비슷한 그 느낌.
약간의 흥분감, 불안감, 고양감과 분노까지.
마치 교통사고라도 당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것이 강하게 심장을 치고 가는 그 기분.
덕통사고.
신성 그룹 장녀, 신주란의 병명이었다.
“뭐, 끝까지는 봐 줄게.”
하지만 아직 그녀는 부정하고 있다.
자기가 입덕했음을.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앞두고 그녀는 스스로를 부정했다.
“아니지, 그건 아니지. 어지간한 잘생긴 놈들은 다 사귀어 본 내가 이제 와서 그럴 리가 없지. 이 나이에, 애도 아니고.”
목이 바짝바짝 탄다.
그녀는 물 대신 최고급 보드카를 땄다.
* * *
[척량 - 2단계 진화]
등급 : 레전드 (성장형 E)
분류 : 신공정령
2단계 진화했다. 스킬에 대한 탐지, 조언 외에도 전투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주인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주인의 마력을 흡수해 실체화를 하며 중하급 마수급의 능력을 보여준다.
스킬
-실체화 : 영체에서 물질체로 모습을 변화한다. 실체화를 하는 동안에는 주인의 마력을 소량 소모한다.
-공명 : 주인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단, 여우의 육체로 발현될 수 있는 것만 가능하며 사용자의 마력이 소모된다.
-탐지 : 일정 반경 안에 있는 특수 사물, 아이템, 던전 입구 등을 탐지할 수 있다.
“잘 컸네요, 우리 척량.”
채팅 방은 곡소리와 함성이 교차한다.
아주 그냥 내가 불나방으로 보일 거다.
“자, 그러면 먼저 달려!”
컹!
척량은 산 아래로 먼저 내달렸다.
하이에나 머리에 직립보행을 하는 몬스터, 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키는 평균적인 성인 남성보다 조금 더 크고, 날이 길쭉한 창을 들고 있는 놈들이다.
그리고 놀들의 사이로 척량이 그대로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망설이지 않고 몸을 날려 목을 한 번에 뜯었다.
콰직!
피가 흩날린다.
놀 한 마리가 그대로 즉사.
다른 놀들이 덤벼들지만 척량은 순식간에 놀들 사이를 빠져나가며 다른 놀의 다리를 물어서 뜯어내 버렸다.
단번에 다리가 척량의 이빨에 의해서 잘려나갔다.
그렇게 두 번째 놀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든 척량은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한다.
강해.
저렇게까지 강해질 줄은 몰랐는데.
[공양 의식]을 하기 전, 척량은 이렇게 말했다.
‘주군, 악마의 정수를 저에게 공물로 주신다면 저는 적어도 중하급 마수와 비등한 전투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만큼 좋은 거 아니냐는 말에 척량은 이렇게 답했지.
‘그만큼 마력이 소모된다는 뜻입니다. 허나 전술적인 다양성과 전력 상승 면에서 봤을 때, 이득이라 생각됩니다.’
어느 정도 능력치인지는 짐작이 가질 않지만 중무장한 놀 척후가 외마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야, 척량 강하네.
-그래 봤자 쟤 혼자 뭘 함?
-척량아! 아이고 진화 날이 제삿날이네!
-엄지는 대체 뭘 먹인 거임? 소환수가 저런 식으로 진화가 되는 거였음?
-그게 됐으면 하급 정령사들이 그러고 살았겠음? 진즉에 중급 정령으로 진화시켰지.
“하하하, 어떻게 진화했는지는 비밀입니다.”
그때 채팅 방이 다시 울렸다.
-[방송족같이하네] 님이 100,000원 후원했습니다.
[방송족같이하네] : 직접 내려갈 거지? 애완견 내려보낸 걸로는 안 친다?
“하하하, 애완견이 아니라. 소환수입니다. 그리고 여우고요.”
어지간히 재촉하는군.
그만큼 몸이 바짝바짝 달아 있는 모양이다. 그쪽은.
그때 한 명이 더 붙었다.
-[스릴매니아] 님이 100,000원 후원했습니다.
[스릴매니아] : 나도 낀다. 1,000만 원 + 1,000만 원 해서 2,000만 원 걸었지? 받고 나는 2,000씩 해서 4,000 넣을게. 시도만 해도 2,000만 원은 줄 수 있어.
4,000만 원?
앞에 방송이까지 합치면 6,000만 원이다.
‘우와, 이게 내 몸값이라니 상상이 안 되는데?’
이쯤 되니 순수하게 놀라웠다. 그것도 죽으라고 보낸 몸값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시작하죠. 소환, [모노 바이크].”
-마도 골렘 [모노 바이크]를 아공간에서 소환합니다!
아공간이 열린다. 흑과 백의 바이크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력 회로가 검고 흰 바디 위를 스쳐 지나가며 희미한 빛을 발했다.
그 순간 챗창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아!!!!!!!!!
-저게 뭐임? 저게 뭐임? 저게 뭐임? 저게 뭐임? 저게 뭐임?
-오토바이? 왜 오토바이가 아공간에서 나와?
-아니, 그래 봤자 고작 오토바이 출력으로 뭘 하겠다고…….
-엄지야! 지금이라도 안 늦었다. 못한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