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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42화 (42/305)
  • 제42화

    지금도 지랄맞은 패턴으로 공략 불가 보스가 되었는데 여기에 속성도 얻는다고?

    그냥 죽으라는 거다.

    “아저씨들, 전부 꽉 잡아요! 벨트로 고정 단단히 하고요! 무척이는 여기에 버프 걸어!”

    “형, 뭐 하려고?”

    “이 트럭으로 들이받으려고!”

    동생이 내 눈을 바라보더니, 흠칫 놀라 소리 질렀다.

    “……형, 눈이 미쳤어!”

    이여, 상처받는다.

    “날 믿어! 그리고 인류의 과학 기술을 믿고!”

    “인류의 과학 기술은 무슨, 그걸로 잡을 수 있으면 헌터가 왜 필요해?”

    “믿으라고! 들이받는 거야!”

    “아…… X발.”

    동생은 욕설을 내뱉더니 트럭을 양손으로 짚는다. 그러자 두 개의 문자가 트럭을 뒤덮었다.

    [가속], [증량].

    그래. 질량 곱하기 속도는 힘이지.

    과연 내 동생이다.

    “너 한 물체에 두 개나 버프 걸 수 있었어?”

    “형 덕분에 폭렙했지. 오래 유지 못 해. 빨리 가!”

    “다들 준비되셨죠? 아, 레인저 별하나 님 대신 탱커 정지벽 님 앞으로 오세요.”

    “뭘 하시려고?”

    나는 정지벽을 트럭 앞에 묶었다.

    “강화 최대로 하세요. 성광 님 방어 계열 축복 되시죠? 전에 하시는 것 봤는데.”

    “됩니다.”

    성광은 양손을 모아 기도했다.

    “위대하신 소의 사도시여. 태어날 때부터 고난을 받으사 그 젖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고 그 살로 굶주림을 해결하나니…… 부디 우리에게 이 시련을 극복할 힘을……!”

    성광의 기도를 듣고 있으면 인류가 개새끼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날개 단 소가 내려와 정지벽에 깃들었다.

    나는 말했다.

    “정지벽 님,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탱커의 본보기를 보여야 할 때입니다!”

    정지벽이 내 눈을 보더니 놀라서 말했다.

    “엄지척 님, 눈이… 미쳤습니다. 광인의 눈이 이런 것이군요.”

    다들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녀를 차 범퍼 위에 묶었다.

    모두 준비가 되자 나는 소리 질렀다.

    “밟습니다!”

    내 모든 마력을 붓는다. 트럭이 이제까지 보지 못한 시퍼런 색으로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쿠과과과과과광--!

    차가 버섯 보스에게 닿기 코앞, 그때 귓가에 스킬음이 울렸다.

    띠링-

    -헌터 정지한이 ■■가속 스킬을 사용합니다.

    ‘척량, 스킬음이 이상한데? 앞에 두 글자가 안 들려.’

    내 말에 척량이 답했다.

    -오류가 아닙니다. 이건 필터네요.

    필터?

    -우리는 인지할 수 없는 상위 속성의 경우 필터가 생깁니다! 대체 저자는 뭐 하는 양반이죠?

    왜일까. 육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찰나의 영감이 나를 스쳐 지나가게 했다.

    버섯 밑동에 닿는 순간, 두려웠던 걸까? 내 시선이 손목시계로 향했다.

    째각-

    초침이 멀쩡히 지나갔다.

    다시 눈을 들어 보니 보스 버섯의 행동도 마치 슬로우비디오를 튼 것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 차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어쩌면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차가 충돌한다.

    콰과과곽!

    엄청난 충격이 몸을 찢을 듯 밀려왔다.

    하지만 부러질 정도는 아니다.

    범퍼 위에 묶어 놓은 탱커 정지벽이 팔을 십자로 교차해 충격을 최대한 완화시켰다.

    온갖 버프로 떡칠했지만 버티는 게 쉽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그녀는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우리는 할 수 있다아앗--!”

    그런 그녀의 함성을 응원 삼아 마지막 마력까지 모두 쑤셔 넣어 부스터를 더욱 만들어냈다.

    차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가속했다.

    나도 마력 고갈로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거대 버섯이 결을 따라 찢어진다.

    고작 부러뜨릴 줄 알았던 차가 마치 총알처럼 놈을 관통했다.

    키아아아악!

    놈의 몸체에 트럭만 한 구멍이 뚫렸다.

    아무리 보스라도 이렇게 거대한 바람구멍이 뚫리고 살 수 있는 몬스터는 없다.

    동생이 기다렸다는 듯 포켓에서 솔방울을 닮은 무언가들을 한꺼번에 던졌다.

    콰과과광!

    스킬을 담은 수류탄이다.

    나와 탱커 정지벽의 공격이 치명타, 그리고 동생의 공격이 막타로 들어간 탓에 집채만 한 놈은 괴성을 몇 번 더 지르더니 이윽고 거대한 몸체를 땅에 눕혀야만 했다.

    굉음이 울린다.

    누구도 박살 낸 적 없는 보스를, 그 던전을 클리어하는 소리였다.

    “허억, 허억…….”

    “…….”

    흙먼지가 자욱하다.

    차는 구석 끝에서 덜덜거리며 멈췄다. 이제는 차라고 부르기보다 쿠킹호일 구긴 거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으리라.

    뒤를 돌아보니 다들 얼이 나가있을 뿐 크게 다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다만 아무도 말이 없었다. 힐러 성광은 결국 마력 소모를 이기지 못하고 차에서 나와 빈속으로 구토를 했다.

    차라리 그거면 다행이었다.

    나와 정지벽은 결국 피를 토했으니까.

    “죽인 거 맞다고 해 주십시오……. 쿨럭.”

    탱커 정지벽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훔치며 범퍼에서 내렸다.

    그녀의 삼각근과 상완삼두근이 경련했다. 한계 이상으로 몸을 쓴 탓이다.

    ‘왜 클리어했다는 소리가 없지?’

    나는 비틀비틀 검을 챙겨 나왔다.

    아직 목숨이 이어져 있는 거라면 막타를 쳐야 한다.

    “크으…….”

    다시 울컥, 검은 피가 목구멍으로 밀려왔다. 쓰리다.

    “총알 있냐?”

    내 질문에 동생이 말했다.

    “다 썼어. 헌터 보조원분들도 마찬가지고.”

    “저는 화살 다 썼고요.”

    이렇게 퍼부었는데 설마 살아 있나……?

    흙먼지가 천천히 침잠하면서 놈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했던 버섯 사이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띠링-

    -보스 악몽 버섯의 진화가 불완전하게 종료되었습니다.

    -보스 악몽 버섯이 [악몽의 큰 악마]를 낳습니다.

    치직, 치지지직-

    버섯 결을 찢으며 그것이 나타났다.

    사람과 똑 닮은 악마였다.

    옛날 보았던 [큰 비늘 악마]와는 닮았지만 달랐다. 큰 비늘 악마가 석상을 닮았다면, 저것은 좀 더 사람을 닮았다.

    진화가 덜 되었기 떄문일까. 아니면…….

    나는 모노 블레이드를 움켜쥐었다.

    ‘더 싸울 수 있을까?’

    싸우지 못하면 모두가 죽는다.

    나는 버서크 포션을 쥐었다.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을까?’

    척량이 다급하게 말했다.

    -안 됩니다. 주군! 이 이상은…… 주군의 목숨이!

    하지만 척량, 눈앞에 있는 저놈을 죽이지 못하면 모두가 죽어. 그러니…….

    “……누군가는 해야 해. 쿨럭…….”

    나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다행히 우리 팀에서 체력 보전을 잘한 사람이 한 명 있죠.”

    물주, 정지한이다.

    정지한은 큰 체구로 나를 내려다본다.

    “또다시 목숨을 희생하시려고요. 그렇게 죽고 나면 남겨진 사람은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또다시’? 그게 무슨…….

    정지한은 말을 이었다.

    “영웅의 말로는 늘 똑같다 하셨죠. 행복한 끝은 없다고.”

    그는 나를 밀었다.

    퉁-

    작은 일격인데 내 몸이 뒤로 꽂혔다.

    부드럽지만 정중한 힘이 서려 있었다.

    차라리 압도적으로 강한 것보다 훨씬 어려운 컨트롤이었다.

    레벨 20으로는 절대 내지 못할 힘.

    정지한이 말했다.

    “뒷정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다시 나타났을 때는 [악몽의 큰 악마]의 목이 날아가 있었다.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

    -최초 던전 클리어!

    -추가 보상이 내려옵니다!

    -기여도를 정산합니다.

    …….

    -1위 엄지척 공헌 점수 3,421,450점!

    -1위 보상 [랜덤 유니크 스킬 북]이 주어집니다!

    -1위 보상 [랜덤 유니크 스킬 북]이 주어집니다!

    -1위 보상 [랜덤 유니크 아이템 박스]가 주어집니다!

    -1,000따봉을 받았습니다!

    -1,000따봉을 받았습니다!

    -1,000따봉을 받았습니다!

    …….

    메시지가 어지럽다. 하지만 그걸 무시하고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정확한 손목시계]

    등급 : S

    분류 : 아티팩트

    초월적인 대장장이가 만든 평범하고 튼튼한 손목시계, 방수 처리가 되어 있어 심해에 들어가도 안심이다. 어떤 상황에도 완벽하게 시간을 표시한다.

    정확하게 시간을 표시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는 그 시계.

    나는 폰을 꺼냈다.

    “시간이 안 맞네? 허허허.”

    [정확한 시계]는 원래 시간보다 훨씬 느리게 가고 있었다.

    그냥 시계도 아니고 아티팩트, 그것도 시스템이 완벽하다 보장한 시계가 오차가 나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나는 그제야 그의 진짜 능력을 깨달았다.

    * * *

    밖으로 나오니 난리가 나 있었다. 회사 사람들이 초상집 분위기로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기자는 없네.’

    정지한의 회사 사람들 중에 이런 이야기를 언론으로 흘릴 사람이 없다는 뜻.

    사람 보는 눈이 있는 건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은 되었다.

    ‘오늘 함께했던 파티원들과 마찬가지로.’

    일단 급하게 세워진 간이 천막에서 우리는 의료진들의 진료를 받아야 했다.

    보조원 아저씨들부터 진료를 받게 하고 싶었는데 김 씨 아저씨가 버럭 화를 냈다.

    자기들은 옆에서 총질한 것밖에 없는데 아픈 게 뭐가 있겠냐고.

    역시 그 성격 어디 안 가지.

    결국 성화에 못 이겨 우리부터 진료를 받은 후, 김 씨 아저씨를 비롯한 헌터 보조원분들이 진료를 받았다.

    체력과 마력이 크게 고갈되었을 뿐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기에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던전 시체는 다른 사람들이 뒤처리해 줄 거라고 했다.

    던전 완전 붕괴까지 시간이 꽤 있는 데다가 보스도 소멸해서 정산까지 끝냈으니 안전지대다.

    호화스러운 리무진 버스 내부, 그 침대에 몸을 누이자 드디어 숨이 트였다.

    “와… 뒈질 뻔했다.”

    “그러게 말이야, 형. 이거 두 번만 하면 제명에 못 살겠다. 돈 좀 벌자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크크크크…….”

    마른 웃음을 터뜨리자 동생이 미친 사람 보듯 나를 바라보는군.

    “아니, 그냥 살아 나온 게 신기해서.”

    긴장이 좀 풀리고 나니 이제야 동료들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네.

    탱커 정지벽은 이미 곯아떨어진 지 오래.

    코골이 소리가 버스를 가득 채울 만큼 우렁차다.

    레인저인 별하나는 그런 정지벽 옆에서 잠이 들었는데, 이 소리 속에서 용케도 잠이 든다 싶을 만큼 인사불성으로 자고 있다.

    성격은 물과 기름인데 사이는 또 은근 좋아.

    힐러 성광은 기도하고 있고.

    원래부터 사제 클래스는 기도로 살고 기도로 죽는다고 들었는데, 성광은 그중에서도 기도를 꽤 많이 하는 편이지.

    물주인 정지한은 다른 차를 타고 가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없다.

    리무진 버스 옆에 달리고 있는 롤스로이스 팬텀이 아마 정지한 차일걸?

    밀린 업무가 있다고 하니 그걸 처리하고 있겠지.

    사선을 한번 넘었기 때문일까. 묘한 신뢰감이 생겼다.

    친구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

    -천하를 쥐는 자에게 전우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지요. 주군.

    유비, 장비, 관우 같은 사이를 말하는 건가.

    ‘하긴. 헌터들에게 있어서 전우는 무척이나 중요한 관계지.’

    던전 안에는 법도 치안도 없다.

    그런 곳에서 믿을 수 있는 존재란 역설적이게도 황금보다도 귀하니까.

    이 사람들이 역사에 나오는 그런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날 위해 목숨을 걸었던 건 사실.

    나 역시 그 순간만은 이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걸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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