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상체와 하체가 분리돼서 그대로 쓰러지는 두 마리.
우와, 나도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는데?
이거, 오버파워였나 보네.
남은 마력량을 보니까 아직도 한참 싸울 수 있어 보인다.
다음에는 라이트 블레이드도 쓰지 말아야겠다.
진짜 평타메타가 가능한지 실험해 봐야겠어.
“지금 혼자서 세 마리 잡으신 겁니까?”
내가 잠깐 생각하는 사이. 탱커 정지벽이 어이가 없는지 되물었다.
파티원들의 경악이 따봉 소리로 빠르게 환산되기 시작했다.
‘크으, 좋고.’
힐러 성광이 말했다.
“검 끝이 뭔가 물 흐르듯 움직이는데 어떻게 하신 거죠?”
“무공 스킬을 익혔거든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게 이렇게……. 애초에 무공 스킬은 포인트에 비해 효율이 나쁜 거 아니었어요?”
같은 검술 스킬을 써도 일반 스킬과 무공은 또 다르지.
이윽고 동생, 엄무척이 말했다.
“형, 다음번에는 10마리 몰아와. 우리도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다.”
“10마리? 제정신이십니까. 그게 되려면 적어도 우리 인원이 2배는 되어야 합니다! 제가 어그로를 확실히 끌 수 있는 숫자는 최대 6마리입니다!”
그렇구나. 그래서 저번에 작은 버섯들을 놓친 거구나.
숫자 제한이 있는 거로군.
탱커 정지벽이 놀라서 소리쳤다. 엄무척이 말했다.
“5마리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잖아요.”
그 말에 팔짱 끼며 구경만 하고 있던 물주, 정지한이 입을 열려 했다.
아무리 봐도 그놈의 무사 안전주의를 설파할 것 같아서 내가 소리쳤다.
“몬스터 몰아오겠습니다!”
딱 10마리만 몰아올게.
한번 잡숴 봐.
* * *
3시간이 지났다.
검증 결과 우리 파티는 한 번에 10마리가 아닌 15마리를 소화할 수 있었다. 실로 괴물 같은 사냥 속도.
“이게 무슨…. 레벨 업 속도가…. 제정신…인가?”
탱커 정지벽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별하나가 말했다.
“다른 헌터들 던전 5개어치 사냥을 하고 있……네요.”
성광이 나무를 붙잡더니 힘겹게 말했다.
“그… 그래도 그렇지. 엄지척 님 사냥 스피드가 미쳤…. 우에에엑!”
마력 저하로 오바이트를 했다.
방송 때 이 장면은 편집해야겠네. 아하하…….
-주군, 힐러를 너무 쥐어짜셨어요.
사냥 속도가 빠르다는 건 그만큼 힐러가 구른다는 뜻.
내가 그래도 몬스터를 몰아오면서 [블레이즈 워크]로 탱커의 부담은 줄일 수 있었지만 힐러는 뭐, 별 방법이 없다.
‘아니, 없는 게 아니지. 있지.’
나는 주머니에서 마력 회복 포션을 꺼냈다.
바로 마력이 증가되는 최상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력 회복 속도를 올려주는 녀석이다.
스크루지 만세!
“이거 마시면서 하세요.”
성광이 포션을 받아 삼키더니 놀란 토끼 눈을 떴다.
“마력 관련 포션은 비싸잖아요!”
“연금술 스킬 배워서 직접 만들면 되거든요.”
띠링-
-광신도, 성광이 당신의 호의에 크게 감동합니다!
-3따봉을 받았습니다!
전부터 느꼈지만 ‘광신도’란 호칭 참 신경 쓰인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헌터나 각성자, 또는 가끔 능력자 정도로만 표시되는데 이 사람만 ‘광신도’다.
신관 계열은 다 이런가? 모르겠다.
동생 엄무척이 말했다.
“이제 보스 빼고 이 던전은 전부 정리한 것 같은데, 형?”
“진짜 싹 쓸어갔네. 싹 쓸어갔어.”
별하나가 탐색 스킬로 확인하며 혀를 내둘렀다.
“이제 전리품 회수만 하면 되겠네요.”
어차피 깰 계획도 없는 던전이다.
이대로 몬스터들의 사체를 회수만 하면 될 일.
정지한이 말했다.
“던전 나가죠.”
안전하게 끝났다는 게 은근히 기쁜 눈치였다.
* * *
잠깐 던전 밖으로 나가 미리 대기하고 있던 헌터 보조원들을 불렀다.
그리고 그분들과 함께 다시 던전에 들어갔다.
어디에서 사냥이 이루어졌는지 지도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보스를 제외한 모든 몬스터들을 처리했기 때문에 안전하고.
“세상에, 그 어려운 [야광 버섯 숲]을 이렇게 싹 처리했다고?”
“이렇게 짧은 시간에?”
보스를 잡아 클리어하지 않았지만 잡몹을 전부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긴 하지.
그때 헌터 보조원들 사이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김 씨 아저씨?”
“어라, 엄 씨 아니야? 맞네! 엄 씨네!”
헌터 보조원 때 함께했던 김 씨 아저씨다. 아저씨는 내가 반가운지 얼싸안았다.
“아, 저는 이분들을 도울게요.”
“아니여, 아니여. 엄 씨가 왜 도와! 사냥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을 텐데 쉬어.”
“괜찮아요.”
“어허! 남의 일 뺏지 말고! 누구 백수 만들 일 있어?”
도리어 화를 낸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라도 나를 쉬게 하려는 속셈이라는 걸 이제는 알지.
나는 가장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는 운송용 트럭에 올랐다.
“가요, 안내하게. 길잡이 있으면 편하잖아요.”
“어허, 참…….”
헌터 보조원들이 머쓱했는지 서로를 바라보더니 내 뒤를 따라 올랐다.
하긴 이상하긴 하겠지.
헌터에게 있어 헌터 보조원이 어떤 존재인지 사무치게 잘 알 테니까.
“같은 트럭 타면 냄새가 심할 텐데 괜찮으십니까?”
젊은 보조원이 말했다.
“제가 가장 날걸요. 몬스터 피를 엄청 뒤집어써서.”
띠링-
-헌터 보조원 20명이 당신에게 크게 감동합니다.
-41따봉을 받았습니다.
음. 쏠쏠하군.
* * *
균사류 몬스터는 뿌리에 마정석이 있어 결을 따라서 해체하는 게 중요하다.
결 반대 방향으로 해체를 시도하면 괜히 톱날만 망가지기 일쑤니까.
오랜만에 몬스터를 해체하니 이것도 좀 재미있네.
-주군, 몬스터 해부를 잘하시네요? 놀랐습니다.
간단한 해부학도 배우거든.
왠지 재미있어서 교과에도 없는 자료도 찾아서 공부하고 그랬어.
척량은 그런 내가 신기한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렇게 몬스터들의 사체를 몇 시간 정리하고 나니 동생을 빼고 다른 팀원들은 모두 중간 캠프로 돌아갔다.
내가 쉬라고 보냈지.
원래라면 게이트 밖으로 나가서 퇴근해야 하는데 괜히 신경 쓰이는지 일이 다 끝날 때까지 있다 가겠다고 했다.
어차피 원래라면 여기서 몇 박은 할 계획이었는데 이건 말도 안 되는 사냥 속도라고.
‘사냥 속도가 그렇게 빨랐나?’
나야 뭐, 정식으로 치면 이게 첫 사냥이고 헌터 보조원 때야 이미 사냥이 끝난 후에 들어오는 거였으니까 뭐 알 일이 있나.
그렇게 한참을 처리하는데 메시지가 울렸다.
띠링-
-던전의 환경이 변화합니다.
뭐?
-던전을 출입할 수 없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뒤를 돌아보는데 마침 헌터 보조원들이 전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설마……?”
“던전 그로잉이다! 던전 그로잉!”
몬스터의 사체에서 버섯이 빠르게 자라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란 버섯이 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키에에엑-
하늘이 붉게 물든다.
쿠그그그-
먼 곳에서 소리가 울렸다.
나는 크게 소리 질렀다.
“모두 트럭에 타세요! 무척이 깨워요!”
트럭에서 자고 있던 무척이가 곧바로 일어나더니 트럭 지붕에 올라왔다. 녀석이 들고 있는 건 권총이 아닌 소총.
아공간에서 꺼낸 모양이다.
“캠프까지 일단 도망치자.”
쿠그그그-
바닥에서 거대한 진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몸을 일으키는 것만 같았다.
헌터 보조원들이 다급하게 트럭에 올라탔다.
“엄 씨도 타!”
나는 동생과 함께 트럭 지붕에 올라탔다.
다시 자란 버섯들이 몸을 꿈틀거리며 트럭을 향해 덤벼들었다.
탕!
견제 사격을 했지만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두 번째는 정중앙을 맞힌다.
탕탕!
다행히 아직 덜 자란 놈이라 두 발 안에 처리되는군.
“출발합니다!”
트럭이 빠르게 캠프를 향해 달려갔다. 버섯 사체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버섯이 자라난다.
그렇게 자라난 버섯은 허물을 벗고 일어나 우리를 향해 덤벼들었다.
던전 그로잉.
‘무척이가 대기하고 있어 다행이야.’
그때였다.
탁-
“괜찮으십니까?”
분명 캠프에서 쉬고 있느라 곁에 있을 리 없는 인간이 내 뒤에서 나타났다.
정지한이다.
“순간 이동 능력이라도 갖고 계시는 겁니까?”
마치 화면을 오린 것처럼 남자가 나타났다.
“그것보다 던전 그로잉이라니.”
역시나 대답을 안 해주시는군.
쿠그그그-
트럭 아래로 땅이 움직이는 진동이 울린다. 던전이 접히고 펴지면서 새롭게 만들어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정지한이 말했다.
“던전이 성장 중인 지금 쳐야 합니다.”
정지한의 말에 나와 무척이 녀석 둘 다 표정이 굳어졌다.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는 저레벨 구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래서 아직까지 클리어가 된 적이 없는 던전.
그런데 던전 그로잉 상태인 지금 쓰러트려야 한다니, 원래라면 개소리도 그런 개소리가 없지.
하물며 안전제일을 입에 달듯이 말하던 그 아닌가.
동생이 말했다.
“잘못하면 죽는 거 아시죠? 더 잘못되면 반병신이고요.”
헌터의 말로란 늘 그랬다.
죽으면 차라리 깔끔하게 끝나는 거라고.
보험금 받고 가족들이 생계를 이어 나가며, 일 년에 한두 번씩 성묘를 오는 그런 끝.
하지만 그보다 더 비참한 말로가 있었다.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헌터를 다큐로 본 적이 있었다.
얼굴만 겨우 움직이는 그는 산송장처럼 생을 이어 나가고 있다.
화면을 향해 웃으면서 그는 후원금을 구걸했다.
그는 후원금을 받고 그 돈을 가족들에게 전달하고는 마지막 초인적인 의지로 생명 장치를 끊었다.
지옥은 매운맛이 아니다, 미적지근한 맛이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그 가운데.
그리고 때때로 그런 가운데가 죽음보다도 비참하다.
동생이 걱정하는 건 그런 것이었다.
헌터는 모험을 해야만 돈을 번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가 있다.
이건 몬스터 10마리, 15마리 상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위험이었다.
정지한이 말했다.
“어차피 퇴로가 차단된 상황. 던전이 완전히 성장하게 되면 적들의 진화도 끝나게 됩니다. 진화가 완료되기 전에 공격하는 것만이 살길입니다.”
척량이 말했다.
-저도 같은 전략입니다, 주군. 하지만 어째서 저자는 이렇게 냉정할까요? 주군과 달리 저자는 던전 그로잉을 처음 경험한 상황일 텐데 말입니다.
놀랍도록 침착하다. 마치 두 번째로 경험하고 있는 나처럼.
정지한이 말했다.
“제 가장 우선 목표는 팀원들의 생존입니다. 특히 엄지척 씨는 제 팀의 에이스죠.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죽게 놔두진 않겠습니다.”
“…….”
결연한 의지마저 느껴진다.
속 모를 인간이지만, 그가 무엇이 최우선인지는 언제나 확고하긴 했지.
나의 생존이다.
그는 내 생존을 위해서는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가끔은 야밤에 병원에 찾아와 검증도 안 된 혈청을 강제로 주사하는 미친 짓도 하는 양반이었다.
왠지 웃음이 나왔다.
“아마 전생에 제가 대표님 목숨을 한번 살렸나 봅니다. 하하하…….”
“형.”
동생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상황에서 웃고 있으니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겠지.
“하죠. 해야죠. 시간이 생명인 일이니 빨리 잡아야겠군요. 진화가 끝나기 전에.”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