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38화 (38/305)

제38화

“아무튼 미공략 던전 ‘야광 버섯 숲’! 잘 공략하고 오겠습니다!”

최대한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척량이도 ‘끼양~’ 울며 앞발을 흔들었다.

허억, 저 귀여움에 벌써 숨이 가빠진다.

볼따구를 잡아당기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초인적인 의지였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파티원, 들어왔습니다.”

탱커 정지벽의 목소리다.

나를 제외한 일행들은 이미 먼저 던전에서 캠프를 설치했다고 한다. 정지벽이 말했다.

“제시간에 맞춰 오셨군요. 저 아이는?”

“여우 형태의 정령입니다. 척량이라고 부르고요.”

뀨유?

척량은 일부러 귀여운 척 고개를 45도로 틀었다.

그녀는 그런 척량을 무시했다.

“…아, 그렇군요. 진짜 여우가 아니라면 자기 몸을 지킬 수는 있을 테니 그리 알겠습니다.”

띠링-

-헌터 정지벽이 척량의 귀여움에 크게 감동받습니다.

-3따봉을 받았습니다!

척량은 내 스킬에서 비롯된 녀석.

척량이 받는 따봉은 내게 전해진다.

그건 그렇다 치고 정지벽은 절규라도 할 것 같은 3따봉에 비해 겉으로 봤을 때 행동은 냉정했다.

이 정도 따봉이면 만져 보게 해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다. 그녀가 말했다.

“작은 동물은 건드리면 부러질까 봐 차마 접근도 못 하겠습니다.”

“정령인데요?”

“……괜찮습니다. 아무튼 이 던전에는 우리 팀밖에 없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던전 사용 제한법 아시죠?”

“네.”

던전 사용 제한법.

일부 특수 던전을 제외하고 통상 하나의 던전은 한 팀만이 사용 가능하다.

던전 내부에서 헌터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사고를 막기 위해 생겼다.

그 때문에 던전 입구에는 공무원들과 군인들이 상주해 있지.

‘뭐 그렇긴 해도 살인이 안 나는 건 또 아니지.’

공무원들이 전부 각성자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각성자라고 한들 높은 랭크의 각성자들이 이런 일에 배치되는 경우는 좀처럼 없으니까.

눈을 속이거나 돈을 받고 속아주는 경우야 늘 있어 왔지.

그렇다고 해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고.

인기 던전은 대기표를 뽑아야 할 지경.

그나마 하급 던전은 숫자가 많은 편이라 대기표가 필요 없지.

거기다가 이 던전은 20레벨 제한 던전치고는 꽤나 난이도가 있는 편이라 나흘 동안 어떤 팀도 들어오지 않았단다.

던전을 주기적으로 사냥하지 않을 경우 생기는 던전 브레이크를 제외하면 이런 비인기 던전은 일주일에서 열흘에 한 번 텀으로 사냥을 오는 수준이다.

“역시 헌터 보조원 경력이 있으셔서인지 잘 아시는군요.”

그녀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캠프에 도착하니 키가 훤칠하고 서글서글한 눈매의 미청년이 달려 나왔다.

“형!”

먼저 가서 사냥하고 있다던 동생 놈이 달려 왔다.

이 자식, 헌터 준비하느라 집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만.

“자격증은 잘 땄나 봐?”

“응. A급이야. 거기다 미리 와서 레벨도 조금 올려놨어.”

이 녀석, 언제부턴가 연락을 안 한다 싶었는데 여기서 사냥하느라 그랬던 모양이다.

“두 분 형제셨습니까?”

정지벽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그 말에 엄무척이 답했다.

“저랑 엄지척 형이 형제라는 걸 모르는 건 대한민국에서 정지벽 탱커님 말고는 없을걸요?”

음, 이 녀석 혹시 연예인병 생긴 거 아니야?

그 정도 유명세는 아닌데 말이지.

동생은 목까지 올라오는 가죽 재질 목티를 입고 있었다.

팔이 없는 민소매였는데 대신 양팔에 팔꿈치 위까지 붕대를 감았다.

“능력에 관련된 의상이야?”

“응. 조금.”

[기록사]

등급: A

문자를 사용해 세계를 변화시킵니다. 심연의 도서관에서 끌어낸 문자들은 술자의 육체를 강화시키고 적을 파괴합니다.

동생의 능력이다.

처음 발현됐을 때 능력을 본 적이 있지만 이제는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지 알 수 없었다.

설마하니 땅바닥에 ‘돈벼락’이라고 쓴다고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지는 않을 거고.

이윽고 캠프에서 일행들이 나왔다.

정지한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군.

“오셨군요.”

대단한 헌터 복장이라도 입고 올 줄 알았는데 평범한 차림.

코트가 조금 독특한 걸 빼면 저대로 도로 회사에 나가도 될 것 같네.

그러고 보니 정지한 이 양반은 포지션이 뭐지? 그냥 버스 타는 건가?

하긴.

그래도 상관없지.

이 사람이 물주인데, 버스 좀 탄다고 누가 뭐라 하겠나?

던전 수배하고, 인력 동원하고, 우리한테 월급 주는 등등 모두가 저 양반 주머니에서 나오는 거니까.

‘후, 돈도 해주시고 집도 해주시고. 왜 이리 잘해 주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특별히 안전한 버스로 서비스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능력이 약한 건 아닐 거야. 아마.

저 사람도 이러나저러나 정하 그룹의 괴물 일가 중 한 명이니까.

‘저 옷도 능력에 관련된 건가?’

“자. 그러면 팀원 모두 모였으니. 사냥을 시작합시다. 일전에 브리핑은 전부 했으니까 사냥법은 충분히 알고 있으실 거라고 믿습니다.”

정지한은 가볍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 새로 들어오신 엄지척 헌터는 일단 대기하면서 사냥하는 모습을 봐 주시면 됩니다. 합을 맞추려면 사냥 모습을 조금 봐야겠죠.”

일단 우리는 가볍게 던전 외곽에서 사냥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 * *

탱커 정지벽이 너클을 부딪쳤다.

카아아앙-!

그냥 부딪친 게 아니라 스킬이었는지 버섯 몬스터들이 정지벽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어그로를 끌었다고 한다.

“푸슈우!”

걸어 다니는 버섯들이 증기 같은 것을 내뿜으며 덤벼든다.

울음소리도 기괴한 데다 이족 보행하는 버섯도 있고, 촉수가 여러 개 달린 버섯도 보인다.

크기는 천차만별로, 1미터짜리나 3미터짜리도 있었다.

그런 녀석들이 여럿 덤벼드는데 아주 무시무시하네.

버섯이라서 눈은 없지만, 녀석들의 목표가 확실히 탱커 정지벽인 건 알겠어.

탱커 정지벽이 몬스터들이 모이자마자 바닥을 주먹으로 쿵, 치자 벽이 생겨 몬스터들을 막았다.

“지금!”

그녀가 신호를 하자 사냥꾼인 별하나가 활시위를 당겨 빠르게 버섯 몬스터를 처치한다.

거기에 동생, 엄무척도 가세했다.

녀석이 꺼낸 건 다름 아닌 권총이다.

탕! 탕!

‘평범한 화기는 몬스터에게 거의 통하지 않을 텐데?’

그러나 내 의문과는 달리 버섯 몬스터들이 한 발에 두 갈래로 몸이 찢어지는 게 아닌가?

평범한 총화기의 위력이 아니네 이거?

‘설마 문자를 총알에 부여해서 쏘는 건가?’

지난번에 듣기론 동생은 두 글자로 된 한 단어만 사용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강화]나 [파괴]라는 문자를 담아서 쏜다면 그 총알의 능력은 문자의 힘으로 강화. 그대로 몬스터를 찢어발기게 된다.

-괜찮은 발상입니다. 각성 능력이 ‘기록사’라고 했죠? A급에 맞는 능력이군요. 아니, 활용에 따라서는 최정상까지 오를 수 있겠어요.

그러게 말이다. 나는 고작해야 문자로 신체 강화하는 것 정도만 생각했는데.

‘내 동생이긴 해도 참 멋있는 능력으로 탈바꿈했네.’

별하나의 화살과 무척이의 총탄을 4발 정도 맞은 버섯은 그대로 쓰러져서 꿈틀거린다.

다가오는 버섯의 수가 열이 넘지만, 순식간에 일곱이 나자빠졌다.

그리고 세 마리가 탱커 정지벽이 만들어낸 석벽에 충돌했고.

쿵! 쿵! 쿠웅!

그러나 정지벽의 석벽은 멀쩡했다.

오우, 단단한걸?

그사이 다시금 별하나와 무척이의 원거리 공격이 쏟아졌다.

버섯들은 이내 잡몹처럼 녹아내리고 말았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푸확!

죽은 줄 알았던 버섯 중 하나가 폭발. 그 안에서 작은 버섯 여럿이 튀어나온다.

“나를 봐라!”

그걸 본 정지벽이 다시 양손의 너클을 서로 부딪친다.

쾅쾅!

버섯들 거의 전부가 정지벽의 석벽에 달라붙는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그대로 석벽을 기더니 그걸 넘어 정지벽 본인을 공격하려고 드는 게 아닌가?

크기가 50센티에서 80센티쯤 되는 작은 놈들인데, 행동이 무슨 원숭이 같네?

거기다 일부는 정지벽을 지나서 그대로 별하나와 무척이 녀석을 향하는 게 아닌가?

스릉.

나는 칼을 빼 들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갔다.

이거 위험 사태 맞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내 어깨를 누군가 잡았다.

뒤를 보니 정지한이다.

“잠시 지켜보시면 됩니다. 흔한 일이거든요.”

“저게요?”

“예.”

“음…….”

정지한의 말에 일단 나서지 않고 바라본다.

그러자 별하나와 무척이에게 다가오던 버섯들 다수가 중간에 덜컥하고 멈추는 게 아닌가!

“아. 덫 치기?”

덫. 함정. 트랩.

처음 별하나가 보여주었던 그 특기.

별하나가 설치한 것에 녀석들이 걸려든 것!

그런 녀석들에게 별하나가 화살을 쏟아냈다.

“하지만 덫에 안 걸린 놈들은……. 어?”

남은 버섯 3마리가 돌진해 오는군.

그때 나선 것은 무척이다.

녀석이 총을 허리춤에 꽂더니 달려 나갔다.

그리고 점프해 오는 녀석을 향해 권투 자세를 취하더니 그대로 주먹을 내뻗었다.

펑!

주먹 한 방에 버섯이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녀석은 백스텝으로 빠져나오더니 옆에서 덤벼오는 놈을 향해서는 니킥을 날렸다.

펑!

이 녀석도 역시 폭사.

저것도 기록사라는 능력의 응용인가?

-확실히… 주군을 돕기에 부족함 없는 잠재력과 실력이군요. 기록의 힘을 손과 다리에 담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런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나 하나 돕는 건 너무 인력 낭비 아니냐.

무척이도 그냥 따로 갓튜브 채널 독립해서 해도 될 것 같은데.

지난번에 은근히 떠보니까 오히려 화를 냈었지.

형한테 따봉 몰아줬으면 몰아줬지, 절대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서운하다는 말까지 했다.

그 순간, 하늘에서 돼지 천사가 날개를 퍼덕였다.

다친 사람을 치료하러 나는 것이었다.

힐러, 성광이다.

평상복뿐만 아니라 신관복도 남쪽 지방 느낌이군.

어깨와 쇄골이 드러나는 남국풍 흰색 신관복에 화려한 액세서리가 눈에 띈다.

그의 능력을 상승시켜 주는 아티팩트인지 그가 주문을 쓸 때마다 짤랑거리며 은은하게 빛난다.

그런 성광의 힐이 탱커 정지벽을 감싼다.

그녀는 탱커지만 근접 딜러로서의 능력도 훌륭한지 버섯들을 맨손격투로 찢어발기고 있는 중이었다.

“이 버섯도 잘 말리면 먹을 수 있지 싶습니다? 한국 음식 중에 채소도 말려서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말랭이? 말랭이라고 부르던데.”

이 와중에도 먹을 생각뿐이다.

그 뒤에서 별하나가 다시 원거리 공격으로 보조를 시작.

순식간에 버섯들이 전부 쓰러졌다.

‘내가 그동안 헌터 보조원으로 굴러먹은 짬에서 평가하건대…… 꽤 손발이 잘 맞는 팀인걸.’

일단 탱커 정지벽의 실력이 대단해.

물론 적들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놓치는 부분이 있지만 그건 별하나의 함정으로 충분히 커버 가능.

거기에 무척이가 원딜과 근딜을 동시에 한다.

‘폭풍같이 몰아치네.’

그러고 보니 정지한은 사냥에 끼지 않았다.

그냥 사냥하는 걸 지켜보는 역이다.

어차피 물주님, 뭘 하시든지 상관없다.

자기 몸만 잘 지키면 그만이지.

그가 말했다.

“아, 저는 배분에서 빼시고 팀원들끼리 전리품을 분배하시면 됩니다.”

이상한 놈이긴 해.

이래서야 버스를 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어 보인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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