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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36화 (36/305)
  • 제36화

    이러한 공정 시스템 때문에 나 같은 보통 헌터는 일반 장비를 맞춘다.

    그러나 저런 입에 티타늄 수저를 든 놈들은 ‘넘버드’나 ‘한정’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있고.

    거기다 집안 대대로 함께 거래를 해온 공방이 있다면 오더메이드를 얻을 수 있단다.

    물론 같은 집안 자식이라고 해도 장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턱도 없지만 그래도 나 같은 흙수저보다야 훨씬 좋은 장비를 갖는 게 당연하지.

    아득한 차이라고 할 수 있겠네.

    ‘돈이 좋긴 좋구나…….’

    평범한 여름 정장 차림인데도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사람이 돈지랄하는 것만으로 타인을 감동시킬 수 있다니, 역시 돈은 많고 봐야 해.

    내 시선을 느꼈는지 정지한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자신의 슬리브 가터를 가리켰다.

    “아, 슬리브 가터에 관심 있으신 모양이군요. 좋은 안목이십니다.”

    그렇게 말하며 자기 팔에 있는 걸 벗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때 영체로 있던 척량이 다급하게 말했다.

    -유혹에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주군! 저자가 주군께 큰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읽을 수 있겠으나, 아직 속내를 알 수 없습니다. 지금은 정중히 사양하시는 걸 간언드립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아, 아뇨.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정말 괜찮습니다.”

    몇 번을 거절하고 나서야 그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런 건 몇 개 더 있으니까요.”

    내 인생에서 정장 입을 일이 얼마나 있겠나.

    줘 봤자 도둑만 들끓겠지.

    그래도 호기심이 생겨 넌지시 물었다.

    “그거 카탈로그에서는 못 보던 건데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아, 친한 장인분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더메이드…….

    가장 싼 게 50억이라는 소문은 들었다. 소문만.

    그게 사실인지는 알 수가 없다.

    오더메이드는 경매장에도 안 나오니까.

    “원하시면 소개해 드릴까요?”

    -……나쁘지는 않지만 설사 장인과 친해진다 해도 현재로서는 우리의 군자금이 받쳐 주질 않습니다. 지금은 내정에 힘을 쓰소서!

    집 개조나 마저 하라는 뜻이다.

    “지금은 괜찮고, 나중에나 부탁드립니다.”

    -오오, 좋은 전략입니다. 여지를 주시는 전략! 저도 원 따봉 드립니다!

    척량은 내 스킬이다.

    안타깝게도 이놈은 내게 따봉을 줄 수가 없다.

    마음만 받기로 했다.

    정지한이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연금술실 개조는 순조롭게 되었습니다. 원래부터 헌터용으로 지은 저택이라 크게 건드릴 부분은 없었으니까요.”

    “늘 신세를 지는군요.”

    “아닙니다. 저야말로 늘 신세를 져 왔으니까요. 그나저나 부디 이번 첫 출정 때는 본인 목숨만 신경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 대신 죽는 건 개죽음입니다.”

    회의 때부터 몇 번이나 반복했던 이야기다.

    내가 척량의 지식을 기반으로 전략을 짜면 다들 대단하다며 놀랐다. 그런데 정지한만은 늘 같은 말을 반복했다.

    죽지 마라, 헌터는 장수가 최고다, 오래 살아야 한다, 남 대신 죽는 것만큼 허무한 게 없다.

    심지어는 우리 팀의 제1원칙도 이거다.

    ‘생존은 셀프.’

    그야말로 미친…… 원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물주님의 말이었다.

    그것도 나머지는 다 양보해도 이것만은 지키자는 물주님이셨다.

    “하하하, 저는 걱정하지 마시죠. 저보다는 대표님이나 목숨 잘 간수하시죠?”

    내가 너스레를 떨자 정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번만큼은 믿겠습니다.”

    인부 대장이 작업이 끝났다고 소리쳤다.

    연금술실이 완성된 모양이다.

    * * *

    정지한을 내보내고 다시 집에는 나 혼자다.

    척량이 말했다.

    -질척이고 귀찮았지만 나름대로 쓸모는 있는 자입니다.

    “그놈을 그렇게 평하는 건 네가 처음일 거다.”

    -그렇습니까?

    “응. 그만큼 이 나라에서 정하 그룹이란 이름은 무게가 다르거든.”

    -뭐, 악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사하며 몰래 수상한 것이라도 설치했나 확인했는데 깨끗했고요.

    “그사이에 그런 것도 살펴봤어?”

    -무릇 덕이 있는 자들은 사람의 마음을 쉽게 얻으나 대신 의심이 적다는 단점이 있지요. 괜찮습니다. 의심은 저 같은 군사가 해야 할 일.

    아기 여우의 몸으로 말하니 위엄이란 전혀 없고 귀엽기만 하다.

    나는 척량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고는 지하 연금술실 문을 열었다.

    삐그덕-

    연금술에 쓰는 커다란 솥을 중심으로 바닥에는 거대한 마력 증폭 회로가, 벽에는 연금술에 필요한 여러 장비들이 걸려 있었다.

    수납공간도 넉넉해서 연금술 재료를 보관하기 좋아 보인다.

    -자, 꼼수를 써 볼까요? 주군?

    “내 손으로 만드는 오더메이드 말이지.”

    -네. 친한 장인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야매 방법이지요. 무기 속성 부여를 시작해 봅시다.

    나는 [☆★◇◆스크루지의 연금술◇◆☆★]을 발동시켰다.

    * * *

    띠링-

    -인챈트가 성공하였습니다!

    -[무명 장인의 쌍검]이 [빛과 어둠의 무명 장인의 쌍검]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빛과 어둠 속성을 각각의 칼날에 부여했기 때문이다. 척량이 호들갑을 떨었다.

    -오, 역시 주군이십니다! 성공하셨군요.

    “폐무기에 몇 번 인챈트 연습을 하고 들어가자는 건 네 아이디어였어. 난 그대로 한 것뿐인걸.”

    폐무기, 정크라고도 부른다.

    전투 중에 부러지고 깨진 무기를 뜻한다.

    장인도 수리할 수 없는 무기는 보통 폐기 처분을 하는데, 재료값은커녕 폐기 비용이 더 드는 경우도 생긴다고 봐야 한다.

    척량이 낸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았다.

    이러한 폐무기들을 싼값에 사서 연습을 하자고.

    그러다가 숙달되었을 때 본 무기로 넘어가자고.

    -지구는 물건을 너무 쉽게 쓰고, 쉽게 버립니다. 대량생산에 익숙한 기계 문명이기에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연습용 철검을 사서 인챈트를 하나, 폐무기를 사서 인챈트 연습을 하나 큰 차이는 없을 텐데 말이죠.

    “덕분에 돈을 아꼈지.”

    -아닙니다. 이 또한 주군의 인덕입니다. 책사로서 뿌듯합니다.

    그때 메시지가 울렸다.

    -[☆★◇◆스크루지의 연금술◇◆☆★] 스킬로 인해 기초 연금술 숙련도가 레벨 업 하였습니다.

    -더욱 고난이도 연금술 레시피를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나는 곧바로 레시피를 뒤졌다.

    “2차 인챈트도 가능한걸?”

    -1차 인챈트가 속성 부여라면 2차는 기본 공격력과 민첩, 힘, 밸런스를 올릴 수 있군요. 실패 시 무기 내구도 하락…….

    “이건 무조건 해야지. 그러려고 내구 좋은 무기를 샀는걸.”

    -역시 감이 좋으십니다, 주군. 던져 보시지요. 대신 폐무기로 몇 번 연습을 해 보시고 시도해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다시 연금술 작업에 들어가길 한나절.

    띠링-

    -2차 인챈트가 성공하였습니다!

    -2번 연속 성공하여 해당 무기에 추가 보너스가 붙습니다.

    우우웅-

    아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눈부신 광체가 밀려온다. 빛 사이에 무기의 디자인이 변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빛이 꺼지며 메시지가 울렸다.

    -[빛과 어둠의 무명 장인의 쌍검]이 [모노 블레이드]로 변화합니다!

    암 속성 새카만 검날과 빛 속성 하얀 칼날.

    유려한 곡선이 마치 파도와도 같았다.

    -[모노 블레이드]에 추가 스킬이 부여되었습니다.

    대박이다.

    척량이 말했다.

    -5억짜리 무기가 10억짜리 넘버드급이 되었습니다. 주군! 아니, 주군의 무공 특성을 고려해 부여했으니 이것은 야매 오더메이드라고 할 수 있겠군요?

    대체 스크루지는 뭐 하는 놈일까.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 저자본 고▧액 창◆출의 기회!’

    그 미친 스킬 설명이 진짜일 줄 누가 알았나.

    * * *

    [모노 블레이드]

    등급 : B

    분류 : 무기 (아티팩트)

    엄지척이 연금술을 이용해서 강화한 두 자루의 검. 빛과 어둠의 힘이 각각의 검에 담겨 있으며 이를 조화롭게 사용 가능합니다. 개성이 강한 특성으로 관련 계열 스킬이나 무공이 있어야만 진정한 능력을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스킬 : 다크 블레이드, 라이트 블레이드, 모노 블레이드

    제작자 : 무명의 장인

    강화자 : 엄지척

    *해당 무기는 엄지척만이 사용 가능합니다.

    아깝군. 보아하니 남의 무기를 마구 강화해서 팔아먹는 것까지는 불가능한 모양이다.

    물약과는 달리 강화한 무기는 나한테 귀속되는 모양.

    -거기까지 되면 너무 사기지 않습니까, 주군.

    척량은 무슨 스크루지 할배를 보듯 하는군.

    아니 뭐, 이왕 득 본 거 욕심 좀 더 내면 안 되니?

    우선 나는 모노 블레이드를 뽑아서 살펴보았다.

    밋밋했던 검신이 각각 묵빛과 은빛으로 반짝이는 게 꼭 게임에서 보던 강화 이펙트 같네.

    스킬 설명만 보면 약간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부분이 있지만, 중요한 건 그 능력.

    B급이라고 생각도 못 할 만큼 대박이었다.

    -다크 블레이드 : 일정 마력을 사용해 암흑의 힘으로 주변의 빛을 모두 빨아들입니다. 일정 시간 동안 주변이 어둠으로 물듭니다. (최대 반경 10미터)

    처음 이 설명을 들었을 때는 이게 무슨 병신 같은 스킬인가 싶었지.

    그래서 스킬을 발동시켜 보니 검신이 형광등 빛을 잡아먹더니 주변을 일제히 어둠으로 물들이는 게 아닌가?

    이 스킬로 인해 상대방은 나를 볼 수 없다.

    그런 반면 나는 상대를 볼 수가 있었다.

    어둠으로 시야가 차단된 적에게 기습하기가 좋았다.

    게다가 빛을 빨아들이는 특성이 있으니 지난번 악마 놈이 썼던 광선 계열 스킬은 위력이 약해지지 않을까?

    -라이트 블레이드 : 흡수한 빛을 내뿜습니다. 마나 블레이드 및 검기, 검강과 중첩시킬 수 있으며 많은 빛을 흡수할수록 더욱 강력해집니다.

    발동시켰더니 마치 스타X즈의 라이트 세이버 같은 빛이 치솟았다.

    단순히 절삭력만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내공까지 합쳐서 잘만 조절하면 섬광탄처럼 적의 눈을 혼란시킬 수도 있을지도?

    태양을 3초 이상 보기 힘든 것과 비슷한 이치다.

    거기다 가장 경악스러운 건 모노 블레이드.

    -모노 블레이드 : 빛과 어둠을 합쳐 상대의 방어력을 완전히 무시하며 공격합니다. (시간당 1회/10초)

    탈B급 무기!

    스킬을 발동시키려면 적합한 무공이 있어야 한다는 게 단점이지만 당장 경매장에 내놔도 A급 이상의 무기 대접을 받을 수 있을 터.

    ‘역시 귀속이 아쉽다, 귀속이.’

    팔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척량이 말했다.

    -주군은 언젠가 천하를 쥐실 분. 군자금은 신에게 맡기시고 자신을 돌보소서!

    ……아니, 됐다. 그래.

    “척량, 이 스킬 북을 만든 스크루지라는 놈 좀 검색해 줄래? 혹시 다른 스킬 내놨는지 보게.”

    -알겠습니다. 잠시 검색 중…….

    척량의 꼬리가 검색으로 파르르 떨렸다. 이윽고 녀석이 말했다.

    -어라, 주군. 없는데요? 원래 팔던 연금술 스킬 북도 판매 중단이 되었습니다.

    “뭐?”

    놀라서 따봉 상점을 직접 검색해 봤는데,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군.

    “이럴 수도 있어?”

    스크루지 이름을 손가락으로 누르니 모르는 문자가 떠올랐다.

    그것은 한글도, 영어도, 룬문자나 이집트 상형문자도 아닌 완전히 알 수 없는 문자였다.

    척량이 말했다.

    -아, 관리자 문자입니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척량이 앞발로 허공을 몇 번 두드린다.

    페이지가 펴지며 모르는 문자들이 더욱 많이 나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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