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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34화 (34/305)

제34화

정지한에게 연락이 왔다.

[잘 지내셨습니까?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실전을 뛰어 보는 게 어떤가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네, 물론 던전 리스트는 이미 정리해 두었으니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 가시면 됩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유들거리는 말투가 여전하군.

묘한 벽까지 느껴지는 것도 마찬가지고.

“던전 리스트요?”

[네. 함께 갈 팀원들도 수배해 놓을 테니 센터에 내방해 주시는 건 어떠십니까?]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팀원이라… 내가 직접 정하고 싶은데.

내 눈치를 읽었는지 내가 답하기도 전에 이렇게 말했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빼셔도 괜찮습니다.]

대체 이 녀석은 신참인 날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네.

전화를 끊고 나니 척량이 이렇게 말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군요, 주군.

“나도 같은 생각이야.”

척량이 꼬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이런 타입의 인물들은 상대하기가 무척 힘듭니다. 선악이나 인정을 넘어서 대의를 위해 움직이니까요?

“대의?”

-…….

척량은 말없이 꼬리를 백우선처럼 흔들기를 반복했다.

이윽고 이렇게 말했다.

-저도 함께 데려가 주십시오. 주군, 재미있어 보입니다.

* * *

센터에 도착해 트레이닝 층이 아닌 오피스 층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정지한과 3명의 남녀가 서 있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정지한의 목소리에 나도 함께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점심시간인데 다들 식사하셨어요?”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었다.

“안녕하십니까. 신입 엄지척입니다.”

“예, 반갑습니다. 저는 팀의 탱킹을 맡고 있는 정지벽입니다. 정지한과는 사촌지간입니다.”

내가 악수를 청하자 정지벽, 그녀가 내 손을 맞잡았다.

이런 말 하자니 웃기지만 둘이 안 닮았다.

정지벽은 큰 눈과 가지런한 이목구비를 지닌 미인으로 키는 180이 넘고 몸은 흉기라고 할 만큼 전신 근육질이다.

특히 발달된 중둔근, 대둔근, 대퇴막장근으로 이어진 강한 하체 라인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숨을 삼키게 했다.

동양인이라기보다는 서양인, 그것도 전문 프로레슬러 저리 가라 할 만큼의 체형.

본인도 본인의 근육이 마음에 드는지 상완근과 삼각근이 잘 드러나는 어두운 색 딱 달라붙는 민소매 티 차림이다.

첫 만남으로는 다소 부담스러운 옷이지만 근육이 흡사 조각과도 같아 모두 경탄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인간이 이만한 근육을 만들려면 대체 얼마나 쇠질을 해야 하는 걸까.

그녀는 육포를 입에 물며 말을 이었다.

“몬스터를 유인하고 바닥에 벽을 만들어 공격을 막아냅니다. 이렇게요!”

그리 말하더니 바닥을 주먹으로 쿵! 찍었다.

바닥을 찍자마자 단단한 콘크리트 벽이 솟아올랐다.

쿠그그그-

“바닥 재료에 따라 벽의 성능과 능력은 달라집니다. 제 몸을 강화시킬 수도 있어서 몬스터 유인도 잘합니다. 아, 몬스터 먹는 것도 좋아하죠.”

갑작스럽게 스킬을 사용하는데도 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 그리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굉장히 멋있는 능력이군요! 아, 드시고 계시는 건 몬스터 육포인가요?”

“하하하, 리자드 맨 힘줄입니다.”

어, 엄청나군. 스킬도 식성도.

-헌터 정지벽이 당신에게 호감을 갖습니다.

-2따봉을 받았습니다!

예의상 칭찬 하나 해줬다고 2따봉이라니.

방 씨 남매가 떠오르는 감수성이다.

“하나 드시겠습니까?”

그녀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손에 육포를 쥐여 주었다.

그러고는 엄숙하게 말했다.

“하급 미노타우르스 목살입니다. 친애의 표시지요.”

첫 만남부터 미노타우르스 목살 육포를 먹는 것인…가.

근데 맛있는 냄새가 나네.

이미 연금술로 리자드 맨 육포도 만들어 먹은 나다.

미노타우르스 육포라니, 하급이라고 해도 엄청나게 비싸겠지?

이걸 첫날에 주다니 재벌가 손녀가 맞긴 한 모양이네.

좋아. 먹자.

눈 딱 감고 한 입 씹어봤더니 소고기 특유의 깊은 풍미가 탁 풀려나오는 게 아닌가?

‘오오?’

입 안에서 소가 ‘음머!’를 외치며 걸어간다.

이것은 갈비. 소의 갈비. 그 자체.

시스템적인 축복은 없으나 그냥 이것만으로도 너무 맛있어서 아껴 먹고 싶을 지경.

“맛있습니까?”

“네, 네!”

그거 보라는 듯 정지벽이 말했다.

“몬스터 육포를 이렇게 서슴없이 먹어준 분은 엄지척 님이 처음입니다. 다들 거절했는데 말입니다.”

-헌터 정지벽이 육포의 진가를 알아본 당신에게 더 큰 호감을 갖습니다.

-2따봉을 추가로 받았습니다!

하하하, 이미 극한 상황에서 연금술 제작도 했거든요.

하긴 세상에 먹을 게 이렇게 많은데 던전 안도 아니고 누가 몬스터 육포를 씹고 있겠어.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말했다.

“저는 좀 비위가 약해서요.”

그러고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파티의 길 안내 겸 원거리 딜러를 맡고 있습니다. 별하나라고 불러주세요.”

서포터와 딜러를 겸하는 포지션인가 보다.

“우리나라에 별 씨도 있군요.”

“제가 지었어요. 게이트 고아거든요.”

“아…….”

게이트 고아, 몬스터 웨이브 사태 때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총칭한다.

그나마 머리가 굵어진 아이라면 자기가 누구인지, 부모는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주 어린 아이나 전쟁 PTSD로 자기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면 행정상 가명을 붙이고 후에 본인 이름을 정했다.

이 아이가 누군지 출생 신고 기록 같은 걸 찾아보고 싶어도 그 시기는 동사무소 자료도 서버도 폭파되던 시절이었으니까.

“별하나라, 정말 좋은 이름이네요.”

“감사합니다.”

별하나는 담담하게 내 손을 놓았다.

“제 주요 능력은 동물을 조종해 이 던전의 길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무기로 활과 단검을 사용하지만 그것보다는 덫을 놓는 걸 더 즐겨 하죠.”

“덫이요?”

스릉-

그 순간,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느다란 와이어가 내 앞을 채웠다.

정지벽이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덫 치기는 안 좋아하는 헌터들이 많은데 꼭 초면에 보여야 했습니까?”

덫. 그것은 몬스터를 잡는 데도 쓰이지만 같은 헌터를 잡는 데에도 많이 쓰인다.

이른바 ‘뒤치기’라고 불리는 던전 내 팀킬.

직접 공격보다 성가시기 때문에 싫어하는 헌터들도 많았다.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이니까요. 그리고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안 끼면 되는 일이니까.”

그녀가 볼펜을 던졌다.

볼펜이 와이어에 부딪치자 현이 풀리며 볼펜을 수십 조각 냈다.

차르르릉!

“이런 능력입니다.”

그녀는 사무적으로 말했다.

경계에 익숙한 눈이다.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이런저런 사연들이 있던 모양이네.

나는 밝게 웃었다.

“정말 유용하겠네요. 야영하게 되면 부탁드리겠습니다!”

“꺼리시지 않으신다니 다행이군요. 알겠습니다.”

띠링-

-헌터 별하나가 당신에게 약간의 경계와 희미한 호감을 품습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뭐, 외골수적인 부분이 있어 그렇지 본질은 좋은 사람인 모양이다.

이제 남은 한 사람.

외모가 이색적이다.

구릿빛 피부에 화려한 백발. 10대 후반의 미소년으로 보였다.

속눈썹이 희고 긴 데다가 콧날 역시 정갈했다.

입술은 무척이나 붉어서 열대 과일이 떠올랐다.

마른 근육질 체구였는데 등이 푹 파인 여름 민소매를 입고 있었다.

손톱 역시 흰색이었는데 마치 보석처럼 반짝였다.

마치 햇빛을 온몸으로 껴안은 것 같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미소년이었다.

“신관입니다. 회복을 도맡아서 할 거예요. 성광이라고 불러주세요.”

“성광? 독특한 이름이군요.”

“저 역시 게이트 고아거든요. 제가 직접 지었습니다. 아, 외모가 이런 건 모시는 신의 영향 때문이니 너무 개의치 말아 주세요.”

역시나 여러 곳에서 시선을 받은 모양이다.

일단 기독교나 천주고, 불교, 이슬람은 아닌 것 같다.

구릿빛 피부 위로 머리카락이 마치 새의 깃털처럼 나풀거렸다.

“종교가……?”

“아, 그건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대신 저도 능력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성광이 양손을 모아 기도를 하자 허공에서 돼지가 내려왔다.

그것도 날개 달린 돼지.

“회복을 내려 주소서…….”

그러자 돼지가 퍼덕이며 날아가 별하나가 부순 볼펜을 원래 모양으로 되돌렸다.

“이 펜은 마력이 없는 작은 무기물이라 복구가 쉽지만 사람은 좀 힘들 겁니다.”

“방금 돼지는……?”

“신의 사도십니다.”

“신의 사도?”

“네. 문명의 시작부터 함께하셨으며 스스로 몸을 바쳐 그 살과 뼈로 허기를 구원하니 사도가 되실 자격이 있으시죠.”

“사도가… 돼지…… 형상이시군요.”

“네. 닭과 소, 양같이 여러 형상의 사도님들이 계십니다.”

치킨, 비프…… 램…….

뭔가 떠올랐지만 닥치고 있기로 했다.

“무척 유용한 능력이군요. 함께해서 영광입니다.”

“네. 저야말로 파티에 함께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광신도, 성광이 당신에게 순수한 호감을 표시합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헌터라고 표시되는데 얘는 광신도로 표시된다.

‘신은 아마 요리나 목축 계열 신일 가능성이 높겠군…….’

성광이 말을 이었다.

“저는 식사를 남기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 부분 약속해 주셔야 합니다. 먹을 음식만 덜어 드시기로. 음식 쓰레기는 가급적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받으신 육포는 가급적 다 드셔 주시고요.”

“아, 알겠습니다.”

친환경 신이시다. 어쩌면 인류를 위해 정말 필요한 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지한이 말했다.

“모두 제가 가장 믿는 이들입니다.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군요.”

“함께하시는 것만으로 감사하죠.”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늘 그러셨지만요.”

-당신의 인품에 정지한이 다시 반합니다.

-2따봉을 받으셨습니다!

난 아마 전생에 정지한의 목숨을 구한 게 틀림없다.

셋 다 훌륭한 능력을 가진 분들.

이런 사람들 사이에 나를 넣어 준다는 것만 봐도 정지한이 나를 꽤나 신경 써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소에는 이분들 셋이서 사냥하시는 거죠?”

내 말에 정지한이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회사에서 차기 주력 헌터로 낙점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3인 1조의 팀이죠. 슈퍼 루키로서 기대를 받고 계시는 분들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건 너 역시 마찬가지다.

정지한은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탱커. 서포터 겸 딜러. 그리고 힐러.

탱커인 정지벽은 정씨 집안이라 장비가 빵빵하지.

서포터 겸 딜러는 몸이 날래고 원거리 공격이라서 안전하게 딜을 뽑아내고.

힐러는 애초에 뒤에서 힐과 버프를 주는 역할.

정지벽, 그녀의 능력이 뛰어나다면 어차피 몬스터가 다른 둘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을 것이니 균형이 아주 잘 잡힌 팀이라고나 할까?

소수 정예.

대규모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소규모의 정예 몬스터가 출몰하는 곳에서는 확실히 강할 터.

실제로 세 명 다 이쪽 업계에서 헌터 보조원으로 일한 나도 처음 보는 희귀 클래스 같아 보였다.

특히 멤버들 모두 개성이 강하지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드는군.

“동생 엄무척 님은 훈련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헌터 시험을 끝내고 나면 바로 합류하게 될 겁니다.”

“합격을 의심치 않으시는군요.”

내 말에 정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대 최강의 루키 형제가 완성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체 어느 정도로 강해진 거지?

자기 몸을 지킬 수준만 되면 형은 만족한다, 무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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