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33화 (33/305)
  • 제33화

    “어째서지?”

    -단기적으로는 강력할 수 있으나 성장 가능성이 없는 스킬은 지금 단계에서는 무의미합니다. 주군께서는 레벨 업 없이 따봉만으로 평생 레벨 1로 살아야 하는 몸. 큰 그림을 가지고 움직이셔야 합니다.

    오오, 진짜 책사 같아! 아니 책사가 맞나?

    “너는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무공입니다.

    “무공?”

    -네. 레벨 업이 없는 상황에서 그에 비견될 만한 성장을 보이는 스킬은 무공밖에 없습니다. 거기다가 주군께서는 레벨 1. 레벨 1로 시작한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 그러나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

    척량은 책사가 부채를 접듯 꼬리를 팟! 흔들었다.

    -한마디로 무엇을 익히든 제약 없이 익힐 수 있습니다.

    척량은 앞발을 꼼지락거렸다. 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마디 내뱉었다.

    -저를 믿어 주시고 큰 비밀을 말씀해 주신 주군께 감사드립니다.

    어째서일까.

    이 녀석은 책사인 자신을 내가 신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척량은 따봉 상점에서 스킬을 검색해 내게 보여 주었다.

    [건곤신공 - 70,000따봉]

    등급: 유니크 (성장형 F)

    건기와 곤기를 다루어 신선이 되는 것을 목표로 일로정진한다. 내공심법이자 외공기공.

    내공의 증가가 타 무공에 비해서 느린 대신 육체가 동시에 진화한다.

    주의, 다른 무공 심법을 익혔을 시 스킬 습득 불가. 레벨 5 이상의 육체도 습득 불가.

    “무공은 비인기 스킬 아니야?”

    -네. 당장 전투 나가기에 적합하지도 않고, 설명은 애매합니다. 스킬을 취득한다고 해도 연마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하지만 주군께는 더없이 적절합니다.

    “나한테 적절하다?”

    -종합 평가 B의 무공이지만 제대로 숙지했을 시 다른 스킬과 연계가 완벽하며 내공심법과 외공기공을 함께 증강시킬 수 있습니다.

    “흐음?”

    -건기와 곤기, 즉 음과 양의 기운을 정순하게 담기 때문에 주군께서 가지고 계시는 [아크 드래곤식 마력의 심장] 스킬과 충돌하는 일 없이 상생할 수 있습니다.

    “충돌하지 않는다?”

    -네, 다른 무공 심법을 익혔을 시에 습득 불가라 했지, 서양 마나 심법을 하지 말라는 소리는 없습니다. 그 점을 이용해 봅시다.

    “…….”

    이건 생각지도 못했다.

    무공, 무공이라…….

    레벨 1인 점을 이용해 무공을 시작한다?

    생각할수록 그럴듯했다. 왜 그걸 여태 생각하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척량이 한마디 덧붙였다.

    -주군, 거기다가 무공의 멋짐은 일반 스킬과 비교가 되지가 않습니다. 같은 칼질도 무공을 익힌 자의 일격과 스킬에서 정해준 대로 긋는 일격은 품새부터가 다릅니다! 백의에 칼질만 잘해 줘도 갓튜브에서 더 큰 따봉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산다!’

    -70,000따봉으로 [건곤신공]을 구입하셨습니다!

    구입했다.

    -추가로 이것을 구입하시길 권합니다.

    [오토 에너지 드레인 - 20,000따봉]

    등급: 에픽 (비성장형 C)

    자동으로 기운을 주변에서 흡수하는 스킬. 내공 회복, 마력 회복을 자동으로 돕는다.

    내공 수련 시 내공의 축적 속도 가속.

    중복 가능.

    “이거 심법이 아니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차원에서 온 꼼수입니다. 어느 차원이나 잔머리 굴리는 사람은 있는 법이지요. 표기되었듯 이것은 마나심법도, 무공도 아니고 그냥 ‘스킬’입니다! 그러니 다른 걸 익혀서는 안 된다는 두 스킬의 제약도 빠져나가는 셈이지요.

    척량, 아니 새끼 여우의 눈에서 광선이 뿜어져 나온다.

    -건곤신공 2성 도달 후 내공진기의 양이 오 년 치 이상일 경우, 스킬 [오토 에너지 드레인]과 [아크 드래곤식 마력의 심장]도 함께 사용 시 백야, 암야의 공격력 687% 증가. 방어력 일부 무시 공격이 가능해진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오오, 이것이 꼼수의 맛!

    나는 바로 2만 따봉을 들여 스킬 북을 샀다.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절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군.

    척량은 감동을 받았는지 울먹인다.

    ‘창조주인 시스템이란 놈이 남을 잘 안 믿는 놈이기라도 했나?’

    꼼꼼하게 기억을 소거한 게 의심 많은 성격 같기는 하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 주군을 반드시 최강자로 만들겠습니다!

    오오오오!

    척량의 꼬리가 결심으로 빳빳하게 섰다.

    그것은 마치 적벽대전을 앞에 둔 책사의 기개 같았다.

    나는 폰을 들었다.

    척량은 바로 내 의도를 눈치챘다.

    -사진 찍으셔도 됩니다!

    찰칵, 찰칵!

    이놈의 360도 모든 각도 사진을 내 손에 넣고야 말겠다.

    ‘허억, 허억…… 앞발 입에 넣고 쭙쭙 빨고 싶다.’

    * * *

    그날, 바로 건곤신공의 수련에 돌입했다.

    -많은 이들이 무공 스킬을 얻고 스킬에만 의존하려 합니다. 무공의 기본은 심득. 스킬 창에 있는 구결을 반복해서 읽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셔야 합니다.

    이래서 무공이 헌터들한테 인기가 없는 거다.

    당장 몬스터가 한강에서 헤엄을 치고 태백산맥을 타고 호랑이처럼 출몰하는 판국에 구결부터 읽고 있으라니.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처음 유명세에 비해 위력이 약했던 건 결국 반쪽짜리 무공만 사용했기 때문인 모양.

    ‘차곡차곡, 벽돌을 쌓는 기분으로…….’

    나는 깊게 호흡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구결을 반복해서 생각하며 내 몸, 내부 구석구석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땅과 하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호한 깨달음의 모서리 어딘가.

    나 같은 풋내기가 감히 어찌하기도 힘든 웅후하고 심후한 깨달음이 고래처럼 내 곁을 지나갔다.

    그 지느러미 끝자락 어딘가가 내 살갗을 스쳐 지나가기라도 한 걸까.

    눈을 뜨니 밖은 새벽이었다.

    척량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재능이 있으시군요.

    “재능?”

    문득 단전에 손가락만 한 구슬이 생겨 있는 게 느껴졌다.

    땅과 하늘의 기운, 그 부스러기가 내 안에 들어 있는 건가.

    심장의 마력과 단전의 마력은 성질이 달랐으나 그럼에도 서로 부딪치는 일 없이 각자의 길을 흘러갔고.

    그걸 깨닫기가 무섭게 메시지가 울렸다.

    띠링-

    -마력이 내공으로 전환됩니다.

    -5년 치 내공이 단전에 축적되었습니다.

    -내공은 언제든지 마력으로 전환이 가능합니다. 마력 수치로도 함께 표시됩니다.

    “우와!”

    놀란 내게 척량이 말했다.

    -적어도 1년은 족히 걸릴 거라 생각했습니다. 과연 주군이십니다!

    “네가 내게 맞는 무공을 추천해준 덕분이지.”

    -건곤신공은 마음이 깨끗하고 바른 이에게 적합한 내공. 아닙니다. 제 예상보다 주군께서 적합하신 거죠.

    “…….”

    척량이는 착각을 하는 것 같다.

    나는 불의라도 내 이득만 된다면 언제나 허리를 접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인간 폴더폰이 뭔지 모르는 모양이군.

    ‘후후후…… 아무튼 척량이가 추천해 준 스킬이 내게 꼭 맞는 모양이군.’

    착각은 내버려두자.

    -주군, 이 내공을 이용해 한번 암야와 백야를 시험해 보십시오!

    “그래.”

    나는 그렇게 정원으로 향했다.

    과거 스타급 헌터가 살던 호화 저택답게 정원도 잘 관리되어 있다.

    센터만큼은 아니어도 개인 연무장으로도 쓸 수 있게 공터를 만들어 놨는데 그것도 꽤나 시설이 좋다.

    지하에도 수련실이 있는데 거기는 아직 보수 중이고.

    나는 미리 설치해 둔 커다란 특수 화강암을 손으로 쓸었다.

    그냥 화강암도 아니고 던전에서 캔 하급 광석으로, 무기로 만들기에 적합하지는 않지만 꽤나 단단해서 헌터들이 연습용으로 즐겨 사용하는 돌이다.

    -흠집이 많이 났군요.

    “응, 여기에 대고 연습했거든.”

    얼마나 단단한지 힘껏 휘둘러도 흠집이나 좀 나고 끝이다.

    보통은 특수한 장비를 사용해서 잘라낸다.

    나는 목검을 꺼냈다.

    -주군, 장비는……?

    “아, 말 안 했던가? 부러졌어, 악마 핵을 깰 때.”

    -새 장비도 근시일 내에 준비해야겠군요. 알겠습니다.

    척 하면 척이다.

    그래서 척량인가 보다.

    나는 심장에 있는 마력을 단전에 넣어 내공으로 변환, 그러고는 암야, 백야를 발동시켰다.

    우우웅-

    검 위에 색이 서리는군.

    암야에는 검은빛이 또렷하게 스미기 시작했고, 백야는 흰빛이 눈부신걸?

    -예상대로 건기와 곤기가 음양의 도리에 따라 각각 안착했습니다.

    “그것도 예상한 거야? 대단하네.”

    -아닙니다. 저는 주군의 책사인 몸. 그저 할 도리를 다할 따름입니다.

    잘못 들었나? 방금 말끝에 ‘헤헷’이라고 웃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칭찬받으니 기분이 좋은가 보다.

    하여간, 솔직하지 않기는.

    나는 그대로 특수 화강암에 검을 내리그었다.

    스킬 하나 깃들지 않은 매우 기본적인 상단 치기!

    파앙!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내공의 10분의 1이 사라졌다.

    검이 특수 화강암에 닿는 순간, 마치 두부를 자르는 것 같은 감촉이 들렸다.

    서컹!

    이렇게 쉽게 잘리다니?

    거대한 화강암이 내 검격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굉음이 울렸다.

    어이가 없어서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한참이나 서 있었다.

    “대, 대박…….”

    -감축드립니다, 주군…. 캬앙?!

    나는 척량이를 붙잡아 꽉 끌어안고 볼 부비부비를 시전했다.

    -주군, 잠시만… 잠시…. 컁, 키양!

    아이고, 귀여운 녀석.

    역시 얼굴도 모르는 신 놈들에게 봉헌할 바에는 너한테 주는 게 백배는 낫지.

    척량을 택한 건, 내 인생 최고의 선택 아닐까?

    * * *

    효과가 있다는 걸 몸으로 깨닫고 나니 곧바로 수련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그러니까 사실상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좌선을 하고 앉아서 계속해서 건곤신공을 연마한 거지.

    -마력 수치가 1 상승하였습니다.

    -체력, 민첩, 근력 수치가 1 상승하였습니다.

    무공의 좋은 점은 레벨 업을 하지 않아도 내 육신을 더욱 강하게 연마시켜 준다는 데에 있다.

    다만 효율이 문제인데…….

    ‘마력이 5가 오를 때 자동으로 체력, 민첩, 근력이 1씩 상승하네, 이거.’

    -내공심법이자 외공심법이라 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예상대로 무공과 주군과의 상성이 무척 좋은 상황이고요.

    이 녀석은 내게서 세 걸음은 떨어져서 말했다.

    너무 기뻐서 파워 허그 부비부비를 하고 난 이후로 경계가 늘었다.

    ‘크윽…… 하지만 너무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척량이 앞발 쪽쪽 빨고 싶다.

    새끼 여우의 파괴력이란 그만큼 큰 법이다.

    그 말랑하고 북실북실하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귀여운! 그 감각을 한번 느끼고 나면 끊을 수가 없다.

    이건 가히 중독이다.

    그렇게 꼬박 일주일을 집에서 수련만 하니 마력은 일주일 동안 5가 상승, 그리고 민첩과 체력, 근력이 각각 1씩 상승했다.

    일주일 만에 스테이터스가 무려 8이나 오른 셈이다.

    ‘모든 능력치를 따봉으로 사야 하는 상황에서 이건 엄청난 이득이지.’

    “척량이는 최고야. 암.”

    -책사란 최적의 조언을 하는 자, 주군의 천하일통의 꿈을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천하일통은 무슨 놈의……. 내 꿈은 안분지족이란다, 척량아.”

    -하,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시기에는 주군의 따봉을 향한 야심이 엄청나셔서…….

    “안분지족.”

    -그렇군요. 과거 제 원본인 제갈공명이 모시던 주군께서도 큰 뜻을 품으셨으나 힘을 갖출 때까지는 천하를 속이셨습니다. 뒤틀린 황천의 복사본인 제가 엄지척 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로 편하게 지내고 싶다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진실을 알고는 있지만 속아 주는 척해 주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역시 이놈은 그냥 복사본이 아니다.

    ‘뒤틀린 황천의 복사본’인 게 틀림이 없다.

    진짜 제갈공명이 이런 성격일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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