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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28화 (28/305)
  • 제28화

    검날이 표면에 닿는다.

    콰차아아아앙--!

    S급의 근력이 붉은 보석을 갈랐다.

    내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검이 부러진다.

    [크와아아아악!]

    드디어 강철 같던 보석에 금이 가며 깨진다.

    [이대로 되돌아갈 것 같으냐! 네놈만은 길동무로 삼아 주마!]

    놈이 나를 본다. 그러나 이미 내 검은 부러진 상태.

    어떻게 해야 하지?

    녀석을 처리하려면 무엇을…….

    문득.

    손이 보였다.

    아직 버프의 효과는 남아 있다.

    근력은 현재 B등급.

    강철을 종잇장처럼 찢어 버릴 수 있는 근력을 가진 상태에 버서커 포션의 효과가 남았다.

    화아아악!

    찰나의 판단.

    녀석의 입에 심상치 않은 마력이 모여드는 것을 보면서 본능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녀석의 주둥이 아래를 양손으로 잡아 쥐었다.

    [커억! 네, 놈 무슨……. 크아아악!]

    쩌저저적.

    “닥쳐. 지금부터 네놈 아가리를 찢어 버릴 테니까. 후으으으으읍!”

    근육이 한계 이상으로 부풀어 오른다.

    마력을 근육에 때려 박는다. 녀석의 입이 놀라울 만큼 빠르게 찢어져 버렸다.

    이윽고.

    녀석의 턱뼈가 탈골되며 두 개로 뜯어졌다.

    “어, 입이 찢어졌어?”

    “설마 근력만으로 두, 두개골째로 갈라 버렸……?”

    지켜보던 사람들도 당황하며 소리쳤다.

    [크아아아아아아아!]

    동시에 놈이 소리를 지르며 무너졌다.

    나는 녀석의 입을 놓아주었다.

    해냈다! 해냈어!

    잡았다. 내가 악마를 잡아냈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강한 놈인 건 확실했다.

    그걸, 잡았다.

    더 놀라운 건 이 장면을 [전방위 영상 촬영 스킬]로 녹화했다는 것.

    이 영상을 올리면 얼마나 벌까?

    환희가 척추를 타고 머리까지 몰려온다.

    기쁨과 열기, 그리고 고양감 속에서 버럭 소리를 질러 해야 할 일을 했다.

    “버프 해제!”

    -버프를 해제합니다.

    -체력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10초 후에 기절 상태로 돌입합니다.

    -10, 9, 8…….

    사기적으로 좋고 사기적으로 괴악한 물약이다.

    그래도. 살아남았다. 이 갑작스러운 위기에서 이 정도면 나름…….

    비틀.

    “어라…….”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하하. 하기야, 이 정도로 무리했는데 괜찮을 리가 없지…….

    의식이 멀어진다.

    멀어지는 의식 사이로 시스템 메시지가 귓가에 울렸다.

    -던전 클리어!

    -기여도에 따라 정산을 시작합니다.

    -1위 엄지척. 24,671포인트.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히든 퀘스트 보상을 정산합니다.

    …….

    사람들은 나를 향해 달려왔다.

    “빨리 회복시켜요. 어서!”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음이 울렸다.

    -시스템 업데이트 완료…… 버전 2.0.

    …….

    -신들이 당신을 주목합니다.

    …….

    의식이 까무룩 멀어졌다.

    * * *

    유빙에 금이 가는 소리가 울렸다.

    차원의 단말마.

    긴 시간 동안 대기를 탔던 기자들은 텐트 밖으로, 차 밖으로 뛰어나왔다.

    “구조대원들, 준비!”

    시험관 윤루미는 일사불란하게 구조대원들을 통솔했다.

    현장 스태프가 소리쳤다.

    “던전 클리어, 반응 에너지가 1성 중급…… 1성 중급 던전입니다! 곧 던전 게이트가 다시 나타날 겁니다!”

    기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난이도가 어렵지 않아 시험용으로 사용되던 게 바로 파주 게이트다.

    그래도 던전이기에 사망자가 이따금씩 나오기는 하지만 만용을 부리지 않으면 불합격을 할지언정 죽을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현장 스태프들이 실시간으로 던전 모니터링을 해서 위기 시에 구출해 주니까.

    시험관이 초기에 겁을 주기야 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안전망은 다 갖춘 셈.

    그런 던전이 어째서인지 오늘은 중급으로 성장해 있었다.

    ‘몇이나 살아 있을까.’

    윤루미는 손톱을 씹었다. 초조할 때 나오는 버릇이다.

    그때 그녀의 어깨에 손이 얹혔다.

    선글라스를 낀 여인이다.

    얼굴과 체형은 변장으로 숨겼지만 이 손이 누구의 것인지 윤루미는 깨달았다.

    “언니!”

    “응, 사탕 먹을래?”

    그녀는 루미의 입에 불쑥 X파춥스를 물렸다.

    “윽!”

    “내가 싫어하는 박하 맛이야. 이참에 처리하니 좋네.”

    그리 말하며 손을 뻗자 드론이 다음 사탕을 뱉었다.

    “오, 캐러멜.”

    그녀는 기껍게 사탕을 문다.

    “언니는 숨긴다고 해도 조만간 기자들이 알걸요.”

    윤루미가 이마를 찌푸렸다.

    이렇게 대량의 드론들을 이끌고 나올 존재는 대한민국에 한 명밖에 없다.

    메카닉 마스터.

    정비가.

    그녀는 기껏 변장해 놓고 숨길 생각도 없는지 수없이 많은 드론들을 이끌고 왔다.

    “어쩌겠어. 놀러 왔다가 이렇게 재미있는 구경이 났는데 찬물, 더운물 가리겠니?”

    드론들은 게이트 예상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의 명령에 따라 흙의 샘플을 채취하고 공기의 파장을 기록했다.

    “정무부에서는 의료 드론만 지원해 달라고 했을 텐데요.”

    “맞아. 의료 드론이야. 약간의 추가 기능이 달려 있을 뿐이지.”

    “…….”

    그 속이야 뻔했다.

    메카닉 마스터가 이면 세계에 얼마나 미쳐 있는지 정무부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

    “게이트가 열립니다!”

    “오!”

    선글라스 아래로 그녀의 눈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반짝였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절뚝이며 나오는 수험생들.

    찰칵, 찰칵, 찰칵!

    카메라 플래시가 비처럼 쏟아졌다. 정비가가 말했다.

    “정무부는 주변 통제 좀 하지? 정신 사나워서 쓰나.”

    내일 헤드라인에 기사가 어떻게 나올지야 뻔했다.

    윤루미가 이마를 찌푸렸다.

    “높으신 분들이 왔다 갔거든요. 위에서 연락 왔어요. 언론 탄압처럼 보이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하라고요.”

    “너도 고생이 많다.”

    아침 속보로 밖에서 울고 있는 수험생 가족들과 국회의원들이 함께 안고 있는 영상이 떴다. 총선이 얼마나 남았더라?

    “한동안 시끄러워지겠군.”

    “뭐…….”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철수야! 철수야아아아!”

    가족들이다. 수험생이 눈물을 흘리며 부모님을 얼싸안았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우리 철수야아아…….”

    플래시가 빗줄기처럼 쏟아졌다.

    조회 수를 올릴 만한 좋은 그림이었다.

    철수는 부모님을 끌어안고는 구조대원의 인도에 따라 구급차에 올랐다.

    구급차에는 의료 드론이 하나씩 붙어서 따라갔다.

    인근 병원으로 수송될 예정이라고 현장 아나운서는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수험생들이 나올 때마다 가족들이 달려왔다.

    현장은 눈물바다였다. 그리고 마지막, 염라두가 나왔다.

    “오오오!”

    기자들이 염라두를 찍는다.

    염라두의 부모님들도 나와서 염라두를 안았다.

    윤루미가 말했다.

    “이번 에이스가 염라두일까요?”

    “염씨 집안은 화염계로 유명하지. 화염계 자체가 다수의 몬스터들을 쓰러뜨리기 좋고. 하지만…….”

    정비가는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를 향해 버럭 염라두가 소리쳤다.

    “X발, 나는 2위야! 1위 공헌은 그 새끼가 했으니까!”

    1위 공헌? ‘그 새끼’?

    그 말에 기자들의 플래시가 커져 갔다.

    염라두는 더는 질문을 받지 않고 피 섞인 기침을 두어 번 더 하더니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마지막.

    두 명의 헌터 손에 한 명의 사내가 실려 나왔다.

    “의식을 잃었어요! 도와주세요!”

    엄지척이다.

    넝마가 된 점퍼, 부러진 검이 허리춤에 걸려 있었다.

    성한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몸뚱이였다.

    기자가 물었다.

    “공헌도 1위가 누굽니까?”

    “이 판국에 그게 중요해요?!”

    헌터가 버럭 소리 질렀다. 옆에 있던 헌터가 한마디 했다.

    “누나, 진정해.”

    “어서 치료부터 해 주세요! 이 사람이 공헌도 1위니까! 이 사람 덕에 우리가 살아 돌아온 거니까!”

    그 말과 동시에 기자들이 몸을 일으켰다.

    쓰러진 엄지척을 수없이 많은 이들이 카메라로 찍었다.

    그때 기자들을 헤치고 누군가가 달려왔다.

    2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하고 다부진 체구. 눈이 처진 사내였다.

    “비켜 주세요! 형!”

    “엄무척 씨예요?”

    “네.”

    “여기 받아요! 치료 잘해 주셔야 해요!”

    “걱정 마십시오. 형은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할 테니까.”

    구급차에 구급대원과 함께 엄무척이 탔다.

    “형…….”

    의식을 잃은 엄지척의 손을 꽉 쥐며 걱정을 다스렸다.

    그렇게 구급차가 출발했다.

    멀어지는 구급차를 기자들이 찍고는 빠르게 방송 차에 몸을 구겨 넣었다.

    “운전해!”

    “어디로요? 어느 병원으로 이송될지 확실치 않잖습니까.”

    “쫓아가야지. 공헌도 1위. 1성 중급 던전을 깬 슈퍼루키라니. 거기다 몰살할 줄 알았던 던전에서 이렇게 생존자가 많이 나올 줄은…….”

    중급 던전 보스를 병아리들끼리 깨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 아닌가?

    이건 해외에도 대서특필될 만큼 미친 사건이었다.

    “염라두 쪽은요?”

    “그건 서브 라인으로 넣어. 헤드라인은 엄지척이야!”

    그 말에 촬영 스태프는 액셀을 밟았다.

    * * *

    구급차 안에서도 의식이 돌아오다 흐려지길 반복했다.

    악마가 쏘았던 포이즌 브레스에 중독된 걸까?

    당시에는 전부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알 수 없었다.

    전투 중에는 버프 아이콘 하나 확인하는 걸로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니까.

    “으…….”

    “형, 나 곁에 있어.”

    엄무척은 형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엄지척이 말했다.

    “USB…….”

    무엇을 뜻하는지 엄무척은 한 번에 알아들었다.

    그는 뒷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형의 손에 쥐여 주었다.

    빛이 엄지척의 손에서 USB로 향했다.

    그동안 찍은 영상들이 스킬로 전송되는 중이다.

    전송을 마친 후 엄지척은 밀린 숙제를 다 끝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전부 편집해서 올릴게.”

    “응.”

    엄지척의 능력을 알고 있는 건 동생 엄무척뿐이다.

    엄지척에게 있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단 하나의 혈육이었다.

    엄지척은 다시 의식을 잃었다. 하지만 표정은 전보다 한결 가벼웠다.

    * * *

    [보상을 회의 중입니다.]

    [회의 중…….]

    [새로운 시스템의 등장에 대해…….]

    의식이 흐려지다 다시 침전되길 반복했다.

    메시지음이 들리다가도 거품처럼 사라졌다.

    마치 깊은 물속에 있는 것 같았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어려웠다.

    그렇게 한차례 푸닥거리를 하고 나니 깨 있는 시간이 좀 더 많아졌다.

    “죄송합니다, 엄지척 씨.”

    잠결이었을까.

    정지한을 본 것 같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가볍게 얹으며 다시 말했다.

    “당신은 원래 그런 분이시라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불의를 눈감지 않으시죠. 설령 목숨을 잃게 되어도 늘 같았습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불의에 눈을 잘 감는데?

    “무…슨……?”

    힘겹게 억지로 목소리를 냈다.

    그는 내가 깨어 있는 걸 몰랐는지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이윽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가 늘 짓곤 하는 사무적인 미소였다.

    “잊으십시오.”

    그렇게 말하더니 철로 된 주사를 꺼냈다.

    “악마의 저주가 섞인 독 때문에 환각, 환청 증상이 심했을 겁니다. 해독제를 가져왔으니 금방 나을 겁니다. 아, 능력치도 향상시켜 줄 겁니다. 영약이니까요.”

    그걸 링거에 꽂니?

    잠깐, 의사 선생님 어디 가셨어?

    그 순간, 메시지가 울렸다.

    -큰 비늘 악마의 혈청을 복용하였습니다!

    -중독 상태가 해제됩니다!

    -저주 상태가 해제됩니다!

    -육체가 영구적으로 강화됩니다.

    고통이 사라지고 잠이 쏟아졌다. 정지한이 말했다.

    “다음번에는 반신적인 존재들을 잡으실 때는 저주를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니면 마지막 일격은 다른 이에게 맡기셔도 좋고요. 하지만 당신은 그럴 분이 아니시죠.”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잠이 들었다.

    전처럼 기절하듯 픽 의식이 끊기는 게 아니었다.

    깊고 편안한 졸음이었다.

    정지한이 말했다.

    “다음번에는 자신의 몸을 좀 더 소중히 여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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