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27화 (27/305)

제27화

“자. 작전을 설명하겠습니다. 아, 그 전에 이거 드시죠.”

나는 품에서 리자드 맨으로 만든 육포를 꺼냈다.

상품성도 없는 잔찌꺼기들로 만든 건데 이걸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네.

붕대나 포션에 비해 체력 회복 능력은 개미 눈곱만큼 붙어 있지만 허기를 메꾸기에는 딱 좋지.

모두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따봉이 다시 오른다.

‘그래. 한국인은 밥의 민족이지.’

나까지 포함해서 이 자리에 있는 17명에게 모두 육포를 물리고는 그렇게 작전 설명을 시작했다. 물론 기절한 염라두는 제외.

-헌터, 지성윤이 먹으면서 하니 작전 설명이 쏙쏙 들어온다고 감탄합니다.

-3따봉을 받았습니다!

리자드 맨 육포는 소고기 맛이 났다.

* * *

-스킬, [관찰의 눈]의 숙련도가 완성되었습니다.

-[통찰의 눈]으로 진화합니다.

-더 많은 물체를 자세히 감정할 수 있게 됩니다.

-몬스터 상태 일부를 볼 수 있게 됩니다.

[통찰의 눈]

등급 : 레어 (성장형 D)

사물과 몬스터를 파악한다.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스킬 레벨이 증가하며 더 높은 스킬로 진화한다.

진화 예정 : 간파의 눈 (성장형 B)

그동안 신전 벽화와 석상이 보일 때마다 스킬을 발동한 덕분에 레벨 업을 할 수 있었다.

숙련도를 풀로 찍을 수 있게 되자 몬스터를 일부 간파할 수 있는 능력으로 진화했다.

[큰 비늘 악마]

레벨 : ???

속성 : 물

약점 : ???

신전에서 진화를 기다리고 있다. 더 강해지기 위해 때를 노린다. 두 명의 각성자를 적합한 절차에 따라 제물로 바치면 [큰 비늘 악마]는 [큰 비늘 악마 준남작]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랬군.

비늘 악마가 우리를 여태 공격하지 않는 것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던 거군.

여기서 말하는 적합한 절차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적혀 있지는 않으나 대충은 알 것 같네.

1. 헌터들의 손으로 두 명을 저 창에 꽂아야 한다는 것.

2. 어떤 이유에서인지 저놈이 먼저 우리에게 손을 쓸 수 없다는 것.

앞뒤에 어떤 절차가 더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것만큼은 명확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미 우리 중 절반은 전멸했을 테니까.

비록 약점과 레벨은 알 수 없지만 속성이 물이라는 건 귀중한 정보다.

‘물 속성이면 나무나 번개로 공격해야 한다는 거군.’

단순 물리 공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거기다가…… 두 명만 우리끼리 죽이면 던전을 클리어하게 해 준다?’

놈은 몬스터지 던전 시스템이 아니야.

처음부터 교묘하게 마치 던전의 장치처럼 굴고 있지만 이놈은 그저 한낱 몬스터.

좋은 일 아닌가.

통찰 스킬이 먹히고 나니 뜨거웠던 머리도 점점 차갑게 식어 갔으니까.

동생이 말했다.

‘형, 계약서로 쓴 거 아니면 아무것도 믿지 마.’

고작 몬스터 주제에, 이놈이 [큰 비늘 악마]에서 [큰 비늘 악마 준남작]이 된들 뭘 어찌할지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내 작전 설명을 다 들은 방진아가 말했다.

“그거라면 저희 남매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둘은 시간을 들여 대장장이 스킬과 재봉 스킬을 사용해 내 무기에 전격 버프를 걸어 주었다.

“한 시간 정도 작동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엄지척 님 덕분에 저희 남매도 레벨 업을 조금 했는걸요. 이건 그렇게 얻은 스킬이니 고마워하실 건 없습니다.”

-헌터, 방진아, 방진우가 당신의 말에 부끄러워합니다.

-6따봉을 받았습니다.

여전히 따봉을 물처럼 주시는 분들이다.

따봉 상점에서 스킬을 하나 사고는, 포션을 언제든 마실 수 있게 앞주머니에 넣었다.

[리자♥드맨의 버서커↗약]

등급 : B-

체력을 크게 감소시켜 다른 모든 능력을 증가시킵니다. 과용하면 사망합니다.

효과 시간 : 30초

‘부디, 이걸 마실 일이 없기를.’

나는 비늘 악마 앞에 섰다. 녀석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다. 움직임은 없지만,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모두 준비.”

각자 미리 정해진 대열에 선다.

[어리석은…….]

악마가 혀를 찼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저놈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군.

역시 정답인가.

나는 내 그림자를 손으로 짚는다.

팔을 타고 벌써부터 오소소 소름이 돋는군.

이 말을 내 입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해야 할 때.

나는 방금 따봉 상점에서 얻은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림자를 지배하는 어둠의 흑염룡이여. 내 왼팔에 깃들라.”

“……?”

스킬 반응이 없다.

역시 스킬 북에 쓰여 있던 설명대로 해야 하나?

나는 한쪽 입가를 들었다. 그러고는 내 존엄성을 씹어 뱉듯 토해 냈다.

“크크크…….”

히죽-

-어둠의 하급 정령이 당신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죽고 싶다.

어둠의 정령이 꿈틀거리며 내 팔에 깃든다.

[어둠 정령의 부름]

등급: 레어 (성장형 F)

주문 : 그림자를 지배하는 어둠의 흑염룡이여. 내 왼팔에 깃들라.

마음의 어둠이 깊을수록 더 강한 어둠의 정령이 응답합니다.

추신 : 피에 젖은 웃음만이 어둠의 정령을 깨우리니. 경배하여라. 광소하여라. 종말이 머지않았도다.

-헌터 방진아, 방진우, 김태리, 이미리가 당신의 흑염룡에 진심으로 감탄합니다.

-8따봉을 받았습니다!

‘그래. 인간이란 모름지기 마음속에 흑염룡 하나씩은 품고 있는 법.’

현타가 밀려왔다. 내 안의 모든 중2병을 끌어냈는데도 고작 하급 어둠의 정령을 소환하다니.

중급, 상급까지 소환하기 위해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막막하다.

어쨌거나 하급 어둠의 정령도 감지덕지하다.

“어둠의 정령, 어서 눈을 가려!”

“…….”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외쳤다.

“저 악마의 눈을 어둠으로 침식시켜라! 진정한 어둠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어둠의 하급 정령이 빠른 속도로 암흑의 저주를 겁니다!

음, 혀에서 피가 날 것 같군.

오그라든 손가락이 펴지질 않는다. 이 와중에 따봉이 6 올랐다.

방 씨 남매들이다.

이들의 감수성은 평범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쨌거나 상관없다.

[어리석은 인간, 진정한 공포를 맛보거라!]

크롸롸롸!

나를 향해 눈으로 광선을 쏜다. 하지만 어둠의 정령으로 암흑 상태에 걸려 막힌다.

‘후, 다행히 마법 내성이 그리 높진 않은 모양이네.’

대검이 막혔을 때, 예상했다.

이 새끼는 물리 방어력이 높은 놈이라고. 거기다가 눈에서 광선을 쏘았을 때 그 위력을 보고 다시 생각했다.

마법 공격력도 높은 놈이라고.

던전에는 밸런스가 존재한다.

약점이 하나도 없는 보스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지.

깡레벨이 높아서, 패턴이 더러워서 못 잡는 놈이 있을지언정.

‘리자드 맨의 레벨이 정확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내가 충분히 잡을 수 있을 만큼은 돼.’

던전의 레벨은 바로 일반 몬스터로 알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던전 관리자설을 믿는 이유지.’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고 있다.

던전은 절대 자연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밸런스를 맞추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단 한 번도, 인류 앞에 나타난 적은 없지만.

놈은 시력이 막히자 팔을 허우적거리며 나를 공격했다.

과연 리자드 맨들의 악마답게 눈이 안 보여도 제법 정확하게 나를 공격했다.

콰과과광!

[도망치는 그림자]를 이용해 한 끗 차이로 피했다.

‘아니…… 젠장…… 던전 밸런스 만물설은 폐기해야겠는데.’

빔 쏘는 게 느리길래 기본 속도가 느릴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나.

거기다 벽에 찍히는 손자국을 보니 물리 공격력도 상당하다.

나는 놈에게 도발 스킬 [야생의 고함]을 사용했다.

“크와아앙!”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가 석실을 가득 채운다.

-큰 비늘 악마가 당신을 주목합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적의 악의도 따봉으로 환원되는 모양이다.

그야말로 관종을 위한 시스템!

나는 벽을 등지고 섰다.

다른 헌터들이 놈의 등을 공격할 수 있게끔.

“그림자 훔치기!”

-큰 비늘 악마의 이동 속도와 방어력 일부가 저하됩니다.

놈에게 뜯은 그림자를 곧바로 내게 사용했다.

-뺏은 그림자를 사용합니다.

-적의 이동 속도와 방어력의 일부를 흡수합니다!

퍼센트로 뺏는 능력인 만큼 내게도 큰 수치가 부여됐고.

쉘튼 때와 똑같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 큰 능력치를 빼앗을 수 있다.

놈이 입을 벌렸다. 놀랍게도 독액이 쏟아졌다.

크롸롸롸!

다행히 놈에게서 뺏은 이동 속도가 나를 지켜주었다.

간발의 차이로 피했나?

발아래로 시커먼 구덩이가 생겼다.

저걸 사람이 뒤집어쓰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한데.

“모두 힘내요!”

모든 헌터들이 일제히 놈의 등을 향해 공격을 퍼붓는다.

번개와 나무 속성!

약점 속성으로 공격이 들어가니 대미지가 추가로 더 들어간다.

아니나 다를까, 강철 같던 놈의 비늘이 점차 너덜거리며 뜯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야생의 고함을 이용해 계속해서 놈의 주목을 끌고 공격하며, 방어하기를 반복했다.

[그래 봤자… 병아리는 병아리…….]

그랬다. 지루한 작업이다.

한 명, 한 명의 공격력은 약하다.

하지만 탱킹을 맡고 있는 내가 잘못 움직이면 17명의 남은 사람들은 죽는다.

그때였다.

“X발, 비켜! 잔챙이들아!”

염라두의 손에 화염구가 피어올랐다.

이 새끼, 이제야 깨어났구나.

놈이 만들어 낸 화염구가 거대하게 부풀어 태양처럼 이글이글 불탔다.

“봐라! 이 몸의 최대 화력!”

염라두는 이 한 방에 모든 것을 쏟았다.

콰과과과광!

염라두의 불꽃이 등에 작열했다.

‘상대는 수 속성, 화 속성으로 때려 봐야 대미지가 얼마나 될…….’

[벌레……!]

반응이 왔다.

치료계 각성자분이 내게 회복 스킬을 시전하며 말했다.

“등이 다 뜯어졌어요!”

“붉은 구슬이!”

그 순간, 비늘 악마가 염라두를 후려쳤다.

퍼억!

염라두는 일격에 벽에 날아가 꽂혔다.

“크아아악!”

회피 스킬이 없는 모양이네.

치료 각성자분이 소리쳤다.

“저 새끼 아, 아직 안 죽었어요!”

이 와중에도 염라두를 챙겨 주다니. 그것도 욕을 하면서…….

“저 미친놈 붕대 감아요!”

“야이, X발. 방금 한 타는 잘했다.”

욕을 하면서 죽지 말라고 치료는 해 주는 모습이 참…. 그나저나.

‘붉은 구슬……?’

등의 두꺼운 비늘을 뜯고 나서 나온 붉은 구슬이라.

뭔가 몹시 수상하지 않나?

캉, 카앙!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구슬을 공격했지만 워낙 단단해서 박히지 않는다. 문제는 이다음이다.

[죽어라, 벌레들!]

“독액 날아옵니다! 모두 피하세요!”

구슬을 공격하자마자 분노 스킬이 통하질 않는다.

아무리 [야생의 고함]을 써도 놈은 구슬을 공격한 쪽을 먼저 공격한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뻔하지. 하지만 심각하기도 해.

‘시간이 지체되면 죽는 사람이 나온다!’

염라두도 피하지 못한 공격.

그렇다면 결과는 하나.

‘아, 안 쓰려고 했는데.’

[리자♥드맨의 버서커↗약]

등급 : B-

체력을 크게 감소시켜 다른 모든 능력을 증가시킵니다. 과용하면 사망합니다.

효과 시간 : 30초

버서커 약을 들이켜자 눈앞이 시뻘겋게 변하기 시작했다.

‘크으……!’

-모든 능력치가 200% 상승합니다.

-체력이 빠른 속도로 감소합니다!

-30초 후에 사망합니다. 그 안에 효과를 삭제해 주세요!

버프 스킬이 켜진다.

내 몸이 잔상을 그리며 흩어지다가 놈의 목덜미 위에서 나타난다. 나는 곧바로 생각한다.

‘내 모든 따봉을 근력에!’

-모든 따봉을 소모해 근력 B로 성장합니다. 괜찮으십니까?

‘해!’

-근력 B가 됩니다.

-버서커 물약의 효과로 일시적으로 근력 S로 반영됩니다.

근육이 부풀어 오른다.

온몸에 힘이 충만하다. 동시에 내 생명이 빠른 속도로 주는 게 느껴진다.

마치 꺼지기 전 불타오르는 촛불 같은 힘.

나는 백야와 암야를 쳐들었다. 그러고는 유성처럼 놈을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부서져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