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26화 (26/305)

제26화

[제물을 바쳐라.]

[두 명.]

비늘로 뒤덮인 악마는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가까이 다가가도 먼저 공격하지 않고 석상처럼 숨도 쉬지 않았다.

악마 앞에는 두 개의 창이 서로를 바라보며 꽂혀 있었다.

창을 잡아당겨도 뽑히지 않았다.

아래에는 피가 고여 흐를 수 있게 혈조가 그러져 있었다.

그 의도야 확실했다.

“섬뜩한 소리이긴 한데…… 제물 둘을 창대에 꽂아 넣으라는 뜻 같은데요?”

방진아의 말에 살아남은 모두가 분노를 터뜨렸다.

“그게 무슨 개소리입니까.”

“정부는 이딴 개 같은 던전을 과제로 냈냐! X 새끼들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긴 해.

이건 그저 조금 위험한 수준의 던전이 아니었으니까.

그동안의 기출 유형 중에 이런 난이도의 던전이 존재했던가? 그건 절대 아닐걸?

거기다가 제물 둘.

헌터도 우리나라 국민이다.

시험 중 사고로 죽는 일이야 던전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러나 고대 원주민도 아니고, 헌터 시험 통과하자고 같은 헌터를 창대에 꽂아서 제물로 바친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맨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지 않나.

“외부랑은 왜 연락이 안 돼!”

“시험관 그 개새끼 X발! X발! X바아아알!”

대충 주변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 사람들도 여기까지 오면서 못 볼 꼴을 많이 본 모양이네.

응시자 팀들 중 많은 수가 리자드 맨의 손에 사망했단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

리자드 맨은 레벨이 높은 몬스터.

이런 놈들을 경험도 없는 햇병아리가 이겨낸 건 말도 안 되는 짓 아닌가.

나? 나야 따봉 상점 덕분에 상대할 만한 것뿐이고.

염라두 녀석은 능력도 좋지만 집안 덕에 정식 헌터로 활동하기 전에 어디서 부모님 버스로 레벨 업 좀 하고 와서 살아남은 것 같아 보이고.

실제로 염라두 녀석도 거의 죽을 뻔할 때 우리가 아닌 다른 헌터 팀들과 조우해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번만큼은 염라두도 동료를 버리지 않았다.

아니, 버리고 싶어도 버릴 상황이 아니었다.

회복 계열 각성자가 염라두를 회복시키고, 방어 계열 각성자가 대신 탱킹을 했다.

염라두는 화염을 쓰되 몬스터들의 주목을 받지 않을 만큼만 폭주했다.

역시 인간은 학습하는 존재다.

지혜가 조금 오른 염라두가 말했다.

“X발, 내보내 달라고 X발아! X발, 나가면 니들 다 고소할 거다! 개새끼들아!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 줄 알고! 듣고 있냐! 카메라 다 보고 있겠지! 우리 부모님이 X발! 가만히 있을 것 같냐!”

학습을 했다고 했지, 철들었다는 소리는 안 했다.

분노한 헌터 중의 하나가 이성을 잃고 비늘 악마를 향해 소리 질렀다.

“으아아악! 이딴 게 다 뭐야!”

‘오우, 전형적인 던전 패닉 증상이군.’

던전 스트레스는 전쟁 스트레스와 맞먹는다.

눈앞에서 사람 머리를 뜯어 먹는 몬스터를 상대로 냉정할 수 있는 인간은 많지 않다.

하물며 그놈들을 모두 죽이며 전진하는 것은 제대로 된 훈련 과정 없이는 불가능하지.

물론 그런 훈련 과정을 거쳤어도 그중 몇은 결국 폭주하고 만다.

스트레스가 이성을 압도한다.

정식 헌터가 아닌 헌터 수험생.

“보내 달라고, X발!”

그렇게 말하며 대검을 날렸다.

카앙!

비늘 악마의 팔에는 흠집도 나지 않았다.

공격을 당한 비늘 악마가 천천히 움직였다.

콰앙!

놈의 눈에서 빔이 쏟아졌다. 그러고는 공격자의 상반신이 그대로 소멸되었다.

피가 바닥에 고였다.

“으아아아아악!”

“미친 X발, X바아아아아아아아알!”

병아리 헌터들이 이성을 잃고 비명을 질렀다.

대검을 휘두른 자는 꽤 실력자인 모양이었다. 그런 자를 흠집도 없이 압도적인 무력으로 상체를 소멸시켰다.

철퍽, 하반신이 땅에 구른다.

근육 경련이 남아있는지 움찔거렸다.

리자드 맨에게 패배해서 잡아먹히는 것과는 다른 공포.

싸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공포와 원인도 모를 공포는 차원이 달랐다.

애초에 눈에서 광선 쏴서 한 방에 죽여 버리는 놈을 상대로 어떻게 싸우라는 거냐.

초고레벨쯤 되면 모르겠다.

방씨 쌍둥이도 비명을 질렀다.

염라두는 불꽃을 뿜다 말고 욕설을 지르며 벽에 붙었다.

미친 공간이다.

‘나는 생각보다 멀쩡하네.’

헌터 보조원 경력 때문일까. 아니면 타고난 천성? 아니면 [초보자 스킬 : 견고한 마음]?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 정신 줄은 꽤나 튼튼했다.

악마가 다시 말했다.

[제물을 바쳐라.]

[두 명.]

누군가가 소리 질렀다.

“X발, 그냥 두 명 바치자. 바치자고!”

그 말에 다른 이가 대답을 했다.

미친 소리 하지 말라는 말 대신.

“누굴 바칠 건데요? 누가 할 거예요?”

그것을 기점으로 인간의 뇌는 현실감을 광기와 함께 삼켰다.

“죽고 싶은 사람 있어요?”

“살려줘. 살려줘…….”

흐느낌이 석실을 울렸다. 슬픈 광란 속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두, 두 명 하자고. 공평하게 정해서.”

그것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으나, 나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은 자의 말이었다.

살고 싶은 자의 말이기도 했다.

“어떻게 하는 게 공평한데요?”

“던전 기여도를 봐서…….”

“그걸 누가 정해요. 우리는 사람이지 시스템이 아니잖아요.”

“저는 아닙니다! 회복 능력으로 모두 치료해 줬잖아요!”

그 순간, 모두가 갑자기 앞다투어 자신이 던전에서 기여했던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팀을 위해 희생했는지,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마치 시장 바닥에서 고해성사라도 하듯 광란처럼 소리 질렀다.

자신의 목소리가 묻히면 그건 자신이 모두를 위해 노력하지 않은 증거라도 되는 양.

그때 염라두가 소리 질렀다.

“X발, 그냥 가장 약한 새끼 넣으면 되잖아!”

모두가 고생했다.

이곳은 노력하지 않으면 올 수 없는 곳이었다.

그 기여도를 정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 말에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회복 능력자는 구석으로 향했다.

“싸워서 진 쪽을 저 창에 꽂으면 돼! 헌터는 힘의 논리 아니야?”

그때 한 명이 말했다.

“맞다. 생산직은 가장 약하지.”

“누가 생산직 아니었나?”

“그분들이면 던전 기여도도 낮을 거고…….”

말이 말을 불렀다.

마치 말벌들이 날갯짓을 하듯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져만 갔다.

마침내 그 말을 끝으로 모두가 방 씨 쌍둥이들을 바라보았다.

“누나, 누나는 내 뒤로 숨어.”

동생 방진우가 방진아 앞을 몸으로 막았다.

“개소리하지 마.”

“젠장, 내가 너 지켜 주고 싶어서 지켜 주는 줄 알아? 너 죽으면 엄마가, 엄마가 나 가만히 둘 것 같아?”

울먹이는 목소리로 무기를 쥔다.

손이 땀 때문에 미끄럽다. 누나가 동생의 팔을 힘껏 당겼다.

“너야말로 멋진 척하다 뒈질 거냐?”

공격력은 그녀가 더 강하다.

얼마나 더 발악할 수 있을지 계산이라도 하듯 그녀는 망치 머리를 힘껏 젖혔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작고 서늘한 목소리로. 이 시끄러운 곳에서 그 목소리만큼은 모두에게 울려 박혔다.

“쌍둥이시라니 마침, 딱 둘이네요……?”

나는 검을 뽑았다.

“한 걸음만 더 오시면 끝을 보겠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내 말에 사람들은 얼어붙었다.

염라두를 이긴 사람이 바로 나였기에.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둘 정도는 멱살을 붙잡아 창대에 꽂아 버릴 실력은 되었기에.

결국 앞서서 있던 병아리 헌터가 물었다.

“엄지척 씨는 다른 생각이라도 있으신가요?”

“네.”

나는 검 끝으로 악마를 가리켰다.

“모두 힘을 합쳐서 저 비늘 악마를 무찌르면 되잖습니까.”

“미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럴 만했다. 상대는 압도적으로 강했다.

끝이 안 보일 만큼.

“그렇게 되면 우리 중에서 둘 죽는 걸로는 안 끝날 겁니다. 엄지척 씨.”

“네. 그럴지도 모르죠.”

나는 쉽게 긍정했다.

“숫자 계산 못 하세요?”

“합니다.”

그때 참지 못한 염라두가 소리 질렀다.

“X발, 또 선생질하고 자빠져 있네! 그냥 바치라고! 꽂아!”

그래. 알고 있다. 인간은 약하고, 악하다.

공포심 속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 희생이 자신이 아니면 되는 일이었다.

내 뒤에 있는 둘.

내게 따봉을 주는 것 말고는 그리 기여할 수 있는 게 없는 생산직 능력자들.

이들이 공방에서 제대로 배우려면 앞으로 먼 길을 걸어야 할 거다.

그때까지는 한 사람 몫을 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숫자 계산 할 줄 알면서 왜 그러세요?”

“지금 무고한 둘을 제물로 바치면 살인자는 18명이 되겠죠. 하지만 힘을 합쳐 싸운다면 살인자는 0명이 될 겁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우리 힘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싸울 수 있다고요. 가능합니다. 깰 수 없는 던전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

내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우리 중에 정말로 살인을 하고 싶은 사람 있습니까?”

옳거나 옳지 못하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날 위해 열심히 따봉을 벌어다 준 두 남매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쓸모없다고 자책해 왔지만 두 사람은 끝까지 나를 믿어 주었다.

작은 일에 감동하고, 작은 일에 기뻐하는 둘과 던전을 살아 나가고 싶으니까.

“그래. 나라고 사람 죽이고 싶지는 않아. 그렇다고 목숨 버리고 싶지도 않고. 우리가 전부 덤빈다고 해서 이길 수 있겠어? 희생자가 없겠냐고?”

이름을 모르는, 나에게는 완벽히 타인인 어떤 헌터가 말했다.

그의 절박함이 모두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여기서 내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끝나겠지.

“없게 해야죠. 그리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 믿지?”

“믿음이라… 그러면 이렇게 하죠.”

내 말에 모두가 나를 본다.

“제가 탱킹을 하죠. 죽더라도, 가장 먼저 제가 죽을 겁니다. 이 정도면 믿음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미친…….”

내 말에 다들 입을 다문다.

-헌터, 김삼식이 당신의 말에 이를 악뭅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헌터, 김지선이 당신의 말에 용기를 얻습니다.

-2따봉을 받았습니다.

침묵은 따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내 말에 동의한 사람들, 용기를 얻는 사람들…….

-헌터, 박정수가 당신의 말에 혀를 차며 무기를 쥡니다.

-3따봉을 받았습니다.

각오를 다지고, 그리고 앞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헌터, 이미리가 당신의 말에 감명받고, 또한 고민합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누구도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긴 여로였다.

이미 동료들은 수없이 많이 죽었다.

이길 수 있을까?

이길 수 있다면, 누구도 죽이지 않고, 누구도 죽지 않고 끝낼 수 있을까?

인간의 마음이 부서지며 충돌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작은 선과 작은 악의 장대한 싸움이었다.

마침내.

-헌터, 지성윤이 당신과 함께 싸우기로 결심합니다.

-3따봉을 받았습니다.

그때 염라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위선은…… 작작 하랬지!”

그 말을 끝으로 염라두가 화염을 일으켰다.

화르륵!

나는 풍운보법으로 접근해 그런 염라두의 머리통에 킥을 날렸다.

퍽!

“컥!”

녀석의 머리통이 돌아가며 땅에 쓰러졌다.

죽은 건 아니지만 기절시킬 정도는 충분했다.

“저 녀석은 전투에 끼워 넣지 맙시다. 분란만 일으키니까.”

내 말에 다른 이들 모두 대답이 없었다.

대신 결심을 담은 따봉 소리가 내 귓가에 울렸다. 모두가 무기를 챙겼다.

“자, 모여 보세요. 레이드 방법을 설명하죠.”

나는 사람들을 모으면서 따봉 상점을 주르륵 보았다.

‘스킬 목록.’

내 생각에 반응해서 따봉 상점의 스킬이 주르륵 뜬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래. 있을 것 같았어. 이거면 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