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23화 (23/305)

제23화

“안녕, 루키들아. 이번 회 차 수험생들도 혈기가 왕성하구나. 내 이름은 윤루미예요. 정무부 소속이라 나에 대해 아는 놈들은 별로 없을 거야.”

그 순간,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정무부(政武部).

대통령 직속 무력 기관.

대외적으로 밝혀진 건 거의 없으나 그들의 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거의 없다.

그들의 일은 던전 소탕이 아니다.

같은 인간, 즉 같은 능력자를 죽이거나 고문을 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얼굴 까고 이름을 깐다는 건 가명에 가짜 얼굴이라는 거니까 깊이 생각하진 말고. 나도 피치 못하게 병아리 애들 시다바리 할 생각 하니 죽을 맛이에요.”

개개인의 개성이 무척이나 강하다는 것.

헌터 중의 한 명이 손을 들었다.

“그래요. 안경 병아리 씨. 말해 봐.”

“보통은 일반 헌터 시험관 중의 하나가 나오지 않나요?”

“응. 그렇지. 그런데 이번 시험에 루키가 둘이나 들어왔잖니? 윗분들이 관심이 아주 많단다.”

그녀는 사무적으로 말했다.

“일단 페이퍼 돌릴 테니까 사인해요. 시험 중에 죽어도 정부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각서예요. 같잖은 선민의식 가진 헌터들도 많은데 이거 서명하면 님들은 우리나라 국민이 아니라 한 명의 병사예요. 지랄 같으면 지금 돌아가라는 뜻이니까 알아서 하고.”

모두가 한 명을 쳐다보았다.

염라두.

“X발? 구경났어!”

놈의 일갈에 모두가 화들짝 눈을 치웠다.

그녀가 말했다.

“X발, X발이요? 다시 말해 봐요. 빨간 병아리.”

시험관의 말에 염라두가 우물쭈물 말을 어물거린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 기분이 개 같아요. 너희들이 같이 시험 보지 않았으면 나까지 올 일 없었잖아. 그래도 한 명은 생각 이상으로 착해서 참을 만한데…….”

그녀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나는 시선을 슬쩍 돌렸다.

“좋네. 왜 ‘그 언니’가 그렇게 네 사진에 환장하는지 알겠다. 나도 모으고 싶어지네.”

누구를 말하는 걸까 모르겠다.

모두가 서류에 사인을 했다.

“자, 그러면 모두가 동의했군요. 하긴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가는 건 이상하지. 그다음은 기본 규칙을 읊으면 되나. 던전에 들어가서 사냥하는 걸 보고 규정에 따라 점수가 들어갈 거예요. 병아리들의 모든 행동들은 영상 매체로 기록돼요. 그러니 뭐, 각자 자체 촬영 기술 있으면 해도 돼요.”

의외로 쿨하군. 그녀가 말을 이었다.

“폰 카메라로 몬스터 배경 셀카 같은 거 찍어도 되고. 단, SNS 같은 건 안 돼요. 어차피 통신은 차단되니까 불가능할 거예요.”

그녀는 정말 귀찮은지 중얼중얼 빠르게 시험에 관련된 유의 사항들을 말했다.

“마지막으로. 본 시험관은 역대 정무부 중 가장 악랄한 사람이에요. 님들이 죽든지 말든지 관심이 없거든요. 그러니 본인 목숨은 스스로 챙기세요. 그러니 다시 질문. 진짜로 돌아갈 사람 없어요?”

그 말에 헌터들이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돌아가는 사람은 없다.

사인을 한 이상, 이 또한 시험의 일환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원망은 제비뽑기한테 하세요.”

그녀는 씨익 웃더니 모두에게 안대를 씌우고는 어딘가로 안내했다.

* * *

안대를 쓰니 앞이 보이질 않았다.

보통이라면 안대 밑부분을 통해서라도 바닥을 볼 수 있는데 이건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띠링-

-감각이 제한됩니다.

저주라도 걸린 특수 아이템인 모양이다.

얼마 후, 무언가가 몸을 스쳐 지나가는 감각이 들었다.

발밑이 작게 울린다.

이 감각, 보조원 생활을 할 때부터 익숙했다. 게이트다.

게이트를 넘어갈 때 느껴지는 진동음이다.

그렇게 게이트를 넘고도 어딘가를 더 갔다.

누군지 모를 앞사람의 어깨를 붙잡고 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윽고 안대에서 소리가 들렸다.

[도착. 치익- 아직 안대를 벗지 마시고 치이이익- 제 목소리에 집중하세요. 뭐, 죽고 싶으면 지금 벗어도 괜찮아요. 자기 인생 자기가 사는 거죠. 치지지직-]

잡음이 심했다.

회사에서 쓰는 이어폰보다도 음질이 나빠서 절로 머리가 아파 온다.

‘아니, 내 세금 뒀다가 대체 어디다 쓰는지 모르겠네.’

치이이익-

[지금 각 던전 끝에 5명씩 흩어 놓았어요. 치직- 순서는 랜덤이니까 마음에 안 맞는 사람과 한 팀이라고 불평하지 치지직- 않기. 각자 위치에서 몬스터를 잡으면서 중앙의 수정구까지 오면 돼요. 수정구가 박살 나면 시험 종료.]

치지지직- 칙!

그러다 한참 후에 다시 소리가 들렸다.

[미친…… 치직! 관리자 불러! 치지직! 분명 안전 던전이라고 했……! 치지지직! 이대로라면 이레귤러! ……치지지직! 던전이 봉쇄된다!]

이 말을 끝으로 더는 들리지 않았다.

‘뭐지? 요즘 시험은 이렇게 콘셉트를 잡나?’

안대를 벗었다.

눈을 뜨니 가장 먼저 눈이 마주친 건 염라두, 그 자식이었다.

“X발.”

염라두가 욕을 뱉었다.

내가 검집에 손을 가져다 대려는 순간 움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쫄았군.

주변을 돌아보니 오래된 석실 안이다.

횃불이 벽에 걸려 있었는데 옆에는 상형문자가 줄지어 이어졌다.

뭐에 쓰는 글자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석실 가운데에는 문이 있었는데 이걸 열고 나가면 시험이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안경을 쓴 헌터가 입을 열었다.

“저어……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는데…… 어…… 던전 폭주인 건, 던전 폭주 콘셉트의 시험을 시작한다는 뜻인가요?”

염라두가 말했다.

“역대 기출 시험에도 나온 적 있다고 들었다. 아마 내가 엄청 강하니까 위에서 특별 시험이라도 넣은 것 같은데?”

캉!

염라두가 두 주먹을 부딪쳤다.

장갑에서 ‘깡!’ 하는 금속성 소리가 들렸다.

놈이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었다.

“프로 헌터는 위기 상황에도 진정한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 법. 여기서 겁을 먹고 우물쭈물하면 죽게 될 거다. 그래. 너, 엄지척 네놈이 가장 먼저 죽겠지.”

이 새끼 쫀 주제에 입은 살았네.

‘확실히 일리 있는 말 같긴 하네.’

하지만 그 당황한 목소리가 연기였단 말인가.

만약 연기라면 전문 배우 해도 될 것 같네. 너무 진짜 같았거든.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국무부 출신.

국가 방첩 기관 소속인 그녀가 못 할 것도 없긴 하지.

복잡한 마음에 머리를 대굴대굴 굴리는데 안경잡이 헌터가 내게 악수를 청했다.

“저는 방진아라고 합니다. 그때 멋있었어요. 못 말려서 죄송합니다.”

그때 염라두와 함께 낄낄거리는 헌터가 있는가 하면 나설 용기가 없어서 우물쭈물하던 헌터도 있었다. 방진아는 그중 하나였다.

띠링-

-헌터 견습생 A가 당신에게 1따봉을 보냅니다.

“방진우입니다. 저희 둘은 쌍둥이입니다.”

그뿐 아니었다. 다른 헌터도 내게 악수를 청했다.

놀랍게도 방진아와 얼굴이 비슷한 쌍둥이였다. 두 사람이 다른 점은 방진아는 안경을 쓰고, 방진우는 쓰지 않았다는 점뿐.

띠링-

-헌터 견습생 B가 당신에게 1따봉을 보냅니다.

“저는 엄지척입니다. 아시겠지만 본의 아니게 소란을 피웠었군요.”

대놓고 염라두를 무시하니 이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사회성이 참 없는 놈이구나.’

명문 염씨 가문에서 대장질만 하고 자라 온 티가 난다.

저놈 부모님은 애 능력 공부만 시켰지 인성 교육은 그다지 하지 않으신 모양이다. 염라두가 소리쳤다.

“야! 염마!”

“네, 형님!”

염라두의 명령에 남은 헌터 하나가 벌떡 일어나 붙었다.

염 씨이긴 하지만 붉은 머리카락이 아니다.

그 말인즉, 방계라는 뜻.

염라두가 스태프를 괴롭혔을 때 같이 웃던 무리 중의 하나였던 거 같다.

5인 1조이니 한 명 정도는 붙을 것 같긴 했지.

‘그런데 애 이름을 염마라고 지어 놨네. 정만득이 손주 이름을 그렇게 지어서 손주들이 다 대박 났다는 설을 믿는 사람이 그렇게 많나.’

하긴, 정만득 손주들이 좀 잘나갔어야지.

염라두가 석실 문을 열려고 하자 방진우가 소리 질렀다.

“잠깐만요! 석실 뒤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네놈 새끼들이랑 한방에 있는 것보단 나아.”

팀플은 시작부터 망했군.

그그극-

석실 문이 열리며 몬스터의 비린내가 훅 풍겨 왔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인간 형태를 한 도마뱀, 리자드 맨이었다.

방진아가 말했다.

“리자드 맨? 말도 안 돼. 고블린급도 아니고. 이건 베테랑 헌터라도 애를 먹을 텐데?!”

동감이다.

리자드 맨은 개개인이 고블린 두 배는 강한 데다가 속도는 네 배는 더 빨라.

피부로 주변을 감지하기 때문에 시야가 제한되는 어두운 동굴에서는 여덟 배는 더 빠르고!

‘이걸 시험용으로 쓰다니, 이 미친 새끼들아!’

크롸롸롸롸!

리자드 맨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좋았어. 들어와. 들어와!”

캉!

염씨 가문 놈들의 화염이 동굴 안을 폭발시켰다.

그와 동시에 나는 쌍검을 뽑아 들고 화염이 이쪽으로 날아오지 않게끔 스킬을 발동시켰다.

콰과과광!

* * *

‘던전 그로잉?’

정지한은 놀라서 전광판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은 연신 치직 소리를 내며 흑백으로 상황을 비추다 말기를 반복했다.

헌터들이 성장을 하듯, 몬스터가 성장을 하듯, 신들이 성장을 하듯.

던전도 성장한다.

기존에 있던 몬스터들은 재배치되고, 그 자리에 더 강한 몬스터와 더 복잡해진 맵, 그리고 더 뛰어난 보상이 준비가 되어 모험가를 유혹한다.

처음부터 중급 던전이었던 곳보다, 초급으로 시작해서 많은 모험가들을 받아들여 중급으로 성장한 던전이 훨씬 난이도도 높고 보상도 뛰어나다.

그것을 사람들은 훗날 [던전 그로잉]이라고 부르게 된다.

지금 시대의 인간들은 그것을 알 길이 없었다.

단 한 명, 정지한을 제외하고는.

엄지척이 들어간 던전이 곧바로 진화를 시작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는 아득히 멀리 있는 기억까지 빠르게 계산했다. 그러나 답이 없었다.

일단 그로잉 중인 던전은 게이트가 한번 닫힌다.

외부에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전무.

‘시험을 중단하는 건 불가능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로잉이 끝날 때까지 도망치며 버티거나, 아니면 핵을 부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의 엄지척이 가능할까?’

그는 끝까지 정지한에게 자신의 능력을 말하지 않았다.

겉으로 봐서는 성격 더러운 동생 엄무척의 비호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까 보면 엄무척보다도 더 철저한 인간이 형, 엄지척 아닌가.

‘엄지척은 특이점이다. 미래를 바꿀…….’

그 말대로 미래는 바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던전 그로잉 사태처럼.

정지한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제발 버티길……. 그렇지 않으면…….’

손톱이 파고들어 피가 배어났다.

고통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그는 선택해야 했다.

아득한 혼돈의 게임판 그 끝을 지켜볼지, 아니면 또다시 뒤로 걸을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세계가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도 그는 영원히 같은 자리를 지키며 ‘정지’해 있어야 했다.

인류가 살아남을 단 하나의 결말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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