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22화 (22/305)
  • 제22화

    내부로 들어가니 접수대에 남녀 한 쌍이 서서 나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접수증을 드리니 남자 스태프가 나왔다.

    “아, 엄지척 님이시군요. 저는 엄지척 님을 안내할 스태프 최태진입니다. 탈의실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보는 사람도 같이 굳을 만큼 몹시 긴장한 표정.

    이래서는 될 일도 안 되지. 그래서 일부러 웃음기를 보이며 털털하게 인사했다. 긴장을 풀 수 있게.

    “네. 처음이라 굼떠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좌우지간 잘! 부탁드립니다!”

    띠링-

    -당신의 겸손한 미소에 스태프 1, 2, 3이 호감을 갖습니다.

    -스태프 2가 특히 크게 감격합니다!

    -2따봉을 받았습니다.

    -2따봉을 받았습니다.

    -3따봉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쉽게 따봉 벌이를…….

    역시 돈이 최고야.

    돈을 얼굴에 바르니 곧바로 반응이 오잖아.

    그런데 ‘겸손한 미소’라니. 다른 헌터 지망생들은 어느 정도기에 이 정도로 7따봉을 주지?

    시험을 보러 갈 때가 한창 각성병이 피크 찍을 때라는 걸 알고는 있는데…… 그래도 감격까지 할 일인가, 이게.

    스태프가 말했다.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려야죠.”

    그리 말하며 탈의실로 안내했다.

    “안쪽에서 검사복으로 갈아입으시고 나오시면 됩니다. 참고로 가장 안쪽 로커는 쓰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고장이 잘 나거든요.”

    -스태프 2가 당신에게 진실된 조언을 합니다.

    “아이쿠, 감사합니다.”

    일부러 호들갑스럽게 받아쳐 볼까?

    “뭘요. 고작 로커 하나인걸요. 위에 교체 신청서를 보냈는데 교체되려면 한 달은 걸린다더라고요.”

    띠링-

    -1따봉을 얻었습니다.

    고맙군. 참 쉬운 사람이야.

    그런데 대체 여기 스태프들은 무슨 수라장을 겪었기에 이런 사소한 것에 따봉을 퍼붓는 걸까.

    옷을 갈아입으니 그가 나를 기본 검사실로 안내했다.

    체중과 키, 혈압을 측정하고, 피를 좀 뽑고. 폐활량과 시력도 측정했다.

    그 후, 마지막으로 MRI와 비슷하게 생긴 기계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움직이지 마시고 됐다고 할 때까지 힘을 빼시면 됩니다.”

    “이게 뭐죠?”

    “헌터가 가지고 있는 힘을 측정하는 기계입니다.”

    레벨? 능력치 총합? 힘이라고 하니 어느 쪽을 측정하는 건지 모르겠네.

    일단 하라고 하니 해볼까.

    안에 누워서 1분가량 가만히 있으니 됐다고 말했다.

    “검사 결과는 다음 주에 나올 겁니다.”

    “그렇군요.”

    “이다음은 실전 테스트입니다. 옷을 원래대로 갈아입으시고 나오시면 됩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로커로 돌아가니 대충 벗어 놨던 옷이 비닐로 포장되어 있었다.

    [승인 / 시험용으로 적합합니다.]

    검은색 가죽 재킷에 어두운색 블랙진. 그리고 검은 장갑.

    시험 기준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가장 비싼 옷이다.

    블랙 오우거의 가죽을 제련해서 만든 옷으로 열과 충격에 강하다.

    그러나 딱히 특수 마법이 걸려 있는 것도 아니고, 마법 종족을 이용해 만든 옷도 아니기에 승인이 난 모양이다.

    ‘정지한이가 너무 돈지랄을 했어.’

    아무리 정진의 얼굴이라고는 해도 그렇지.

    어디 가서 다쳐 오는 꼴 못 보겠다며 거액을 턱턱 던져서 이탈리아 장인에게 받아 왔다더라.

    결국 사람이 만든 옷이라 아슬아슬하게 합격.

    마지막으로 손목시계를 꺼냈다.

    [승인 / 시험용으로 적합합니다.]

    “넌 진짜 튼튼한 거 빼고는 아무것도 없나 보다.”

    빛을 비추면 기이한 문양이 보인다는 것 말고는 그저 평범한 손목시계.

    이계에서 왔다기에 한 점의 기대라도 가졌는데 승인이 난 걸 보니 숨겨진 기능 같은 건 전혀 없나 보다.

    “그래. 시계가 시간만 잘 보면 됐지.”

    달칵-

    그렇게 탈의실 밖으로 나오니 아까와는 다른 스태프가 서 있었다. 그는 조금 놀란 눈으로 말했다.

    “실물이 더 잘생기셨……. 아니, 아닙니다.”

    청담 김 실장님과 스킬 [백면 공자]의 절묘한 시너지 효과!

    “하하하, 칭찬인걸요. 좋게 봐주시면 저야 기쁘죠.”

    띠링-

    -3따봉을 받았습니다.

    대체 왜 이곳 스태프들은 이런 일에 감동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는 앞장서서 나를 안내했다.

    이윽고 그가 흘러가듯 중얼거렸다.

    “다른 헌터님들도 다 저분 같으면 좋을 텐데…….”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는 커다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실전 시험 전에 이곳에서 쉬시면 될 거라고 했다.

    [실기 수험생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의외의 광경이 있었다.

    “내가 콜라에 얼음 넣어 오랬어?! 그냥 들고 오라고 했잖아!”

    새빨간 머리카락의 사내가 스태프의 멱살을 한 손으로 잡아 들고 있었다.

    놈의 키와 완력이 대단한 건 둘째 치고, 콜라?

    스태프는 공중에 발이 떠서는 기침을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여간 공무원 놈들이 그렇지. 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멱살이 잡힌 스태프는 나를 처음 안내했던 그분 아닌가.

    탈의하고 나니 왜 다른 분이 있나 했더니 저놈 심부름 하러 갔던 모양이네.

    주변에 있던 각성자들은 빨간 머리를 방관만 할 뿐.

    심지어 한 패거리인지 낄낄거리며 같이 웃는 놈도 있었다.

    ‘저 빨간 머리 어디서 많이 봤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생각나는 게 없다. 일단 나는 달려가서 팔을 붙잡았다.

    “그러다 사람 죽겠습니다.”

    “넌 뭐야?”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내리시죠.”

    “내리라고?”

    “예. 사람 죽겠어요.”

    그가 한쪽 입가를 씰룩댔다.

    “너 나 몰라?”

    “모릅니다.”

    “정말 모른다고?”

    “그보다 좀…….”

    나는 놈의 팔을 붙잡고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힘 스텟으로 붙어 보겠다? 그래 봤자…….”

    꾸우욱-

    놈의 팔이 천천히 땅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두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심지어 옆에서 나와 같이 말리던 스태프들도 놀라서 눈이 커졌다.

    “X발. 그래. 기본 능력치 준수하다곤 하더라, 너.”

    “절 아십니까?”

    그 순간, 놈의 팔을 타고 불꽃이 화르륵 솟아올랐다.

    “크아아악!”

    스태프의 피부에 화상이 새겨진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헌터 보조원의 삶. 나는 꽤나 존중받고 살아왔다는 것을.

    우리가 채취한 몬스터 고기들이 그들의 수익으로 직결되기에 그저 냄새가 난다고 투덜거리는 것으로 끝이었다는 것을.

    고작 자존심이 상했다는 이유로… 이 못난 새끼가……!

    “사람을 스킬로 상처 입히면 안 됩니다.”

    “그래서 쉘튼이 잡혀갔냐?”

    국제 헌터 보호 조약.

    몬스터 세상에서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는 헌터가 필요해.

    그 헌터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약이 만들어졌고. 그들은 면세와 면책을 비롯한 각종 특권을 갖고 병역의 의무도 같이 지게 됐지.

    하지만 그 병역의 의무가 턱없이 가볍다 싶을 만큼 특권을 물처럼 쓰는 놈들도 있다.

    나는 손으로는 놈의 팔을 내리면서 다른 발로 그림자를 밟았다.

    다행히 블랙 오우거 장갑이 화염 속에서도 보호해 주는군.

    ‘정지한이 맞았네. 돈은 아끼지 않는 게 좋았어.’

    선수 과보호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이렇게 미친 새끼들이 많을 줄이야.

    드득-

    본인이 내세운 불꽃과는 달리 팔이 점점 더 내려가자 놈이 말했다.

    “이 새끼 영상에 나온 저주 스킬을 썼군.”

    “네, 치유 스킬도 썼습니다.”

    스태프 주위로 빛의 구슬이 떠올랐다.

    화상을 막지는 못해도 곧바로 치료를 할 수 있다.

    결국 놈은 혀를 차더니 손을 놓았다.

    텅!

    “너 정말 나 몰라?”

    “네, 진짜 모릅니다. 절 아시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 국민 중에 너 모르는 새끼가 세상에 어디 있냐. 그래서 연예인병이라도 도졌나 보지?”

    대체 저 새끼는 누구란 말인가.

    놈이 말했다.

    “야, 내가 누군지 네가 말해 봐라.”

    스태프가 목을 쓸며 힘겹게 말했다.

    “화염계 각성 능력자이십니다. 엄지척 님이 각성하신 후, 얼마 후에 각성하신 걸로 압니다. 성함은 염라두…….”

    “그래. 화염의 명가 염씨 집안에서 배출한 각성자가 나다.”

    아, 내가 수련 들어갔을 때 각성했구나.

    뉴스를 볼 시간이 있어야지. 그래도 얼굴이 어째 낯익은 걸 보니 갓튜브 배너로 한번 스쳐 지나가듯 보긴 했었던 모양이다.

    염씨 집안.

    화염 계열을 사용하기로 유명해.

    그 집안의 사람들은 화염신의 가호를 받는다고는 들었는데 잘은 모르겠네.

    그런데 그게 뭐 어쩌라고? 제가 날 알면 나도 같이 알아봐 줘야 한다는 건가.

    나는 놈을 무시하고는 곧바로 스태프를 일으켰다.

    “의무실로 가세요. 회복 스킬을 걸어드리긴 했지만 의사한테 상처를 보이셔야 할 거예요.”

    띠링-

    -스태프 2가 당신의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목숨을 구했습니다!

    -100따봉을 받았습니다!

    “무시하냐?”

    “무시 안 하면?”

    “반말? 그래, 너도 본색을 드러내겠다 이거지? 그럴 줄 알았다.”

    강력한 스킬을 각성한 능력자는 일종의 선민사상에 물든다고 하지.

    자신은 보통 인간과 다르다고, 선택된 존재라고 믿는다고.

    헌터 집안에서 태어난 강력한 능력자 자식, 아마 어릴 때부터 그게 당연했을 거야.

    그렇게 자라면 쉘튼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나쁜 어른이 되지.

    놈의 손에 화염이 일었다.

    그 순간, 나는 놈의 손을 검집째로 때렸다.

    빠악!

    “악!”

    그렇군. 능력은 강하지만 이런 싸움은 영 해본 적 없는 놈이었어.

    헌터 시험도 전에 온갖 괴상한 사투를 벌였던 나한테 이놈이 하는 건 그냥 애들 장난으로 보이는걸?

    그 쉘튼보다 약해!

    동시에 다른 손의 검을 놈의 목젖을 향해 날렸다.

    놈이 놀라서 눈을 질끈 감는다.

    “……!”

    나는 놈의 목젖 바로 앞에서 검을 멈췄다.

    “표정 좋은데?”

    “X발…….”

    “왜, 이 이상 더 가줘?”

    “크으…….”

    놈은 더는 말하지 못하고 뻐끔거리기만 했다.

    이대로 맞는 것보다 나한테 창피를 당했다는 게 더 수치스러운 모양.

    “각성 전에 너 같은 놈들 많이 봤어. 그중에 네가 특출 나긴 했지만 말이야.”

    사람들은 저런 놈을 ‘헌터병’이라고 부른다. ‘각성병’처럼 중2병에서 딴 이름이다.

    그게 깨지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사선을 넘어 현실을 깨닫거나, 강력한 벽을 만나거나 해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걸 만나도 치료가 안 되는 놈은 계속 그러고 산단다.

    나도 그런 헌터를 몇인가 만난 적이 있었지만. 뭐.

    깊이 말을 섞을 일도 없을뿐더러, 내가 가는 곳은 그래도 쉬운 던전이었기에 저런 중증 헌터병에 걸린 놈을 만날 일은 그리 없었어.

    세상에는 참 개새끼가 많아.

    “두, 두고 보자.”

    “하하하. 내가 네 이름은 모르지만 네 웃긴 표정은 기억할 것 같다.”

    “개새끼야--!”

    그 순간, 내 검집이 놈의 목젖을 가볍게 쳤다.

    “커억!”

    지켜보던 스태프와 헌터들의 따봉 소리가 동시에 요란하게 울린다.

    스태프들이야 그럴 수 있겠다 싶었지만 헌터는 의외였다.

    역시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세계이기 때문인 걸까.

    쿨럭거리는 기침 소리와 함께 건너편에서 문이 열렸다.

    스태프가 다급히 말했다.

    “시험관님 입장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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