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서사…… 뭐?
처음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아 몇 번을 되물었는지 모른다. 거기서 동생이 다시 말했다.
-잘 봐. 형,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을 돕고 싶어 해. 이대로라면 쉘튼을 동정하는 사람도 나올 거라고. 하지만 말이야, 그 이상으로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
그게 뭔지 물어보니 동생은 처진 눈으로 씨익 웃었다.
-악인을 벌하는 거지. 거기서 나오는 희열에 사족을 못 써, 히어로 영화에 돈을 쓰고, 악인이라 생각하는 존재한테 악플 달려고 몇 시간씩 붙어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이유가 뭘 것 같아?
이놈이 사법을 포기한 건 참 다행이 아닐까.
판검사든, 변호사든 이 사회를 좀 더 낫게 바꾸겠다는 그런 사명감이 있는 사람이 해야지, 빌딩 짓기 위해 하는 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놈이 헌터 하길 참 다행이지 싶네.
아니나 다를까 일반인 동생에게 대련을 빙자해 스킬을 날린 쉘튼은 개새끼가 되었고, 나는 그런 그를 응징하는 정의의 형이 되어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잖아? 진실, 트루.
영상이 올라가는 데에 쉘튼의 의사 같은 건 중요치 않았다.
애당초 놈은 정지한에게 소속된 헌터.
백부의 압력으로 들어갔다고는 해도 계약서에 사인한 이상, 놈의 초상권은 정지한의 회사가 가지고 있다.
이 미친 세상에서는 헌터가 왕이면서도 이럴 때는 동시에 공인이다.
거기다가 경기. 합당한 전투였다.
쉘튼을 견제용으로 꽂아 넣으면서 정지한의 백부도 이 상황은 상상도 못 했을 거다.
그렇게 놈의 얼굴은 대한민국 전체에 팔리게 되었다.
- 쉘튼? 역시 홍인 새끼들 하는 꼬라지하고는. 여윽시 홍인 인성~
↳네, 다음 인종차별자.
↳일반인을 스킬 써서 쳤다는 게 중요하지 인종이 뭐가 중요함?
↳님 인종차별로 신고요. 똥양인은 갓성인 줄? 이런 사람 현실에서 안 봤으면 좋겠네.
- 영상에 동생분은 괜찮으신가요? 걱정되네요.
↳여즉 부고 기사 안 뜬 걸 보니 괜찮지 않을까요?
↳방금 괜찮다는 기사 떴네요.
쉘튼에 대한 분노와 그래도 피부색 가지고 욕은 하지 말라는 자정 댓글이 처음을 장식했다.
그다음은 스킬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 ㅗㅜㅑ!! 진짜 쩐다. 쉘튼이면 방어계 능력자들 중에서 랭커 아닌가? 그걸 아직 자격증 시험도 안 본 신인이 잡는다고?
- 전투 초반 10초부터 축복, 강화 중첩하는 거 보신 분? 내 눈이 맞나?
↳맞음, 일타 때리기 직전에 저주 스킬도 같이 날렸음.
↳ 저게 사람 새끼냐……. ㅎㄷㄷ
- 그러면 지금 뉴비가 방어형 랭커를 상대로 참교육 한 거임? 이게 가능함?
↳불꽃가능.
- 쉘튼 팬덤 곡소리 나겠네.
- 일반인 상대로 대련 빙자해서 스킬로 폭행한 데다가 능력도 뉴비한테 발려 버렸으니 말 다 했지.
↳3합 봐주기로 한 거잖아? 3번 봐줬으면 누가 못 이기냐?
↳이야, 쉘튼 팬덤 아직도 남아 있네.
↳3합이라고 했지만 원거리 공격 한 번에 공격 들어간 거 안 보임? 눈 사시냐?
↳마법으로 만든 화살이 여러 개 생성됐잖아. **새끼가 니 눈이나 사시인 듯.
↳**인가? 넌 앞으로 밥알 3개 먹고 오늘 세 끼 먹었다고 하고 살아라.
- 헌터 평론가 이카루스입니다. 처음 마법은 어디까지나 견제기로 보입니다. 다연발 화살 개수를 세서 3합으로 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헌터마다 다르니 그쪽 논쟁은 두고, 어찌 되었건 이 전투에 그게 큰 역할을 하진 않은 것 같네요.
↳ 그러거나 말거나 쉘튼이 정면으로 싸우면 떡 발랐음.
↳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외국인 범죄자 무슨 기분으로 빨아? 어떤 혐생 살길래 저걸 빠는지 진짜 궁금해서 그래^^
- 저↗투자♥고소득◀의 기회▧당신도▶엄지척처럼◀될 수 있다↗지금 헌터 상점★이용 시♥특별 할인 15%☆ 스◆크루지↗상회!
↳뭐야. 이 계정 아이디가 없네ㅋㅋㅋㅋ 요즘 이런 것도 뚫리냐ㅋㅋㅋㅋ 개튜브야!
그리고 두 영상이 업로드되고 얼마 후, 다음 영상이 올라왔다.
쉘튼과 나의 또 다른 일대일 대결이다.
이번에는 3합을 기다려주고 말 것도 없이 그냥 처음부터 정면 승부였다.
쉘튼이 진 대가로 내가 요구했던 조건은 재대결.
거부권도 없을뿐더러 얼핏 보면 쉘튼에게 있어 설욕의 기회가 될 테니 엎드려서라도 부탁할 정도의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놈은 그거야말로 최악의 악수라는 걸 몰랐다.
결과야 똑같았다.
처음에는 처참하게 발리고, 두 번째도 처참하게 발렸다.
놈의 면상을 보고 있으니 내 동생 갈비뼈를 부러뜨렸던 그때의 기억이 아주 생생해졌다.
그래서 다시 밟아 줬다.
정면으로 붙으면 이길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 영상이 올라가는 순간 한 줌 남아 있던 쉘튼의 팬덤은 완전히 와해되었다.
- 이야, 쉘튼 형 끝났네.
- 잘 가라. 내 구오빠. 멀리 안 나간다.
- 얼굴도 지척이가 낫지. 그사이에 몸 벌크 업 된 거 봐라.
- 지척이 형 얼굴도 좋고, 몸도 좋고, 싸움도 잘하고 지척이 형 인생에 나란 오점을 남기고 싶다.
↳ 줄 서 **아.
↳ 동방예의지국답게 바로 욕 박는 거 보소.
- 엄지 형 팬티 빨고 싶다.
↳ 헐, PPT 땄음. 좀 이따 발표 준비 하셈.
- 쉘튼은 정정당당하게 뉴비한테 털린 거네. 근데 감방은 안 감?
↳ 쟤 외국 놈이라 그쪽 외교부에서 보호하고 있댔음.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대련 중에 팬 거 가지고 소송하기 힘듦.
↳ 국제 헌터법 **새끼들임.
- 야잌ㅋㅋㅋ 털린 거 또 털리냐, 쉘튼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쉘튼 와꾸 예전 같지 않을 때부터 자기 관리 안 하는 거 티 났음.
- 오늘부로 엄지에 대한 나의 지지를 철회한다. 오늘부터 엄지와 나는 한 몸이며. 엄지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 엄지척 님 진짜 너무 멋있다.
- 저희 딸 구해 주실 때부터 쭉 응원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건강하신 것 같아 기쁩니다. 동생분 부상 때 얼마나 마음이 상하셨을지 걱정입니다…. 헌터 생활 이렇게 올려주셔서 오늘도 정말 감사합니다. 가족분의 빠른 쾌유를 바랍니다…….
-적은★투자로도◀8자를▶고쳤어요↗人생역전↗기◆회 당신도◆엄지척이◇될 수 있다↗↗모두☆대박 나세요★스크루지★올▧림
↳이거 대체 뭐임? 왜 아이디 표시가 안 뜸?
다양한 연령대다 보니 다양한 반응이 올라왔다.
개중에는 제정신이 아닌 놈도 섞여 있었지만…. 으음…… 그냥 따봉이나 눌러 줬으면 좋겠네.
이상한 계정은 신고가 박히고 시간이 지나면 삭제가 되든가 일정 시간 동안 계정 정지가 되든가 하겠지. 아니면 둘 다 되든가.
‘보통은 둘 다지.’
낯익은 이름이 보이긴 하지만 뭐, 스팸에서 흔한 이름이기도 하고 거긴 워낙 이상한 것도 많아서 신경을 껐다.
쉘튼의 몰락은 그렇게 화려하게 이루어졌다.
외국어 댓글도 올라오고 있는 것이 해외에서도 알려지고 있는 모양.
자동 번역을 누르면 알 수 있겠지만 너무 많아서 일단 한국 쪽 댓글만 봤다.
덕분에 정지한도 이 일을 명분으로 쉘튼을 손절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백부란 놈도 쉘튼을 버렸는지 쉘튼은 정하 그룹에서 완전히 나가리가 되었다.
정지한이 눈을 빛내며 이렇게 말했었다.
-참 신기하군요. 엄지척 씨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제 주변에 큰 파장을 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걸 동양에서는 귀인이라고 부르던가요?
이놈은 대체 왜 이렇게 내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 걸까.
띠링-
-1따봉을 받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따봉 숫자는 끊임없이 오르고 있었다.
새로운 스킬을 구매하느라 탕진했던 따봉은 다시 무서운 속도로 불고 있었다.
그렇게 얻은 따봉은…….
7,281따봉!
인지도가 생기니 뉴스를 타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들어와 보기 시작했다.
커뮤니티를 타고 영상이 돌기 시작했다.
일전에 한 방에 8만 따봉 이상 벌었던 걸 생각하면 적어 보이지만, 그때야 전국구 공중파 뉴스에 나온 거고.
지금 수준만 해도 추천 수가 대단하다고 정지한이 말했다.
사내 갓튜브 영상 중에서 추천 수가 1위란다.
‘광고를 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숫자라는 거지?’
링크만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영상을 보려면 직접 갓튜브로 와서 볼 수 있게 했는데도 많이 모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형, 오늘 옷 잘 입고 오길 다행이네. 담당 코디분이 해주신 거지?”
“응. 정진의 얼굴이 되었으니까.”
정하 그룹 자회사.
정진(挺進).
앞서 나아가라는 뜻이 담겨 있다.
정지한, 본인의 이름과 발음이 비슷하다.
이것도 의도한 모양이네.
생각해 보면 신기하긴 해. 정하 그룹의 손자들은 전부 이름과 관련된 능력을 각성했으니까.
얘네들 이름을 방송에서 예능으로 다룬 적도 있다.
-물과 얼음을 다루는 원소술사, 심플하지만 강하다! 거기에 회복 능력까지!
정! 수기!
-어느 요새든 그 자리에서 만들어 내는 건설 스킬의 대가! 그가 있는 곳은 곧 집이 된다!
정! 남향!
-기계에 생명을 불어 넣는 메카닉 마스터! 아무리 박살 난 기계라고 해도 업그레이드!
정! 비가!
…….
그 프로는 그 방송 이후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지.
아무튼 뭐, 손주들 이름을 저렇게 지은 정만득이 제정신은 아닌 것 같은데.
손주 입장에서 대한민국 재벌 총수인 킹갓 그랜파파 욕을 어떻게 하겠나.
엄지척인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할아버지가 아니라 원수 아닐까?
뭔가 예언 능력을 발현한 게 틀림없지만 그래도 이 새끼가 돈 새끼라는 건 확실…….
‘아, 할아버지.’
왠지 내 얼굴에 침 뱉는 기분이 든다.
내 안의 유교가 눈을 부라리는군.
아무튼 정만득의 법칙에 따르면 ‘정지한’ 이놈도 이름에 관련된 능력자임이 틀림없었다.
‘물체를 정지시키나?’
보여 준 적이 없으니 모르겠다.
트레이닝할 때도 그랬으니까.
아무튼 정지한은 나를 끔찍이도 생각하고 있는지 최고급 코디와 스타일리스트를 붙여 주었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 블링블링한 내 모습이지.
“형, 잘하고 와.”
동생이 입구 앞에 차를 댔다.
기자들이 차를 향해 플래시를 터뜨린다.
선팅 때문인지 이 차 안에서 누가 나오는지까지는 모르는 모양이다.
그렇게 문을 열었다.
“와아아아!”
별 같고 번개 같은 빛이 점멸한다.
한쪽에는 [엄지야! 검지 왔다!]란 플랜카드가 보였다.
내 팬클럽 이름이다.
검지.
내 이름이 엄지척이라 본인들은 검지라고 스스로 부르기 시작한 모양이다.
기자는 아니고 일반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기 팔보다도 거대한 카메라로 나를 응시했다. 동생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형, 홈마한테는 꼭 웃어 줘야 해.’
홈마가 누구인지 묻자 홈마스터의 줄임말이라고 답했다.
그게 정확히 뭐인지 물어보려다가 왠지 다 아는 눈치라 못 물어봤지.
나 같은 스몰 마인드에게 쉽지 않은 일이야.
늙은이가 된 기분이지만 결국 그냥, 홈마인지 뭔지 그걸 어떻게 알아보냐고 하니 가면 알게 된다고 해서 반신반의했지.
묘하게 애정이 담겨 있는 카메라에 나는 살풋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가빠졌다.
‘이런 느낌이구나.’
감사한 마음뿐이다.
플랜카드가 내게 힘을 북돋아주는 것 같았다.
나는 계단 꼭대기에 서서 허리를 굽혀 크게 인사했다.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헌터 시험, 그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