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어쨌든 잘됐다. 뭐 먹고 싶어? 형이 뭐든 사 줄게.”
내 말에 동생이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동그랑땡.”
“뭐?”
우리 집 동그랑땡은 별거 아니다.
그냥 시중에서 파는 햄에 계란 물을 묻혀서 튀기듯 굽는 거다.
그것도 동생과 먹는 햄이라 하면 길고 가장 싼 햄.
실질 고기의 함량이 적어서 사실 엄연히 말해 햄이라고 분류되지는 않는 가공 식품이었다.
돈은 없고, 입은 사치하고 싶고, 그런데 양은 불리고 싶어서 해 먹었던 음식.
그거 하나에 밥을 푸지게 담으면 둘이서 세 끼를 때울 수 있었다.
“그거 말고는?”
“없어.”
“딴 거 먹자.”
“내가 먹고 싶다니까.”
동생은 고집을 부렸다.
“나 그거 좋아해, 형.”
“알아. 너 그거 좋아한다고 했지.”
언제부터인가 동생은 그게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동생이 불쑥 정지한에게 말했다.
“계약하죠.”
“음? 여기저기 다 쑤셔 보고 몸값을 올릴 대로 올린 후에 불공정 계약서를 흔들며 오실 줄 알았습니다만……?”
내 동생이지만 그 말에는 동의한다.
갑자기 이렇게 순순히 계약하자고 할 줄은 몰랐지.
“불공정이 아니라 양자 간의 공평한 권익 배분이죠. 이 말은 정정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형이랑 같은 던전 다니려면 같은 소속인 게 유리하잖아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표정이 안 좋아졌다.
동생이 말했다.
“말했잖아, 형. 혼자 위험한 곳 보내지 않을 거라고. 죽어도 같이 죽는 거야. 살아도 같이 사는 거고.”
“넌…….”
“더 이상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나 A급이야.”
걱정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저놈도 이제 성인이다.
각성자로서도 A급 직업을 손에 쥐었고.
내가 이 이상 이 녀석 거취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알아서 해라.”
“응. 알아서 할게.”
정지한이 우리 둘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어찌 되었건 동생분도 헌터 시험을 보셔야겠군요. 동생분은 필기부터 시작이실 텐데 각오는 되셨습니까?”
“다행히도 필기시험으로 그리 등수가 떨어져 본 적은 없으니까요.”
정확히 말하면 1등을 놓쳐 본 일이 거의 없다.
이 녀석은 학교 등수가 아니라 전국 등수로 세어야 하는 놈이니까.
“네. 그 부분이야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곳에 계시니까요. 그런데 어째 무척 씨보다 지척 씨 표정이 더 자신 있어 보이는군요.”
“아, 형……!”
무척이가 멋쩍어하며 큰 덩치로 내 등을 퍽 때렸다.
그 한 방 때렸을 뿐인데 허파까지 울린다.
‘각성한 게 맞긴 맞구나.’
각성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육체 능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A급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헤헤헤.”
바보처럼 웃음이 나왔다.
“내 동생 대박이다. 대박!”
남들이 뭐라고 해도 좋았다. 내 동생이 A급이 되었다고 달려 나가서 자랑이라도 하고 싶다.
“어째 쉘튼을 박살 냈을 때보다 더 기뻐 보이시네요.”
“형이 박살 냈어?”
아, 바로 응급 치료에 들어가서 거기까지는 몰랐던 모양이다.
“응.”
“형까지 나설 필요는 없었는데…….”
동생은 아쉬웠는지 혀를 찼다.
띠링-
-3따봉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자기를 위해 형이 싸워 줬다는 게 기쁘긴 한 모양인지 따봉이 오른다.
“약한 녀석이었어.”
정지한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백부님께서 보낸 베테랑 헌터를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지척 씨밖에 없지 싶군요.”
“다친 곳은 없어?”
“응.”
동생의 눈가가 살짝 떨리더니 이내 동생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다행이고.”
동생이 말했다.
“그러면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또 나누도록 하죠.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정지한 대표님.”
축객령이었다.
* * *
정지한이 나간 후, 동생은 그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많은 신들에게 연락이 왔어.”
“많아?”
그건 엄청난 일이었다.
한 명의 신에게도 연락을 받지 못한 헌터들이 대다수다.
그런데 앞다투어서 연락이 오다니.
“응. 내가 혼돈의 문자를 받았다는데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어. 아마 그것 때문인지 문자 창제에 관련된 신들이 연락을 했어.”
“그랬구나.”
“그런데 형도 관심을 표하는 신이 있지 않아?”
“응. 처음에는 몇 번이나 떴었어. 지금은 시스템 점검 중이라 패치를 기다리라고 떴지만.”
“그거 정말 이상하다.”
“새삼스러울 게 있나. 애초에 내 능력 시스템 자체가 이미 제정신이 아닌데.”
“그게, 꼭 마치 의도적으로 시스템이 형이 다른 신과 접촉하려는 걸 차단하려는 것 같…….”
동생은 생각에 잠긴다. 이윽고 고개를 젓는다.
“내가 너무 멀리 간 것 같다. 그럴 리가 없지.”
동생은 자신에게 연락 온 신들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신들을 추렸다.
-네 개의 눈은 진리를 기록하니.
-파피루스를 가진 따오기.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역시나 다른 헌터들의 증언대로 직접적으로 진명은 뜨지 않는다.
동생은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
“나한테 접촉한 신들은 하나같이 문자에 관련된 신이야.”
“네 개의 눈은 진리를 기록하니?”
“창힐일 가능성이 커.”
창힐은 최초로 한자를 만든 자라고도 전해져 온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에 비해 많은 것들이 베일에 싸여 있다.
도교에서는 문자의 신으로 불린다. 동생은 폰을 들고 빠르게 검색해 나갔다.
“어떤 생물의 발자국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한자를 만들었다는데, 모르겠어. 사실 황제라고도 하고, 신이라고도 하고, 사관이라고도 불려서 어느 쪽이 진실인지도 나로서는 모르겠고.”
“확실한 건 굉장히 강력한 신이라는 거네.”
“응. 한자 전반에 관련된 스킬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역시 내 동생, 대단하다.
“비밀의 서를 가진 따오기는?”
“이건 쉬웠어. 이집트의 토트 같아. 서기관과 도서관의 신이지. 지식을 담당하는데 세상의 비밀을 알고 있어 마법의 신이라고도 불린다고 해. 상징 중의 하나가 따오기야.”
“그렇다면 고대 마법 쪽 스킬을 얻을 수 있으려나?”
“응. 이집트 상형문자를 발명했다는 신이니, 꽤나 강력한 고대 마법을 가지고 있겠지.”
동양과 서양인가.
둘 다 엄청난 신들이다.
대체 동생이 받았다는 혼돈의 문자가 뭘까.
“마지막은?”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
“…….”
동생과 나는 둘 다 말을 멈추었다.
왜인지 이 말을 듣는 순간, 은퇴를 하고 싶어도 영원히 은퇴를 못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문자 하면 그분을 빼놓을 수 없지.”
“신이 아닌 영웅도 헌터들을 선택할 수 있다고는 들었어.”
어떤 능력을 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이집트 상형문자, 중국 고대 한자, 그리고 한글이다.
참 기이한 일이었다.
수많은 고대 신 사이에 단 한 명의 인간이 그곳에 있었다.
아득하게 오래된 문자 신화들 사이, 그는 그곳에 있었다.
그 속에 서 있는 것은 그저 인간이었다.
그는 신화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대에는 신들의 전쟁도 없었고, 신비는 공자께서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으셨다 하여 배척하였으며, 별자리는 점성용이 아닌 날을 세기 위한 과학이었다.
그가 남긴 것은 기록뿐이었다.
즉위한 1418년부터 1450년까지, 한 명의 인간이 죽을 때까지의 기록.
163권에 달하는 기록서가 남아 있었다.
신관은 없다.
신화를 말할 전승도 없다.
그저 수많은 사자관들이 편찬을 함께했을 뿐이었다.
그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문자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기록, 그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보통 위인급은 신의 힘에 비해 떨어진다고는 해.’
거기다가 무심한 듯 던져 놓은 글이 그리 적극적이지도 않았다.
하려면 하고, 아니면 말고.
대신 사내의 방침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간단하고 확실했다.
“…….”
기나긴 고민이 이어졌다. 이윽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세종대왕님 가자.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문자가 그거니까 뭘 해도 보너스를 받을 수 있겠지.”
같은 문화권인 경우, 능력치가 더욱 강력해지는 건 상식이다.
거기다가 이 나라에서는 만 원에 새겨진 그분을 모르는 이가 없다.
추가 보정이 반드시 들어갈 게 틀림없었다.
특히나 지폐에 새겨져 있기에 어쩌면 금전 운이 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밀려왔다.
“설마 형, 그 미신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 지폐에 새겨진 존재와 계약을 맺으면 떼돈 번다는 미신.”
“누가 그런 걸 믿어. 하지만 다들 떼돈 벌긴 했잖아.”
“아니, 형… 물론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신이고 표기된 행운 수치에는 별 영향이…. 아, 하지만 다들 많이 벌기는 했어.”
수호신의 용안을 계속 뵙는 것은 사도로서 굉장히 중요한 일 아닐까? 그걸 수호신님이 도와주시지 않을까?
그 말에 내 동생이 절박하게 말했다.
“형, 내 은퇴는……?”
그 순간, 동생의 눈에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졸기(卒記).
기분이 그랬다.
분명 이분을 따라가면 뭔가 되긴 될 것 같았다.
좋은 쪽으로 뭔가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을 거라는 그런 기분이 든다.
그런데 거기에 인생도 은퇴도 함께 갈릴 것 같은 그런 합리적 추론이 밀려온다.
그 말에 내가 되물었다.
“그러면 넌 어느 쪽이 당기는데?”
* * *
그렇게 몇 주의 시간이 지났다.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에 매진하던 나날들이었다.
실기 시험 당일.
늦지 않게 시험장으로 향했다.
무척이 녀석이 부득불 데려다주겠다면서 따라붙어서, 녀석이 운전하는 차를 타게 되었다.
시험장은 인적 드문 서울 외곽에서 이루어지는데 벌써부터 사람이 많다.
‘아이고.’
주차장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가 탄 차의 앞 차량에서 시험을 보러 사람이 나오자마자 기자들이 득달같이 사진을 찍었다.
어째 평소보다 더 난리 같은데…….
“형은 그렇지 않아도 그 영상 때문에 더 난리 날걸.”
동생이 핸들을 스무스하게 꺾으며 말했다.
‘따봉 때문에 올리긴 했는데…… 실수였나?’
무척이 녀석이 말한 건 얼마 전에 올린 영상을 뜻한다.
바로 베테랑 헌터 쉘튼과의 대결 영상이다.
대결 전에 정지한에게 부탁한 게 바로 그것이었다.
영상을 찍어도 되는지.
백면공자 스킬 덕분에 피부가 알게 모르게 물이 올라 있는 상태였다.
거기다가 전보다 관리가 잘된 몸까지 합쳐지니 조회 수가 폭발했다.
사람을 구하던 때보다야 못해도, 따봉이 아주 쏠쏠하게 들어오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다만 그게 업계인들에게도 이슈가 되긴 했다는 게 지금 기자들이 몰린 이유이려나.
‘아이고…… 다들 특종 잡으러들 오셨구만…….’
동생이 말했다.
“거의 일방적이다시피 한 전투였으나 그럼에도 스타일리시한 테크닉이 있어 눈을 뗄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
“오오, 다행이네.”
“거기다가 더 큰 게 하나 더 있어.”
[용병 헌터 쉘튼, 대련을 표방한 일반인 폭행]
동생과 쉘튼의 영상이었다.
스킬을 쓰지 않고 능력을 봉인한 상태에서 동생은 그를 반쯤 압도하고 있었다.
그때 쉘튼의 스킬이 폭발했다.
동생이 날아가 박히는 장면이 그대로 영상에 담겨 있었다.
원래라면 이 영상은 편집될 예정이긴 했지. 그러나 올리라고 한 건 동생 자신이었다.
- 나도 A급 헌터가 되었는데 슬슬 데뷔해야지. 형, 원래 이런 건 서사를 쌓아야 잘 팔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