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19화 (19/305)
  • 제19화

    그녀는 시술에 들어가기에 앞서 축객령을 내렸다.

    간호사도 그녀의 드론이 대신할 거니 상관없었다.

    “자, 무척 군. 드디어 둘만 남았네.”

    그녀의 등 뒤로 크고 작은 드론들이 명령을 기다렸다.

    그 모습이 꽤나 섬뜩할 지경이다.

    “진짜로 원하는 게 뭡니까.”

    “그냥 변덕이라니까 그러네.”

    “…….”

    “하하하, 동생은 의심이 많은 성격이구나. 하긴, 험한 세상에서 그래야 형을 지키지.”

    그녀의 느물거리는 태도를 보며 무척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정지한이든, 정비가든. 정하 그룹 혈족들은 다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가 말했다.

    “얼마나 강해지고 싶어?”

    “할 수 있는 한 많이.”

    “다소 위험한 다리를 건너더라도?”

    “네…….”

    “보험이 안 될 거야. 나라에서 허가받지 않은 시술이니까.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할래?”

    그제야 청년은 눈앞의 여인의 목적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렇지. 이 사람은…….’

    엄무척은 변호사를 목표로 했다.

    그런 목표를 설정한 이유에는 경제적인 사정이 제일 컸다.

    판검사가 되기에는 집안 사정이 너무 열악했고, 그래도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되기로 한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그보다 더 성공한 사회적 존재가 될 수 있기에 헌터가 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공부하던 지식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졸업한 선배들이 이야기했던 것들 중에는 뜬소문 같지만 꽤나 정확한 것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눈앞에 선 사람의 특이한 별명 같은 것들.

    정비가는 메카닉 마스터라는 이름으로 유명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그녀를 매드 사이언티스트라고 부른다.

    그녀는 단순한 각성자가 아니라, 과학자였다가 각성자가 된 특이한 사례를 가진 자.

    게다가 메카닉 마스터라고는 하지만, 그녀는 생명공학에도 어마어마한 깊이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녀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면 미쳤다고밖에는 볼 수 없는 무수한 ‘실험’을 하고 살아왔다.

    일반인들에게까지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법조계나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한 이야기다.

    그런 루머들 중에는 ‘인체 실험’도 분명 존재했다.

    “실험체가 필요한 겁니까?”

    “그래. 허가받는 과정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기술도 유출되기 쉬우니까.”

    “소문대로군요. 당신은 미쳤어.”

    그 말에 그녀는 얼굴 하나 구기지 않았다.

    그냥 사과가 애플이라고 불리듯, 그녀는 당연한 것을 듣는다는 듯 태연했다.

    그녀가 손가락을 뻗자 드론이 사탕을 뱉었다.

    “박하 맛은 별로인데. 어쩔 수 없지.”

    그녀는 껍질을 까서 사탕을 입에 문다.

    무척이 말했다.

    “이런 불법 시술이 걸리면 경영권에서 멀어지는 것 아닙니까?”

    “흐음, 관심 없는데?”

    “그게 무슨…….”

    “물론 내 정자 제공자, 그러니까 ‘아빠’를 엿 먹이는 건 즐겁겠지. 그걸 위해 내 뇌의 일부분은 노력하고 있어. 하지만 대부분의 뇌는 다른 쪽에 더 흥미가 있어서 말이야.”

    “그게 뭡니까?”

    “그걸 처음 본 네게 말해 줘야 할까? 물론 나는 미남계에 잘 넘어가지만, 음…….”

    그녀는 동생 무척의 얼굴선을 한참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는 형이랑 꼭 손잡고 먹방 해야 한다?”

    “네…….”

    “그래서 할 거니? 메카닉 마스터가 해주는 불법 시술.”

    “실험체가 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주기적으로 케어해 줄게. 표본 데이터는 계속 확보해야 하니까. 그리고 믿을지는 모르겠는데, 다른 마스터들과 비교해도 나 정도면 굉장히 성격이 좋단다. 윤리적이지.”

    문득 엄무척은 그녀가 과거 던전 하나를 초토화시켰다던 기사를 떠올렸다.

    보통 헌터들이 팀을 짜서 들어가는 것과는 달리, 그녀는 혼자서도 충분했다.

    그녀와 그녀의 드론들은 던전에 입장하는 순간, ‘팩토리’를 만들었다.

    ‘팩토리’는 드론을 만들어내는 마공장을 일컫는 말로, 팩토리에서 생산된 드론들은 몬스터들을 찢고, 분해했다.

    그렇게 분해된 몬스터들은 ‘팩토리’에 끌려가 신형 드론의 먹이가 되었다.

    그렇게 강화된 드론은 또 다른 몬스터들을 공격, 분해, 채집하였고, 그 몬스터와 닮은 드론이 또다시 기어 나왔다.

    그건 그녀가 던전이라는 존재에 흥미를 잃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녀와 팀을 한 번이라도 짜본 사람은 그녀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인간으로서의 감각 하나가 마비되어 있다고.

    엄무척은 생각했다.

    ‘윤리적……? 정비가가 윤리적이라.’

    저 말이 사실이라면 다른 메카닉 마스터들 중에 제정신인 놈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리라.

    “알겠습니다. 기니피그가 되어 드리죠.”

    “똑똑한 친구랑은 대화하기 편해. 참, 능력을 향상시켜 준다고 했지, 시술 중에 안 아프다는 말은 안 했다?”

    “네.”

    “그래.”

    그녀의 손짓에 드론들이 대형을 잡았다.

    “맞다. 오늘 대화는 녹음했다?”

    “네.”

    그녀는 슈트 가방에서 그가 받기로 한 B급 각성석을 꺼냈다. 새빨간 빛이 마치 사람의 심장처럼 맥동했다.

    “좋아. 마음에 들어.”

    “형이 걱정하지 않게 오늘 대화는 비밀로 부탁드립니다.”

    “그래. 하여간 우애가 끔찍하다니까. 우리 집안은 벽돌 한 장으로 칼부림 나는 곳인데 말이야.”

    드론 하나가 음악을 연주했다. 놀랍게도 비발디의 사계였다.

    ‘악취미군.’

    그때 그녀가 말했다.

    “맞다. 개화된 능력은 네가 살아온 인생에 강하게 영향을 받을 거야. 각성석으로 각성이 되는 동안 이상한 꿈 꿔도 놀라지 마라.”

    그 생각을 끝으로 의식을 잃었다.

    * * *

    몽롱한 의식 속에서 고통은 그대로 느껴졌다.

    몸이 해체되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가 몸을 한번 찢었다가 재조립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고통이 잦아들 즈음, 이상한 꿈을 꾸었다.

    어릴 때의 형이었다.

    ‘헤헤헤, 이 형이 햄 구해 왔다!’

    몬스터 웨이브 사태가 일어났을 때, 세계 여느 나라가 그랬듯 우리나라도 혼란에 휩싸였다.

    그나마 나라의 형태를 온존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복지가 붕괴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형은 멍든 손을 옷깃으로 감추고는 햄을 잘라서 내주었다.

    사실 형이 가져온 건 진짜 햄이 아니었다. 고기를 가루로 갈아서 전분과 섞은 것으로, 진짜 햄과는 다른 종류였다.

    하지만 둘은 그때 그게 햄인 줄 알았다.

    그걸 하나 구해 오면 오랫동안 같이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사실 엄연히 말해 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왜인지 형은 한참이나 아무 말을 못 하고 부끄러워했다.

    가난이란 건 그런 것이었다.

    남들은 사소하다 생각하는 게 어째서인지 가슴에 박혀서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형은 햄을 썰었다.

    [햄]

    이상하게도 그것은 햄의 형상이 아닌 햄이라고 쓰여 있는 글자였다.

    ‘형, 이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형이 있는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형이 아니었다.

    [형]

    글자만이 그곳에 살아 있는 것처럼 쓰여 있었다.

    놀라서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집의 형상 대신 다른 것이 있었다.

    [판잣집]

    [남은 유통기한 40일]

    철거될 집이었다. 엄무척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땅]

    [더러운]

    [아이스크림 봉지]

    [개미]

    [개미]

    [아이]

    [어른]

    구토감이 치밀어 오른다.

    정신 자체가 오염이 되는 기분이었다.

    청년은 계속 달렸다. 그리고 그 끝에 한 노인이 서 있었다.

    이 노인만은 글자가 되지 않았다.

    낡아빠진 로브를 뒤집어쓴 노인은 주름진 손으로 턱을 긁적였다.

    -신기하구나.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한 아이가 있다니. 음…… 그래. 편법을 썼군.

    [누구세요?]

    목소리가 사물이 되어 떠오른다.

    마치 만화 속의 말풍선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래. 그 아해 때문이구나. 그 아해는 끊임없이 진리의 강에 접속하고자 해 왔지. 우리 쪽에서도 주시하고 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군. ‘탑’에는 귀찮은 존재야.

    [여긴 어디입니까.]

    -신기하구나. 언어의 힘을 자각했으면서 육체적 잠재력도 놀랍다니.

    노인은 이쪽 말은 조금도 듣고 있지 않았다.

    이윽고 앙상한 손가락을 펴서 빛 무리를 만들어냈다.

    [진리의 편린에라도 도달한 자는 선물을 갖게 되지. 넌 어떤 선물을 가지고 싶으냐.]

    -형을 돕고 싶습니다. 그걸 위해서라면 뭐든…….

    [가족을 지키겠다? 간단하지만 좋은 바람이구나. 그거라면 인과율에 크게 저촉되지 않을 테니. 하지만 먹물에서 태어난 아이야. 특이점을 돕는 건 쉽지 않을 거란다. 자, 그러니 이걸 받고 나가 주려무나. 이곳은 세계의 끝, 깊은 묵상의 바다. 오래 있어 봐야 미치기만 할 뿐이란다.]

    노인의 빛이 몸에 닿는 순간, 엄무척의 몸이 튕겨나갔다.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엄무척을 향해 노인이 말했다.

    [잘 가렴. 멸망할 세상의 아이야.]

    멸망할 세상?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의식이 천천히 돌아온다. 몸을 찌르는 고통이 욱신욱신 밀려왔다.

    기계음이 울렸다.

    “오, 성공했네.”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니 가장 먼저 보인 건 형의 걱정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비가가 말했다.

    “영감탱이에게는 안부 잘 전했니?”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말한 영감탱이가 방금 만난 그자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녀의 질문과 동시에 형이 와락 끌어안았다.

    “형.”

    “괜찮아……?”

    “응. 근데 그렇게 꽉 안으면 아파.”

    그제야 화들짝 몸을 놓았다.

    비가는 차트를 닫으며 말했다.

    “A급이 된 걸 축하해. 꼬맹아.”

    “A급이요?”

    병실 안에 있는 모두가 놀라서 술렁거렸다.

    * * *

    [기록사]

    등급: A

    문자를 사용해 세계를 변화시킵니다.

    심연의 도서관에서 끌어낸 문자들은 술자의 육체를 강화시키고 적을 파괴합니다.

    “대박이군. 명문대 로스쿨 출신이 각성하면 이렇게 되는 건가?”

    정지한이 동생의 능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나는 이 능력이 좋은지 안 좋은지 전혀 모르겠다.

    A급이라고 하니 엄청나다는 것 정도만 짐작할 뿐.

    이 이야기를 하니 동생이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기록, 강화.”

    그러자 내 피부에 ‘강화’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피부가 딱딱하게 변하더니 강철처럼 단단해진다.

    “와, 이거…… 쉘튼 놈이 썼던 강화 스킬과 비슷한데?”

    시험 삼아서 벽에 주먹을 쿵쿵 때려 보았다.

    헌터용으로 만든 특수 벽인데도 주먹이 전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벽 전체가 울리는 게 세게 치면…….

    콰아앙!

    주먹 모양으로 벽이 파였다.

    아이고, 설마 이거 물어 줘야 하는 거 아니겠지?

    “하하하…….”

    동생은 뭐가 즐거운지 한참 웃었다.

    “어디까지 가능해?”

    “아직은 초반 스킬이라 쓸 수 있는 단어가 몇 개 없어. ‘강화’, ‘가속’, ‘중량’, ‘경량’. 죄다 이런 것들뿐이야.”

    정지한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렇게 물었다.

    “정말 그것뿐입니까?”

    동생이 답했다.

    “네. 그것뿐입니다.”

    “물론 대단한 클래스지만 그것만으로는 A급이 되기에 부족할 텐데요.”

    “저야 모르죠.”

    동생은 태연하게 답했지만 나는 안다.

    저건 시치미를 뚝 뗄 때 짓는 표정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