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17화 (17/305)
  • 제17화

    용병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상대는 일반인, 그것도 트레이닝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법대생.

    이쪽은 수많은 아수라장을 거쳐 정하 그룹에 스카우트된 몸.

    치욕도 이런 치욕이 없겠지.

    그 순간, 용병의 주먹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능력을 쓸 때나 나오는 현상이었다.

    “자, 잠깐!”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놈의 주먹이 동생을 향해 총알처럼 쏘아졌고.

    동생은 그것을 아까와 같이 유능제강의 묘리로 흘려 버릴 모양. 그러나 주먹은 동생의 어깨에 박혔다.

    빠아악!

    동생의 몸이 포물선을 드리며 날아간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유리벽에 부딪치고는 그대로 피를 토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최소 뇌진탕, 최소 골절, 최소 내장 파열!

    이 미친 새끼가 스킬을 민간인한테 써?!

    대한민국 장남 중에 동생을 눈앞에서 찢어버리는 거 보고 제정신일 인간은 없다.

    그게 집안의 장남 아닌가!

    정신 차려 보니 나도 동생을 붙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외국인이 외국어로 뭐라고 말했다.

    트레이너가 답했다.

    “대련이 격해져서 실수로 스킬이 새어 나왔다고 죄송하다고 하네요.”

    이 X발 새끼가?!

    실수는 무슨 놈의 실수. 저놈의 입술이 달싹이는 걸 분명 보았는데…….

    “형… 큭, 난 괜찮…….”

    급히 안마 스킬을 발동시켰다.

    -안마 스킬을 발동합니다.

    -다친 환자를 응급처치합니다!

    -숙련 경험치 보너스!

    이 와중에 숙련 경험치가 뜨는 게 어이가 없다.

    당연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문가가 필요해!

    “말하지 마. 어서 이 녀석 좀 치료해 주세요! 각성자 스킬에 당했어요!”

    트레이너가 당황하며 말했다.

    “비능력자와 대련하는 일이 많지 않아서 능력 조절이 안 됐을 겁니다.”

    네놈 눈깔은 옹이구멍이냐?

    “개소리라는 거 트레이너님도 아시잖습니까.”

    “아니…….”

    트레이너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와 동생, 그리고 정지한을 번갈아 보았다.

    정지한이 생각에 잠기다가 곧바로 외국어로 되물었다.

    그렇게 대화하는 사이 전문 의료진이 달려오고 있었다.

    속이 끓는다.

    내가 외국어는 까막귀이지만 저놈 표정을 보니 내 동생이 다친 건 사고였을 뿐이라고 지껄이는 모양이군.

    사과할 맘이 있었다면 이미 와서 나한테 손짓발짓을 다 했겠지?

    대화를 끝낸 정지한이 말했다.

    “이렇게 하자는군요. 자신은 고의가 아니었는데 끝까지 우긴다면 결국 헌터식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는군요.”

    오우, 나까지 저 꼴 만들겠다고 달려들 줄은 몰랐네.

    “헌터식?”

    “힘의 논리죠.”

    문명에서 야만을 살아가는 헌터들의 본질.

    이래서 10대에 각성자가 되고, 일생을 폭력의 왕으로 군림하며 살다 보면 이런 나쁜 어른이 된다.

    방산 업체, 에너지 회사, 엔터 회사가 삼위일체로 가호를 해주는 미친 세상에서 뭐가 무섭겠나.

    “대련에서 쉘튼을 이긴다면 쉘튼이 고의였음을 인정하고, 무슨 짓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 합니다. 하지만 진다면 형제 둘이서 머리 박고 엎드려서 한국식으로 사죄하라네요.”

    그건 일본식이다. 이 새끼야.

    정지한이 말했다.

    “대신 초보 루키이신 만큼 쉘튼에게도 핸디캡이 들어갈 예정입니다.”

    “뭐죠?”

    “3합까지는 선공을 양보하는 조건입니다. 백부님께서 보낸 용병분이신데 자존심이 강하셔서요.”

    벌써부터 물밑 싸움 시작인가.

    동생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하지 마…… 형…. 끄윽…….”

    숨을 쉴 때마다 통증이 밀려오는지 이마를 찌푸렸다.

    이 녀석은 이 와중에도 내가 다칠까 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가장 아픈 건 본인일 텐데도…….

    여기서 도망치면 장남이 아니지.

    나는 재킷을 벗었다.

    “한판 뜨죠.”

    * * *

    동생은 들것에 실려 의무실로 향했다.

    동생은 의무실로 향하면서 쉘튼이라는 놈에게 뭐라고 외국어로 말했는데 몰라, 뭔 소리인지. 욕은 아닌 거 같아.

    정지한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답했다.

    “우리 형 손톱 하나라도 다치게 만들면 나중에 회를 떠 버리겠다는군요.”

    나도 같은 마음이다. 동생아.

    그래서 회를 떠 버릴 생각이고.

    “후유증은 안 남겠죠?”

    “전문가 말로는 괜찮다고 합니다. 충격을 받는 찰나에 몸을 틀어 완화시켰다고 하네요. 일반인이 능력을 발동한 헌터를 상대로 급소를 지켜냈다는 사실에 놀라더군요. 게다가 당신의 치료 스킬도 효과적이었고요.”

    “정말 다행이네요.”

    “네. 각성석을 먹게 되면 얼마나 더 강해질지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

    내 표정을 읽었는지 정지한이 말을 이었다.

    “위로를 잘못한 것 같군요.”

    “정 대표님의 백부님께서 보낸 헌터라면 어쩌면 고의로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망한 싹을 밟아버리는 일은 스포츠 주간지에서도 심심치 않게 나오니까요.”

    “……그 가설대로라면 가장 유망한 싹은 당신이실 텐데요.”

    그는 더 이상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단지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없는 일로 해도 된다는 말을 함께 덧붙였을 뿐.

    정지한은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보탰다.

    “3합을 버틴다는 건 꽤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사실은 아닙니다. 몬스터를 상대해 보신 일은 있으셔도 사람을 상대해 본 일은 없으시잖습니까. 둘은 전혀 다른 전투죠.”

    왜일까.

    어쩐지 나를 시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걸.

    자신의 헌터다. 그것도 꽤나 출혈을 감수하고 얻어 온 헌터.

    실적을 내기도 전에 자신의 것이 다치는 걸 원하는 고용주는 없지.

    보통이라면 무조건 달려가 뜯어말려야 할 일 아닌가. (물론 말린다고 내가 듣지는 않겠지만.)

    어찌 되었건 그럼에도 저 인간은 내 반응을 살피고 있단 말이지.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 경고 몇 마디 할 뿐이라?

    “전 헌터 간의 싸움에 대해 모릅니다. 그러니 여쭈어볼 게 있는데요.”

    “뭐죠?”

    “3합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입니까. 삼국지에서 언급되는 걸 보긴 했는데.”

    “무기와 무기가 부딪치는 걸 기준으로 합니다.”

    “그러면 무기와 무기가 부딪치지 않으면 1합이 아닙니까?”

    내 질문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꽤 널널하네.

    정지한이 말했다.

    “쉽게 보시면 안 됩니다. 그는 방어 능력자로 자신의 몸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듭니다. 3합까지 공격을 양보한다고 했지, 방어를 안 한다는 소리는 안 했거든요.”

    “치사하네요.”

    “하하하, 앞으로 더 치사할 일이 많으실 겁니다. 장담하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래도 하실 겁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띠링-

    -헌터, 정지한이 당신의 무모함과 용기에 감탄합니다.

    -3따봉을 받았습니다!

    -헌터, 정지한이 당신에 대한 평가를 일부 수정합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이 새끼는 대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던 거야?

    “휴식 시간은 끝났냐고 물어보는데요?”

    심판을 맡은 트레이너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참, 그리고 한 가지 더 제안드릴 게 있습니다.”

    정지한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 * *

    쉘튼과 나는 트레이닝 룸 양 끝에 마주섰다.

    내가 받은 건 연습용 목검 두 자루.

    반면 쉘튼은 글러브를 낀 걸 보니 이놈, 애초에 격투 계열이었구나.

    그런 놈을 상대로 선타를 날리고 급소를 피하다니, 역시 내 동생은 천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부만 하던 민간인 아니던가.

    ‘그래. 말은 안 해도 내 동생의 재능에 질투를 했던 거지. 망할 새끼, 어딜 눈을 부라려. 콱! 그냥!’

    생각해 보니 방금 말은 악당 형제 2쯤 되는 쩌리의 대사네.

    근데 뭐, 알 게 뭐냐. ‘하하하! 내 동생을 묵사발로 만들다니! 네놈, 보통 놈이 아니구나! 덤벼라!’라는 대사를 뱉을 만큼 배포가 크진 않다.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형이고 평범한 대한민국 장남일 뿐.

    트레이너가 말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항복을 선언하거나 전투가 불가능하면 패배. 표시된 선 밖으로 나가면 패배입니다.”

    “선 밖으로 나가도 패배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개새끼일세. 그러면 아까도 민간인을 밀었어야지, 스킬을 기어이 쓰냐?

    애초에, 능력을 쓰지 않고 하는 대련에서 스킬을 쓴 것부터가 양아치 정신이지.

    이런 핵폐기물을 가만 놔둘 생각은 전혀 없다. 몸 성히 나갈 생각 마라!

    “3합을 양보하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선공은 엄지척 님이 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삑!

    호루라기가 울린 것과 동시에 놈의 몸뚱이가 푸르게 빛나더니 몸이 바위처럼 단단해진다.

    철벽 방어 스킬!

    우와, 3합 양보한다더니. 치졸한 거 보소.

    놈은 방어 자세를 취하고는 내 공격을 대비한다. 하지만 나는 놈의 예상대로 움직여 주지 않기로 했다.

    “실프의 축복, 풍운보법 발동.”

    -정령들이 당신을 축복합니다. 민첩성과 공격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걸음걸이에 바람과 구름의 묘리가 깃듭니다.

    바람이 불어온다. 푸른 빛 무리가 나를 감싸더니 내 머리카락을 부풀렸다.

    빛 무리 하나하나가 바람의 정령이다.

    “정령사?”

    지켜보던 헌터 하나가 중얼거렸다.

    미안하지만 그런 게 아니란다.

    풍운보법으로 내 몸이 미끄러진다. 놈이 움찔하는 사이 접근. 그대로 상대의 그림자를 밟았다.

    ‘그림자 훔치기!’

    -적의 그림자를 밟아 이동 속도, 방어력의 일부를 훔칩니다.

    놈의 그림자 일부가 내 발에 뜯겨 나갔다. 녀석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반대로 나는 더 빨라진다.

    ‘방어형 헌터라고 했지? 네놈 방어력의 10%만 뜯어 가도 나에게는 큰 이득이다!’

    놈의 그림자를 흡수하자마자 내 그림자의 모습이 커진다.

    -스타일리시한 스킬 모션에 관계자 1이 감탄합니다.

    -2따봉을 받습니다!

    “Fuck…….”

    놈은 그제야 뭔가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이게 보통 헌터 대 루키의 싸움과는 다르다는 걸.

    하지만 내가 공격을 한 것은 아니라서,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 진즉 그렇게 동생하고 대련할 때 약속을 지켰어야지!

    ‘한 번에 끝낸다! 염력 화살!’

    그림자를 밟고 있는 상태이기에, 녀석과 나의 거리는 손 뻗으면 닿는 거리!

    그 상태에서 초근거리 염력 화살을 쏟아냈다.

    콰과과광!

    그러나. 역시 놈의 단단해진 외피를 뚫지 못하고 소멸.

    녀석의 몸에 둘러진 강철 껍질에 금이 조금 가는 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어. 다음 수를 생각해 놨으니까.’

    놈이 주먹을 쳐든다.

    화살이 5개니 3합이 끝났다고 치나 보다.

    ‘알 게 뭐냐! 그 느린 주먹으로!’

    놈의 주먹이 내 얼굴에 정면으로 날아온다. 시야 가득 주먹이 보였다. 그 순간, 곧바로 다음 스킬을 사용.

    도망치는 그림자!

    그림자 훔치기와 같은 사람이 만든 회피 스킬, 신투가 만든 것인 만큼 내 몸이 잔상을 그리며 뒤로 물러나 놈의 공격을 피했다.

    머리카락 하나 스치지 못하자 놈의 이마가 꿈틀거린다.

    -절묘한 회피에 헌터, 이세찬과 김진아가 감탄합니다!

    -6따봉을 받았습니다.

    주먹을 휘둘렀던 것 때문에 자세가 무너진 녀석을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무명검식 백야(白夜), 암야(暗夜).

    쾌속, 속검의 묘리가 목검에 스민다. 목검을 날린 곳은 염력 화살로 처음 금을 낸 그 상처다.

    콰창!

    마치 철이 깨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며, 경화된 껍질이 박살이 난다. 동시에 녀석의 자세가 한 번 더 무너졌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리네.’

    이거 꼭 내가 아침을 깨우는 소리로 모닝콜 지정해 놓을 거다.

    그리 다짐하며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한 놈을 향해 두 번째 목검을 휘둘렀다.

    퍼억!

    살을 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몸이 꺾이며 비틀거렸다.

    “컥!”

    ‘아이고, 우리 친구 아프세요? 그래. 아프겠지. 원래 사람 때릴 때는 이런 거 모르죠?’

    뇌진탕에, 내장 파열도 의심스러운 상태였던 무척이를 생각하니 화가 뻗친다.

    ‘어디 한번 죽어 봅시다.’

    쐐에엑!

    백야가 깃든 목검으로 팔을 내리쳤다.

    우득하는 감촉이 손에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팔 골절 하나!

    “크악!”

    암야가 깃든 목검을 휘둘러 늑골을 후려친다. 여기도 우득 소리가 났지만 무시했다.

    늑골 골절 하나!

    “커헉!”

    이어서 쌍검을 이용해 난타하듯이 놈을 두드렸다.

    이타, 삼타, 사타.

    내 검격이 놈의 박살 난 몸뚱이를 떡 패듯 후려쳤다.

    “그만, 그만!”

    트레이너가 소리쳤다.

    띠링-

    -당신의 잔혹한 손속에 트레이너 1의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2따봉을 받았습니다.

    트레이너 바꾸셔야겠어요, 정 대표님.

    따봉 받은 건 좋은데, 사람의 알고 싶지 않은 정보도 알게 된다.

    “Wait, wait!”

    “응? 못 알아듣겠는데? 뭐라는 거죠?”

    트레이너는 말렸지만, 못 알아듣는 척하면서 놈의 안면을 개조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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