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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16화 (16/305)

제16화

또다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니 동생이 또 나를 빤히 바라본다.

“형…….”

방심하지 말라는 뜻.

나치고는 꽤 많이 경계하고 있는데 이 녀석은 그걸로도 부족하다 생각하는 걸까.

“실기 시험은 어떻게 봅니까?”

-별거 아닙니다. 지정된 게이트로 가서 사냥하면 됩니다. 안전상 문제가 생겼을 시 바로 실격 처리되고요. 전투 능력과 생존 능력을 측정하는 게 목적이죠.

말만 들으면 쉽다.

하지만 정말로 말처럼 쉬울까?

‘글쎄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리고 있는데 정지한이 말을 이었다.

-우선 장비를 맞추고, 기본적인 전투 훈련에 들어가죠. 너무 걱정하시지 않아도 될 겁니다.

“아, 아, 참!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집 이야기를 꺼내자 정지한이 답했다.

-그 문제는 쉽군요. 금방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 * *

다음 날.

차가 오는 소리가 들려서 창문 밖을 내다보니, 외제 차가 기숙사 앞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차에 대해서는 공부한 게 없어서 아는 바가 없지만, 모양은 중형 세단인데 폭이 차 두 대는 될 거 같았다.

유려한 곡선보다는 묵직한 직선으로 이루어진 차였다.

지나가던 사람들 모두가 폰을 들고 차를 찍었다.

차 앞머리에는 딱 봐도 무지무지하게 비싸 보이는 심벌이 박혀 있었다.

‘이상하게 생긴 차네.’

비싸 보이고 이상하게 생긴 차.

그런 차 문을 열고 나온 이는 정지한이었다.

정지한이 나오자마자 내가 있는 창문을 정확히 쳐다보았다.

저 인간도 각성자라고, 내가 있는 위치를 한 번에 알아차리는 건가? 대단하네.

“엄지척 씨. 모시러 왔습니다.”

어……. 고용주께서 직접 오시다니 이건 좀 오버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후다닥 옷을 입고 뛰어 내려갔다.

차에 가까이 가 보니, 운전사를 데려왔을 줄 알았는데 본인이 직접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고용주께서 앞에 앉았는데 내가 뒷좌석에 앉기는 좀 그래서 옆자리에 앉았다.

차는 마치 구름 위를 거니는 배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승차감이 엄청나군요. 주행감은 어떤가요?”

내 말에 그가 답했다.

“주행감은 참 별로예요, 이 차.”

“그렇게 비싼데요?”

“아니 뭐, 이 차 몰 돈이 있는 사람이 자기 손으로 운전하겠습니까?”

‘하고 있잖아?’라고 생각하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정하 그룹 트레이드 팀 쪽과 협력 계약이 끝났습니다. 능력을 적어 주시면 그에 맞춰서 장비를 맞춰 드리겠습니다.”

“얼마나 자세하게 쓰면 되죠?”

“자세하게 쓸수록 정확한 장비를 찾아 드리겠지만 대략적으로 쓰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핸들을 다시 꺾었다.

“……어차피 죽고 살기를 반복하다 보면 알게 되는 법이라 굳이 가짜로 쓰시는 건 아까운 일이죠. 마지막 패 하나 정도는 엎어 두시더라도 주력은 제대로 보여 주시는 게 좋겠군요.”

쭉 뻗은 한강변을 미끄러졌다.

한강을 따라 강변도로를 지나 다리를 건너, 터널을 통과해서 나온 곳은 서울치고는 한적한 곳이었다.

비탈길이 있는 것이 산을 끼고 있지만, 그래도 도심부.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는 이 서울 땅에 이렇게 한적한 곳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가 말했다.

“이 일대는 정하 그룹 헌터들이 머무는 안전 가옥들이거든요.”

“이런 곳도 있군요.”

언론에서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 내가 일하면서 마주친 헌터들도 이런 곳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하지 않았다.

“이번에 장기 계약에 들어간 헌터분들에 한해서 드리고 있습니다. 요즘 대헌 그룹 쪽에서 많이들 빼가고 있거든요. 헌터들에게 있어 셸터는 목숨과도 같으니까요. 캐슬에 헌터님들이 대거 살게 되겠죠.”

과연 정하 그룹 라이벌.

대헌 그룹에서 온 헤드헌터분 능력이 뛰어난 건 알았지만 그 정도이실 줄은 몰랐다.

차는 흰색 벽돌로 지은 3층집 앞에 섰다.

담이 무척이나 높아서 밖에서는 안에 뭐가 있는지 안 보이는군.

1층에는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는데 그가 오자마자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게 아닌가.

“여기가 어딥니까?”

내 질문에 정지한이 답했다.

“은퇴하신 분 집입니다.”

“은퇴요? 방금 전에 조성한 지 얼마 안 됐다고…….”

정지한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원 소유주분이 어제 던전에서 돌아가셨거든요.”

돌아가셨……어?

오늘 아침 포털 사이트 뉴스 기사에 최상급 헌터의 부고가 뜨긴 했었지.

나도 이름 석 자는 아는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돌아가셨다고요?”

“네. 몹시 안타까운 사고죠.”

슬픈 목소리와 그렇지 않은 표정 때문에 당황스럽다.

혹시 나에게 집을 마련해 주겠다고 사고사 처리를 한 건 아니지?

에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내 자의식 과잉이지. 하하.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거대한 액자가 보였다.

정하 그룹 장남, 정한택과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었다.

정한택의 오른편에 서서 친밀해 보이는 자세로 찍은 것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걸 보여 주었다.

“어…… 정한택 이사님과 절친하셨군요.”

“네. 제 백부님의 오른팔이셨죠. 승계 싸움이 코앞인데 참으로 안타깝게 돌아가셨습니다. 부디 천국에서 영면하시길…….”

……네가 죽였냐……?

뒤통수에서 싸하게 뭔가가 밀려오는군.

이 새끼가 직접 죽인 건 아니더라도 뭔가 한 팔은 걸쳤을 것 같은 그런 촉이 바X예투를 합창하고 있다.

정지한이 말했다.

“짐작하셨다시피 호화 펜트하우스니까요. 이 정도 집에 머무는 헌터분들은 대한민국에 몇 없으실 겁니다. 헌터의 목숨을 지킬 톱클래스 셸터지요.”

……그렇군. 그렇게 이곳 집주인은 강제 은퇴를 당했구나.

“가격은 적당히 잘 맞춰 드리겠습니다. 구매하시겠습니까?”

그는 서류를 꺼냈다. 거기에는 거저나 다름없을 만큼 저렴한 금액이 적혀 있었다.

“헌터 간의 양도는 감세니 더욱 이득이실 겁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정하 그룹은 가장 가지 말았으면 하는 곳 중의 한 곳이기도 합니다.

대헌 그룹 최현진 과장님께서 말씀하신 경고가 빨간불을 웨에엥 울리는군.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공짜는 없는가.

그가 말했다.

“계약서에 사인을 끝내시면 좋은 곳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어디죠?”

“훈련장입니다. 많은 헌터님들이 벌써부터 엄지척 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를요?”

“그럼요. 올해의 루키이신걸요.”

* * *

상당히 좋은 가격이지만 공짜는 아니지.

공짜면 오히려 이쪽에서 부담스러우니 거절할 셈이었는데 미리 알고 있다는 듯 적당한 가격을 제시했군그래.

거기다 일반 부동산 계약서와 양식이 다르다 보니 사인을 하기 전에 동생에게 보여 주고 하겠다고 답했다.

“잘됐군요. 동생분도 기본 훈련 중이십니다. B급 각성석을 받기 전에 몸을 만들어 둬야 해서 상당히 혹독하게 수련 중이시죠.”

벌써!?

“각성석은 언제……?”

“다음 주쯤 받고 싶다고 하셔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단히 준비를 할 모양이구나.

하긴, 한 번밖에 없는 기회지.

급한 마음에 돌부터 삼키는 건 하수나 할 짓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등급을 띄울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각성석을 사용하는 게 맞는 일.

‘나도 방심하면 안 되겠는걸?’

형이 동생만 못하다는 소리는 사양이다.

확실하게 추월해 버리고 싶은데, 그러려면 수련에 매진해야겠어.

그가 안내한 곳은 방탄유리로 되어 있는 수련 센터였다.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게 만들었는데 능력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 모양.

“이리로.”

정지한은 성큼성큼 앞으로 나갔다.

지나가는 헌터들이 입고 있는 추리닝은 색과 마크가 조금씩 달랐다.

모두 정하 그룹의 알파벳이 적혀 있지만 그 안에서도 서로 다른 옷이라.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헌터 팀들이 세분화되어 있군요.”

“파벌 싸움이 심하다는 말을 우아하게 돌려 말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답.

심지어 추리닝마다 재질과 재봉선, 기본 디자인도 다른 것이 팀마다 다른 업체에 외주를 맡긴 게 분명했다.

이렇게 통일감 없는 것도 능력이야. 아주.

‘승계를 앞두고 파벌 싸움이 심하다고는 들었어도 이 정도인 줄은 몰랐는걸.’

그가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이제 와서 도망치시는 건 아니겠죠?”

“도망치면 놔주실 겁니까?”

“돈만 돌려주신다면야 뭐, 도리가 있겠습니까. 잘난 동생님께서 계약서를 워낙 꼼꼼하게 짜 두셔서요. 질척하게 몇 년 정도는 민사법원을 왔다 갔다 할 수야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엄지척 씨에게 미움받을 테니까요.”

미움받는 걸 걱정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다음을 예비한다는 뜻.

말속에 칼이 숨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 모르는 척 닥치고 있어 볼까.

침묵은 금이니까.

“기대만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음…….”

“네,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분이시죠. 근거리, 원거리, 회복, 보조계 모든 능력을 사용할 수 있고, 유달리 정신력이 강한 정도. 하지만 아직은 새내기. 조건 올리실 때는 득달같이 올리셨으면서 이제 와서 겸손 떠실 건 없습니다.”

아니, 뜯긴 만큼 뜯어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져서요. 이보세요.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마침 유리벽 안에 헌터들 몇과 땀에 흠뻑 젖어 있는 동생이 보였다.

“형!”

녀석은 내가 인사하기도 전에 먼저 알아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원래도 문짝만 한 녀석인데 점프까지 하면서 손을 흔드니 아주 그냥 호러네.

띠링-

-3따봉을 받았습니다!

역시 현물이 최고다.

동생의 반가움이 진실되게 느껴진다.

“헤헤헤.”

녀석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나한테 달려오려다가 트레이너에게 제지당했다.

녀석은 비 맞은 개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것만 마저 끝내고 갈게.”

동생은 상의는 완전히 벗고 추리닝 하의만 입고 있었다.

혹독한 단련으로 잘 발달된 승모근이 도드라졌다.

원래도 몸이 좋은 녀석이었는데 이제는 어딘가의 헌터라고 해도 믿을 만큼 실전 위주로 잘 단련된 근육이랄까.

동생의 맞은편에는 동생보다 키가 조금 큰 외국인이 자세를 잡고 서 있었다.

정하 그룹에 외국인 용병으로 들어온 자인 모양이다.

“대련이라니요. 제 동생은 아직 각성자가 아닌데…….”

“능력은 봉인한 채 순수하게 육체 능력만으로 싸워 보는 거죠. 실전에 가까운 수련이라 가혹하긴 할 겁니다.”

“정말 각성 능력은 안 쓰고 싸우는 거 맞죠?”

“형제가 우애가 좋으시네요, 엄지척 씨.”

그 순간, 외국인 용병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탕!

동생은 곧바로 견제 킥으로 거리를 두었다.

용병은 아프진 않았는지 계속해서 동생을 향해 훅을 날렸다.

여기까지 바람이 느껴질 만큼 강렬한 펀치.

‘이거 크게 다치겠는걸.’

아무리 능력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상대는 프로 헌터.

한번 견제 킥을 날리는 데 성공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건투했다 할 수 있겠지.

그때 동생의 팔이 킥을 옆으로 흘렸다. 그러고는 간격 안으로 들어갔다.

주먹의 시작이 보였다. 하지만 궤적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빠각!

턱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장내가 얼어붙었다.

정지한이 턱을 문질렀다.

“영춘권인가. 교양으로 배운 걸 저렇게 쓴다고?”

용병이 모르는 말을 뱉었다.

어느 나라 말인지는 몰라도 욕이라는 건 알 것 같네.

공방이 빠르게 이어진다.

‘힘에서 크게 밀리지가 않아?’

깨달았다.

맷집이나 실전 경험은 능력자인 용병 쪽이 훨씬 강하지만 힘에서는 큰 차이가 나질 않았다.

그리고 놀라운 건 뛰어난 동체 시력.

타탕!

원 펀치 후에 숨겨진 카운터펀치를 흘려서 막아내고는 다시 공방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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