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나는 무슨 표정을 지으며 녀석에게 말하고 있는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저 녀석을 동요시킬 만큼의 표정인 건 확실했다.
“형은 내가 헌터가 되는 게 싫은 모양이네.”
“그래. 위험한 일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지금이라도 각성석 판다고 이야기하면 돼.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러면…….”
“……나는 안전하고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래.”
“…….”
내 말에 동생은 아이스티 잔을 흔들었다.
얼음이 맞물리며 달칵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이 시끄러운 카페 한복판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작은 소리였지만 왜인지 내게는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동생은 한일자로 굳어진 입을 열었다.
“형. 나는 이제 그만 형 목숨값으로 살고 싶어.”
“목숨값이라니…….”
“맞잖아. 그만하자, 형. 내 생활비고 옷값이고 모두 어디서 나왔는지 나도 알아. 형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그런데도 형은 한 번도 힘든 티도 안 내잖아.”
“힘든 적 없어.”
“X발, 위험한 적도 없다고 하지 그래, 차라리. 내가 아직도 8살 어린애인 줄 알아?”
동생은 이마를 찌푸렸다.
“뭐라고 말하든 난 할 거야. 알잖아.”
“…그래. 너도 다 컸으니 네 인생 네가 정해야지.”
저 녀석이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설득은 영영 불가능하겠구나.
그렇다면 결론은 정해져 있다.
“가까이 와 봐.”
나는 녀석만 들을 수 있도록 작은 목소리로 내 능력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동생의 눈이 살짝 커지는 것과 동시에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와… 미쳤는데……?”
“응, 그래서 비밀이야.”
“그래. 비밀로 해야겠다. 어차피 헌터들도 저마다 진짜 패는 뒤집어 놓는다며.”
“응. 헌터끼리 싸워야 하는 경우도 꽤 많으니까.”
인간과 몬스터의 싸움.
단순히 그 정도라면 괜찮다. 하지만 현실은 더욱 잔혹한 법.
몬스터보다 사람이 더 무서울 때가 많다.
동생이 턱을 문질렀다.
“어떻게 하면 형을 서포트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겠는걸.”
“하하하, 아직 각성석도 받기 전이잖아.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그나저나 일단 집부터 알아보러 갈까?”
“아니, 형. 내 말을 뭘로 들은 거야? 장비부터 사야지. 헌터 생활 할 거면 장사 밑천이 몸인데 장비 없이 어떻게 몸을 지켜?”
“무슨 소리야. 너도 나도 거주지가 불안정한데 같이 살 집부터 사야지. 네 말 따라 몸 보전하려면 거점이 될 집이 우선이야. 사람인 이상 먹고 자야 하는데 밤에 누가 침입하면 어떻게 막을 거냐? 헌터는 거주지부터 전부 특별 공사 해야 해.”
이건 논리적인 문제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또 따로 있지.
“그리고 우리 이제 남의집살이는 그만할 때 되지 않았니?”
“…….”
내 말에 동생은 조금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보험금은 친척이 꿀꺽하고 나와 동생은 제대로 된 곳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한 적이 없었다.
가족을 지키려면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으니까.
그래서 울 시간 같은 건 없었던 것 같고. 하지만 그만큼 가슴 한구석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었으니.
“이참에 한부터 풀자.”
대헌 그룹에 계속 끌린 이유가 그거 때문이기도 했지.
그건 평생 남의 집을 전전해 온 사람들만 아는 한(恨) 같은 거니까.
올해도 월세가 오를까?
벽에 못을 박아도 될까?
방충망에 구멍이 났는데 전화를 해야겠지?
이 짓은 언제 끝날까.
그때 제시했던 캐슬 아파트가 아쉽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제 집 정도는 알아서 살 돈이 생겼다.
“이거 다 먹고 부동산 가자.”
그렇게 거대 크림소다와 특대 와플 아이스크림을 사내 둘이서 해치우고 있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아, 저어…….”
20대 정도로 보이는 대학생으로, 모르는 사람이다.
조심스러운, 하지만 확신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어, 엄지척 님 맞으시죠?”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그 게이트 사건 때…….”
“아…….”
못 알아봐서 조금 미안하네.
내 표정을 읽고 그녀가 말했다.
“아니, 아니에요.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한걸요. 그때 휩쓸린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저랑 저희 엄마랑 그때 있었거든요. 덕분에 살았어요. 고맙습니다!”
그녀가 갑자기 크게 허리를 굽혔다.
-구출받은 시민 1이 크게 감사를 표합니다.
-3따봉을 받았습니다!
목소리가 컸기 때문일까.
갑자기 90도 각도로 감사를 했기 때문일까.
카페 사람들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띠링-
-아이스 아메리카노 연하게를 먹던 시민 1이 훈훈해합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프라푸치노를 먹던 시민 1이 놀라서 당신을 바라봅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나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누구라도 했을 일입니다.”
“이거라도 받아 주세요.”
그녀는 내 앞에 쇼핑백을 내려놓았다.
딱 봐도 카페에서 파는 텀블러 세트.
눈사람이 그려져 있다.
뭐든 주고 싶은데 수중에 가진 게 없어서 급하게 산 모양이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돈은 안 받으신다는 말 들어서…. 그… 받아주실 거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제야 그녀가 밝게 웃었다.
“저희 엄마도 엄청 고마워하셨어요. 이 말 꼭 전하고 싶었어요.”
그녀의 웃음소리에 내 마음도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를 보내고 나니 동생이 나를 불렀다.
“형…….”
뒤를 돌아보니 동생이 존경심이 가득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다음에는 위험한 일은 하지 말자. 형 목숨만 챙기자.”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그랬다. 감동은 감동이고, 가족이 죽을 뻔한 건 죽을 뻔한 것.
이놈은 원래 이런 놈이었다.
어쨌든 시민들의 따뜻한 시선과 따봉 속에서 나는 오늘도 쏠쏠하게 성장했다.
* * *
하루 종일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아파트는 경비원이 24시간 지켜 주니까 치안이 좋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생활 보호와 개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고, 단독 주택은 치안은 뭐 없는데 사생활 보호와 개조가 편하네.”
매물을 봐도 봐도 2프로씩 부족해 보이네.
첫 집이라 더 눈만 높아지고 있는 건가.
“그나마 양쪽 다 되는 게 요즘 각광받는 호화 빌라 쪽이고.”
“대헌 그룹?”
“그래. 그쪽 그룹에서 시공 들어가는 상품들.”
어려운 문제다.
“자신 있으면 그냥 시공 단계부터 손대서 지어 버리면 되긴 하는데…….”
내 말에 동생이 한쪽 눈썹을 들었다.
“눈 뜨고 코 베이기 딱 좋아, 형.”
“고소한다고 해도?”
“고소하는 동안의 시간과 비용은 누가 책임질 건데?”
드림 하우스 시공했다가 비만 오면 천장에 물이 새고, 타일에 곰팡이가 피고, 뜬금없이 흰개미가 대들보 타고 내려온 이야기는 전설의 레전드지.
동생이 말을 이었다.
“고소가 만능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손해를 보상해 주는 거지 없던 일로 만들어 주진 않아. 그리고 그 손해도 일부 보상만 되는 경우도 많고. 징벌적 손해배상이 말이 손해배상이지, 거기까지 이끌어 내려면 몹시 까다로워. 특히 현금 거래가 많은 건설 쪽은 더더욱.”
“…….”
“형, 왜 그런 눈으로 봐?”
“너 진짜 배운 놈 맞구나.”
내 말에 녀석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형의 칭찬이 기뻤던 모양이다.
그래, 한창 칭찬이 목마를 나이지.
“내 생각에는 이렇게 된 거, 은퇴한 헌터의 집을 매수하는 쪽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어.”
“형, 그거 괜찮은 생각이야. 헌터 간의 거래는 국가에서 세금을 깎아 주기 때문에 양도소득세도 감세될 거야.”
“…….”
“왜? 형.”
“역시 배운 놈이다. 난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
“무슨, 나야 형이 세운 아이디어를 보완한 것뿐이지.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는걸. 진짜 괜찮은 아이디어 같아.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일반 부동산에서는 구할 수 없겠네.”
“시기도 맞아야 할 거고.”
“응. 팔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
그때 전화가 울렸다.
[정지한]
동생이 반색했다.
“……마침 부동산 찾아줄 사람이 전화했네.”
“누가 보면 호ㄱㅐ…ㅇ……. 아니다. 받는다.”
-안녕하십니까. 엄지척 씨.
“아, 네, 네. 정지한…….”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는데 정지한이 말했다.
-편한 대로 불러 주십시오. 반말해도 괜찮습니다.
이런다고 진짜 반말하면 뺨 맞겠지.
“그럴 수는 없죠. 뭐라고 부를까요?”
-이거 참, 너무 벽을 치시는 것 같아 서운하네요.
“원하시는 게 없으시면 그냥 전에 부르던 대로 부르겠습니다.”
-음… 호락호락하게 편히 불러 주실 것 같진 않군요. 정 그러면 이번에 자회사를 차렸으니 사장님이나 대표님이라고 부르시는 게 좋겠네요.
“자회사요?”
-네, 헌터 관련 특별 자회사 그룹입니다. 자회사 쪽 이름은 회의 중입니다만 정해지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엄지척 씨도 그쪽에 소속되게 됩니다. 정예들만 모을 생각이거든요.
이놈은 대체 날 뭘 보고 이렇게 올려치기를 한단 말인가.
입가가 풀어질 뻔한 찰나, 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크고 처진 레트리버의 눈동자가 웃음기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쉽게 사람 믿지 말라는 경고였다.
“그러면 정 대표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정 형은 어떠신가요?
“하하하, 제가 어찌…….”
재차 거절하자 그는 아쉬운 듯 말했다.
-하여간 엄지척 씨는 참 고단수시네요.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고. 보통은 제가 그리 부르라고 말하기 전에 안달이 나던데.
그렇기야 하겠지. 정하 그룹의 손자 아니신가.
맨발로 달려 나가서 반겨야 할 사람이라는 걸 누가 모르겠나.
하지만 상대는 짐작하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조언자로 표기된 헤드헌터의 경고도 있고, 정지한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나를 신중하게 만든다.
속을 알기 어렵다는 점도 한몫하지.
내가 루키인 건 사실이나 이렇게까지 출혈을 감수할 만큼의 인재냐고 한다면 글쎄?
나는 아직 이 사람에 대한 파악이 끝나지 않았다.
정지한은 내 철벽에 오히려 안달이 난 모양이다.
-이것 참, 짝사랑도 할 짓이 못 되는군요. 아무튼 본론으로 넘어가서, 헌터 시험 수속이 끝났습니다.
“헌터 시험이요? 생각보다 수속이 빨리 처리되었네요.”
-네. 엄지척 씨는 헌터 보조원 출신이라 서류 시험은 면제된다더라고요. 바로 실기시험부터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헌터 시험.
모든 능력자들은 헌터 시험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등록해야 한다.
그렇게 등록된 능력자들은 국가에서 관리하게 되며 각종 세금 관련 혜택을 받는 것과 동시에 여러 의무도 지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지.
헌터가 되고 나서 멋모르고 사냥을 하다가 사망하는 케이스도 방지시켜주고.
자기 능력보다 난이도 높은 게이트 들어갔다가 죽으면 개인에게도 개죽음일뿐더러 국가에도 전력 손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 역시 엄격하게 관리된다.
“헌터 보조원은 필기시험 면제인 줄은 몰랐네요. 아마 헌터 보조원 자격증을 딸 때 필기시험을 쳤기 때문이죠?”
-네. 헌터 보조원 자격증 시험은 아무래도 헌터 필기시험보다 난이도가 높으니까요. 능력자가 아닌 일반인이 헌터와 발을 맞추면서 보조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죠.
“아, 그렇군요.”
-몬스터의 기본 생태나 사체 처리부터 독 관련 부분도 엄격하니까요. 합격하는 분들이 대단한 거죠.
하하하, 이렇게 내 얼굴에 또 금칠을 하시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