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그렇게 멍하니 따봉 상점 목록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부활 스킬 가격이 1,000만 따봉?’
대천사의 세레나데는 듣는 모든 이를 부활 + 치료하지만 이건 1인을 부활시키는 거라서 비교적 저렴(?)하시다네.
머리와 심장이 붙어 있어야 한다, 사망 후 제한 시간 안에 부활해야만 효과가 있다, 한번 부활시킨 사람은 10년간 같은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 등, 설명에 붙어 있는 이런저런 제약들이 무척 귀찮긴 하겠지만.
‘완벽한 질병 치료는 500만 따봉.’
암도 치료되는 모양이네.
‘만물을 통찰하는 신의 눈은 1,200만 따봉 하는군.’
효과는 헌터 상점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암 치료가 되는 스킬 같은 건 헌터 상점에도 없으니까.
‘이게 무슨…. 맞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각성할 적에 떠올랐던 메시지가 있었어.’
-신 ???께서 당신에게 관심을 표시합니다.
신에게 선택받은 헌터는 모두 강하지.
하지만 나 같은 케이스는 없었으니까, 이게 평범한 힘이 아니라는 건 뒷집 황구라도 알겠지.
신은 아무 헌터나 선택하지 않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신이 선택한 헌터들은 어떤 형태로든 신의 의지를 대행해야 하고, 그러다 또 많이들 죽어.
때로는 신이 헌터에게 직접 대화를 걸어 신탁을 내리기도 하고.
이건 뭐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 아닌가.
‘그러면 이 ???라는 신은 왜 내게 관심을 표하고 능력을 준 걸까? 그리고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상태로.’
장단점이 분명한, 양날의 검 같은 직업.
그야말로 관심병에 대한, 관심병에 의한, 관심병을 위한 능력이다.
그때 또다시 상점이 광고를 외친다.
-인덕! 인덕입니다! 따봉은 인덕이자 미래입니다!
관심 종자 특성을 가진 신인가.
근데 관심 종자가 아닌 신이 있긴 한가?
당장 그리스 신만 해도 축제가 소홀하다는 이유로 벌을 내리고, 오만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거미로 만들고, 번개 던져서 천벌을 내리지 않나.
켈트 신은 밧줄로 사람 목을 걸어 오딘에게 제물로 바치고, 로키는 온갖 장난을 치며 관심을 끌지.
잠깐.
신의 선택을 받은 헌터들은 신들과 대화가 가능하지 않나?
신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한참을 찾아보았다.
다른 이들은 대화창 아이콘이 빛난다는데 나는 그런 것도 없다. 구석에서 겨우 뭔가를 찾아서 누르니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시스템 준비 중입니다. 1.01 패치를 기대해 주세요.
“허허허…….”
와, 맥이 탁 풀리네.
왠지 싱거워지는 게 이 정도면 개그네.
그것도 잠시, 깊게 심호흡을 했다.
어차피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니까.
중요한 건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
‘어떻게든 따봉을 많이 벌어들이는 방향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알리는 게 가장 중요하겠네.’
따봉은 다른 이들이 주는 것. 그렇다면 다른 이들이 나를 많이 알아야 한다.
선행을 해도 남에게 보이도록 해야만 하겠지요?
‘그런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나.’
상점 창을 바라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분명 헌터들 스킬 중에 그런 게 있던데…… 찾았다!
[전방위 영상 촬영 스킬 - 1,000따봉]
등급: 노멀 (비성장형 F)
시전자의 반경 10미터 내외 360도 각도에서 자유롭게 영상 촬영을 할 수 있다. 촬영된 영상은 지정한 기록 매체에 자유롭게 저장 가능. 오토 모드 지원.
갓튜브 상위권 헌터들이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스킬이다.
자신이 본 것, 혹은 자신의 주변을 영상 촬영하는 스킬!
무슨 스킬이 그러냐고 하겠지만, 이걸로 던전 내부를 촬영하거나 사냥 장면을 촬영하는 데 쓰인다.
어느 파티를 가든 이 스킬을 가진 헌터는 꼭 한 명 끼는 게 국룰 아닌가.
그만큼 기록은 중요한 거니까.
심지어 이쪽은 오토 모드가 지원된다.
오토 모드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추가 설명이 붙었다.
-촬영 각도를 지정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알맞은 각도를 찾아 촬영합니다. 별다른 촬영 기술을 배운 적 없는 초보자에게 추천합니다.
그렇다.
같은 고양이 사진도 동생이 찍으면 얼짱 각도의 모델 고양이가 되고.
내가 찍으면 눈에서 레이저를 쏘고 잔상만 보이는 심령사진이 된다.
오토 모드는 그야말로 나 같은 똥손의 구원자가 될 터.
“구매.”
-1,000따봉이 차감됩니다.
‘그간 이 바닥에서 구르면서 알게 된 지식이 이럴 때 쓸모가 있네. 자. 이다음으로 확보해야 하는 건 자연 회복력이지.’
보통 각성자들은 한번 던전에 다녀오면 닷새는 쉬어야 한다.
체력은 몰라도 마력 회복이 될 때까지 위험한 일은 할 수 없기 때문.
모든 이능력 스킬들은 마력이 기반이다.
마력 회복을 해주는 비약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건 생산계 직업인 연금술사들이 제작하니까.
당연히 가격이 비싸지.
스킬도 스킬이거니와 일단 재료값이 상당히 깨지거든.
매번 나갈 때마다 포션을 물처럼 빨 수도 없을뿐더러, 마력 회복 포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력과 연금술 스킬, 둘 다 높아야 해.
지금의 나로서는 익힐 수 없다.
즉, 자연적으로 마력이 회복되는 스킬을 사는 게 중요하다는 거지.
마력 회복 스킬은 돈이 솟아나는 나무나 마찬가지.
이게 있느냐 없느냐가 해당 헌터의 연봉 자릿수를 결정하니까.
즉, 남들이 5일 쉬어서 회복할 때 나는 하루 만에 회복한다면?
단순 계산으로도 수익이 5배!
이건 비단 전투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지, 보조계로 활동한다고 해도 절실하겠네.
물건 제작을 하든 감정을 하든 결국 마력이 있어야 하니까.
‘그다음 남은 따봉을 n분의 1 해서 각 계열 스킬을 전부 산다!’
옛 선현은 이렇게 말했다.
한 우물만 파라고.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검사는 영원히 검을 들고, 궁사는 영원히 활을 든다. 마법사도 연금술사도 말할 것도 없다.
하나의 테크트리를 끝까지 찍는 것도 힘든데 굳이 곁가지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거다.
반면 내 생각은 달랐다.
‘꼭 마스터를 해야 할까?’
던전 몬스터에게는 상성이라는 게 있다.
물리 공격에 면역인 놈이 있고, 마법 공격에 면역인 놈이 있다. 독 면역, 저주 면역은 흔하고, 불 속성이나 얼음 속성 면역도 흔하다.
한 가지 속성만 특기인 경우엔 그런 상대를 만나면 죽거나 도망친다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거대한 불도마뱀의 사체를 갈라서 헌터의 주검을 꺼냈을 때 했던 생각이었다.
‘왜 이렇게 강한 사람이 죽었을까.’
나는 분명 이 사람이 불꽃으로 절벽을 폭파시키는 것을 보았다.
TV에도 수차례 나왔고, 프로그램 중간중간 들어가는 광고에서 매운 라면을 들이켜면서 ‘사나이는 불맛이지!’ 하는 광고 멘트를 외치는 것도 백 번은 들었다.
이 사람 나름대로 약점을 보완한답시고 물 속성의 각성자와 파티를 짜며 사냥을 해 왔지만 결국 남은 남이었다.
타인이 언제나 위기 상황에서 나를 보완해 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지.
위급 상황에는 가족도 버리는 세상에서 월급 몇 푼 나눈 사이가 목숨을 걸겠나?
그건 헌터 보조원으로 살아가면서 처절하게 깨달은 나만의 교훈이었다.
하나만 고를 필요가 있나?
전부 다 하면 되잖아?
꼭 날카로운 명도일 필요가 없다.
정작 가장 많이 쓰이는 건 손바닥 반만 한 만능 칼이다.
모두가 명도가 되려 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굳이 따라갈 필요가 있는 걸까?
‘포인트를 나눠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골라야겠다. 기껏 만능 인재라고 언론에서도 극찬했잖아?’
내 헌터 인생 평생의 방향성이 걸린 문제였다. 나는 생각보다 쉽게 결정했다.
“자, 먼저 회복 능력. 마력 회복 스킬 검색! 당장 익힐 수 있는 걸로.”
-검색 중입니다.
-검색 결과 200건.
검색 결과가 떠오른다. 생각보다 마력 회복 스킬이 많지 않다.
200건이면 많기는 한데, 이 정도는 하나씩 다 뒤져 보자.
그렇게 오래 검색하고 나니 스킬 두 개가 돋보였다.
[아크 드래곤식 마력의 심장 - 50,000따봉]
등급: 유니크 (성장형 F)
마법 종족이라 불리는 드래곤은 심장을 사용해 마력을 모은다. 이러한 드래곤의 특성을 연구해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주의, 다른 마나 심법을 익혔을 시 스킬 습득 불가, 레벨 2 이상의 육체도 습득 불가
-마력 회복량 100% 증가
-습득 시, 마력의 고리 (1서클/패시브) 스킬을 추가 습득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회복량이 더욱 증가합니다.
-습득 조건 레벨 1
*경고문을 무시한 사고에 관해서 본 사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거참 살벌하다.
한마디로 레벨이 오르기 전, 어떤 심법도 익히지 않은 몸 상태에서 시작해야 하는 스킬이다.
심장을 건드리기도 하고, 몸 자체를 재구성시키기 때문에 이미 한번 구성된 몸이 무리하게 익히게 되면 크게 위험해지는 모양이다.
컴퓨터로 치면 백업 후, 기본 운영체제를 정하는 일이다.
잘못하다가는 프로그램 충돌이 몸뚱이에서 터진다고 보면 된다.
거기다 비싸!
하지만 숙련이 될수록 회복량이 증가하는 성장형 스킬인 데다가 마력의 고리라는 추가 스킬을 얻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인가.
마력의 고리는 검색하니 이렇게 나왔다.
[아크 드래곤식 마력의 고리 - 단품 비매]
등급: 유니크 (성장형 F)
마력의 심장을 사용했을 때 몸속에 마나가 고리 모양으로 회전한다.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마력 최대 저장량을 늘려주고 스킬 사용 속도를 높여준다. 마력을 갓 느끼기 시작한 육체만이 이 스킬을 습득할 수 있다.
내게는 제약이 없다시피 한 스킬.
그다음 주목을 끈 스킬이 하나 더 있다.
[마력 회복의 비전 마법진 - 10,000따봉]
등급: 레어 (비성장형 C)
상기의 마법진을 그리고 그 위에 머무를 시 마법 회복률이 200% 증가한다.
심플한 설명.
마법진 설치 방법이 복잡하고, 그렇게 만든 마법진 위에만 있어야 한다는 게 문제지만 그건 집에서 그리면 될 문제다.
“두 스킬 모두 구입.”
-60,000따봉을 사용하여 [아크 드래곤식 마력의 심장], [마력 회복의 비전 마법진] 스킬을 구매합니다.
휘우, 목돈이 빠져나간다.
그래도 두 스킬이 합쳐지면 회복량은 300% 증가!
돈값을 하길 바라야겠는걸.
‘이제 남은 따봉은 4만 5천 따봉인가.’
우선 전투.
전투 스킬이라고 하면 몬스터 뚝배기 깨는 장면만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그건 스테이크를 만들겠다고 통 쇠고기를 불에 굽고 마는 것과 같다.
맛있는 스테이크를 만들려면 굽기 전에 고기를 준비해서, 먹기 좋게 썰고, 양념에 재워서 숙성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말이지.
전투도 마찬가지.
공격 스킬, 방어 스킬, CC 스킬, 회복 스킬, 축복 스킬, 이동 스킬, 패시브 스킬.
일곱 가지가 전부 다 필요해.
‘동생이 봤다면 왜 이리 까다롭냐고 휘파람을 부르겠는걸.’
생존 문제 아닌가.
기분대로 결정하는 게 더 이상한 거지.
보조계로는 제작과 감정. 두 가지만 있으면 돼.
감정은 이미 있으니까 패스다.
‘제작은 뭘로 하지?’
하나씩 전부 찾아보았다.
[무쇠 드워프의 대장술]
무쇠 드워프라는 일족의 대장장이 기술이 담겨있는 모양이다.
가격도 괜찮네.
하지만 대부분의 재료들이 지구에서는 구하기 힘든 광물과 몬스터들의 사체들인데 이거.
저걸 구할 수 있으면 차라리 남이 만든 걸 사겠다.
[달빛 엘프족의 대장 기술]
재료는 둘째 치고, 기본 습득 조건이 정령술이네.
그림의 떡이니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