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12화 (12/305)
  • 제12화

    그래도 지라시 중에 그나마 긍정적인 이야기가 하나 있다.

    교내 왕따 가해자를 죽도록 팼단다.

    왕따 가해 학생은 같은 재벌 그룹의 아들로, 신고한 피해 학생이 도리어 전학을 가게 생겼다는 말에 못 참고 달려가서 팬 일화가 있다.

    가해자 배경이 그래도 정하 그룹만큼은 아니었는지 결국 가해 학생이 전학을 갔지만 폭행은 폭행이라 다시 구설수를 무마하려고 정하 그룹이 돈을 또 풀었다는 이야기.

    ‘지금 봐서는 불의를 굉장히 잘 참을 것같이 구시는데.’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가…… 있나?

    최현진 과장이 말하는 정지한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정지한은 그야말로 전혀 다른 사람이니까.

    ‘모르겠다. 철이라도 들었나 보지.’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폰을 껐다.

    각성석은 다음 주에 전달한다고 했다.

    귀하디귀한 물건이니 아무래도 바로 옮기지는 못하는 모양이네.

    동생은 그동안 신변 정리를 하기로 했다.

    ‘나 자퇴할 거야.’

    미쳤냐는 말에 동생이 답했다.

    ‘B급 이상 각성자가 변호사 하는 게 더 미쳤어. 형, 돈 버는 금액대가 다른데 왜 그걸 해?’

    법조인의 꿈은?

    내 질문에 동생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꿈? 무슨 꿈? 나는 돈 벌어서 빌딩 사는 게 꿈인데?’

    그랬다. 동생 엄무척은 굉장히 현실적인 놈이었다.

    더 큰 돈벌이가 생기자 뒤도 안 보고 자퇴하겠다고 할 정도로.

    피눈물이 날 것 같아 일단은 휴학이라도 하라고 사정했다.

    동생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러마 했다.

    정지한이 말했다.

    ‘각성석을 받기 전에 몸을 만들어 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릇이 좋을수록 각성 효율이 올라가니까요.’

    동생은 답했다. 독하게 운동하겠다고.

    정지한은 돕겠다고 말하면서 기업 소속 구단이 사용하는 피트니스 센터로 보내겠다고 했다.

    식단부터 트레이닝까지 한동안 죽을 만큼 힘들 거라고, 정 힘드시면 포기하셔도 된다며 웃으며 말했다.

    동생은 이게 다 형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그게 무슨 농이냐고 같이 웃으며 답했다.

    ‘형, 나 없는 동안 혹시라도 추가 계약서를 들고 오면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돼.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손가락, 도장 전부 잘 간수하고.’

    아무래도 동생은 정지한을 쓰레기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동생은 그렇게 신변을 정리하러 갔다.

    그리고 나는 기숙사에 다시 혼자 남아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정지한이 준 네모난 상자를 만지작거리면서.

    “집에 들어가면 열라고 했지.”

    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걸까.

    룬문자가 있는 걸 보니 적어도 어디 공산품 물건은 아니라는 건 알겠다.

    80억에 B급 각성석.

    정지한은 내 가치를 그렇게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망설이는 것도 잠시, 안을 열어보았다.

    달칵-

    안에 들어 있는 건 시계였다.

    동그란 판에 가죽 끈.

    판은 평범한 아날로그시계로 시침, 초침, 분침이 돌아가고 있다. 날짜도 작게 표시되어 있어서 시간에 따라 갱신되는 모양이네.

    시계 뒷면은 톱니바퀴가 비치도록 투명하게 설계되어 있었는데.

    째깍, 째깍, 째깍.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풍긴다는 것 말고는 그냥 평범한 시계 아닌가.

    회사 로고도, 건전지나 태엽을 돌리는 곳도 없다.

    “아니, 계약 기념으로 주는 거면 정하 그룹 마크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냥 줬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맞다. 따봉 포인트 남아돌지, 감정 스킬을 사 볼까?”

    헌터 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돈이다.

    던전에서 뭔가를 얻어도 물건의 가치를 모르면 후려쳐지기 십상.

    눈 뜨고 코 베이지 않으려면 감정 스킬은 있으면 좋지.

    “상점 오픈.”

    띠링-

    -상점을 오픈합니다!

    -험난한 세상, 인덕만이 미래입니다! 인덕을 쌓아 더 큰 따봉을 얻으세요!

    오늘도 약 빤 광고 문구와 함께 상점이 열렸다.

    “어?”

    그런데 상점 외관이 전과는 어째 좀 다르다?

    전에는 버스 정류장에서 흔히 보는 작은 가판대였다면 지금은 제법 커졌다.

    ‘뭐지? 기분 탓인가……? 아닌데, 뭔가 상점 디자인이 좀 바뀐 것 같은데?’

    일단 할 것부터 하자.

    “검색, 감정 스킬.”

    띠링-

    -1,267건이 검색되었습니다.

    “시전 시간 10초 내외, 그리고 내 능력으로도 익힐 수 있는 것으로.”

    -검색 중입니다.

    -121건이 검색되었습니다.

    리스트를 쭉 읽어 보면서 느낀 게 하나 있다.

    ‘생각보다 감정 스킬이 호락호락하지 않네.’

    감정 스킬만 극한으로 익힌 감정사들이 왜 돈을 많이 버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감정을 하는 것만으로도 체력과 마력이 소모된다. 그도 아닌 것들은 따봉 포인트가 많이 나갔다.

    ‘현자의 눈이 10만 따봉? 돌았나?’

    현재 10만 8천 따봉이 모였다.

    앞으로 전투나 회복, 방어 스킬에 써야 할 피 같은 따봉들 아닌가.

    감정 스킬을 익히긴 하되 포인트는 최소한으로 해야 해.

    뭔가 꼼수가 없을까?

    그때 불현듯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감정 스킬 중에 성장형 스킬만 추려 줘.”

    -1건이 검색되었습니다.

    [관찰의 눈]

    등급 : 노멀 (성장형 F)

    사물의 본질을 파악한다.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스킬 레벨이 증가하며 더 높은 스킬로 진화한다.

    진화 예정 : 통찰의 눈 (성장형 D)

    가격 : 1,580따봉

    “아, 이거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지불할 수 있겠네. 보통 등급은 노멀, 레어, 에픽, 유니크, 레전드의 순서로 좋다.

    거기다가 성장형 스킬.

    처음 사용할 때는 보잘것없는 효과지만 사용할수록 더욱 스킬이 진화하는 형태.

    성장할수록 랭크가 상승하는 형태다. 성장 안 하는 스킬은 따로 비성장형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어차피 나는 초보자이고 그렇게 몬스터를 잡았는데 웃기게도 레벨 1이다. 아직도 초보자 패키지 적용 상태.

    경험치와 아이템 증가율 보정이 붙고 있지.

    경험치 보정이 있다고 해도 레벨이 오르진 않으나 스킬 경험치는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가만있자, 이걸 파고든다면 대박인데?’

    레벨 1로 고정된 이상, 초보자 패키지로 영원히 꿀을 빨 수 있다는 뜻이었다.

    “관찰의 눈 구입!”

    -관찰의 눈을 구입합니다!

    내 손에 스킬 북이 떠올랐다.

    스킬 북을 펼치자 스킬 북이 빛으로 사라지며 사용 방법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방법은 간단했다.

    물건을 보며 관찰이라고 외치거나 마음속으로 생각하면 된다.

    “관찰.”

    시험 삼아 시계를 향해 관찰의 눈 스킬을 시전했다.

    [정확한 손목시계]

    랭크 : S

    분류 : 아티팩트

    초월적인 대장장이가 만든 평범하고 튼튼한 손목시계, 방수 처리가 되어 있어 심해에 들어가도 안심이다. 어떤 상황에도 완벽하게 시간을 표시한다.

    감정 스킬을 사용하면 보인다는 공격력, 방어력이 아무것도 없네. 이거…….

    ‘시간을 정확하게 표시하는 것 말고는 정말 아무런 효능이 없는 거야?’

    몇 번을 해도 똑같은 말밖에 쓰여 있질 않다.

    진짜 그게 전부인 모양이다.

    ‘타 차원 아티팩트인 걸 보니 던전에서 얻은 모양이네.’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이 다 쓸모가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긴 하지.

    오히려 이렇게 쓸모없는 것들이 흘러나오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그래도 아티팩트는 아티팩트, 어지간한 명품 시계보다 훨씬 비싸고 가치 있는 것으로 쳐준다.

    해외에서 만든 것도 아니고 다른 별에서 만든 것도 아니고, 다른 차원에서 굴러 나온 거니 당연한 일이려나.

    “선물로는 딱이긴 하네.”

    손목에 차니 마치 처음부터 날 위해 만들어진 듯 정확하게 사이즈가 맞았다.

    빛을 비추니 시계 표면에 엷게 어떤 문양이 그려져 있다.

    평소에는 절대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아주 얇은 세공이었다.

    ‘자, 그러면 내 가설이 맞는지 숙련도 창을 열어 볼까.’

    세부 창을 켜서 경험치 로그를 뒤져보았다.

    -관찰의 눈 숙련도 3이 올랐습니다.

    -초보자 보너스 1이 올랐습니다.

    럭키!

    대박이다.

    가설이 맞는다는 게 증명되었다.

    ‘좋아. 그러면 이 꿀을 적극적으로 빨아 본다.’

    * * *

    요즘은 TMI 시대다.

    방구석에서 모 헌터가 몇 평 땅을 샀고, 탈세를 어떻게 하다가 걸렸는지도 알 수 있지.

    자연히 국내외 해외 사이트를 뒤지다 보면 다른 헌터 상점들에 어떤 물건이 판매되는지도 대충은 흘러나온다.

    헌터들의 직업이나 수호신마다 조금씩 헌터 상점 판매 물품이 각자 다르고.

    심지어 사람들끼리 도감도 만들었다.

    나는 그렇게 올라온 도감과 따봉 상점의 물건들을 교차 비교해 보았다.

    ‘일단 헌터 상점에 있는 것들은 전부 따봉 상점에도 있네.’

    그러나 반대로 따봉 상점에서만 판매하는 것들도 있었다. 그것은 [독점]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선독점]은 뭐지?”

    뒤져보니 따봉 상점에 먼저 출시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헌터 상점에서 판매되는 물품을 뜻한다.

    결과적으로는 일반적인 헌터 상점보다 따봉 상점이 훨씬 진귀하고 희한한 물건이 많다는 것.

    거기다가 또 한 가지.

    ‘나는 아예 레벨 업 창이 없구나.’

    여러 헌터들이 공개한 레벨 시스템을 자세히 뒤져 보았는데 나는 적용이 안 되는 게 확실한 모양이다.

    조금 맥이 풀린다.

    ‘능력치를 따봉 주고 사야 하겠네.’

    물건을 사지 않자 상점이 다시 광고 문구를 토했다.

    [인망이 힘! 인망이 곧 미래입니다! 덕을 쌓아 더 큰 따봉을 얻으세요!]

    미친 광고 보소.

    제정신이 아니다. 이 시스템 만든 놈은 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걸 만들어 냈을까.

    ‘내가 각성한 능력은 대체…….’

    남은 따봉은 10만 6천 따봉. 백의 자리 이하는 제외했다.

    ‘헌터 계약을 한 이상, 어쨌든 전투는 해야 해.’

    전투가 무섭지 않은 건 아니지만 못 할 일은 아니지.

    헌터 보조원 일을 하면서 위험한 일 해 본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실제로 고블린들을 내 손으로 처리했으니까.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나는 다른 헌터들처럼 몬스터를 잡는다고 강해지는 게 아니라는 거지. 따봉, 결국 따봉을 받아야 해.’

    사람들의 눈을 끌어야 한다.

    강하고 화려한 전투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야 했다.

    진골 관심 종자만이 이 시스템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10만 6천 따봉은 즉, 자본금이다.’

    아무거나 막 살 수는 없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오히려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더 많은 따봉을 벌 수 있을까?’

    마치 종잣돈을 굴리듯 머리가 회전했다.

    나는 인기 있는 갓튜버들을 찾았다.

    사냥에 능한 헌터들도 있지만, 요리나 제작 같은 각종 다른 직종들의 갓튜브들도 인기가 좋았다.

    ‘보조계도 괜찮지.’

    보조계란?

    생산, 감정, 추적, 예지같이 전투를 보조해 줄 수 있는 능력들의 총집합을 뜻한다.

    특히 예지계는 엄청나게 유명해질 수 있다.

    유명인들이나 나랏일을 미리 맞춰서 크게 주목을 받는 이들도 많으니까.

    “예지 능력 검색.”

    -검색 중입니다.

    -2,310건이 검색되었습니다.

    “최저가가 5만 따봉?”

    스킬 효과는 다음과 같았다.

    -내일 날씨를 80% 확률로 예측할 수 있다.

    “오우…….”

    일기예보를 보고 말지.

    예지 능력은 엄청 비싸구나.

    “그렇다면 감정계는 어떨까?”

    갓튜브로 진품명품 같은 프로그램을 돌리거나 전당포를 운영하면서 별의별 아티팩트를 감정해서 가격을 내놓는 채널이 요즘 또 한 인기 하지?

    특히나 던전에서 나오는 물건은 감정이 되지 않으면 쓸 수가 없다.

    무슨 저주가 걸린 아이템인 줄 알고 덥석 쓰겠나.

    거기다 특수한 감정 스킬은 아이템의 숨겨진 힘을 발견, 이끌어내기도 한다.

    “음… 아니야. 이미 감정계 스킬은 하나 샀잖아? 거기다가 성장형이기도 하니까 쓰다 보면 되겠지.”

    감정 스킬도 참…… 비싸다.

    필요하다 싶은 것들은 아주 귀신같이 가격이 붙는군.

    많이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까 부족해.

    ‘당장 필요한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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