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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10화 (10/305)
  • 제10화

    대헌 그룹 최현진은 기세등등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저희 대헌 그룹이 국내 제일의 건설사인 건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저희가 제공할 주택의 위치입니다. 이번에 재건축 들어간 노른자 땅이죠.”

    그녀는 내가 볼 수 있게 노트북을 돌렸다.

    대헌 아파트!

    국내 최고급 아파트의 선두 주자.

    대헌 하면 광고 멜로디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대헌 건설사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정하 그룹이 IT 분야로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거대 그룹이라면 대헌 그룹은 토목건축으로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특히나 몬스터를 내쫓고, 거주자를 방어하는 자체 기술 특허만 3,000여 개!

    -아파트가 아닙니다. 성입니다. 캐슬에 사세요.

    화이트 캐슬, 브라운 캐슬, 블랙 캐슬, 수많은 캐슬의 이름을 달고 고급형 아파트를 냈고, 몬스터 웨이브 때 이 캐슬 시리즈는 큰 피해 없이 거주자들을 지켜 대박이 났다.

    아랍에미리트가 대헌 그룹에 의뢰를 시작했고, 미국, 북유럽, 싱가포르 같은 증권가에서도 돈다발을 안고 대헌 그룹에 건축을 의뢰했다.

    “강남 뉴타운 건축에 들어간 구역입니다. 120층 호화 거주지로, 다이아몬드 캐슬이라 부를 예정입니다.”

    이번에도 캐슬 시리즈군.

    하지만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일단 입주만 하면 시세 차익은 어마어마할 게 분명했다.

    “다이아몬드 캐슬은 저희 대헌 그룹의 기술이 집약된 곳으로, 역대 가장 호화로운 거주지가 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대외비지만, 커흠. 회장님께서 직접 거주하시고 싶어 하셔서 더 각별하게 신경 쓰고 있거든요.”

    대외비는 무슨 놈의 대외비.

    다이아 캐슬 입주 시기가 되면 ‘극비리!’란 타이틀의 신문 기사가 쏟아질 거고, 부동산값 상승과 동시에 전 국민이 그 사실을 ‘극비리’에 알게 될 게 안 봐도 갓튜브네.

    최현진이 겸손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희로서는 K대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찾았으나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다른 주거 지역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엄지척 님의 위상에 걸맞은 곳으로 열심히 물색하겠습니다.”

    목소리와 표정이 겸손하다고 해도 진짜 겸손한 게 아니다.

    이건 다른 헤드헌터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꺼지라는 뜻이었다.

    이 이상 줄 돈 없으면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다 꺼지라는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헤드헌터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정지한의 안색도 0.3초, 아주 찰나 바뀌었다.

    ‘이건 좀 재미있네.’

    긴장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점점 더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이걸 기세를 탄다고 하던가.

    나는 철판을 깔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제 능력을 이렇게 높게 봐주실 줄은…….”

    띠링-

    -1따봉을 받았습니다.

    “아닙니다. 엄지척 씨는 저희 그룹에서 바라 마지않는 인재이신걸요. 하나라도 더 챙겨 드리고 싶은데 부족함이 있을지 걱정될 뿐입니다.”

    배 터지게 챙겨 줬다.

    ‘역시 대헌 그룹인가.’

    동생 학교와 가깝다는 것도 좋고, 막 재건축에 들어간 노른자 땅의 아파트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40억.

    계약금만으로 40억이다. 노른자위 재건축 아파트 가격까지 하면 얼마일까?

    적어도 계약금 40억에 부끄럽지 않을 금액이 될 터였다.

    대헌 그룹이 얼마나 나를 갖고 싶어 하는지 감동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역시 돈이 바로 감동이지.

    * * *

    헤드헌터들은 침착하게 거수를 이어 나갔다.

    “저희는 40억에 매니지먼트 비용 9 대 1을 제공할 생각입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5%의 차익을 남기시는 게 아파트보다 더 이익일 겁니다.”

    그럴까? 그런데 나도 내 능력의 가능성이 어느 정도일지 알 수 없는데 말이야.

    갓 각성한 시기 흥분한 상태를 사람들은 ‘각성병’이라고 부른다.

    중2병이랑 비슷하다.

    한창 자기가 특별하고, 전능하고, 대단하다고 느끼는 시기를 뜻하는데.

    사실 나는 아직도 내 능력에 냉정하다.

    흥분감이나 전능감을 갖기에는 내가 치운 헌터 시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려나.

    그때의 트라우마들이 나를 강제로 붙잡아 내렸다.

    심리 상담을 받아도 해결되지 않는 흉터다.

    ‘역시 아파트…… 아파트가 미래가 아닐까?’

    이 미친 아파트 공화국에서 대헌 그룹이 답이 아닐까?

    100평짜리 대리석 저택보다 20평 녹물 나오는 아파트가 더 비싼 이 시대에 답은 대헌이 아닐까.

    그때 다른 기업의 헤드헌터가 거수를 했다.

    “저희는 40억이 최대입니다만, 대신 신성 그룹 회장님의 집안 분들과 맞선을 주선해 드리려고 합니다. 혼맥으로 좀 더 깊은 인연을 맺고 싶습니다.”

    그 말에 다른 헤드헌터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내 뭘 보고 집안사람을 떠넘기려고 하시는 걸까.

    물론 후계 쪽은 아닐 거고, 저 어디 친척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놈이라도 붙여 주려는 모양이다.

    ‘대체 내 뭘 믿고?’

    내 뒷조사 결과가 흡족하신 걸까.

    근데 내가 돈 때문에 결혼한다고 해도 상대분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시면 꽝 아닌가.

    원래 재벌가들이 능력자 결혼을 선호한다고는 하지만 사랑 없는 결혼이 행복할 수 있나?

    아니면 어딘가의 왕가처럼 애가 좀 정신병이 있고, 각성 유전자는 남겨야 해서 종마 사듯이 나를 사는 건가?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잘 이해가 안 갈 일이다.

    “아무리 혼맥이라 해도 당사자분 의사도 없이 이런 일을 추진하시는 건 좀…….”

    내 발언이 신선했던 모양이다.

    띠링-

    -1따봉을 받았습니다.

    대체 방금 대답의 어디가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네.

    헤드헌터가 답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얼굴 사진만 보시고는 무조건 오케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제안만 드리는 거라 집안의 누구라고 감히 말씀드리기는 어려우나, 먼저 말씀을 꺼내신 건 그분 본인이라는 것만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얼굴…….

    사랑이 싹트기에 중요한 조건이긴 하지.

    그런데 내 외모만 보고 혼처로 점찍으시다니 괜찮으신 걸까.

    재벌가 사위.

    그것도 꽤나 감동스러운 단어다.

    가능만 하면 동생이 졸업한 이후에도 계속 형으로서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역시 대헌 그룹에 비해 귀찮은 일이 많을 것도 같다.

    사실 지금 들어오는 제안들이 하나같이 대단해서 현실감이 없다.

    내 현실감은 처음 정지한의 20억 발언 때부터 미국 갔다.

    * * *

    조건은 계속해서 올라갔다.

    “계약 기간 동안 필요한 헌터 장비 일체를 저희 업체에서 전액 부담하도록 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B급 이상의 헌터들과 멘토를 맺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고요.”

    괜찮은 조건이지.

    처음 헌터 일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이만한 조건이 없다.

    B급 이상의 헌터들과 멘토 가이드.

    이런 건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값진 기회 아닌가.

    하지만, 나한테는 그리 필요가 없다.

    이미 내 능력 자체가 지나치게 이질적이라 다른 헌터들에게 도움을 받을 만한 구석이 없을뿐더러, 재수 없으면 내 능력이 새어나갈 확률도 높다.

    거기다가 어지간한 조언은 이미 나도 알고 있다.

    또 다른 헤드헌터는 이런 것도 제안했다.

    “이번에 개방한 B급 던전 아티팩트 중에 하나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실버 랜덤 상자 어떠십니까?”

    랜덤 상자.

    던전을 클리어했을 때 확률적으로 나오는 보물 상자다.

    안에 뭐가 들어 있을지 아무것도 모른다.

    학자들 말로는 상자를 열기 전까지는 안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데, 상자를 여는 순간 아이템이 정해진다고 한다.

    실버면 못해도 희귀급 아이템은 들어 있을 터.

    신입 헌터라면 엄청나게 좋은 스타트지.

    이 자리에 모인 헤드헌터의 제안들 중 매력적인 제안들만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 40억 + 노른자 캐슬 아파트, 수익 배분은 8.5 대 1.5로 주겠다.

    2. 40억 + 비율 9대 1로 해 주겠다.

    3. 40억 + 재벌집 (아마 끄트머리) 사위, 비율은 8 대 2로 맞춰 주겠다.

    4. 40억 + 실버 랜덤 상자를 줄 수 있다. 비율은 8 대 2다.

    대충 이 정도다.

    ‘추려보니… 역시… 나는…… 아파트가 당기는군.’

    제안을 들으며 시계를 보는 척 틈틈이 검색을 했다.

    다이아몬드 캐슬, 분양 경쟁률은 세 자리 후반.

    그것도 현금 박치기를 했는데도 세 자리 후반이다.

    되팔면 적어도 80억은 넘을 거라는 추측이 있었다.

    연예인들도 분양을 넣었다가 실패를 했고, 국회의원도 실패했고, 어디 유명 사업가도 실패했단다.

    ‘세상에 돈 많은 사람 참 많구나.’

    우리나라 셀럽들은 다 거기서 살게 되는 모양이다.

    ‘아파트, 그래. 아파트지. 미래는 캐슬이다.’

    정지한에게는 미안하지만 역시 아파트란 단어만큼 내 심금을 울리는 게 없다.

    그렇게 내가 대헌 그룹의 120억 머슴살이를 할 결심을 하고 있는데 정지한이 입을 열었다.

    “처음 제안에서 조건을 더 상향해도 괜찮겠습니까? 엄지척 씨?”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제안한다.

    ‘뭐야, 조건을 올려준다면서 왜 이리 화가 나 있어?’

    두 번 올리면 사람 죽이겠다. 아주.

    정지한이 말했다.

    “계약금 80억.”

    두 배다. 하지만 아파트에 비하면 아직은 부족하다.

    아니나 다를까 대헌 그룹 최현진이 말했다.

    “두 배, 역시 배포가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엄지척 헌터의 미래를 위한다면 그런 단순 투자가 능사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 미래는 부동산이다.

    아파트! 노른자 땅 재건축 아파트!

    캐슬! 캐슬! C. A. S. T. L. E!!

    최현진 뒤로 캐슬의 상징인 독수리가 후광처럼 날개를 펴는 것 같았다.

    정지한이 말을 이었다.

    “동감입니다. 미래, 미래 정말 중요하죠. 훌륭하신 분께는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 줄 가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B급 각성석이면 어떨까요?”

    그 말에 테이블 전체가 술렁거렸다.

    ‘B급 각성석?’

    뭐? 제정신인가? 머리가 멍해지네.

    각성석이란, 일반인을 각성자로 만드는 매우 희귀한 돌을 뜻한다.

    부작용 없이 각성자로 만들기 때문에 최하급 각성석도 부르는 게 값이다. 애초에 시장에 잘 풀리지도 않는 돌.

    앞에 붙는 랭크는 최저 랭크지.

    D급 각성석은 최하 D급 각성자로 만들어 준다는 뜻, C급 각성석은 최하 C급 각성자로는 만들어 준다는 뜻이다.

    D급도 희귀하지만 C급은 말할 것도 없다.

    최현진이 코웃음 쳤다.

    “부도수표군요. 작년에 나온 각성석 B급 두 개를 본 사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더는 시중에 풀려 있는 B급 각성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헌 그룹에서 B급 각성석을 두 개나 갖고 있어?’

    이건 신문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다.

    정지한이 오만하게 말했다.

    “제가 어떻게 B급 각성석을 손에 넣었는지 굳이 알려드릴 필요는 없을 텐데요? B급 각성석을 받아 되파는 것만으로도 시가 200억은 족히 될 겁니다. 어떠십니까, 엄지척 씨. 동생을 B급 각성자로 만들 수 있는 기회입니다. 아까운 기회지만 되팔아도 괜찮고요.”

    머리가 어지럽다.

    “어떠십니까? 대답은?”

    모두가 나를 바라본다.

    그의 말에서 진의를 파악하고 싶었지만 심장 뛰는 소리가 자꾸만 귓속을 울렸다.

    나는 힘겹게 답했다.

    “동생을 부르겠습니다.”

    법조인…… 법조인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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