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소시민으로 평생 살아온 내가 재벌에게 이야기한다는 게 참 쉽지 않네.
자꾸만 달라붙으려는 입술을 억지로 떼어 목소리를 냈다.
“저어,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조건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야기를 해 보죠.”
정지한의 눈빛이 변했다.
오싹한 감각과 함께 알림음이 울렸다.
띠링-
-정지한이 상위 스킬 ???를 사용합니다.
-당신의 말의 진위를 확인합니다.
-[초보자 스킬 : 견고한 마음]으로 저항합니다.
-실패!
-랭크가 낮아 실패하였습니다.
거짓을 판별하는 스킬인가.
상당히 구하기 어려운 계열의 스킬도 갖춘 모양이네, 이 인간.
사실 메시지가 뜬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원래라면 상대가 거짓말 감지 스킬을 사용하는지도 모를 테니까.
아마 상대의 기분과 상태를 감지하는 내 독특한 시스템 방식 때문이리라.
‘절대 거짓말을 하면 안 되겠네.’
사실만을 말하되,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어야 했다.
그걸 내가 할 수 있을까?
먼저 카드를 꺼낸 건 정지한이었다.
“걱정되시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 역시 엄지척 님이 무척 탐이 나는 터라 조건은 업계 최상으로 해 드릴 예정입니다.”
후우, 침착하자.
“다중 능력자는 업계에서 귀한 몸값을 자랑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계시리라 봅니다만.”
“많이 받고 싶으시군요.”
“네. 최대한 잘 받고 싶습니다. 팀장님은 저에 대해 어떻게 파악하시나요?”
-스킬이 적용되는 중입니다.
-능력자, 정지한은 당신의 말의 진실을 판별하고 있습니다.
-거짓이 없다는 것을 확인.
-진실입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전부 판별당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건 스킬을 걸면서도 그의 표정 어느 곳에도 동요가 없다는 것.
재벌의 삶이라는 게 그런 건가.
아니면 헌터의 삶? 모르겠다.
내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하지도 않는다.
“근거리, 원거리, 회복 모두가 다 가능한 포지션, 그리고 아마 다른 비밀도 숨기고 계신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이 업계 바닥을 기면서 배운 거라고는 그거죠. 숨겨진 패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한다고요.”
“헌터가 되기에 좋은 자질이군요.”
“정 팀장님도 감춰둔 게 있으십니까?”
“하하하, 이번에는 오래 살아야 하니까요.”
이번에는?
대답이 이상했지만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대화를 주고받을 때마다 스킬은 계속해서 나를 판별했다.
-진실입니다.
-진실입니다.
그가 모르는 건 딱 하나, 나는 그가 스킬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사람이라면 살다 보면 악의 없이 무의식중에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나는 그조차도 하고 있지 않으니 이상해 보일 터.
정말 정직한 사람이기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어느 쪽에도 답을 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는 생각에 잠긴다.
이윽고 이렇게 말했다.
“제가 제시할 조건은 이렇습니다. 순수 계약금 20억. 계약 기간은…….”
결심한 바가 있는 걸까.
엄청난 돈 폭탄 제안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 * *
“제 제안은 여기까지입니다. 어떠신가요?”
돈으로 귀싸대기를 맞은 기분이다.
한마디로 초대박.
순수 계약금 20억, 계약 기간은 5년.
월 2회 회사 차원의 전투 참여.
사냥물의 가격은 9대 1.
1은 회사가 갖는다. 사실상 던전 들어갈 때 거마비만 받겠다는 소리였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조건이야?’
수많은 헌터들의 조건을 들었지만 이 정도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정지한은 한마디 덧붙였다.
“거기다 동생분의 로스쿨비도 지원해 드리도록 하죠. 동생분 학비 때문에 일하고 계신 것 맞으시죠? 괜찮은 곳에 변호사 사무실 내려면 돈이 엄청 깨질 테고요.”
거기까지 조사했나.
마냥 호인인 줄 알았는데 치밀하기는 무슨 극세사급이다.
“거기다가 엄지척 씨께는 개인 전담 매니저도 붙여 드리겠습니다.”
“세계 톱급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내 최상위권이군요.”
“역시 정보를 접하기 쉬운 직장이라 그런지 이미 알고 계시네요. 그러면 대답은……?”
그때 문이 삐비빅 소리를 내며 벌컥 열렸다.
“형!”
문짝만 한 거대한 키에 잘생긴 얼굴. 내 동생이다.
동생은 나와 정지한을 번갈아 보았다.
“손님이……?”
“우리 회사 상사.”
이놈 표정 참 미묘하군.
일단 이놈 팔을 붙잡아 뒤로 빼시고. 조용히 하라는 눈빛도 보내시고!
“나중에 답변 드려도 되겠습니까?”
정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얼마든지요.”
여유가 넘치네. 하긴 그 조건이니 당연하겠지.
자기보다 더 높은 조건을 주는 곳이 없으리라 확신하는 모양이야.
사실 내 생각에도 그래. 하지만, 조금 더 올릴 구석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데 말이지.
정지한이 인사를 하고 나가자마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능력자, 정지한이 단 한 번의 거짓도 말하지 않은 당신에게 감탄합니다.
-3따봉을 받았습니다.
꽤 놀란 모양이군.
독해서 감탄한 건지, 아니면 진짜로 내 정직함에 감탄한 건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근데 따봉 수는 대체 어떤 기준으로 책정되는 건지 모르겠네.
이놈의 시스템, 알 수 없는 게 너무 많아.
동생이 곧바로 말했다.
“형, 각성했다며! 아니 근데,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거길 가! 거길! 도망쳤어야지!”
이눔이 형님 등짝을 퍽퍽 때린다.
얼굴이 걱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놈 얼굴 보니 할아버지 생각나네.
“어구구, 형 죽는다. 죽어!”
“이 웬수야! 웬수! 자기 몸 좀 소중히 여겨! 나 진짜 간 떨어지는 줄 알았어!”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꽉 끌어안았다.
이제는 내 키보다도 커다래진 동생이다.
나는 녀석의 등을 토닥였다.
“형…… 죽을 뻔했어. 다들 영웅이라고 추앙하고, 대단하다고 하지만 나는 그냥 무섭더라. 그거 알아?”
그 말에 나는 그냥 웃었다.
동생 녀석의 팔의 온기가, 녀석의 떨림이 그때의 공포를 알게 해주었다.
“나 엄마랑 아빠처럼 형마저도 잃는 줄 알았어. 형은…… 그러지마…. 나 진짜…….”
부모님이 돌아가시던 날, 왠지 거짓말 같아서 나도 동생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우리는 너무 어렸다.
그런데 부모님 합동 장례식 할 때는 또 달랐지.
집에 돌아가면 두 분이 계실 것 같았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이번에는 저녁쯤에 현관을 열고 돌아오실 것 같더라.
그런 나날들이 한더위 솜이불처럼 우리를 무겁게 내리눌렀었고.
현실 감각을 일깨운 건 추억도, 슬픔도 아닌 청구서였으니까.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지 않던가. 가스비를 내야 하고, 수도비도 내야 하고, 월세도 내야 하고.
입에 들어갈 것을 살 돈이 필요했다.
동생이 말했다.
“형, 그만두자. 나 장학금 받은 것도 있고, 스스로 대출 정도는 갚을 수 있어. 알잖아.”
“너 서울에 변호사 사무실 얻으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냐?”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처음부터 말했잖아. 난 필요 없다고. 그냥 형이 안전한 게 최고라고.”
울상인 표정이 큰 개를 닮았다.
골든레트리버같이 귀가 처지고 순한 커다란 개.
나는 동생의 큰 등을 두드렸다.
“순해 빠진 녀석.”
“나한테 그 소리 하는 건 형밖에 없다는 거 알아?”
“착해.”
동생은 나를 끌어안은 채 눈물을 닦았다.
어디 자기 두고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결국 나는 마법의 단어를 뱉어야 했다.
“배고프다.”
“뭐? 배고파?”
형 밥 굶는 건 절대 못 참는 녀석이다.
순둥이. 역시 순해 빠졌다.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어. 죽을 거 같아.”
“으… 알았어. 하지만…….”
“배고픈데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면 안 되냐?”
“형, 다친 곳은……?”
“밥 먹으면 더 빨리 회복돼.”
내 말에 동생의 잘생긴 미간이 좁혀진다.
이야, 효과 직빵이네.
“아, 알았어. 형이 좋아하는 걸로 다 차려 줄게! 뭐 먹을래?”
“부대찌개랑, 음… 감자볶음이랑…….”
“다 말해 봐. 내가 오늘 요리로 끝장을 본다.”
부엌으로 가서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는 게 자못 비장하다.
역시 착한 동생이다.
* * *
이 녀석 그사이에 요리 실력이 더 늘었다.
아주 배 터지는 줄 알았다.
“너는 스팸의 마술사야. 어떻게 스팸이랑 비엔나소시지만 가지고 이런 부대찌개를 끓여 내냐.”
“앉아 봐 봐. 사과도 깎아 줄 테니까. 형은 대체 왜 이렇게 말랐어? 왜 이리 살이 안 쪄?”
“너는 나 보면 말랐다는 소리밖에 안 하는구나. 누가 보면 뱃가죽이랑 등가죽이랑 붙어 있는 줄 알겠다.”
“응. 진짜 심각해. 더 찌워야겠어.”
참고로 나는 표준 체형이다.
그것도 거친 일에 다져져서 어깨에 근육도 탄탄하게 잡혀 있다.
어디 가서 허우대 없다는 소리 들어 본 적도 없고.
그런데 저놈은 대체 나를 뭐로 보는 건지 말랐다, 저러다 굶어 죽는 거 아니냐, 살 좀 쪄라, 하면서 무한하게 요리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별명이 ‘엄마’다.
띠링-
-1따봉을 받았습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한번 갓튜브에 올리고 나니 추천 수와 함께 따봉이 실시간으로 계속 오르고 있다.
그렇게 앉아서 동생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사과를 조지고 있으니 아래에서 소란이 밀려왔다.
“형, 뭔가 시끄러운데?”
“신경 쓰지 마.”
폰에 진동도 같이 울리기 시작했다.
폰을 여는 것과 동시에 이번에는 동생의 폰도 같이 진동이 울렸다.
동생은 나보다 먼저 폰을 확인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형, 밖을 봐 봐.”
창 밖에는 수많은 사람들과 각종 언론사들이 모여 있었고.
기숙사 경비님이 막고 있어 안으로 침입하지 못하고 있지만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유명 길드의 헤드헌터들도 껴있어. 형, 우와, 세상에…….”
현관에 노크가 울렸다.
“관리인입니다. 어떻게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동생은 깎던 사과를 내려놓았다.
“싫으면 나가지 않아도 돼, 형.”
걱정이 되는 모양인지 동생의 잘생긴 미간이 좁혀진다.
“야, 나 형이야.”
“알아. 하지만…….”
“괜찮아.”
와, 심장 터질 것 같네.
평범한 과목 발표 과제도 떨리던 인간이 나다.
이렇게 많은 카메라와 많은 사람들을 경험해 볼 일이 얼마나 있었겠나.
평범한 소시민 인생. 벌써부터 손이 식네.
그래도 내가 흔들리면 동생은 더 흔들린다는 것 하나만은 알기에.
탁탁.
일부러 태연한 척 녀석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뭐 그걸로 쫄아? 미래의 법조인께서.”
“형…….”
“걱정하지 마.”
동생은 한참 고민하더니 결심했는지 입이 한일자로 굳어졌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내 앞머리를 열심히 넘긴다.
“알았어. 그래도 기왕 나올 거 잘 나오는 게 좋겠다. 형은 잘생겼으니까. 형 어릴 때부터 연예인 하라는 사람 많았잖아?”
“진짜 우리 엄마 살아 계셨으면 딱 너다, 너야.”
“형은 잘생겼잖아. 얼굴이 아깝다.”
머리를 대충 다듬고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했다.
“여기 재킷도.”
자기가 입던 재킷을 벗어서 날 준다.
“형은 자기 돈으로 옷도 잘 안 사니까.”
대충 동생 조언대로 입으니 꽤 태가 살았다.
그런 나를 돌아보더니 동생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그거 좀 했다고 진짜 연예인 같네.”
진짜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저 소리를 했겠지.
나 이거 드라마에서 많이 봤어.
이제 나가 볼 차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