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중년의 부부였다. 내게 쌈짓돈이라도 건네려고 했었던 기억이 났다.
-고마워서, 너무 고마워서 뭐라고 해 드리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안 받으시더라고요.
-쌈짓돈이라도 꺼내서 쥐여 드렸죠. 그런데 한사코 거절하셔서……. 네. 끝까지 괜찮다고 사양하시더라고요.
-고맙죠.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몸을 던진 거잖아요.
그때 엉겁결에 도왔던 그분들이 이렇게 인터뷰까지 응해서 감사를 표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막았던 던전이 클리어되는 장면이 찍혔다.
던전이 소멸되고 거기서 나온 건 나도 익히 잘 아는 얼굴이었다.
정지한.
정하 그룹 회장 정만득의 손자.
그리고 내게 바디 캠을 준 장본인이었다.
‘능력자였어?’
정지한은 헌터들이 주로 입는 몸에 달라붙는 슈트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평소 쓰고 있던 안경은 벗고 있었다.
‘혹시나 하긴 했지. 정만득의 공개된 자식들 중에 각성자 아닌 사람이 없었으니까.’
각성자와 각성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높은 확률로 각성자가 된다.
처음 이 사실이 밝혀졌을 때, 사람들은 과거 소련이 했던 우생학처럼 강제 결혼과 출산을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부드러웠다.
-결혼해 쥬오! 쥬오가 여러분의 결혼을 책임집니다!
의사가 의사와 결혼하듯, 변호사가 변호사와 결혼을 하듯, 재벌이 재벌과 결혼하듯.
사람들은 이른바 ‘급’이 맞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했으니까.
능력자 역시 같은 능력자와 결혼하더라. 그리고 그 자식은 높은 확률로 능력자가 되었다.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능력의 대물림이다.
당시 특급 헌터였던 정만득은 미국의 유명 헌터와 세기의 결혼을 했다.
같은 특급 헌터끼리의 결혼.
둘이 축적한 재산 역시 상당했기에 매스컴은 마치 왕실 결혼을 다루듯 했었다나?
그렇게 태어난 자식들, 그리고 그 자식들은 똑같은 능력자를 만나 결혼했다.
3세대 유전이다. 그렇게 태어난 손자가 능력자가 아닌 게 이상하긴 했다.
기자는 꽤나 공손하게 재벌 3세 정지한을 향해 인터뷰를 했다.
-상당히 강력한 던전이었습니다. 첫 실전을 이렇게 겪게 될 줄은 몰랐군요.
아, 이래서 로봇 같다고 했던 거군.
인터뷰가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그런 차가운 표정마저도 매스컴은 캐릭터로 만들어내지 않던가.
-네. 이곳 본진 몬스터들이 밖으로 나왔다면 끔찍했을 겁니다. 다행히 그분 덕분에 시간을 벌 수 있었죠.
-회사 계약직……이라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이미 기자는 내 신상을 다 캤던 모양이다.
나와 정지한의 관계까지도.
정지한은 잘생긴 미간을 찌푸리고는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말했다.
-네, 굉장히 뛰어난 분이십니다. 근무 태도는 존경할 정도였고요.
던전을 깼으니 자신에게 주목해 달라고 할 법도 한데, 정지한은 연신 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표정으로 아이스링크를 만들던 놈이 내 칭찬을 할 때만은 사람이 달라지니 아주 기자가 주목하는군.
‘무슨 꿍꿍이지, 이거?’
결과적으로 나는 용감한 시민 + 히어로 + 직장의 성자라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다.
* * *
갓튜브 조회 수는 350만, 구독자는 단번에 20만 명이나 들어왔다.
갓튜브 아래에 찍힌 따봉 수는 8만 7천가량.
따봉 부자다.
‘하지만 조회 수에 비해 따봉 수는 생각보다 많진 않네?’
따봉을 확인해 봐야겠네.
실제로 얻은 따봉은 찍혀 있는 것보다 많다.
어제 구해 드린 분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따봉을 보내주셨기 때문이다.
공식은 다음과 같다.
[직접 사람들이 만나서 준 현장 따봉 + 갓튜브 보고 ‘좋아요’ 클릭한 따봉 수 = 전체 따봉]
미쳤군. 미쳤어.
말 그대로 갓튜브 소셜 스타네, 이거.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온다.
‘왠지 현실감 없네.’
그나저나 갓튜브 1따봉이 내 쪽으로도 1따봉이구나.
직접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쪽이 한 사람당 더 많이 벌긴 하는데 역시 조회 수 숫자가 워낙 많으니…….
생각을 정리하고 폰을 여니 모르는 사람들의 부재중 전화가 산처럼 찍혀 있네.
문자 메시지는 ‘저는 XX 방송국에 근무하는 김 아무개 PD입니다.’로 시작한다.
이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내 번호를 알게 된 걸까.
이 정도는 알아내야 PD를 해먹는 걸까.
사건이 사건이다 보니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되어 버렸다.
- 12분 20초에 나오는 회색 빌딩에 있던 사람임. 저때 무서워서 각성자인 부장 놈 붙잡고 뭐 좀 해 달라고 했는데 부장 놈이 먼저 대피 룸으로 튀어가서 문 잠금. 나랑 야근하던 회계부 선배랑 다 같이 창문만 붙잡고 저거 지켜보고 있었다. 저 사람 ** 되면 우리 다 ** 될 각이라 다 같이 기도함.
↳ㅎㄷㄷㄷ…… 부장 놈 *같은 인성 보소…….
↳노동청 신고 안 됨?
↳동영상처럼 잘 싸움?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영상보다 잘 싸움. 한 번을 당황하지 않더라.
-이 형님 고블린 뚝배기 깨는 솜씨가 숙련이네.
-각성한 지 얼마 안 됐다며? 숙련 같은 신참임?
-한국인 종특. ‘지나가던’이 붙으면 사기 캐가 됨.
↳ 지나가던 선비.
↳ 지나가던 군인.
↳ 지나가던 시민.
↳ 지나가던 경력 같은 신입.
-근데 진짜 스킬 몇 개 없는데 잘 싸운다. 중간에 헌터 상점 이용한 걸 보니까, 후원해주는 수호신이라도 빵빵하게 붙은 건가?
-수호신 맞음. 그거밖에 설명이 안 됨. 근데 각성하기가 무섭게 바로 수호신이 붙은 케이스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음.
-헌터 상점에서 뭘 샀는지는 영상으로는 판독 안 되는데 이거 원래 그럼?
↳ㅇㅇ. 전문가 말로는 차원 중첩 현상 때문에 외부인은 뭘 사는지는 알 수 없고, 찍히지도 않는다더라.
-되게 잘 싸운다. 탱딜힐을 혼자 다 해먹네. 어지간한 헌터 길드들은 다 눈독 들일 듯.
-딱 나만큼 멋있는 듯!
↳꺼져.
-저걸 찍을 생각을 한 게 더 놀라움. 뭐 하는 새끼기에 마침 우연히 바디 캠까지 갖춰 들고 찍은 거임? 뭔가 냄새가 남.
↳게이트가 자아가 있어서 돈 받고 열려준다냐. 각성하고 첫 방송이라도 찍고 싶었나 보지.
↳미친 새끼야 뭔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저분 덕에 울 엄마 멀쩡히 돌아왔는데 **새끼가 저분 까면 사살이다. *새끼야!!!!!
↳아니 뭐 말도 못 함?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할 **새끼네.
악플이라고는 이게 전부였다. 대부분은 지나가던 용감한 시민에 대한 감동과 국뽕에 대한 이야기들뿐이었다.
-근데 엄청 잘생겼다.
-잘생겼는데 잘 싸움.
-나만큼은 아니지만 잘생긴 듯.
↳ㄲㅈ.
↳ㅈㄲ.
-현장에 간 응급대원 중 한 명입니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셨습니다. 무서워하는 기색도 없이 싸우셨고,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 갓 각성한 능력자이기에 겁이 나셨을 법도 하건만 끝까지 의연하셨습니다.
당시 몇몇 저랭크 각성자분들께서 계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전투에 적합한 능력이 아니셔서 차마 함께 싸우지 못하신 것을 몹시 죄송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몬스터와 싸운다는 건 그만큼 무서운 일입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셨을 텐데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현장에 있었지만 싸우는 걸 포기하신 각성자분들을 폄하할 의도는 결코 아님을 밝힙니다.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숨어 있던 저랭크 각성자 누구임? 전투계가 아니더라도 뭐 하나 도울 수 있었잖아. 내 세금 **했어?
↳ 저 지나가던 시민이 이상한 거임. 현실이 게임도 아니고, 전투 훈련 받아도 막상 못 싸우는 사람이 부지기수임.
이건 이해한다.
나도 보조원 일 하기 전까지는 각성자들은 다 잘 싸우고 겁도 없을 줄 알았다.
매스컴에서는 그런 모습만 보여줬으니까.
사실 저랭크 각성자의 대부분은 각성을 했을 뿐 평범한 사람들이지.
때리면 아프고, 피 나면 무서워.
사람인데 두려움이 없을 수가 있나.
그러다 보니 요즘은 덜하다지만, 예전 강제 차출이 빈번하던 시절에는 많이들 사망했지.
‘이제 핸드폰을 볼까.’
통화 내역 스크롤을 쭉쭉 내리다 보니 드디어 아는 이름이 보이는군.
정지한 팀장이다.
방금 전까지 화면에 나와서 나를 극찬하시던 그분.
전화를 거니 착신음이 세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이고, 자느라 못 받았습니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낮게 웃는 목소리가 들린다.
-죄송하긴요. 그저 제가 감사하죠. 그래도 마침 잘됐네요. 지금 집 앞이거든요.
“네?”
그의 수화음과 내 현관에서 동시에 ‘딩동!’ 소리가 들렸다.
* * *
허겁지겁 문을 열어 팀장님을 맞이했다.
“아이고, 이렇게 오셔도 드릴 게 없으니 문제네요. 남자 혼자 묵는 기숙사라서요.”
“아, 이럴 줄 알고 가져왔습니다.”
그는 샐러맨더 가죽 가방에서 커다란 주스를 꺼냈다.
이야, 가방보다 주스병이 더 크네. 역시나 아공간 압축된 고오급 물건인 모양이야.
주스는 유리병에 담겨 있었는데 꼬부랑글씨로 적혀 있는 게 영어는 아닌 것 같군.
뭔가 비싸 보이는 수입산인 것 같은데 이거?
주스를 따라서 내오는 동안 그는 뭘 하나 했더니 내 좁은 기숙사 방을 둘러보는 게 아닌가.
이거 참 민망한데?
뼛속까지 갑인 저놈이 보기에 내 기숙사 방은 초라하게 느껴질 테니까.
그런데 그는 어째서인지 감탄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늘 청렴하게 사신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음… 필요 최소한의 것밖에 없는 이 방이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청렴, 청렴이라.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나는 태연하게 웃었다.
“아닙니다. 좋게 봐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능력자, 정지한이 당신의 인품에 감탄합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시민 1, 시민 2로만 표기되던 것이 이번에는 다르게 표기되는 게 아닌가.
능력자만 예외인 걸까? 아니면 다른 조건이 있는 걸까.
그것까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딱 하나는 확실하다.
시스템 메시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그는 의외로 정말 나를 좋게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저도 방송 보고 알았습니다. 팀장님은 각성자셨군요.”
내 말에 정지한이 멋쩍은 모양인지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네. 그동안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지만 그리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가.
내부에 이래저래 신경 써야 할 게 많은 모양이야.
“오늘은 제안을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화급하게 달려왔습니다.”
“네?”
“지금이야 헌터 보조원, 그것도 비정규직이십니다만 이미 각성을 하셨으니 헌터로서 활동을 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와 계약하시죠.”
아니나 다를까 돌리는 법 없이 바로 직구를 날리는 게 아닌가.
살다 보니 나한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가끔 특급 헌터들이 하는 이야기를 지나가며 들을 일이 있었지.
대기업의 누군가가 알아서 먼저 와서 자신에게 스카우트를 제의하더라는 이야기.
대부분 극소수의 루키들에게나 일어나는 일 아닌가.
까마득한 별세계의 이야기가 내 앞에서 펼쳐지니 조금은 얼떨떨하네.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쿵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