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1화 (1/305)
  • 제1화

    -지척아. 우리 강아지…….

    꿈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하, 할아버지?”

    로또 번호라도 불러 주시는 건가? 그, 그러면 적어야 하는데! 뭔가 적을 게……!

    -지척아, 잘 들으렴. 내일 좋은 일이 있을 거란다.

    “로…… 로또 번호가 아니고요?”

    -옛끼! 이눔아! 로또는 무슨! 로또보다 더 좋은 거 줄 테니까 걱정하덜 마!

    할아버지는 엄지를 척 들었다.

    -그동안 니가 이 할비 말 잘 듣고 착하게 살아서 이 할비가 힘을 좀 썼어. 내일은 좋은 일이 있을 것이여. 앞으로도 그렇게 착하게 살거라.

    할아……버지?

    -잘 들어라, 지척아. 착하게 사는 게 제일이여. 알았지, 우리 강아지.

    잠깐만 할아버지. 저는 역시 착하게 사는 것보다 로또 번호를……. 할아버지?

    대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 * *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많이 바라지도 않는다. 이 할비가 뭐 잘한 게 있다고 우리 강아지한테 뭘 바라겠누. 공부 못해도 된다. 남들보다 잘날 필요도 없다. 그냥 착하게만 살아라.’

    처음으로 남의 집 배달 주머니에 들어 있던 요구르트를 훔쳤을 때 했던 말씀이셨지.

    할아버지는 손주를 혼내는 대신 훔친 집에 가서 90도 각도로 싹싹 빌며 사과했는데 어찌나 충격이던지.

    그분은 공원 바둑의 제왕이자 물건값을 깎는 시장의 지배자였는데.

    그런 분이 남 앞에서 허리를 굽히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착하게만 살아라.’

    어린 나는 착하게 살겠다고 맹세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통곡을 했지.

    할아버지는 주름진 손으로 내 머리를 한참 쓰다듬으셨다.

    그게 할아버지의 마지막 가르침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어.

    다음 날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니까.

    그때 이후로 조금은 강박적으로 착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오긴 했는데.

    그렇다고 대단한 선행을 한 건 아니고.

    폐지 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가 보이면 뒤에서 밀어 드리고, 잔돈 생기면 모금함에 넣는 정도?

    평범한 대한민국 소시민의 수준이랄까.

    딱히 내가 성자인 것도 아니고. 그냥 할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내 나름의 위로 같은 거였으니까.

    우리 할아버지, 거기서는 잘 계시려나.

    ‘그런데 대체 왜 꿈에 나오신 거야? 로또보다 더 좋은 거라니.’

    거참, 알 수가 없네.

    “어이! 엄 씨! 오늘 사냥은 아주 그냥 푸짐하구만. 빌어먹을 헌터 놈들, 뒷정리하는 사람은 생각지도 않지?”

    눈앞에는 몬스터의 사체들이 널려 있다.

    보통 사람들면 구토를 했을 잔인한 광경이지만 나한테는 익숙하지.

    나는 헌터 보조원.

    지금 이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게임이 현실이 된 거랄까?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이 세계에 던전이 생겼고, ‘각성자’라는 초능력자와 신(god)이라는 존재들도 나타났고.

    각성자들은 몬스터를 잡으면서 레벨 업을 하고, 포인트라는 것을 얻어서 ‘상점’이라는 것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뒷집 백구도 아는 이야기.

    그러다 어느 순간, 던전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생성되었지.

    김 씨네 농장을 고블린이 점거해서 싹 다 죽여 버리고, 박 씨네 농장에는 오크가 나타나서 할머니, 할아버지, 외노자들을 참살하고.

    ‘옛날 사람이 지금을 봤다면 아무도 안 믿었을 거야. 아마…….’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나 봐. 던전이 증가한 만큼 각성자들도 증가했거든.

    던전에서 현대 과학으로는 절대 규명이 안 되는, 그런 엄청난 자원들이 발견되었는데.

    살았다고 좋아하던 인류가 이내 돈에 눈이 벌게지기 시작한 건 어찌 보면 당연했나.

    성부, 성자, 성령 대신 군수 업체, 에너지 업체, 미디어 회사가 보우하사 삼위일체로 세상을 해 처먹고.

    그렇게 ‘각성자’들은 ‘헌터’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랬다.

    나는 그 헌터들의 따까리.

    헌터 보조원이다.

    제20431번 헌터 보조원.

    지척.

    성은 엄 씨다.

    엄지척.

    사실 지척이라는 이름 자체는 좋은 뜻이었지.

    뜻 지(志), 바를 척(剔).

    뜻을 가지고 바르게 살라는 뜻이다.

    성이 엄 씨라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나랑 같이 일하는 다른 헌터 보조원들도 나를 본명으로 부르지 않는다. ‘엄 씨’라고만 부른다.

    “에효. 헌터같이 높으신 분들이 우리 같은 사람들 처지나 생각하겠어요?”

    몬스터가 돈이 되는 순간, 헌터는 그야말로 연예인, 갓튜브 스타, 축구 선수를 합쳐 놓은 존재가 되셨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는 사람 목숨을 살리는 것보다 돈 많이 버는 게 더 찬양을 받는다.

    돈이 목숨보다 존귀한 세상.

    그리고 우리는 청소 직군에 들어가는 하급 노동자.

    나는 전기톱으로 죽은 고블린의 팔을 잘랐다.

    드르르르르-

    “하긴 지난번에 엄 씨보고 그랬지. 냄새나니까 오지 말라고.”

    그래. 그러셨지.

    자기들이 잡은 몬스터들을 청소하고, 자원 채취부로 보내 돈으로 바꿔주는 게 우리인데 헌터들이 보는 시선은 늘 거시기하지.

    “화 안 났어, 엄 씨?”

    “그런 거에 일일이 화내면 이 일 못 하죠.”

    고블린 팔이 순조롭게 잘렸다.

    서컹!

    깔끔한 절단면에 같이 일하는 강 씨가 감탄한다.

    “솜씨 하난 참 예술이야. 신참 가르칠 때 엄 씨 작업하는 걸 교본으로 삼을 만해.”

    “그렇게 칭찬하셔도 나오는 건 없습니다요.”

    강 씨가 내 등을 두드렸다.

    “그냥 장해서 그래. 젊은 나이에 이 험한 일 하겠다고 덤비는 놈치고 오래 버틴 놈이 있어야지. 이제는 우리 같은 놈들보다 훨씬 더 잘하니 말이야. 참 뚝심이 있어.”

    그렇게 말하더니 엄지를 치켜들었다.

    “우리 엄 씨가 솜씨 하난 따봉이지. 다들 안 그런가?”

    그 말에 보조원들이 모두 함께 엄지를 들었다.

    “그치, 엄 씨만 한 사람이 없지.”

    “사실 다음 보조 팀장은 엄 씨가 맡을 거 같긴 해.”

    “울 마누라 위독할 때 나보고 병원 가라고 하고 대신 잔업해 줬던 거 생각하면 아직도 목이 메어.”

    그렇게 말하며 갑자기 눈가를 닦으시는 게 아닌가?

    그걸 보던 이 씨가 말했다.

    “어이쿠, 저치가 갱년기가 왔나.”

    남자 나이 50대. 한창 눈이 시큰해질 때다.

    “무슨 소리여! 덕분에 자식들이랑 마누라 가는 길 손잡아주며 배웅할 수 있었다고. 그때 생각하면 진짜……. 내 고맙지.”

    그렇게 말하며 양손으로 따봉을 만드셨다.

    그때였다.

    띠링-

    -7따봉을 받으셨습니다.

    -신 ???께서 당신에게 관심을 표시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숨겨진 능력이 각성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각성? 각성이라고? 내가 각성했어?

    정신이 살짝 아득해졌지만, 바로 모두에게 내 각성 사실을 알리는 짓은 할 수는 없지.

    일하는 동안 가슴에 바디 캠이 작동 중이니까.

    몬스터 자원을 빼돌리는 짓을 감시하기 위해 바디 캠이 실시간으로 돌아가지 않던가.

    ‘보통은 [내가 오늘부터 각성자다!] 하며 소리를 지르긴 하지.’

    각성자는 보통 10대부터 나이 25세까지. 한창 혈기 왕성할 시기.

    재작년에 31세 각성자가 생겼는데, 언론에서는 최고령 각성자라고 불렀지, 아마?

    그 이후로 줄곧 20대 초반, 10대 후반으로 고정되어 있다시피 했는데.

    내 나이 스물여덟.

    확률이 로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신기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고 있다.

    그때그때 감정대로 움직이기에는 이젠 나도 경험이란 게 생겼고.

    헌터의 말로를 너무 많이 봐 왔기 때문일까?

    ‘만약 어중간한 능력이라면 정부에도 알리지 않는 편이 나아.’

    헌터 보조원의 주 업무는 몬스터 사체를 치우는 일이지만, 때때로 헌터 시신도 수습한다.

    최대한 정중히 수습하고 싶지만 몬스터들이 먹다 남긴 시체가 보기 좋을 리가.

    그나마 시신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 상대가 육식이라면 배를 갈라서 꺼내 와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제정신으로는 못 견딜 일이지. 그건.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헌터들이 우리를 더 혐오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퇴근해서 바디 캠 뺄 때까지는 모르는 척하자.’

    내가 묵묵히 일을 하고 있자 알림음이 다시 울렸다.

    띠링-

    -상태 창을 확인해 주세요.

    “…….”

    “거, 엄 씨 오늘도 일 척척이네.”

    나는 계속 일을 해 나갔다.

    -상태 창을 확인해 주세요.

    -상태 창을 어서 확인해 주세요!

    뭐지? 알림음도 자아가 있나? 왜 이렇게 자꾸만 독촉을 해?

    내가 그렇게 이상해 보였나?

    상태 창 확인도 안 하고 일하고 있으리라는 건 상상도 못 한 모양인가?

    하긴 당연하긴 했다. 원래라면 ‘심봤다아아아!’ 하면서 신나서 상태 창을 켜야 하니까.

    “…….”

    “이제 거의 짐 다 실었네.”

    헌터는 수없이 많은 권리가 생긴다.

    조세 감면에 면책권부터, 연금. 심지어 총기 소지 허가도 내려진다.

    동시에 의무도 생기지.

    거주지를 중심으로 일정 반경 내에 던전이 생기면 차출이 될 수가 있다.

    국가가 부르면 가는 히어로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A급, B급, 하다못해 C급만 되어도 어찌저찌 자기 목숨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D급 아래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E급. 그것도 전투에 하등 쓸모없는 능력자라면?

    “엄 씨! 뭐 해? 트럭 안 타고?”

    나는 트럭 짐칸에 올라탔다. 헌터들은 그런 우리를 힐끗 보더니 중얼거렸다.

    “어휴, 좀 씻고나 살지.”

    “그러지 마. 못 배우신 분들인데…….”

    그 말에 보조원들 모두 얼굴을 붉혔다.

    모두 아버지뻘 되는 분들이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책임질 가족들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자존심까지 버린 건 아니지.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냈다.

    “김희완 헌터님! 선이팔 헌터님! 몬스터 해체를 하면 씻어도 씻어도 냄새가 배더라고요. 저희가 뭐 그렇다고 각성자분들이 쓰시는 특급 샴푸를 쓸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주시면 고맙겠지만!”

    내가 본명을 부르자 헌터들이 얼굴을 확 붉혔다.

    “아니, 뭐…….”

    “가자. 야.”

    더러운 걸 밟았다는 표정으로 헌터들이 앞, 리무진 버스에 탔다.

    방탄, 방검, 항마 코팅이 되어 있는 리무진으로 승차감이 끝내준다고 한다.

    딱 봐도 외국 고급차처럼 생겼네.

    돈 있는 헌터들이 많이 즐겨 타서 요즘은 상류층의 상징처럼 광고되고 있더라.

    헌터들의 리무진이 출발하자 우리 보조원 트럭도 뒤따라 털털 굴러갔다.

    이 씨 아저씨가 내 어깨를 쳤다.

    “엄 씨, 정말 고마워.”

    “뭘요.”

    “그냥…… 고맙다고. 다들 같은 생각일 거야.”

    다른 보조원들도 함께 말했다.

    “엄 씨는 기죽는 법도 없고, 말도 참 잘해. 얼마나 고마운지.”

    그렇게 말하며 모두가 다시 엄지를 들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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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뭐냐고, 이거?

    보통 경험치나 레벨 업 메시지가 울려야 하지 않나?

    * * *

    헌터 보조원 일은 보통 주 1회에서 2회 정도?

    워낙 위험한 일인 데다가 헌터들이 언제 날을 잡아서 사냥할지 모르는 터라 정기적으로 일을 하기는 어렵지.

    ‘무엇보다 한번 하고 나면 삼 일을 앓아눕기도 하고.’

    작업복을 벗고 퇴근계를 찍고.

    곧바로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한 번 더 하고 파스부터 붙이고.

    이 씨 아저씨가 말했지. 돈 벌어 약값에 다 쓴다고, 오래 할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남매가 대학을 가 버려서 어쩔 수가 없다나 뭐라나.

    아빠로서 보내 줘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나는 무식해서 대학 못 갔어. 그런데 인서울에 둘 다 떡하니 붙었지 뭐냐. 크크크, 엄마 닮아서 머리가 아주 비상해. 공부도 많이 안 했는데 그걸 붙었어.’

    학력, 경력 무관에 짧은 시간에 이만큼 돈을 주는 일도 없다 보니 매달리게 되지.

    거기다가 보조원인 우리도 노하우가 많이 쌓였고, 털릴 대로 털린 던전은 이미 지도도 거의 다 개방되어 있으니.

    “크으…… 파스가 오늘은 약발 무지 받네.”

    온몸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안 아픈 곳이 없다. 아고고…….

    그나저나.

    이분은 왜 이리 재촉이 심하시나?

    -신 ???께서 당신에게 확인을 하라고 재촉합니다.

    신이라…….

    각성자들 중에 아주 드문 확률로 신에게 선택받아 각성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만.

    ‘그런데 그거 한참 전 일 아니었나? 최근에 신의 선택을 받은 각성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구시렁대고는 대충 셔츠를 꿰어 입었다.

    작은 원룸의 내 집.

    맥주 한 캔을 딱, 따서 한 모금 마시니 아주 천국이군.

    자, 그러면 재촉하시는 대로 해 볼까.

    “시스템 오픈.”

    각성한 헌터들이 시스템을 얻는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마치 게임의 그것과도 닮았다는 것도.

    그걸로 뭘 할 수 있는지 나는 다른 일반인보다는 자세히 알고 있었으니까.

    애초에 싫든 좋든 헌터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직업.

    당연하다면 당연하려나.

    ‘이제 내 이름이랑 직업이랑 레벨이 뜨겠군. 전직 화면도 뜰 거고.’

    그나저나 이런 식으로 각성하는 사람도 있었나?

    내 눈앞에 마침내 나타난 것은 뭔가…… 내가 알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형태의 시스템 화면이었다.

    -갓튜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은 신 ???께 관심을 받아 갓튜브 소셜 스타로 발탁되셨습니다.

    -상세 설명을 보시려면 도움말을 클릭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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