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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엠페러-316화 (316/336)

316화

* * *

“족장!!!!!!!!”

리한의 고함에 마물들을 도륙하던 리워르가

그를 보며 우릉우릉 하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고하라!!”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푸른 밤 까마귀 부족과

서릿발 부족, 초원 들풀의 부족 모두 전사했습니다!!”

쾅!!!!!!!!!!

리워르가 자신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코뿔소의 모습을 한 짐승을 도끼로 내리찍으며 중얼거렸다.

“…흡!”

단 한 번의 내리침.

짐승은 그의 도끼질에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반으로 온몸이 갈려 양분된 채로 그를 스치고 지나쳤다.

“빌어먹을….”

“태양 불꽃 부족 역시도 고전 중입니다!!”

“현재 위치는.”

“북서 방향입니다!”

“내가 간다. 이곳을 막도록.”

“예!!!”

“움무어어어어어어어!!!!!”

말을 마친 그가 긴 울음을 토해냈다.

그의 주위로 붉은 기운이 크게 솟구쳤다.

그에게서 피어난 기운은 거칠고 날카로워

그를 둘러싼 마물들조차도 쉽게 다가설 수 없었다.

쾅!!!!!!!

그가 북서쪽을 향해 성난 황소마냥 거칠게 뛰어나갔다.

도끼도, 칼도, 창도, 심지어 방패 하나조차

들지 않은 그였음에도 그는 조금도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쿠구구구구구!!!!

그가 뛸 때마다 암반으로 이루어진 지반은

그의 족적이 선명하게 새겨지며 요란하게 바스러졌다.

게다가 그를 향한 마물들의 창과 칼, 도끼는

나무 부지깽이마냥 형편없이 부러지고 깨졌고,

그가 몸을 부딪친 마물들 역시 속수무책으로 터져 나갔다.

그보다 훨씬 큰 몸집을 한 마물이건,

돌덩어리와도 같은 모습을 한 골렘 형태의 마물이건

그와의 충돌에 조금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박살이 났다.

쾅!!!!!!!!!!!!!!!!!

뛰어가던 그 속도 그대로 공중으로 몸을 띄운 그가

전장으로 뛰어들며 등에 맸던 도끼를 꺼내

그대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쾅!!!!!!!!!!!!!!

거대한 충격파에 수백은 될 마물들 모두가

모조리 그 자리에서 즉사하거나 으깨져 죽었고,

즉사는 피한 몇 역시 마비된 채 쓰러져 몸을 떨었다.

“리워르!!”

태양 불꽃 부족의 족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후. 상황은 어떻소?”

가볍게 숨을 내쉰 그가 전황을 물었다.

“아까와 같소. 별반 달라진 게 없소.

저 짐승들 하나하나의 힘은 별 게 아니지만,

떼로 덤벼드니 수가 없소. 물량에 끝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대답과 함께 그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쾅!!!!!!!!!!!!!!!

“제기랄… 좋은 소식은 단 하나도 없군.”

소란에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는 마물들을 향해

기운이 담긴 도끼를 내던진 그가 허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방법은 없소. 뚫거나 뚫리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오.”

콰득.

하나 남은 도끼를 손에 쥔 그가 음울하게 대답했다.

“그는 어디에 있소?”

태양 불꽃 부족의 족장이 다급히 물었다.

“이한성을 말하는 거요?”

“그렇소.”

“찾아서 어쩌려 그러오.”

“도움을 청해야 하지 않겠소?”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한 얼굴로 그가 소리쳤다.

“그에게도 우릴 도울 여유는 없을 거요

자신이 속한 곳에서 제 나름의 싸움을 하고 있을 테니.

어쩌면… 투르바 놈을 대적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이대로라면….”

“게다가 도움을 청할 수도 없소.

그가 내게 붙여준 데스나이트가 말하길,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에게서 대답이 없다더군.

정확히 말하자면 뭔가에 가로막힌 것 같다고 했소.”

“빌어먹을… 그럼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오.”

브라한의 얼굴에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보시오. 브라한.”

“…?”

리워르의 부름에 그가 고개를 들었다.

“이미 그에게 우린 많은 빚을 졌소.

그는 우리를 구해줬고, 스스로를 지킬 힘을 주었으며,

투르바 년의 마수에서 벗어나 싸울 수 있는 기회까지 줬소.

이번 생 모두를 다 바쳐도 우리가 진 빚은 다 갚지 못하겠지.”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오. 하지만….”

쾅!!!!!!!!

리워르가 마주 오는 스톤 골렘 한 기를 향해

도끼를 던져 산산조각을 내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대는 은혜를 갚을 생각은 하지도 않고,

우리보다 더 힘들고 고된 싸움을 하고 있을 그에게

더 달라고, 더 해달라고 떼를 쓰려는 거요?”

후욱. 후욱….

그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하나 더.”

“…?”

“그대는 전사이기 이전에, 한 부족의 족장이기 이전에,

한 여인의 든든한 남편이고 자식들의 울타리가 될 아비요.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대는 그런 존재가 될 자격이 없소.”

“그게 무슨 말이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리워르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대가 사랑하는 이들의 내일을….

그대가 아닌 다른 이의 손에 맡기려는 거요?”

“….”

“만약 내 말이 틀렸다면, 보이시오.

도와달라는 나약한 소리 따위는 집어치우고

한 번이라도 더 도끼를 휘두르고, 해머를 던지시오.

지금 그들을 구할 자는 이한성이 아니라 당신이니.”

꾸드득.

그가 입술을 짓씹으며 대답했다.

“…그대의 생각이 옳소. 내가 나약했소. 부끄럽군.”

팡.

죽은 오크의 품에서 도끼를 주워 든 리워르가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와 강하게 등을 쳤다.

“형제끼리 부끄러울 건 없소.”

“…고맙소.”

“진짜 부끄러운 건,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거니까.”

“맞는 말이오.”

“다시 가봅시다.”

“갑시다.”

무우우우우우우!!!

말을 마친 리워르가 다시 긴 울음을 남기고는

해일처럼 몰아치는 마물 군단을 향해 튀어 나갔다.

* * *

까드득.

좋지 않은 전황에 테낙스가 이를 갈았다.

준비했던 화살과 쇠뇌, 바위들은 바닥을 보였고,

언제나 굳건할 것만 같던 성벽은 무너질 듯 후들거렸다.

심혈을 기울여 육성한 마법 병단 역시도 시들시들했다.

산처럼 쌓여있던 마력 회복 플라스크는 동이 난 지 오래였고,

계속된 사출과 무리한 연사에 마법사들은 지쳐 쓰러지거나

마력의 역류로 회복 중이었다.

테낙스와 리워르, 오크 대장군들을 비롯한 전사들이

먼저 치고 나가 몰려오는 마물들을 밀어내지 않았더라면

성문 역시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으리라.

하지만 그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죽었고 또, 죽어갔다.

오크도, 엘프도, 타우렌들도

그 누구 하나 피를 흘리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모두가 슬퍼했고 분노했다.

“라이카!!!! 엎드려!!!”

테낙스가 전장의 한중간으로 쇄도하며 소리쳤다.

라이카라 불린 청년 하나가 놀라 급히 고개를 숙였고

아슬아슬하게 그의 머리 위로 범의 거대한 앞발이 지나쳤다.

사각.

그의 머리칼이 떨어져 내렸다.

콰각.

순식간에 라이카의 곁에 다다른 테낙스가

그를 뒤로 밀치며 범의 목을 빠르게 베어 넘겼다.

툭. 털썩.

푸확!!

“고… 고맙습니다.”

절단면으로부터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범의 피.

이를 뒤집어쓴 그가 꽤나 놀랐는지 떨며 말했다.

“사방이 적이다. 정신 안 차려?!”

테낙스의 고함에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그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짓씹으며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가라!”

“예!”

대답과 함께 다시 전장으로 뛰어가는 그.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테낙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죽지 마라.”

이미 많은 이들을 잃은 그였다.

아들처럼, 딸처럼 여겨왔던 부족의 전사들이

전쟁이 시작됨과 동시에 최전선으로 가 싸우다 죽었다.

거기다 백에 달하는 자신의 친위대 중

절반 이상이 제 눈앞에서 마물들에게 찢겨 죽었으며,

나머지 삼 할에 해당하는 이들 역시도 무참히 밟혀 죽었다.

더 이상은 가까운 이의 죽음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물러서지 마라!!!! 최후의 순간까지 싸워라!!!”

테낙스의 고함이 전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특별한 힘이 담겨 있는 것도 아니건만,

그의 목소리는 전장의 끝에서부터 끝까지 가 닿았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연합군에게 닿지 않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지휘관의 목소리보다는

눈앞의 죽음이 그들에겐 훨씬 더 크게 와 닿았을 테니까.

“내게 닿으려거든 백 년은 이르다!!!!”

콰득. 콰가각. 사악.

테낙스의 검은 삭풍(朔風)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조금의 자비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잔혹하고 날카로웠다.

외피가 단단하든 단단하지 않든, 덩치가 크든 작든,

마물들은 그의 털끝조차 스치지 못하고 쓰러져 내렸다.

그가 나아간 길에는 마물들의 사체만이 쌓여 있었고,

마물들이 흘린 붉은 피만이 카펫처럼 펼쳐져 있었다.

쿵.

후욱… 후욱… 후욱….

스윽.

마물 하나가 쓰러져 내리고 그런 마물의 앞에서

피에 젖은 얼굴을 한 그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생채기 하나 남아있지 않은 그였지만,

마물들보다도 더 괴물같이 날뛰던 그였지만

그 역시 숨을 쉬는 생물이었기에 지치긴 마찬가지였다.

그가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발을 내딛으려던 그때.

“지휘관님.”

후방에서 병사 하나가 급히 다가와 그를 불렀다.

테낙스의 친위대 중 하나였다.

‘뭐지.’

순간 테낙스는 그에게서 불안을 읽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안색은 창백했으며

어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설마.’

“…말하라.”

“아… 아드님과 아내분께서 싸우시다 그만… 전사하셨습니다.”

움찔.

그의 어깨가 살짝 흔들렸다.

“아리나와 테락이?”

“예.”

보고를 하는 병사의 목소리도,

보고를 받는 그의 목소리도 미약하게 떨렸다.

아주 잠깐의 침묵.

“…알겠다.”

그 말을 끝으로 그의 슬픔은 거기서 멎었다.

어떻게 죽은 것인지, 무엇에게 당한 것인지,

고통 없이 간 건지 등의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았다.

대신 입을 다물고 칼을 더 날카로이 휘두를 뿐이었다.

지휘관의 무게라는 것이 그런 것이겠지.

흔들리지 않기 위해 더욱 굳건히 검을 쥐었다.

얼마나 세게 쥔 건지 검을 쥔 손이 희게 질렸건만,

그는 이조차도 몰랐는지 그저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그의 두 눈가에는 핏발이 가득 서 있었고 붉어져 있었다.

감정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던 것이리라.

캉!!!

캐객…!!!!

늑대의 배를 가른 병사가 다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지휘관님. 예상보다도 적의 반항이 거셉니다.

일단 지금은 후방으로 대피하셨다가 다음을 노리….”

“난 한 입으로 두말하는 자가 아니다. 파차.”

테낙스가 그의 말을 자르며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전장의 가장 앞에서 싸우다 죽겠다는 말을 뜻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파차.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지금 여기서 놈들을 막아내지 못하면, 다음은 없는 것을.”

“….”

으득.

파차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지휘관인 내게 꼬리를 말고 도망을 치라는 것이냐?

있지도 않을 다음을 위해서? 그래?”

콰득.

순식간에 자이언트 스콜피온의 머리를 베어내고

쏘아진 그것의 꼬리침마저 베어낸 그가 말을 이었다.

“그건 지휘관이 아니다.”

“….”

“그리고… 내게 더 이상 돌아갈 곳은 없다.

이곳이 나의 무덤이며, 내가 사랑한 자들을 기릴 곳이다.”

“….”

“그러니 내 육신이 찢기고 혼이 녹는 한이 있어도,

내 저 빌어먹을 것들을 모조리 찢어 죽여야 하겠다.”

으득.

입술을 짓씹은 그가, 타는 눈으로 발을 내디디며 소리쳤다.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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