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화
* * *
쾅!!!!!!!!!!!!!!!!!!!!!!
카가각!! 칵!! 콰득. 쿵!!!!!!!!!!!!!!!!!!!!!!
눈꺼풀이 무겁다. 눈이 자꾸만 감긴다.
수없이 쳐 내고 또 쳐냈던 검이 또다시
내 목을 노리고 서늘한 빛을 내뿜으며 날아온다.
서걱.
볼을 베고 지나가는 날붙이의 서늘한 감촉.
푸확.
얕게 베였지만,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열감.
마치 허벅지 안에 누가 불꽃을 넣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춥군….’
상처를 헤집는 듯한 열감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몸의 내부는 차갑게 식어만 갔다.
숨이 거칠고, 눈앞이 흐렸다.
그러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놈의 목, 머리, 심장을 노리는 단검은
빛살처럼 녀석에게로 나아가 놈을 가르고 또 갈랐다.
분명 내 팔이고, 내가 휘두르는 내 손이건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휘둘러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발악일까.
아니면 몸에 아로새겨진 전투 본능인 걸까.
‘여기서 난 뭘 하고 있는 거지?’
캉!
생각과 함께 또다시 날아온 검 하나.
몸이 크게 휘청거릴 만큼 강한 충격이었다.
콰득.
‘윽….’
찢어진 손아귀로부터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졌다.
‘아. 그렇지. 투르바를 제거하러 왔지.’
통증 덕분인지 흐릿하던 눈앞이 잠시나마 선명해졌다.
그곳엔 악귀 하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재밌어 죽겠다는 듯한 얼굴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그래. 저놈이었어.’
내 가벼운 손짓에 생겨난 등 뒤의 원으로부터
수백에 달하는 검은 창들이 쏟아져 그에게로 나아갔다.
쐐애액!!!!
카카카카칵!
가장 먼저 놈에게 닿은 창 하나가
그것이 휘두른 칼에 의해 반으로 갈라졌다.
카각! 캉! 카가가각!!
쏘아져 나간 다른 창들 역시도 운명은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잘리고 베이고 부서졌고,
검은 연기로 화해 공중으로 흩어져 사라졌으니까.
후웅.
천라지망으로 그림자 속에 녹아든 내가
미리 투르바의 후방에 보낸 그림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악.
다시 한번 놈의 목덜미를 향해
나의 단검이 빠르고 은밀하게 휘둘러졌다.
전보다 단검이 무겁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아니, 기분 탓이 아니었다. 휘두르는 팔 역시도 무거웠으니.
단검이 놈의 목에 가 닿으려던 찰나.
“깜찍하군.”
악귀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단검을 쳐냈다.
카캉!
일격은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쉽게 막혔고,
시큰한 손목의 통증에 나도 모르게 단검을 놓쳤다.
‘이런…!?’
어느새 등을 돌린 악귀.
그가 내 양 손목을 그러쥐고는 날 들어 올렸다.
콰득.
“윽….”
뼈가 부러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
손에 힘이 빠졌다.
푸화아아악!!
내게서 성난 벌 떼처럼 피어난 포식이
그의 손을 타고 오르며 거세게 그를 짓씹고 태웠으나,
그는 조금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스킬 : 포식이 에너지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에너지 포인트가 30%에 도달합니다.]
[기뻐하는 자의 사용이 가능합니다.]
“이따위 잔꾀나 부릴 정도로 여유가 없는 거냐?”
악귀는 제 몸을 찢어발기는 포식들을 보고도
그저 빙글빙글 웃으며 같잖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참 딱하군. 네놈도.”
쾅!!!!!!!!!!!!!!!!!!
악귀가 내지른 주먹 하나가 내 복부를 강타했다.
[경고 : 누적된 충격의 정도가 높습니다.]
[업적 : 금강불괴가 발동, 충격이 반감됩니다.]
[경고 : 전체 체력의 15% 남았습니다.]
[경고 : 전투 수행 능력이 현저히 부족합니다.]
[경고 : 즉시 전장에서 이탈, 전투를 회피할 것을 권고합니다.]
“커헉…!”
말로 다 할 수 없는 충격과 고통.
순간적으로 의식이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마치 정전되었던 전등의 불이 다시 들어온 것처럼.
“으윽….”
정신을 차렸을 때 난, 악귀와 많이 떨어져 있었다.
내 몸은 돌덩어리들 사이에 처박힌 채 구겨져 있었다.
그러는 사이 그는 마치 먼지를 털 듯 가볍게
제 몸에 옮겨붙은 포식과 그림자들을 가볍게 털어냈다.
그리고는 날 향해 뭐라 뭐라 중얼거리며 걸어왔다.
급할 것 하나 없는 여유로운 걸음이었다.
“^$^@& %#%….”
계속해서 들려오는 삐 소리 때문에
그가 뭐라고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았다.
보나 마나 조롱과 비웃음이겠지. 개새끼.
그나저나 맞은 건 복부인데 왜 귀가 안 들리는 걸까.
울컥.
“구아아악….”
목구멍에서 솟구친 뭔가가 쏟아져 내렸다.
새까맣게 죽어버린 막대한 양의 피였다.
내부는 진탕이 될 대로 돼버린 건지,
살점 조각인지, 내장 조각인지도 함께였다.
입가에 피를 닦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숨을 제대로 쉬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수준이었으니까.
‘…윽….’
의식이 또렷하지 못했다.
계속된 고통과 나른함에 정신이 몽롱했다.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콰득.
내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그림자인지 아니면 그것에 어린 포식인지가
내 팔뚝을 살짝살짝 아플 정도로 짓씹어댔다.
정신을 차리라는 뜻이겠지.
‘빌어먹을… 꿈이었다면 좋았으련만.’
생생한 고통에 그나마 정신이 좀 맑아졌다.
삐― 소리와 함께 집을 나갔던 청력도 돌아왔다.
들리지 않던 마귀의 말소리가 서서히 들리기 시작했다.
“…아까의 패기는 어디 간 거지? 응?”
악귀가 날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재미없구나. 이제는. 너도.”
[경고 : 대상 ‘투르바’가 대상 ‘이한성’에]
[‘매혹, 혼란, 공포, 위협’의 상태 이상을 가(加)합니다.]
[스킬 : 왕의 위압이 발동, 저항에 일부 성공합니다.]
[흩어내지 못한 ‘투르바’의 힘이 ‘이한성’에 스며듭니다.]
[업적 : 차가운 이성의 소유자가 발동, 저항에 일부 성공합니다.]
[흩어내지 못한 ‘투르바’의 힘이 ‘이한성’에 스며듭니다.]
[업적 : 신살자가 발동, 투르바의 권능에 완전히 저항합니다.]
“구아아악.”
갑자기 치솟는 구역감에 뭔가를 뱉어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역하고 나쁜 기분이 속에서 들끓었다.
툭.
입에서 쏟아져 내린 건 검은 덩어리의 무엇인가였다.
그것은 죽은 피라고 보기에는 너무 검었고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 사특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피라면 보여야 할 붉은 기도 보이지 않았다.
순수한 마기 덩어리였을까.
아니면 투르바가 심으려는 뭔가일까.
“도대체가 뭐냐…? 너라는 존재는.”
콰각.
그가 한성의 머리채를 거칠게 낚아채고는
자신의 얼굴 가까이로 잡아 올리며 중얼거렸다.
“다 죽어가는 주제에 어째서 내 힘을 밀어낼 수 있는 거지?”
그것의 눈은 짜증과 분노로 가득했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대로 터질 것 같은 네놈이….
어떻게 내 힘을 버텨내고 밀어낼 수 있는 거냐? 응?”
우드득….
“끄윽….”
머리가 짓이겨질 것 같은 고통에 한성이 신음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한성을 향한 그의 눈은 신기한 벌레를 보는 듯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성이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음?”
“네놈은… 날…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씨익.
말을 마친 한성의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걸렸다.
“…하.”
투르바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고는 피식 웃었다.
“미쳐 버린 건가. 이제는.”
콰득.
그가 한성의 머리를 쥐어 잡고는 그대로 한성을
공을 집어 던지듯 바닥을 향해 전력으로 내동댕이쳤다.
쾅!!!!!!!!!!!!!!!!!!!!!!!!
“커헉…?!”
내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이 전신을 감쌌다.
기침과 함께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경고 : 누적된 충격의 정도가 높습니다.]
[업적 : 금강불괴가 발동, 충격이 반감됩니다.]
[경고 : 전체 체력의 12% 남았습니다.]
[경고 : 전투 수행 능력이 현저히 부족합니다.]
[경고 : 즉시 전장에서 이탈, 전투를 회피할 것을 권고합니다.]
그러나 고통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할 새도 없이 그의 발이 한성을 무자비하게 짓밟았으니까.
쾅!!
“이렇게!”
[경고 : 누적된 충격의 정도가 높습니다.]
[업적 : 금강불괴가 발동, 충격이 반감됩니다.]
[경고 : 전체 체력의 10% 남았습니다.]
쾅!!
“짓밟히기나 하는!”
[경고 : 전체 체력의 9% 남았습니다.]
쾅!!
“네놈이!”
[경고 : 전체 체력의 8% 남았습니다.]
쾅!!
“어떻게!”
[경고 : 전체 체력의 7% 남았습니다.]
쾅!!
“나보다!”
[경고 : 전체 체력의 6% 남았습니다.]
쾅!!
“더 강하다는!!!”
[경고 : 전체 체력의 5% 남았습니다.]
쾅!!!
“소리냐!!!!”
[경고 : 전체 체력의 4% 남았습니다.]
[경고 : 전투 수행 능력이 현저히 부족합니다.]
[경고 : 즉시 전장에서 이탈, 전투를 회피할 것을 권고합니다.]
투둑.
그가 내딛고 있는 곳을 중심으로
10m 내의 지반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있었다.
평지는 거대한 하나의 구덩이가 되어 있었고,
그 무너져 내린 평지의 중심에는 그와 한성이 있었다.
우악스러운 그의 발로부터 돌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렸다.
떨어져 내린 돌 부스러기와
그의 발 일부에는 한성의 것인지 피가 묻어 있었다.
한성은 피투성이가 되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죽은 것일까.
창백한 피부에 조금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
숨을 쉰다면 가쁘게 오르내렸어야 할
그의 가슴도 역시나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후우….”
그는 피떡이 된 한성을 내려다보며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뭐야. 너무 짓밟았나?”
그가 한성을 내려다보며 키득거렸다.
“이제 좀 봐줄 만하군.”
터벅. 터벅.
무슨 생각인지 그가 천천히 구덩이 밖으로 걸어 나가
바위 위에 걸터앉은 채 한성을 찬찬히 바라보던 그때.
쿨럭. 푸확.
기침과 함께 한성이 피를 뱉어냈다.
“그래. 그래야지. 아직은 죽으면 곤란해.
네놈에게 보여줘야 할 게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그런 한성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에는 묘한 기쁨이 떠올라 있었다.
완전히 망가졌다 생각했던 장난감이
아직은 망가지지 않았음을 깨달은 아이와도 같은 눈이었다.
“죽지 않아 줘서 고맙다 말해주고 싶군.
하마터면 네놈에게 말했던 것들을 지키지 못할 뻔했어.
네놈에게 고통과 절망을 안겨주겠다던 그 말을 말이야.”
그가 한성을 보며 키득거렸다.
‘…빌어먹을.’
한성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커헉… 컥….”
숨 역시 가빠 왔다.
피로 물든 웃음을 한 채 다가오는 투르바를 보면서도
한성은 손가락 하나조차도 제대로 까딱이지 못했다.
아니, 그럴 힘이 없었다.
애써 모였던 힘도 모래처럼 흩어져갔으니까.
쿵.
크르르르르….
곁에 남은 그림자와 포식들이 한성을 에워싼 채,
그를 호위라도 하듯 그 앞에서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그럼에도 여유롭게 다가오는 그를 향해
포식과 그림자들이 사납게 달려들어 휘몰아쳤지만,
별 생채기조차 남기지 못하고 한 줌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분했다.
눈앞에 적이 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치욕스러웠다.
자신의 백성이자 힘이 된 그림자들과 포식들을
지켜내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이.
버릇처럼 입술을 짓씹고자 했지만 그조차도 어려웠다.
쩍쩍 갈라진 입술은 떨리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기에.
‘끝인가….’
의식이 흐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