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 * *
쾅. 콰가각. 쾅.
끄그그그극.
쾅!!!
카강! 캉! 카가각!
소름이 끼치는 금속성.
북이 터지는 듯한 묵직한 소리.
둔기로 뭔가를 내리찍는 소리.
여러 소리들이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불똥이 튀었고,
충격으로 산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뒤집혀 솟구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충격을 만든 원인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꺼지는 지반,
무너져 내리고 있는 산, 치열하게 튀는 불똥,
스쳐 지나가는 붉고 검은 네 줄기의 빛뿐이었다.
쾅!!!!!!!!!!!!!!!!
굉음과 함께 육중한 무엇인가가
육안으로 확인키 어려운 속도로 날아가 처박혔다.
쿠르릉….
마지막 남은 산등성이가 무너져 내렸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산들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남은 건 수없이 많은 돌덩어리들과 먼지들뿐.
쿠궁….
무너져 내린 지반으로부터 화산재처럼 흙먼지가 솟구쳤다.
웬만한 도시 하나쯤은 쉽게 덮을 수 있을 정도의 규모.
짙게 피어오른 흙먼지 사이로
불처럼 타오르는 붉은 빛 두 개가 보였다.
안광이리라.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빛조차도 자취를 감췄다.
후웅.
흙먼지 위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아지랑이가 하늘을 뒤덮자 주변은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사사사사사삭.
검은 아지랑이는 이내 창의 모습으로 변했고,
당장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흉흉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딱.
어디선가 들려온 손가락 튕기는 소리.
핑.
그 소리와 동시에 총구를 벗어난 탄환처럼
하나의 창이 무너져 내린 지반을 향해 쏘아져 내렸다.
후욱.
먼지구름을 뚫고 들어간 창.
캉!!
공격이 실패를 한 것일까.
금속성의 소음과 함께 먼지 사이로 불똥이 크게 튀었다.
그를 신호로 굵직한 크기의 창들이 미친 듯 쏟아져 내렸다.
후우웅.
창들이 나아가며 인 바람으로
흙먼지가 흩어지며 반으로 갈라졌다.
그곳엔 자신을 향해 빠르게 쏟아져 내리는
수백의 창을 보고도 씩 웃는 투르바가 있었다.
“재밌군. 아주 재밌어.”
카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각!!!!!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며 도달한 그림자들이
그가 휘두른 여섯의 검에 화려한 궤적을 그리며 튕겨 나갔다.
그는 수없이 쏟아지는 창들을 상대로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는 탄환처럼 쏘아진 그림자들을
쳐내는 것도 모자라 갈라내거나 반으로 자르기까지 했다.
폭죽과도 같은 불똥이 튀어 올랐고,
튕겨져 나간 창은 땅이나 바위 조각에 박힌 뒤
다시금 본래의 검은 연기로 화해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핏. 피핏.
그러나 그런 그조차도 모든 창을 막지는 못한 것인지,
창은 그의 볼과 팔, 다리 곳곳을 스치며 제 흔적을 남겼다.
생채기가 생겨나고, 살이 갈라지며 핏물이 튀어 올랐다.
씨익.
피가 흘러내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저
이 상황에 몹시 즐겁다는 듯 웃으며 창을 쳐냈다.
사악.
그때, 그의 발아래로부터 그림자들이 솟구쳐 올랐다.
“음?”
이질적인 느낌에 그가 자신의 발아래를 바라봤다.
그림자들은 그에게 조금의 피할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빠르게 그의 발을 감싸 올랐다.
마치 끈적거리는 타르가 살아 움직이듯
솟구쳐 올랐고 이내 하반신으로 그 영역을 넓혀갔다.
그가 발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그림자는 그를 쉽사리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찌익.
그림자들은 찢어지면서도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끈질기게 그를 붙잡고 늘어졌다.
“숨어서 기껏 생각한 게 이따위 장난질인가.”
웃던 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약간 짜증 난 얼굴을 한 그가
창이 쏟아져 내리는 하늘을 향해 손 하나를 들어 올렸다.
“우선 저 정신 사나운 것들부터 처리해야겠군.”
담담한 말과 함께 그가 무심한 얼굴로
해를 가리듯 손 하나를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다.
덜컥.
마치 누군가 뒤에서 잡아당기기라도 하듯,
매섭게 쏟아져 내리던 수백의 창이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부르르.
마치 더러운 오물이 묻었다는 듯
온몸을 떨어대며 그의 힘을 털어내려 했으나,
그림자들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는지 결국 움직임이 멎었다.
“사라져라.”
콰득.
말과 함께 그가 무심한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가각.
수많은 창들이 그의 손짓을 따라
종잇장 구겨지듯 그대로 구겨졌고 찢겨 나갔다.
구겨지고 찢어진 창들은 연기로 화해 사라지거나,
지상으로 떨어져 제가 있어야 할 그림자로 녹아들었다.
“참으로 재밌는 힘이야. 죽여도 죽지가 않으니.”
녹아든 그림자들을 보며 코웃음을 치던 그.
착.
“음?”
서늘한 촉감에 그가 아래를 내려다보자,
하반신을 뒤덮은 그림자들이 이젠 더 위를 향하고 있었다.
착.
촉수랄지, 채찍이랄지의 모습을 한 그림자들이
칼과 여섯의 팔을 포함한 전신을 이리저리 옭아맸다.
“정말 이 정도로 날 구속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그가 흥미롭다는 듯한 눈으로
제 몸을 이리저리 얽고 있는 그림자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니면 뭔가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중인 건가.”
즐거워 죽겠다는 듯 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뭐가 됐든 날 즐겁게 해다오. 이 빌어먹을 애송아.”
콰득.
그가 힘을 주어 그림자를 끊어내자,
더욱 많은 그림자들이 솟구쳐 그를 휘어 감았다.
스윽.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수십에 달하는 주변 바윗덩어리의 그림자가
있어야 할 제 자리를 벗어나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자연의 이치와 법칙을 벗어난 힘.
한성이 가진 흑의 군주의 힘이리라.
다가온 그림자들은 즉시 검고 큰 입을 벌렸고
그로부터 그림자들이 물밀듯 솟아올라 그를 옭아맸다.
“양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건가. 한심하군.”
그가 끊어내려 힘을 주었으나,
그림자는 쉽게 끊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음?”
오히려 그럴수록 옭아매는 힘은 더욱 강해졌고,
그의 몸에 가해지는 그림자의 압박 역시 강해져갔다.
부들부들 떨리는 그의 팔과 다리.
피가 통하지 않아서일까.
압박에 붉게 달아올랐던 피부는
희게 질리다 못해 점점 더 검게 변해갔다.
“…꽤나 질기군.”
사악.
말과 함께 발아래에 있던 그림자의 영역이 점차 커졌다.
“…?”
콰득.
이를 기다렸다는 듯 그림자들은
그를 강하게 압박하며 어둠으로 천천히 끌어 내렸다.
“이건… 예상치 못했군.”
어둠 속으로 끌려 내려가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불안이나 다급함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할 테면 해보라는 듯한 느긋한 말과 행동이었다.
스윽.
그의 시선이 어딘가를 향했다.
그곳엔 악귀 같은 모습을 한 한성이 있었다.
타오르는 그의 안광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전신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기파는 거칠었으며
말끔하던 수트에는 제 것인 듯한 피로 칠갑이 돼 있었다.
우우웅.
그의 단검 끝에는 흑월난무의 힘인 듯,
난폭하고 거친 기운이 날카로이 어려 있었다.
“저것 역시도.”
투르바의 말과 동시에 한성이 단검을 휘둘렀고,
그로부터 수십의 검은 반월이 그에게로 쏘아져 갔다.
소리도 없이 나아간 반월의 그림자에 세상이 어두워졌다.
흑월난무의 기운들이 그에게 닿기 직전, 그가 입을 열었다.
“시도는 좋았다. 허나 이 정도로는 부족해.”
쾅!!!!!!!!!!!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림자에 얽매였던 투르바의 신형이 사라졌다.
우지직!
오래된 나무뿌리가 찢어지는 거친 소리와 함께
그의 힘을 견디지 못한 그림자들이 찢어지고 터져나갔다.
‘빌어먹을?!’
눈을 감았다 뜨는 것보다 더 짧은 시간이건만,
투르바는 어느새 한성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거체가 만들어낸 그늘에 한성의 하늘이 어두워졌다.
한성의 눈이 당황으로 뒤흔들렸다.
‘죽는다.’
본능이 외쳤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지금 내지르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에
주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두 손이 바삐 움직였다.
허공에 어지러이 포물선을 그리는 두 손.
단검에 어린 흑월난무의 힘이 그를 따라
투르바를 향해 수십의 반월들을 쏟아냈다.
수 개의 반월은 수십으로,
수십의 반월은 다시 수백으로 늘어나
투르바를 향해 벼락처럼 쏟아져 나아갔다.
투르바 역시 한성이 지척에서 흑월난무와 같이
크고 위험한 힘을 무식하게 쏟아낼 줄은 몰랐던지,
조금은 놀란 얼굴로 제 목을 노리고 쏘아진 반월을 쳐냈다.
콰가가가가가가각!!!
카각. 캉. 카캉.
서걱. 서걱. 서걱.
“으아아아아아아!!!!!”
쳐낼 때마다 터지고 찢어져 조각난 흑월난무들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그의 몸에 상처를 남겼다.
서걱.
“…?”
반월의 파편 하나가 스쳐 지나가며
그의 얼굴에 굵고 깊은 선 하나가 새겨졌다.
푸확.
피가 터져 나왔다.
“이 애송이가.”
짜증과 분노로 그의 눈이 물든 순간,
미처 쳐내지 못한 하나의 반월이 그를 스쳐 지났다.
서걱.
그로부터 꽤나 큼지막한 그림자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됐다!’
한성의 얼굴에 한 조각의 기쁨이 어렸다.
“이런.”
떨어져 내린 그림자는 그의 여섯 팔 중 하나였다.
푸화아아아아악.
절단면으로부터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고,
피에 젖은 투르바의 얼굴은 전보다 더욱 흉악해졌다.
“이 벌레보다 못한 하등한 새끼가!!!!!!!”
마지막 반월을 쳐낸 그가 한성의 옆구리에 검을 휘둘렀다.
‘이런?!’
짓쳐들어오는 검을 본 한성이 황급히
단검을 십자로 포개어 막아내려 했으나 이는 허사였다.
그에 담긴 힘은 쉽게 막아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쾅!!!!!!!!
우득.
“커헉….”
숨과 함께 내뱉어진 나지막한 신음.
쾅!!!!!!!!!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한성이 멀찌감치 나아가
바위 더미들 속으로 형편없이 내팽개쳐졌다.
전보다 크게 피어오른 먼지구름.
짙게 낀 먼지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툭.
힘이 다했는지 한성의 손아귀에서 단검이 떨어졌다.
단검은 이내 검은 연기로 화해 한성에게로 스며들었다.
‘커헉….’
갈비뼈가 부러진 건지 아니면 완전히 으스러진 건지,
소리조차 내지 못할 고통에 한성의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쿨럭.”
기침과 함께 뱉어낸 피는 꽤나 많았고,
내부 또한 진탕이 되어 버렸는지 마력이 들끓었다.
[경고 : 전체 체력의 15%가 남았습니다.]
[경고 : 누적된 충격의 정도가 높습니다.]
[업적 : 금강불괴가 발동, 충격이 반감됩니다.]
[경고 : 상태 이상 ‘출혈’이 발생합니다.]
[경고 : ‘분노하는 자’의 상태 지속 가능 시간이 초과,]
[1초 뒤 페널티가 주어질 예정입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경고 : 전체 체력의 13%가 남았습니다.]
[‘분노하는 자’의 상태가 해제되었습니다.]
[시전자의 역량을 넘어서는 스킬 사용으로 페널티가 발생,]
[대상 ‘이한성’의 신체 능력이 일시적으로 크게 하락합니다.]
[대상 ‘이한성’의 체력과 마력이 일시적으로 크게 하락합니다.]
[페널티 해제까지 59분 58초 남았습니다.]
[경고 : 전투 수행 능력이 현저히 부족합니다.]
[경고 : 즉시 전장에서 이탈, 전투를 회피할 것을 권고합니다.]
[경고 : 전체 체력의 10%가 남았습니다.]
미친 듯이 경고음이 들려왔다.
그러나 경고음은 몽롱한 의식 때문인지,
아니면 죽어가서였는지 평소보다도 작게 들려왔다.
피가 쏟아지면서 몸은 차갑게 식어갔다.
졸음이 쏟아졌고 손 하나 까딱이기 힘들었다.
모든 게 귀찮았고, 모든 게 의미가 없었다.
[경고 : 전체 체력의 8%가 남았습니다.]
‘베어낸 건 겨우 팔 하나뿐인가….’
눈앞이 흐려졌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는데….’
사악.
어느새 모인 그림자들이 돌부리에 아무렇게나
쓰러진 한성을 조심스레 안아 들고 평지로 옮겼다.
끼잉.
마치 주인을 걱정하는 개처럼 낑낑거리며
한성의 주변을 맴돌았고 몸을 치며 한성을 깨우려 들었다.
‘…고맙다.’
한성의 마음이 전해진 건지 그림자들이
전보다 더 큰 소리로 낑낑거리며 제 왕의 안위를 살폈다.
그러나 한성은 아무런 대답도, 표현도 할 수 없었다.
[경고 : 전체 체력의 6%가 남았습니다.]
주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림자가 툭툭 미는 것조차도 이제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밀면 미는 대로, 흔들면 흔드는 대로
한성의 몸은 파도에 휩쓸리는 부표처럼 힘없이 움직였다.
‘벨루몬 녀석들은 지금쯤… 잘하고 있으…려나.’
‘잘해야… 할 텐…데…….’
한성의 의식이 끊어지던 그때.
희미하게 들리던 시스템의 음성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경고 : 전체 체력의 5% 남았습니다.]
[업적 : 죽음을 이겨낸 자가 발동합니다.]
[공격력, 방어력, 회복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합니다.]
[인위적 신체 능력 강화로 HP 일부가 영구 손상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29일 23시간 59분 59초.]
‘업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