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라스트 엠페러-289화 (289/336)

289화

* * *

뉴델리 전역에 피비린내와 시체 썩은 내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타올라 나는

역겨운 냄새들과 연기들 역시 전역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게다가 분노에 찬 마물들의 고함,

몸을 찢고 가르는 고통에 대한 울부짖음,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질러내는 피맺힌 절규가

뉴델리의 전역에서 쉼 없이 노래처럼 울려 퍼져댔다.

이 모든 것은 벨루몬의 리치 군단과

인비디아의 권속들이 만들어 낸 화음이었다.

쿵! 으적.

키에에에에에엑!!

보이지 않는 중력에 흡혈귀들이 짓눌려 터져 나갔다.

쿠과가가가가가각!

끄아아아아악!!

갈라진 땅으로부터 솟구친 용암에

좀비와 구울들은 피하지조차 못하고 녹아내렸다.

꽈르르릉.

끼야아아아아악!!!

리바이브로 살아난 마물들과 스켈레톤 군단 역시

떨어져 내린 굵은 벼락 줄기로 인해 조각나 사라졌다.

후우우욱.

쿵. 콰드득.

골렘이 던진 트럭과 건물의 파편들에

마물들은 속수무책으로 깔려 터지거나 찢겨져 나갔다.

리치들과 그들의 권속들이 만들어내는

이 피의 향연은 오로지 그들을 위해 준비된 것 같았다.

리치들의 압도적인 힘에 마물들은 그저 갈려 나갈 뿐,

아무런 힘도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쓰러졌으니까.

그러나 지옥과 같은 환란 속,

벨루몬의 리치 군단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다.

아무리 마법에 능통한 리치라고는 하나,

그들 역시 마력의 지배를 받는 존재들 중 하나일 뿐.

마력의 제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는 않았으니까.

하급 리치들 중 몇은 동난 마력을 회복하려

휴식을 꾀하다 재빠른 흡혈귀의 손에 그들의 심장

즉, 라이프 베슬을 빼앗겨 깨지면서 목숨을 잃어갔다.

이에 미약하지만 전열이 뒤흔들렸고,

마물들을 향해 쏟아지는 화력의 수준이 약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불리한 건 오히려 리치 군단인 듯했다.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조차 못 하는 언데드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내장을 핥으며, 살점을 씹어댔다.

살육과 광기, 피와 비명으로 가득한 이곳은 지옥이었다.

“카하하하!! 죽어라!!!!”

그리고 그 광기의 한가운데에 트롤 하나가 서 있었다.

하늘에서부터 눈과 불덩어리가 쏟아져 내리며,

내리쳐진 굵은 번개가 땅을 뒤집고, 지반이 흔들리고,

중력이 역전되어 물건들이 떠오르다 떨어지는 미친 세상에.

물론. 그 세상은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인비디아가 만들어 낸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세상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세상에서 벨루몬은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이었다.

“왜 반격 한번 하지 못하고 막고만 있는 것이냐! 벨루몬!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힘든 것이냐? 그래? 크하하하하하!!”

“대답할 가치조차 없군.”

벨루몬이 담담히 답하며 손을 휘저었다.

쾅!!

다가오던 화탄이 더는 다가오지 못하고 공중에서 터졌다.

그로 인해 화탄은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며

화려한 불꽃놀이를 토해냈고 지상의 것들을 집어삼켰다.

치익.

유탄 혹은 네이팜탄마냥 쏟아져 내린 불똥은

건물과 마물들에 달라붙어 그들이 소멸하는 그 순간까지

거칠고 거세게 타올랐다.

“…손이 꽤 독하군. 그래.”

“네놈을 잡으려면 뭔들 못 할까.”

벨루몬의 말에 그가 눈을 번뜩이며 답했다.

“글쎄. 이 정도로는 날 잡기 힘들 텐데.”

“…뭐?”

벨루몬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뜨거웠다.

“전에 비해 강해진 건 사실이나,

그건 어디까지나 네놈의 노력 덕이 아닌

투르바 년이 네놈에게 동냥하듯 준 힘의 파편 때문이다.

그리고 넌 거기에서 나아갈 생각이 없지. 멍청한 녀석.”

벨루몬의 조소에 그의 눈에는 불길이 일었다.

“닥쳐라!! 네놈이 뭘 알기에…?!”

“게다가.”

“?”

“마법적 재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데다,

술식과 연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갖추지 못한 네가

날 상대로 도대체 뭘 할 수 있을지 참으로 궁금하단 말이지.”

“….”

“너의 현 상태를 짧게 요약하자면,

힘만 센 애새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신랄한 벨루몬의 말에 오기라도 생긴 것일까.

제법 큰 기운이 그에게서 솟구쳐 올랐다.

지팡이의 끝, 상당한 크기의 마력석으로부터

짙은 보랏빛의 광선이 벨루몬을 향해 뻗어 나갔다.

성인 남성의 팔 너비는 될 정도로 광선의 규모는 상당했다.

마치 SF 영화에서나 볼법한 레이저 포와 같은 모습이었다.

푸화아아아아아아악!

보랏빛의 광선 끝에 마뜩잖은 얼굴의 벨루몬이 있었다.

‘사(死)의 선인가.’

그는 그것을 두려워하지도 피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손을 들어 올렸을 뿐이니까.

손가락의 반지가 찬란한 빛을 내자,

그의 전면에는 절대 방어가 겹겹이 세워졌다.

푸화아아아아악.

광선은 그를 꿰뚫어내지 못하고 양옆으로 갈라져 나갔다.

‘…생각보다도 훨씬 예상을 웃도는 힘이군.’

벨루몬의 안광이 약간은 흐트러졌다.

갈라져 나간 광선은 흩어지지 않고

건물과 적아를 가리지 않고 언데드들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벨루몬의 방호에 의해 반으로 양분되었다고는 하나,

감히 이를 이겨낼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도 없었다.

건물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으며

네크로폴리스의 가호를 받은 언데드들조차 소멸했다.

마력이 차고 넘치는 것인지,

벨루몬의 말이 틀렸다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벨루몬의 방호를 뚫어내지 못함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힘의 대치가 꽤나 팽팽했다.

까드득.

순간, 굳건하던 벨루몬의 절대 방어에 작은 균열이 일었다.

“이런. 슬슬 힘이 빠지나 보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인비디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나 힘을 쏟아냈는데,

겨우 이 정도 균열만 만들어냈으니….

이 얼마나 비효율적이며, 잘못된 계산인가. 애석하군.”

그의 비웃음에도 벨루몬의 냉소는 여전했다.

으드득.

“그럼 이건 어떠냐!!!!!!!”

“뭐?”

달라진 놈의 기도에 벨루몬의 안광이 약간 흔들렸다.

“죽어라!!!!!”

그의 말과 동시에 빛이 한층 더 강해지며

쏘아진 광선의 출력 역시 한층 더 강해졌다.

쿠과가가가각각!!!

“?!”

콰득… 콰드득….

한번 간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고,

가속도가 붙은 것인지 더욱 빠르게 부서져만 갔다.

카강!

첫 번째 절대 방어가 무너져 내렸다.

“이런….”

벨루몬의 안광이 불안하게 흔들렸고,

인비디아는 그런 그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죽어!!!!!!!!!”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크아아아아악!!!”

유리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절대 방어는 산산조각 나 환한 빛 무리로 흩어졌고,

벨루몬은 보랏빛의 광선에 그대로 휩쓸려 사라졌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이어졌다.

“허억… 허억… 허억….”

얼마나 지났을까.

인비디아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흙먼지와 돌 조각들뿐,

벨루몬의 흔적이랄 것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벨루몬의 뒤에 빼곡하게 서 있던 건축물들과

수없이 많은 마물 사체들의 무덤 역시 사라져 있었다.

태초부터 그곳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해치운 건가…?”

벨루몬을 찾는 그의 눈이 바삐 움직였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벨루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급히 기운을 끌어 올려 벨루몬의 힘을 찾았고,

색적 마법을 펼쳐 그의 흔적을 찾았으나 탐지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전한 소멸.

“내가… 이겼…나? 내가 이겼어?”

의심이 곧 기쁨이 되고, 기쁨은 곧 희열이 되었다.

“이 내가!!!!! 벨루몬을 죽였다!!!!”

그의 포효에 건물들이 무너져 내렸다.

“마도의 극에 닿은 자! 망자의 위에 군림하는 자!

벨루몬을!! 이 몸 인비디아가 찢고 굴복시켰다!! 이 내가!!”

“우와아아아아악!!!!!!”

지극한 쾌락이 전신을 스쳐 지나갔다.

온몸의 털이 곧게 솟구쳤고,

짜릿한 승리의 쾌감이 손가락 끝에까지 퍼져 나갔다.

질투해 마지않던 존재를 제 손으로 끝장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너무 대견스러웠고 자랑스러웠다.

이 세상에 자신의 과업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약에 취한 건지, 스스로에게 취한 건지

몽롱한 얼굴로 제 군대와 세상을 바라보던

그의 눈에 보이지 말았어야 할 이상한 게 보였다.

“…?”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여전히

자신의 권속들을 찢고 있는 리치들과 아크리치들이 그것.

우두머리를 잃었으니 꽁지 빠지게 도망치거나

승자인 자신에게 와 목숨을 구걸했어야 했건만….

녀석들은 조금도 이를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그 말은…?’

불길한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던 그때.

그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 즐겼나. 애송이?”

뼛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한기에 놀란 그가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듯했다.

“다크 라이트닝.”

영혼을 찢어발기는 듯한 격통이 느껴졌으니까.

* * *

“됐다! 됐어!!!”

마사키가 저 멀리 본진으로부터 피어오른

청색의 기운을 보며 기뻐 소리를 질러댔다.

“드디어!!”

마사키의 외침에 서큐버스를 반으로 갈라내던

마키토 역시 쾌재를 부르며 칼을 마저 휘둘렀다.

피어오른 청색의 기운은 빠르게 흩어져

전역에 흩어져 있는 헌터들과 군인들에게로 스며들었다.

탕!!

“빌어먹을! 너무 늦은 거 아니야!?”

인큐버스의 머리 한가운데를 꿰뚫은 나가노 역시

투덜거리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미소는 숨길 수 없었다.

자신에게도 스며든 청색의 기운이

몽마들의 힘을 밀어내는 것을 보면서

이길 수 있다,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겠지.

청색의 마력장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곳에는 꽤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버퍼와 디버퍼 등의 지원형 헌터들이 바로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지친 얼굴이었고,

지쳐 주저앉은 채였지만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해냈다는 생각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들의 노력은 허튼 것이 아니었던 듯,

몽마들의 색기와 환각에 홀려 정기만 빨리던 자들이

하나둘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중상급 헌터들은 물론 하급 헌터들, 그리고 군인들까지

전원 각자의 무기를 들고 몽마들을 상대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색기와 환각만이 그들의 힘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들은 리치만큼이나 마법에도 능한 종족이었으니까.

그러나 색기와 환각이 통하지 않게 되자,

그들은 더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마물들이 아니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신체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도 않은 데다,

후방의 버퍼들은 헌터와 군인들의 마법 저항력을 올리고,

상대 몽마들의 마법 공격력을 디버프시키기까지 했으니까.

이제 남은 것은 일방적인 학살뿐.

그러나 현실은 생각만큼 달콤하지 못했다.

딱.

사악.

손가락이 튕겨지는 소리와 함께,

전장에 불어 넘쳤던 타우한의 민트 향은 사라져 갔다.

그리고 불어 닥친 것은 예의 그 불쾌할 정도의 단 내.

여인의 분 냄새 같기도, 살냄새 같기도 한

그 냄새에 다시 헌터들과 군인들이 정신을 잃어갔다.

“제길!! 다시 발동시켜!!”

본진에서 다급한 고함 소리와 함께,

헌터들이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이조차 허사였다.

카각.

알 수 없는 힘에 본진의 바닥 한가운데 새겨진

마법진이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깨졌으니까.

“제기랄!!!!”

“어머. 타우렌 씨랑 노느라 잠깐 눈 돌린 사이에

우리 아가들이 재밌는 짓을 해놨네. 잠깐만 기다려.

이 누나가 금방 끝내고 너희들한테 갈 테니까. 알았지?”

달콤하다 못해 끈적한 목소리의 끝에는

요염한 자세로 채찍을 들고 있는 우르티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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