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 * *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엑!!!!!!”
쾅!!!!
“아끼지 말고 쏟아부어!!!!”
“죽어라!!!!!!”
미리 설치해두었던 폭약들이 폭발하는 소리.
이에 미친 듯이 흔들리는 지반과,
무너져 내리는 절벽 아래 깔려 터지는 마물들의 소리.
덫에 발목이 끊겨 비명을 질러대는 마물들의 고함 소리.
깊게 파인 고랑에 박힌 날카로운 창과 날붙이에
몸에 꿰뚫린 마물들이 죽어가며 외쳐대는 비명 소리.
죽어가는 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으며
마물 연합군을 향해 내달리는 마물들의 발소리까지.
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1열 투석기 발사!!!!”
푸확.
투석부대장의 힘찬 고함 소리와 함께
당장이라도 터질 듯 팽팽하게 당겨진 끈이
순식간에 퍽하고 터지는 듯한 소음과 함께 끊어졌다.
쾅!!!!
쿠르르르….
이에 연합군의 후방에서부터 돌무더기들이 날아갔다.
집채만 한 크기의 돌덩어리 수십이
적의 진영에 낙하와 동시에 부서지고 터져 굴렀다.
“쿠웨에에에에엑!!”
그 힘과 무게를 버텨내지 못한 마물 군단의 일부는
으깨지고 짓눌려 터졌고 그대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2열 발리스타 발사!!!”
푸확.
발리스타 역시 마찬가지로 뿌드득 소리와 함께
당겨졌던 끈이 놓아지며 통나무 수준의 굵은 나무 기둥이
쐐액 하는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마물들에게로 나아갔다.
화살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의 크기와 굵기였다.
그러나 이들의 발리스타에 사용된 화살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화살과는 모습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나무의 끝에 철 조각을 조각해 만든 화살촉이 아니라
붉게 물든 하급 마력석 여럿이 천 조각에 쌓여 매여 있었으니까.
나아간 나무 기둥이 마물들과 지상에 부딪치는 순간.
마력석이 눈부시게 밝은 빛을 내뿜었다.
쾅!!!!!!!!!!!!!!!!!!!!!!!!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큰 불기둥이 솟구쳤다.
이 충격에 지반이 흔들렸고,
양옆의 절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려 마물들을 덮쳤다.
쏟아져 내리는 절벽의 조각들에 마물들은
속절없이 깔려 터지거나 꿰뚫려 그대로 즉사했다.
마력석 조각의 정체는 마력석을 개량해 만든 일종의 폭탄이었다.
각종 화염 마법들을 저장해 둔 마력석들이
외부 충격에 의해 폭발하도록 손을 써둔 것이 바로 그것.
마치 미사일의 탄두를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뒤로 마법사들의 공격과 지원 또한 수없이 이어졌다.
적을 마비시키고, 방어력을 약화시키며,
몸을 둔하게 하거나 느리게 하는 저주들부터
한 번의 공격으로 수십, 수백을 치는 체인 라이트닝,
대단위 지역을 얼어붙게 해 깨뜨려 버리는 블리자드까지.
강한 일격과 저주들이 무식하게 쏟아져 내렸다.
오크 주술사들은 강맹했던 일족 전사들의 혼을 일깨워
죽음에서부터 다시 일어나 한 번 더 싸워주기를 부탁했고,
그들은 후손들의 강한 염원에 응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궁수에서부터 전사에 이르기까지
몸을 일으킨 자들의 그 모습도 종류도 다양했다.
그들은 마치 처음부터 연합군의 일원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군의 대열에 합류하는 모습을 보였다.
궁수는 궁수 부대의 곁에 나아가 활을 당겼고,
전사들은 그대로 주둔지에서 뛰어내려 마물들을 향해 나아갔다.
몸을 일으킬 때부터 무기를 갖추고 일어난 그들은
일반적인 오크 전사와 궁수들이 보이던 것보다도 더욱 강했다.
주술의 힘이 그들을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궁수 부대 또한 살벌한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엘프와 타우렌들의 공격대상은 따로 나누어져 있었다.
엘프들의 화살은 비교적 외피가 얇은 이들을 노렸다.
바람의 정령의 가호를 받아서일까.
그들의 화살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고,
미간, 눈, 심장 등 단 한 발만으로도 즉사가 가능한
치명적인 약점들에만 나아가 박힐 정도로 또 정확했다.
반면 타우렌들의 무식한 힘을 그대로 욱여넣은 듯한 석궁은
갑옷 등의 방어구를 입은 마물이나 근육이 두꺼운 적을 노렸다.
석궁의 볼트는 마치 꽤나 큰 구경의 탄환이
몸을 관통하기라도 한 것마냥 마물들의 방어구를 부수고,
근육을 찢어발겼으며, 뼈를 부수어 놈들의 육체를 헤집었다.
주둔지 앞은 죽은 마물들로 이루어진 수백의 산과
그들이 흘린 체액과 피로 이루어진 수십의 강이 있었다.
연합군의 손실이라고는 화살과 마법사들의 마력뿐이었고,
부상당한 이나 다친 이는 단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짓쳐들어오는
마물 놈들의 기세는 조금도 꺾이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바로 옆 마물의 대가리를 화살이 꿰뚫고,
앞 마물의 복부를 석궁의 볼트가 박살을 내도,
뒤 마물들이 집채만 한 바위에 깔려 터져나가도
놈들은 조금도 진군의 속도를 늦추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놈들을 죽일수록, 놈들의 기세는 오히려 흉흉해져 갔고
눈에 어린 살기와 마음에 품은 살의는 더욱 강해져만 갔다.
놈들에게 휴식이란 없었다.
말 그대로 성난 파도처럼 미친 듯이 휘몰아쳐댔으니까.
놈들은 타는 갈증이 일면 그대로 고개를 처박고 피를 마셨고,
굶주림이 일면 옆으로 고개를 돌려 다른 이의 살점을 씹었다.
옆에서 누군가의 대가리가 터져나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굶주림과 갈증이 가시고 나면 놈들은 다시 덤벼들었다.
마치 처음 달려드는 것처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전쟁의 흐름을 살피던 테낙스가 소리쳤다.
“리워르! 네바다! 출전을 준비하라.”
“드디어 우리 차례인가.”
테낙스의 날 선 고함에 리워르와 대장군들이
씩 웃으며 각자의 병장기를 꺼내 들었다.
“지금부터 리워르와 대장군들을 주축으로 한
전사들이 나서 놈들의 공격과 진입을 막아낼 것이다.
그동안 궁수 부대와 마법병단은 돌아가며 휴식을 취하고,
떨어진 화살은 보급받아 언제든 공격을 가할 준비를 하라.
이는 후방 투석 부대와 발리스타 부대에도 해당한다! 알겠나!”
“예!!”
병사들의 고함이 일시에 주둔지를 울렸다.
“그리고 거기에 나 또한 참전할 것이다.”
“…하… 하지만.”
보좌관으로 보이는 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날 말만 앞서는 한낱 쭉정이로 보았더냐?
지휘관이기 이전에 나 또한 검의 길을 걷는 검사다.
내가 뱉은 말은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지킬 것이다.”
“예.”
“혹여나 내가 죽을 것이라는 걱정은 마라.
죽어도 다시 살아나 최후의 순간까지 검을 휘두를 거다.
내가 말했듯, 내가 내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예.”
보좌관이 끓어오르는 가슴을 억지로 가라앉히며 답했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늘 내 맘처럼 되진 않지.”
테낙스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혹여나 내가 잘못되거든 이티카 님과 바두르 님을 찾아라.
그 두 분이시라면 내 빈자리를 충분히 메우고도 남을 테니까.”
“허나… 전투가 시작된 그 시점부터 두 분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제가 어디 가서 그 두 분을 찾아야 할지요.”
“네가 찾지 않아도 곧 다시 모습을 보이실 거다.
지금쯤이면 놈들의 허리나 꼬리를 자를 준비를 끝내셨겠지.”
“…그 말씀은.”
“그래. 별동대가 움직였다.”
테낙스가 대답했다.
* * *
마물 연합의 주둔지와 꽤나 멀리 떨어진 절벽의 위.
일만은 될 법한 수의 무장한 마물들이
긴장한 얼굴로 도열한 채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의 끝에는 입술을 짓씹은 채,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 늙은 엘프 하나가 있었다.
그의 눈에는 노기와 살의가 짙게 어려 있었고
주먹을 쥔 그의 손끝은 미세하게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절벽의 아래로는 눈이 붉게 물든 마물들이
피가 갈구하는 듯한 요란한 비명을 질러대며
어딘가를 향해 쉬지 않고 미친 듯이 질주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 방향에 끝에는 마물 연합의 주둔지가 있었고,
그 시선 끝에는 그들을 힘겹게 막아내는 테낙스들이 보였다.
“후… 정말… 끝도 없군. 질려버릴 정도야.”
한숨과 함께 절벽의 아래에서 눈을 뗀 그가
일만에 달하는 마물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법을 쓴 것인지 아니면 그의 능력인 것인지,
그의 작고 흐릿한 말소리는 모든 마물들의 귀에 가 닿았다.
“준비는 다들 되었습니까?”
“예!”
이티카의 말에 별동대가 한 치 오차도 없이 동시에 답했다.
“어려운 일이 될 겁니다.”
“….”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 여러분의 곁에 있는 동료들이… 형제들이
저 마기에 미친 마물들의 손에 죽어가는 걸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
“하지만 우린 해내야 합니다.
지금 막아내지 못하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으니까요.”
그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려댔다.
목소리에는 슬픔 때문인지 울분 때문인지 물기가 어려 있었다.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을 하려던 그가
차마 그 말을 내뱉지 못하고 힘겹게 삼켰다.
그들이 가려는 전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며,
그들이 해내야 하는 임무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기에.
잠깐의 침묵 뒤에 그가 간신히 다시 입을 열었다.
“부디 세계수의 광휘가 그대들에게 함께하기를.”
“세계수의 광휘가 함께하기를!!”
잠기고 갈라져 새가 된 그의 목소리에도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더욱 크게 소리쳤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이티카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그들을 잊지 않겠다는 듯 최대한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새기려는 그의 노력이 계속되었다.
종족별로 우수한 자원들만 선별해 가르쳤다던
벨루몬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도는
잘 벼려진 칼의 날보다도 날카롭고 또 사나웠다.
몇몇 마물들의 경우에는 종족의 대표 자리를 놓고
경합한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수준인 듯 보였다.
그들은 종족과 관계없이 병과 별로 모여 있었다.
본대와 따로 떨어져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별동대가 된 이상
종족이라는 틀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 데다,
서로가 서로에게 동료가 되길, 가족이 되길 바라서였다.
그리고 그런 이티카와 바두르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그들에게 있어 더 이상 종족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저 등을 맡길 수 있는 전우가 되어 있었고,
서로의 안부를 친근하게 물을 수 있는 친구가 되었으며,
그들을 위해 기꺼이 제 목을 내놓을 수 있는 가족이 되었으니까.
오크, 타우렌, 엘프.
종족은 다를지언정, 열중쉬어 자세로
이티카의 말을 듣고 있는 그들의 굳은 표정이나,
적을 멸살하고야 말겠다는 그 일념 하나만큼은 같아 보였다.
“바람의 날개에 안녕을, 대지의 포용에 감사를.”
그의 곁에 있던 바두르가 말과 함께 지팡이를 휘둘렀다.
이에 마물들의 머리 위로 주황빛의 빛 무리가 흩날렸다.
한성에게 적지만 힘을 부여받은 데다,
바두르 또한 그에게 보탬이 되려 부단히 노력을 해 온바
이 정도의 강화는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대들의 발걸음을, 그리고 움직임을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르고 민첩하게 해줄 거요.
내가 그대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자 최선의 것이요.”
제 손자를 바라보듯 마물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안타까움과 서글픔 그리고 미안함이 어려 있었다.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아
죄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으리라.
“부디 그대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빌겠소.”
자신의 몸을 살피던 마물들이
바두르를 향해 경례와 함께 힘차게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대족장.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 보이겠습니다.”
“대의를 위하여.”
“대의를 위하여!!!”
바두르의 말과 함께 그들은 절벽의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이러한 몸짓들이 부디 헛고생이 되지 않길 빕니다.”
“…그래야지요.”
바두르의 중얼거림에 이티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