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라스트 엠페러-260화 (260/336)

260화

* * *

[뭐?]

“버티는 것쯤이야 딱히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시간은 결코 우리의 편이 아니다.

버틸수록 우리의 힘만 축날 뿐, 저들은 아니야.

놈들은 지치지도 다치지도 않는 탐욕의 덩어리들이다.”

[그렇겠지.]

“그러니 뚫어낼 생각이다.”

[무슨 수로 저것들을 뚫는다는 거지?]

[내 힘조차도 통하지 않음을 너도 보지 않았나?]

[더한 힘을 쏟으면 못할 것도 없지만 위험부담이 크다.]

창 기둥을 쳐내는 레그나토르의 손이 어지러웠다.

[축기(築氣) 하는 동안에 생길 방어의 부재도,]

[내게 쏟아질 놈들의 관심들도 모든 게 부담이지.]

[또한 적이 어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 큰 힘을 할애할 순 없다.]

“알고 있다.”

[마력을 근간으로 하는 너의 힘 또한,]

[녀석들에겐 그저 맛 좋은 먹잇감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놈들을 뚫어내려면 초고위급의 마법은 써야 할 거고,]

[그 과정에 방어의 공백이나 마력 수급 문제도 생길 거다.]

[그건 어쩔 것인가.]

그림자들을 바라보는 레그나토르의 안광이 타올랐다.

“그 또한 맞는 말이지. 깡통치고는 꽤나 머릴 썼군.”

카가가가강!!

레그나토르가 창 기둥들을 쳐내며 말을 이었다.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는 거냐 네놈은?]

[도대체 어떻게 저것들을 뚫어내겠다는 것인가!]

“조심!!!”

미처 쳐내지 못한 그림자 창 기둥들이

레그나토르의 우측 허리를 향해 빠르게 날아오자

칸이 섬전과 같은 속도로 방패를 변형해 날리며 소리쳤다.

카가가가가강!!!

순식간에 방패의 정면을 정확히 가격한 그림자 창들이

도로 튕겨져 나가고 방패는 다시 칸에게로 빠르게 되돌아갔다.

[…고맙군.]

“인사는 나중에. 또 온다!!!”

점점 격해져 가는 무수한 창의 공격에

레그나토르의 검과 칸의 방패에서 미친 듯 불똥이 튀어댔다.

카가가가가각.

“크윽….”

칸의 몸 여기저기에 생채기가 생겨나고,

포식의 기운이 옮겨붙어 일렁거리기 시작하자

타우한의 신성이 포식들을 밀어내고는 그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고맙다. 타우한.”

사라져가는 생채기를 보며 칸이 씩 웃었다.

“별말씀을.”

[어떻게 할 거냐. 군사!! 명해라!]

레그나토르의 고함에 벨루몬이 다시 입을 열었다.

“티에라. 네가 나서야겠다.”

“최후의 보루 말씀이시죠?”

철컥.

티에라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최후의 보루가 든 탄환을 장전하며 중얼거렸다.

“그래. 네가 가진 즉발성의 힘이 필요하다.

힘의 축적을 위한 별도의 준비가 필요 없으니

저 탐욕스러운 놈들의 시선을 끌 일도 없을 거다.

또, 타우한의 지원이 있다면 그 힘이 몇 배는 강해지겠지.”

벨루몬의 눈이 그림자의 벽으로 향했다.

“그렇게 되면 저 벽을 뚫어내는 건 물론이고,

터져 나오는 힘을 노리느라 녀석들의 주의까지 끌 수 있다.

또한 제 한계를 넘어서는 힘을 탐내다 자멸하기까지 할 거야.

우린 이걸 노려 녀석들을 치고 생긴 균열로 빠져나간다.”

“알겠어요.”

“알겠소.”

“타우한. 너의 방호까지 내가 맡을 테니,

넌 그녀의 힘을 강화할 버프를 준비해라. 당장.”

“알겠소.”

타우한이 품에서 토템들을 꺼내며 답했다.

“칸과 레그나토르는 나와 타우한이 준비하는 동안

최대한 마력의 손실 없이 저들을 막아 시간을 번다. 알겠나.”

“알겠다.”

[막아내 주지.]

벨루몬의 말에 칸과 레그나토르가 동시에 소리쳤다.

* * *

[스킬 : 포식이 에너지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에너지 포인트가 30%에 도달합니다]

[기뻐하는 자의 사용이 가능합니다]

‘제법인데?’

그림자의 벽 밖에서 벨루몬들을 바라보는 한성의 눈이 빛났다.

갑작스러운 레그나토르의 영입으로

삐걱거릴 줄로만 알았던 저들의 팀워크는

생각보다도 꽤나 정교하게 잘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평소에 서로 티격태격하며 싸우기는 해도,

함께 했던 시간과 쌓아온 마음들이 꽤나 깊었던 모양.

결과적으로는 좋은 것이었다.

“준비됐소!!”

타우한의 토템에서부터 시작된 오색찬란한 기운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티에라에게로 흘러 들어가 어렸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 티에라의 총구 끝에도

당장이라도 쏘아져 나갈 듯한 새파란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다.

“준비 완료.”

“쏴라.”

벨루몬의 담담한 대답과 함께

티에라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쾅!!!!!!!!!!

저격 총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큰 굉음과 함께 최후의 보루가 그림자의 벽으로 발사되었다.

꾸궁….

미사일이라도 터진 듯한 소리와 함께

눈이 시릴 정도의 푸른빛이 그림자의 벽을 강타했다.

푸화아아악!!

끼아아아아아아악!!

그림자의 것인지 아니면 포식의 것인지 모를

째지는 듯한 높은 비명 소리가 결계 내부를 가득 채웠다.

감당하지 못할 충격에 고통스러웠던 것이리라.

타격지점으로부터 새파란 화염이 터져 나와

결계 전체를 가득 채울 정도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벨루몬과 타우한, 칸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전력을 다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호를 펼쳤고,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푸른 화염을 막아냈다.

“크윽….”

까각….

타우한의 방호가 크게 흔들리며 조금씩 녹아 균열이 생겼다.

“됐다.”

최후의 보루의 타격 지점에서

눈을 떼지 않던 벨루몬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 끝에는 뻥 뚫린 그림자의 벽이 보였다.

후웅.

벨루몬들의 아래로 빛나는 마법 도형들이 나타났고,

순식간에 벨루몬들 모두의 모습이 그곳에서 사라졌다.

후웅.

“크으… 이건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군.”

타우한이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그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그림자의 방으로부터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

그리고 그림자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동떨어진 곳이었다.

벨루몬의 예상대로 포식은 최후의 보루가 뿜어대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에 제대로 된 반응을 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레그나토르의 대검에 잘려 나갔을 때에도

손쉽게 회복하던 그림자들이 쉽게 회복을 못 할 정도였으니까.

콰직… 콰지직….

“빌어먹을. 저놈들은 지치지도 않나.”

칸이 질린다는 얼굴로 그림자의 방 안을 보며 중얼거렸다.

벨루몬들이 사라진 것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

포식은 몸이 찢어지고, 터지고, 갈라져 사라지면서도

최후의 보루가 남긴 흔적을 씹고 삼켜 제 힘으로 삼았다.

“섬뜩하다 못해 두려운 힘이오. 저 힘은.”

이제는 사라져가는 그림자들을 보며 타우한이 중얼거렸다.

딱.

흠칫.

또 한 번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리자

벨루몬들의 아래에서부터 순식간에 그림자들이 짓쳐 올랐다.

“이건?!”

그림자들은 그들을 둥글게 감싼 뒤,

전 방위에서 무시 못 할 힘으로 짓이기기 시작했다.

“우리야아아아!!!!!”

쾅!!!!!!!!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역시 칸이었다.

그는 빠르게 방패를 방어형으로 변환해

미친 듯 쏟아져 내려오는 그림자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크윽….”

그림자들의 힘이 생각보다도 컸던 모양인지,

칸의 얼굴은 고통스러운 듯 크게 일그러져 있었고

팔과 다리의 근육은 톡 건드리면 터질 듯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림자들은 좀처럼 칸의 방패를 밀어내지 못했다.

단순한 완력으로만 치자면 레그나토르조차 이겨내지 못할 힘.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벨루몬과 타우한이 절대 방어와 방호를 시전해

그들을 감싸 짓이겨 들어오는 그림자들의 힘을 빠르게 밀어냈다.

덕분에 대여섯 평 남짓한 공간이 만들어졌고

숨을 돌릴 수 있게 된 칸이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철퍽 주저앉았다.

“헉… 헉… 헉….”

“괜찮아요? 칸?”

“괜찮다. 조금 지쳤을 뿐이야.”

우직… 우지직….

“군사. 생각보다 놈들의 힘이 거세오!!

다시 포식이 어리기 전에 빨리 무슨 조치를 취해야….”

“레그나토르.”

균열이 가기 시작한 방호에 타우한이 다급히 소리치자

벨루몬이 레그나토르를 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알겠다. 이번엔 내가 하지.]

레그나토르의 말에 벨루몬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콰직… 콰지직.

레그나토르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그림자에 어린 포식이 벨루몬과 타우한의 힘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카가가가가가가각!!

“벌써…?!”

‘지쳐 나자빠져 있을 줄 알았건만….’

타우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때, 레그나토르의 전신에서 폭발적인 힘이 솟구쳐 나왔다.

“읏….”

[힘을 거둬라. 군사. 타우한.]

칠흑의 대검을 꺼내든 레그나토르가

그들의 앞으로 나아가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 하지만…?!”

[괜찮다. 믿어라.]

타우한이 머뭇거리자 레그나토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겠소.”

타우한이 벨루몬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벨루몬 또한 고개를 끄덕였고 순식간에 방호가 사라졌고,

이를 기다렸다는 듯 탐욕 어린 그림자들이 쏟아지듯 밀려왔다.

“키야아아아아아아악!!!”

사악.

그런 그들을 향해 레그나토르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요란할 것 하나 없이 좌하단에서 우상단으로 이어진

너무나 단순하고 기본적인 사선 베기가 바로 그것.

우르릉.

그러나 그것이 만들어 낸 결과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최후의 보루에도 꿈쩍 않던 결계가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미친 듯이 흔들려 댔다.

“이런…?!”

당황한 타우한이 방호를 펼쳐 모두를 감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결계가 부서질 듯 흔들리고 떨리던 움직임이 멎었다.

“해냈나.”

담담한 벨루몬의 말에 티에라들이

고개를 들어 눈앞의 레그나토르를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그들을 향해 쏟아져 내리던 그림자들은

어째서인지 정지된 화면마냥 그대로 굳어 있었다.

[가라.]

사악.

레그나토르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굳어 있던 그림자들이 검은 연기로 화해 사라져갔다.

“됐어!!”

“됐다!!”

“해냈어요!!”

“…꽤 쓸 만해졌군. 깡통.”

기쁘다는 듯 소리치는 타우한들과

레그나토르를 흡족하다는 듯 바라보는 벨루몬이었다.

삭.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새겨진 그림자로부터 한성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건만….’

그림자를 바라보는 벨루몬과 레그나토르의 눈이 날카로웠다.

“모두 잘해줬다. 꽤 만족스러워.”

입을 연 한성의 얼굴은 꽤나 흡족해 보였다.

“우선, 벨루몬.”

“예. 주군. 하명하소서.”

“본 적 없는 힘의 운용이었을 텐데도,

이에 대처하는 방식이나 접근하는 방법이 아주 훌륭했다.

상황 타개를 위해 동료들의 힘을 적절히 배치한 것도 좋았고.

이는 동료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관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

“…감사합니다.”

“게다가 이어질 내 공격에 대비해,

고위급의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마력을 아낀 점도 좋았다.

너의 선택과 전략들은 군사로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감사합니다.”

“다음, 레그나토르.”

[예. 주군.]

“적의 공격으로부터 동료들을 지켜낸 것,

흔들리지 않는 무게감으로 동료들을 보듬은 것,

압도적인 무력으로 적을 갈라 나아갈 길을 연 것.

내 검이 되겠다는 너의 그 말에 부합하는 모습이었다.”

[감사합니다.]

“게다가 그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건

네가 벨루몬의 지시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었다.

사이가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친해진 건가?”

[…군사에 대한 제 개인적인 생각이나 감정과는 별개로,]

[군사라는 직책은 주군께서 직접 그에게 내리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전 그가 아닌 주군의 판단과 생각을 따랐을 뿐입니다.]

“뭐라…?”

“풉….”

벨루몬이 발끈하며 뭔가 말을 하려는 듯했지만

한성은 손을 들어 그를 저지했고 웃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잘했다.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줘.”

[당연히 그러할 것입니다. 왕이시여.]

“다음. 타우한.”

“말씀하시오. 주군.”

“힐러로서, 버퍼로서 너의 능력은 이번 전투에서 확실히 보였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맡기는 법이 없던 벨루몬이 전적으로

너에게 그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정도니 말 다 했지.”

“그렇소? 무후후.”

타우한이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다만, 앞으로는 그 어떠한 상황에도 침착하길 바란다.”

한성의 말에 타우한이 낯을 붉혔다.

한성의 그림자에 놀랐던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리라.

“모두를 어루만져야 할 네가 흔들리면,

네가 속한 그 집단 전체가 흔들려. 명심해.”

“…명심하겠소.”

“그래. 그거면 된다.”

한성이 흐뭇하게 웃음을 지었다.

“다음. 칸.”

“듣고 있다.”

“방패라는 두 글자가 너보다 더 잘 어울리는 자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난.”

한성의 극찬에 칸의 입꼬리가 씰룩여댔다.

“그… 그랬나?”

“무수한 적의 공격에도 의연하게 이를 받아낸 것,

상황에 따라 방패를 변형해 이를 완벽하게 활용한 것,

갑작스러운 상황임에도 바로 반응해 동료를 지켜낸 것.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잘해 줬어.”

“흠흠. 고맙다!”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

“알겠다.”

“다음. 티에라.”

“네. 주군.”

“시험 삼아 그림자의 방 단 한 군데의 영역에만

결계의 강도와 두께를 약하게 만들어 두었는데

어떻게 그걸 꿰뚫어 보고 거길 공략했더군. 대단해.”

“알고 계셨어요?”

“그 넓은 결계의 영역 중에서 그곳만 정확히 노렸으니까.”

“보이더라구요. 후후.”

티에라가 웃으며 답했다.

“벨루몬이 가르쳐 준 건가?”

“아니옵니다. 주군. 모든 것은 그녀의 능력입니다.”

벨루몬이 읍하며 답했다.

“사수의 눈 덕분이겠군.”

“네. 주군께는 뭘 숨길 수가 없네요. 후후.”

“잘했다. 사수로서 넌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어.”

“보호만 받은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한걸요.”

“아니다. 만약 너의 힘이 없었더라면,

제아무리 벨루몬이고 레그나토르라고 할지라도

그리 쉽게 그림자의 방에서 빠져나오지는 못했을 거다.”

[주군의 말씀은 사실이다.]

“넌 너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런 생각 하지 않아도 된다.”

레그나토르와 벨루몬이 한성의 말에 동의하며 대답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군사, 레그나토르.”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뭐요?”

“…네?”

한성의 말에 웃는 낯이던 벨루몬들의 낯빛이 파래졌다.

우드득.

“조금 아플 거야. 아마. 나 또한 전력을 다할 테니까.”

담담한 말과 함께 목을 꺾는 한성이었다.

“…오늘은 하루가 길겠군.”

벨루몬의 말에 모두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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