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라스트 엠페러-248화 (248/336)

248화

* * *

[경고 : 열광하는 자의 상태 해제 시간이 5분 남았습니다.]

‘뭐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에

한성은 온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세상 모든 것이 느려진 것처럼 보였고,

온몸 마디마디에 충만하게 차오른 힘이 느껴졌다.

근육과 뼈가 이를 버텨내지 못하겠다는 듯

비명을 질러댔지만 한성은 느껴지는 고통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이 느낌을 즐길 뿐.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고전하던 상대였던 녹스를 눈앞에 두고서도

그에게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무슨…?!’

달라진 한성의 기도에 당황스러운 건 녹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던 녀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녀석은 자신의 권능마저 무시했고,

거부할 수 없고, 저항할 수 없는 힘을 빌려와 자신을 공격했다.

게다가 그것으로는 모자랐는지, 제 한계를 넘어서고

녹스 자신조차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은 힘을 보이고 있었다.

기가 막힐 수밖에.

‘…빌어먹을.’

녹스가 주먹을 쥐었다.

‘이… 내가 긴장을 한 건가?! 저딴 애송이에게?’

녹스의 안광이 당황과 두려움으로 심하게 떨려댔다.

[경고 : 열광하는 자의 상태 해제 시간이 4분 남았습니다.]

쾅!!!!!!!!

한성이 서 있던 지반이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져 내렸다.

‘이런…?!’

한성의 궤적을 찾던 녹스의 눈앞이 순간 깜깜해졌다.

쾅!!!!!!

[커헉….]

안면을 강타한 무지막지한 충격에

녹스의 몸은 내리꽂히다시피 지면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가가가가각!!!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지면은

과자 조각이 부서지기라도 하듯 부서져 나갔고,

녹스는 한참을 밀려 나간 다음에야 가까스로 멈춰 섰다.

‘어떻게…?’

녹스의 안광이 거세게 흔들렸다.

느껴지는 고통의 크기보다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은 한성의 공격과

물리 공격 무효화라는 권능을 무시한 규격 외의 저 힘이

더욱 큰 충격과 공포로 다가온 듯 보였다.

믿을 수 없는 고통에 멍하니 있던

녹스의 복부에 한성의 구둣발이 내리찍혔다.

쾅!!!!!!!

[끄아아아악!!!!!]

지면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마치 화산의 분화구마냥 아래로 크게 가라앉았고,

이에 흙먼지와 돌조각 파편들이 폭탄처럼 일었다.

불어온 바람에 흙먼지가 모두 사라지자,

그곳엔 붉은 안광의 한성만이 있을 뿐, 녹스는 보이지 않았다.

[경고 : 열광하는 자의 상태 해제 시간이 3분 남았습니다.]

“꽤나 쓸 만한 능력이군.”

한성이 내려앉은 지반에서 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읽혔다.’

그림자로 숨어든 자신을 곧바로 찾아낸

한성을 보며 녹스가 놀란 듯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네놈이 내 권능을 파훼하는 것이냐?!]

“그 권능인지 뭔지보다 내가 더 강하니까. 그뿐이다.”

[…이… 빌어먹을 애송이가!!!!!!!!]

쾅!!!

녹스의 신형이 한성을 향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쾅!!!!!!!!!!

콰득.

[…?!]

들려와야 할 고통에 찬 신음 소리나,

어딘가에 부딪쳐 뒹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들려온 소리는 그저 둔탁한 소리일 뿐이었으니까.

바라본 그곳에는 한성의 머리보다 두 배는 더 클 법한

그의 주먹이 더는 한성에게로 나아가지 못하고 떠 있었다.

‘미친…!?’

몇 분 전만 해도 반응조차 하지 못했던 자신의 힘을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내는 한성을 보며 녹스는 경악했다.

서걱.

투둑.

녹스의 오른팔이 언제 꺼냈는지도 모를

한성의 단검에 잘렸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

[…? 끄악!!!!!!!!!!!!!!!!!!!]

뒤늦게 찾아온 격통에 날카로이 잘린

제 팔을 발견한 녹스가 환부를 감싸며 고함을 질러댔다.

쾅!!!!!

콰드드득….

[쿠헉….]

복부를 정통으로 가격당한 녹스가

내려앉은 지반의 벽에 가 크게 부딪쳤다.

‘어째서지!? 어째서 네놈 따위가

그림자의 왕인 내게 고통을 줄 수 있는 것이냐? 어째서!!!’

녹스의 안광이 이제는 불안할 정도로 크게 흔들려댔다.

[경고 : 열광하는 자의 상태 해제 시간이 2분 남았습니다.]

푸화아아악!

칠흑의 단검이 남긴 포식의 기운이

녹스의 팔 절단면에서 크고 검게 일렁였다.

재생하려는 녹스의 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포식은 계속해서 솟아나는 녹스의 팔을 씹어 삼켰다.

콰직, 콰지직.

[끄아아아악!!!!!!!!]

계속된 격통과 포식에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것인지

녹스는 팔의 재생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포식은 지치지도 않는지, 미친 듯 녹스를 씹어댔고

세력의 범위는 어느새 팔꿈치를 넘어 어깨로 나아가고 있었다.

[스킬 : 포식이 에너지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이 벌레보다 못한 새끼가!!!!!!!!!!!]

팔을 잘라낸 녹스가 고함을 지르자

등 뒤로 다시 한번 원이 솟구쳐 올랐고,

처음에 녹스가 쏘아냈던 것보다 갑절은 될 법한 수의

그림자 창들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경고 : 열광하는 자의 상태 해제 시간이 1분 남았습니다.]

“이제 끝을 내자. 녹스.”

‘흑월난무.’

말을 마친 한성의 단검에는

1m 남짓한 검고 날카로운 기운이 어려 있었다.

* * *

“삶과 생을 먹고 자라 이치와 섭리를 거스르는 문….

역시 놈이 지키고자 했던 건… 이 디멘션 게이트였나.”

게이트를 바라보는 벨루몬의 안광이 날카로웠다.

“이미 사라진 고대의 유물인 줄 알았건만….

살아생전에 내 눈으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새겨진 문자와 그림들을 어루만지는 손이 조심스러웠다.

‘투르바 쪽에 쓸 만한 마도사 하나쯤은 있다 봐야겠군.

그게 아니라면… 투르바가 가진 권능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고.’

벨루몬의 일전에 만났던 우르티카를 떠올렸다.

‘하지만 모르겠군. 기존의 게이트 대신 이를 택한 이유를.’

“흐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자신의 턱을 연신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진 듯했다.

‘디멘션 게이트는 기존 게이트를 여는 것에 비해

가동을 위해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 자원이 터무니없이 크다.

이 때문에 준비 과정에서 적에게 발견돼 파괴될 위험도 높고,

섭리와 인과율마저 무시하는 만큼 훗날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해.

그런데도 녀석은 모든 것을 감수하고 디멘션 게이트를 쓰려한다.

그 이유가 뭐지? 그 모든 걸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건가?’

벨루몬의 안광이 번뜩였다.

‘가동되기만 한다면 기존의 게이트에 비해

안정적이고 영구적으로 마력 소모 없이 운용 가능하기 때문이냐?’

‘아니면… 이를 통해 대규모의 병력을 보내

인간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대거 획득하고 힘을 얻고자 함이냐?’

생각의 파편들이 계속되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설마…?’

“…시스템 때문인가.”

어딘가에 생각이 미쳤는지 벨루몬의 안광이 흔들렸다.

‘…안 그래도 전부터 궁금했었다.

놈이 권속들을 이 세계에 보내기 위해 사용한 게이트들은

분명 나의 것과 별반 다르지도 않은 차원이동 마법이었다.

허나 녀석의 것은 내 것과 달리 여러 제약이 걸려 있었어.’

벨루몬이 게이트들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완전히 열리는 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

누군가 게이트에 진입하면 게이트의 주인이 제거되거나,

진입한 자 모두가 죽기 전까지는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

시전자인 투르바의 의지와 상관없이 게이트의 주인이 제거되면

그 게이트는 곧바로 소멸한다는 점 등 말이지….’

‘그럼 던전 브레이크라 불리는 현상은 뭐란 말인가?

놈의 힘을 시스템이 제대로 누르지 못해서 생긴 현상인가…?’

여러 생각 때문인지 벨루몬의 얼굴이 굳어갔다.

‘만약… 이것이 주군께서 말씀하신 시스템이라는 존재가

인간과 마물 모두를 파멸시키려는 투르바에게 건 제약이고,

이 제약에서 벗어나고자 섭리와 인과율마저 깨려는 것이라면…?’

벨루몬은 뼈밖에 남지 않은 제 팔 위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주군께 이 사실을 어서 알려야겠군.”

* * *

[경고 : 열광하는 자의 상태 해제 시간이 40초 남았습니다.]

“…후욱… 후욱… 후욱….”

[커헉….]

한 차례 충격이 지나고 일었던 흙먼지가 걷히자,

가려졌던 한성과 녹스의 모습이 점차 드러났다.

그곳엔 죽을 듯이 거친 숨을 토해내는 한성과

온몸이 잘리고 찢겨 걸레 조각이 된 녹스가 있었다.

녹스의 등 뒤 흙벽에는 짐승의 발톱인지, 괴물의 이빨인지

날카롭게 벼린 뭔가가 그를 가르고 지나간 흔적이 가득했다.

또한 그의 곁에는 기세 좋게 쏘아져 나갔던 칼의 비들 역시,

뭔가에 잘리고 베어 바닥에 볼품없이 나뒹굴고 있었다.

몇몇은 모습조차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채로

검은 액체처럼 바닥 여기저기에 퍼져 고여 있었다.

흑월난무가 녹스에게 새긴 흔적들이리라.

[…푸학….]

녹스가 한 움큼의 검은 액체를 뱉어냈다.

피인 것일까.

한성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떨리다 못해

고장 난 전등마냥 꺼지고 켜지기를 반복했다.

고통스러운 것인지 녹스의 입에서는

당장이라도 넘어갈 듯한 숨소리와 신음이 들려왔고,

비를 맞은 개의 그것처럼 볼품없이 몸을 떨어대고 있었다.

[대상 ‘녹스’가 ‘이한성’에 공포를 느낍니다.]

[왕의 위압의 효과가 배가됩니다.]

[…어떻게 네놈이….]

털썩.

힘없이 주저앉은 녹스의 몸에서부터

액체인지 고체인지 모를 검은 물체들이 쏟아져 내렸다.

“….”

[경고 : 열광하는 자의 상태 해제 시간이 20초 남았습니다.]

[쿨럭….]

철퍽.

그가 고통스러운 듯한 얼굴로 기침을 하자,

그의 몸에서 검은 액체가 떨어져 내려 땅을 적셨다.

[…커헉… 헉… 헉….]

‘끝났나.’

기침과 함께 타오르던 녹스의 검은 안광이 서서히 꺼져갔다.

[열광하는 자의 상태를 해제합니다.]

“말해라.”

소화를 해제한 한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쿨럭… 무엇을 말이냐.]

[네놈 따위에게 말해줄 것은 없다. 애송이.]

녹스가 비릿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투르바를 따르지도 않는 주제에,

왜 놈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거냐?”

[…알고 있었나.]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인 듯,

그의 안광이 다시 한번 당황으로 크게 흔들려댔다.

“넌 투르바의 힘에 휘둘릴 만큼 나약하지 않다.

다른 한심한 놈들처럼 마기에 미치진 않았단 거겠지.”

[….]

“게다가 넌 투르바를 ‘그녀’라는 말로 평범히 칭했다.

또 내가 그녀의 이름을 말했을 때도 다른 녀석들처럼

미친 듯이 화내거나 덤벼들지도 않았지.”

[….]

“넌 진심으로 그녀를 따르지도, 위하지도 않아.

그럼에도 왜 마음에 없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지?”

[….]

한성의 단정적인 말이 끝나고,

한참의 침묵 뒤에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 그림자들은 언제나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인간이든, 마물이든 상관없이 그 누구에게라도.]

“….”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고]

[세상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늘 모습을 감추며 살아야 했고,]

[눈에 띄지 않게 늘 어둠 속에 숨어 살아야 했지.]

“….”

[그런 우리에게 투르바가 약속했다.]

[자신을 따르면 우리의 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어둠 속에서 나와 당당히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그래서 그런 것뿐이다.]

“….”

[허나 이용만 당할 뿐, 달라지는 건 없더군.]

[오히려 우리에 대한 거부와 공포는 커지기만 했고,]

[우리가 속할 수 있는 곳은 더욱더 줄어만 갔지. 후후….]

[애초에 그년의 말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싶더군.]

그의 목소리가 어쩐지 애처로웠다.

[…이제 됐으니 죽여라.]

녹스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한심하기 짝이 없군. 네놈은 왕관을 쓸 자격이 없다.”

한성이 내뱉듯 중얼거렸다.

[…뭐?]

“제 백성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주제에,

다른 이의 힘에 빌붙어 그에게 살길을 보장받으려 해?

그것도 모자라 못난 네놈을 따르는 네놈의 백성들을 두고

발버둥 치기는커녕 포기하고 그 목을 내놓으려 하기까지….

그게 왕이라는 작자가 내뱉을 소리냐? 병신이 따로 없군.”

[….]

“그래서 내게 깃든 그림자들을 보며 씁쓸해했던 것이냐?

네놈 따위는 이루지 못할 힘이 내게는 있어 보여서? 그래?”

[…쿨럭… 헛소리하지 마라. 애송이.]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네놈 따위가 이룰 리도 없다.]

한성의 일갈에 녹스가 검은 액체를 토해내며 소리쳤다.

“설령 그렇다 해도 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진 않는다.

하다못해 발버둥을 치고 소리를 질러 화라도 내지.”

[….]

다시 찾아온 침묵.

한참의 침묵 끝에 녹스가 한성을 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 또한 네놈에게 깃든 저 녀석들처럼]

[네놈에게 깃들었더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군.]

“….”

그의 목소리가 어쩐지 촉촉했다.

[잘 들어라. 단 한 번만 말할 것이니.]

“…?”

[말해주마. 그녀가 꾸미고 있는 모든 것을.]

한성의 눈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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