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라스트 엠페러-245화 (245/336)

245화

* * *

“아무래도 방해물은 없는 게 낫겠지.”

[…?]

딱.

한성이 손가락을 튕기자, 이백에 가까운 나이프들이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그의 그림자로부터 솟구쳐 올랐다.

“피어라.”

푸화아아악.

나지막하게 읊조린 한성의 말 한마디에

최후의 일격과 포식의 기운이 사납게 피어났고,

둘은 곧 나이프에 날카롭게 어려 만전의 태세를 갖추었다.

“어때? 네놈의 그 그림자 창에 견줄 만한가?”

[…이젠 놀랍지도 않군. 괴물 녀석.]

한성의 등 뒤를 유영하듯 날아다니는

나이프들을 보며 녹스가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그럼, 다시 가지.”

쾅!!!!

말과 함께 한성이 지면을 박차고 뛰었다.

한성의 신형은 순간 흐릿해졌고,

순식간에 녹스의 시야에서 한성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 정도로 내 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고함을 내지른 녹스가 한성을 향해 칼을 내질렀다.

쾅!!!

‘…읽혔나?!’

전력을 다해 찔러낸 공격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막히자 한성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큰소리친 것치고는 별 볼 일 없군.]

[날 꺾고 싶다면 좀 더 분발하는 게 좋을 거다.]

“바라신다면.”

쾅!!! 쾅!! 콰가가강!!!

둘의 싸움은 점차 거칠어졌다.

화려하거나 대단한 기술이랄 것은 전혀 없었다.

힘과 힘의 격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그들의 칼은 그저 단순히 상대를 죽이기 위해

강하고 빠르게 휘둘러지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기분 탓인가. 점점 빨라지는군.’

한성을 보는 녹스의 눈매가 날카로웠다.

칼과 칼이 맞부딪칠 때마다

충격으로 대기가 떨렸고, 흙먼지가 일었다.

게다가 칼과 칼이 맞부딪쳤음에도 불구하고,

들려오는 소리는 요란한 금속성의 것이 아니라,

포탄이나 화약이 터지는 듯한 묵직한 소리에 가까웠다.

충격으로 손목이 저려왔고, 한성의 미간은 일그러져 갔다.

‘…확실히 강하다. 틈도 보이지 않아.

그렇다면… 억지로 틈을 벌려 찍어낼 수밖에.’

카가가가강!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소환해낸 창과 나이프들이

요란한 금속성을 내며 공중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으니까.

한성을 노리고 내리꽂히듯 날아들던 녹스의 창들은

제 몸 반만 한 크기의 나이프들이 가해오는 날 선 공격 때문에

궤도를 이탈하거나, 이를 피해 도망하거나, 격추(?)당해 떨어져 댔다.

그림자 창의 수가 나이프에 비해 그 갑절은 됨에도

녹스의 창은 나이프가 펼친 방어진을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최후의 일격으로 인해 높아진 나이프의 기동력과 공격력이

그림자 창이 가진 그 힘과 능력을 훨씬 더 상회했기 때문이리라.

본체가 아닌 그의 일부로 만들어진 그림자 창은

다행히도 무효화의 범주에는 포함되지 않는 듯 보였다.

나이프가 창들을 한 번 지나칠 때마다,

그 날카로운 기세에 그림자들이 뭉텅뭉텅 베여나가거나

찢겨져 제대로 형태를 유지하지 못했고 너덜거리며 사라져갔다.

하지만 녹스의 창이 한성에 접근치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이프에 어린 포식의 기운 때문이었다.

포식은 호시탐탐 그들을 탐냈고,

굶주린 아귀(餓鬼)마냥 녹스의 힘을 갈구했다.

창과 나이프가 부딪칠 때마다,

나이프에 어려 있던 포식의 기운은

빠르게 창으로 옮겨붙거나 그를 붙잡으려 들었다.

그리곤 창을 아예 통째로 집어삼키거나, 씹고 뜯었고,

그럴 여력이 되지 않는다면 조금씩 찢어발겨 그림자를 흩어냈다.

시간이 지나자 그림자 창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스킬 : 포식이 에너지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에너지 포인트가 13%에 도달합니다.]

쾅!!!!!!

[이런 발칙한…!]

녹스가 방패로 한성을 쳐내며 고함을 질러댔다.

한성이 나이프들을 소환하기 전만 해도

그의 손에 당당하게 들려 있던 두 자루의 검은

어느새 한 자루의 검과 하나의 방패로 변해 있었다.

나이프의 접근으로 인해

포식에 노출될 위협이 더 커졌기 때문이리라.

녹스는 물리 공격 무효화라는 제 힘을 무시하고

실체도 없는 그림자마저 씹어 삼키는 포식의 힘을 경계했다.

늘 먹이 피라미드에 최상부에 있던 녀석이

자신 또한 한낱 먹잇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겠지.

포식은 그런 녹스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언제 옮겨간 건지 녹스의 방패를 미친 듯 씹고 갉아댔다.

[어딜!!]

놀란 녹스가 더러운 것을 떨쳐내듯

방패를 휘둘러 그에 어린 포식의 힘을 떨구어 냈다.

흠칫.

분명 저 멀리 바닥에 처박힌 채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어야 할 한성의 기운이

녹스의 등 뒤에서 느껴짐과 동시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눈팔면 곤란하지.”

[…언제?!]

쾅!!!

녹스가 채 뒤로 돌기도 전에,

한성의 구둣발이 녀석의 등허리를 걷어찼고

녹스는 그대로 튕겨지다시피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이 빌어먹을 놈이… 주제도 모르고 감히….]

황당함도 잠시, 자신이 내동댕이쳐졌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한 녹스가 고함을 질러대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전신은 분노 때문인지

제대로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크게 일렁였다.

“먹어라.”

[…뭐라는 것이냐.]

흠칫.

한성의 말과 동시에 녹스는 등허리에서부터

날카롭고 소름 끼치는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 느껴졌다.

한성이 심어놓은 포식의 조각들이었다.

포식들은 게걸스럽게 그를 씹어댔고

오랜 세월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날카롭고 불쾌한 고통에 녹스가 악에 받친 고함을 토해냈다.

[끄아아아아악!!!!!!!!]

모난 이빨과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짐승 수천이

몸을 찢고 뜯어 전신을 엉망으로 헤집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 빌어먹을 애송이 놈이 감히!!!]

그리곤 어깨관절을 기형적으로 돌려

포식이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는 제 등허리를 향해

한 치 망설임 없이 손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서걱.

철퍽.

인간이었다면 심장이 있었을 부분에서부터

잘려 나간 녀석의 몸뚱이가 먹물처럼 바닥에 퍼졌다.

잘려 나간 몸뚱이는 액체처럼 퍼졌음에도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마냥 꿈틀거리며 움직였고

포식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그림자에 달려들어 이를 씹어 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자는 단 한 조각의 형체도 남김없이

지상 위에서 그 모습을 감추었다.

[스킬 : 포식이 에너지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에너지 포인트가 43%에 도달합니다.]

[노래하는 자의 사용이 가능합니다.]

‘…역시나인가.’

한성의 시선 끝에 다시 몸을 일으키는 녹스의 모습이 보였다.

[…빌어먹을… 지독한 녀석이군.]

그의 형체가 흔들려댔다.

[허나 네놈의 미천한 그 아귀 놈이 날뛴다 한들,]

[마르지 않을 내 힘 모두를 가져갈 수 있을 성싶으냐?!]

녹스의 고함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보면 알겠지.”

“소화.”

[노래하는 자의 상태가 활성화됩니다.]

[대상 ‘이한성’의 공격력과 공격속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쾅!!!!

굉음과 함께 한성의 신형이 사라졌다.

‘무슨…?!’

사라진 한성의 흔적을 쫓던 녹스의 곁에

붉은 섬광 세 개가 긴 꼬리를 남기며 녹스를 지나쳤다.

한성의 두 눈과 칠흑의 단검에 어린 ‘노래하는 자’의 기운이었다.

쾅!!! 쾅!! 쾅!! 쾅!!!

[크윽….]

전보다 빨라진 한성의 속도에 녹스는 제대로 반응해내지 못했다.

단검이 찔러 들어오는 궤도를 읽어

이를 쳐내거나 막고 반격하기까지 하던 전과 달리,

이제는 하나둘 놓치거나 투로(鬪路) 자체를 읽어내지 못했다.

또, 한 손만으로도 거뜬히 한성을 쳐내던 전과 달리,

이제는 한성의 힘에 밀려 바닥에 길게 자국을 내기까지 했다.

들어오는 한성의 단검을 쳐내려 칼을 휘둘렀을 땐,

그의 손은 허망하게 빈 허공을 가르고 있을 뿐이었고

이미 한성의 단검은 그를 지나 그의 복부를 갈라내고 있었다.

또, 그들의 주위에서 들려오던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와

불꽃놀이마냥 튀어 오르던 불똥들은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올 것 같던 그림자 창들이

이제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남은 몇몇의 창들 또한

최후의 일격에 잘려 소멸되거나, 포식에 잡아먹히고 있었다.

이윽고 녹스의 창들이 모두 사라지자,

나이프들은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덤벼들었다.

전방위에서 폭격처럼 쏟아지는 나이프와

숨통을 조여오는 한성의 날카로운 공격이 계속되자,

자연스레 녹스의 몸에는 생채기가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분명하고 또렷하던 녀석의 그림자도

그 끝이 찢어지거나 포식에게 타 뭉그러졌고,

최후의 일격에 의해 날카로이 베어져 사라져갔다.

수세에 몰린 상황.

그럼에도 녀석은 조금도 다급해 보이지 않았다.

‘뭐지…?’

이제는 몸이 조각조각 나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너무나 담담한 녹스의 반응에 오히려 불안한 건 한성이었다.

무슨 생각인 건지 녹스는 한성이

노래하는 자의 상태를 활성화하고 난 뒤부터,

녀석의 태도는 묘하게 수동적이고 방어적으로 변해 있었다.

먼저 해오던 공격도 그 수가 줄었고,

날카롭게 노리던 반격의 횟수도 현저히 그 수가 줄었다.

그저 방패와 가드 뒤에 숨어

한성이 어떤 식으로 공격해 오는지,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를 관찰하고 방어할 뿐이었다.

[경고 : ‘노래하는 자’의 상태 지속시간이 10분을 초과했습니다.]

[페널티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페널티…?’

갑자기 들려온 알림에 한성은 손을 멈추었고,

칠흑의 단검과 노래하는 자를 해제했다.

이미 녀석은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 있었고,

짙게 일렁이던 그의 형체도 이제는 옅어져 있었기에

더는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게다가 이제껏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페널티라는 말이

한성으로서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노래하는 자’의 상태가 해제되었습니다.]

[시전자의 역량을 넘어서는 스킬 사용으로 페널티가 발생합니다.]

[대상 ‘이한성’의 신체 능력이 일시적으로 하락합니다.]

[대상 ‘이한성’의 체력과 마력이 일시적으로 하락합니다.]

[페널티 해제까지 29분 58초 남았습니다.]

시스템의 알림과 함께 머리와 몸이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착각으로 인한 단순한 느낌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온몸의 근육이 미친 듯 떨려댔고,

억지로 밀어붙여 움직인 것에 대한 반동이었던지

근육들이 고통으로 비명을 질러댔다.

“크윽….”

‘빌어먹을. 하필 이런 때에….’

난감한 한성의 귓가에 다시 한번 알림이 들려왔다.

[페널티를 해소하기 위해 스킬 ‘포식’이 획득한]

[에너지 포인트 전부를 소화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

수락과 동시에 에너지 포인트가 모두 사라졌고,

늘어지고 무거워졌던 한성의 육체는 원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페널티를 해소할 방안이 있다는 게 다행이야.

다만, 적과 대치 중일 때 페널티를 받게 된 데다

이를 해소할 에너지 포인트마저 없을 경우를 조심해야겠어.’

“후욱… 후욱… 후욱….”

한성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녹스의 반응을 살폈다.

그는 걸레짝이 되어버린 몸을 회복하지 않았다.

배터리가 닳은 장난감처럼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뭐지…?’

그때. 한성의 귓가에 소름 끼치는 말 한마디가 들려왔다.

[…네놈은 아무래도 죽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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