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 * *
쾅!
“그게 무슨 말이야!! 막아내질 못하다니?”
중국의 비밀 안가(安家)가 시끄러웠다.
지상으로부터 수백 미터 아래에 위치해 외부와 단절된 이곳은
톤 급 전략 핵무기 수십 발이 떨어져도 무너지지 않는 방공호였다.
십 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는 식량과 술,
개인 침실과 스파, 영화관, 스크린 골프장 등의 편의 시설과
수동 및 비상 동력 시스템까지 갖춘 완벽한 피난 시설인 이곳.
그러나 지금은 중국 인민들의 눈을 피해
상무위원들과 주석이 파티를 여는 아방궁으로 전락한 지 오래.
원래라면 술에 취한 웃음소리나,
유명 가수들의 노랫소리로 가득했을 이곳이
오늘은 어쩐 일인지 꽤나 조용하고 살벌한 분위기였다.
“다시 한번 말해봐. 뭐라고?”
“그… 그게. 북한에서부터 진행된 던전 브레이크는
국제 사회의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소량의 전술핵과
미사일 등의 무기체계를 사용해 간신히 막아냈습니다만,
우한시에 발생한 건은… 여전히 막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것이… 우한시에 나타난 마물들이
북한에서 발생한 마물들에 비해 고위급이기도 하거니와,
아직 인민들의 피난이 모두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석.”
“…음.”
“또한, 핵을 쏜다 해도 그놈들에게 통할지도 의문이고,
우리 중국을 바라보는 구… 국제 사회의 눈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날카로운 주석의 반응에
대답한 상무위원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흥. 그래서 샤오란과 링 링은?”
“이미 급파되어 현장의 제일선에서 활약 중입니다.
다만 생성된 마물이 형체가 없는 그림자 같은 마물이라,
샤오란도 링 링도 제거에 애를 먹고 있는 모양입니다.”
“…후. 그럼 팽 린은?”
“한국에서 귀국한 이후에, 행방이 묘연합니다.”
“…숨었다는 말인가?”
“예. 당이 자신의 가족과 자신을 구속하려 들지 않겠다는
조건을 수락해야지만 자신 또한 나서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빌어먹을 도끼쟁이 놈.”
쾅!!
주석이 책상을 내리찍으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할까요?”
“우선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해둬.
모습을 보이거든 도움이 되든 안 되든 현장에 투입시키고.”
“예.”
“일이 모두 해결되고 나고 나면,
놈의 가족을 미끼 삼아 놈을 제거한다.
충성심을 잃은 개는 그때부터 한낱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아.”
흠칫.
살기등등한 주석의 눈빛에 상무위원들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자신들도 쓸모가 없어지면
팽 린처럼 버려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헌터 육성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죄송합니다. 주석. 여전히 별다른 소득이 없습니다.”
“자네. 거기 들어간 돈이 얼마인지는 알고 있나?”
“…ㅇ…예. 하… 하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약물에 대한 헌터들의 심리적 거부반응이나 부작용이 아직….”
서릿발같이 차가운 주석의 말에
상무위원은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탕!
“커헉….”
“무능한 놈의 말 따위 들어봐야 귀만 아프겠지.”
주석의 손에는 언제 꺼냈는지, 권총 한 자루가 들려져 있었다.
“어이. 와서 이거 좀 치워.”
“예.”
주석의 말 한마디에
밀실의 끝에서 대기하던 수행원들 여럿이
빠르게 들어와 죽은 상무위원의 시체를 치웠다.
“리우. 네가 지금부터 헌터 육성 프로그램을 맡는다. 알겠어?”
“예… 알겠습니다.”
리우라 불린 상무위원이 바짝 얼어 답했다.
“…하. 이거 참… 실수했군.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는 듣고 죽였어야 했는데….
아! 보고서를 작성해 올린 게 여기 있을 텐데… 찾았다.”
주석이 짜증 난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다,
어딘가에 생각이 미쳤는지 태블릿을 들어 올렸다.
“흠… 그래도 일시적이지만 헌터들의 힘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켜주는 약품을 만들어낸 건 고무적이군.
쓰고 나면 얼마 못 가 죽는다는 게 약간 아쉬운 점이기는 하지만….
여차하면 하급 헌터들에게 써 고기방패로 삼으면 되니 상관없겠지.”
“….”
인간을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은 주석의 말.
상무위원들은 언제든지 자신도
그리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낯빛이 새하얘졌다.
“그래서 지금 어디까지 진행됐어?
그 마물 놈들 기지화인가 뭔가 하는 거 말이야.”
“예…? 아, 아예. 보고드리겠습니다.”
“음.”
총을 든 채 손을 휘적거리는 주석을 보며
상무위원이 식겁한 듯 보고서를 재빠르게 뒤적였다.
“우선 우한시 일대에 대피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인민들은 창사시로 몸을 피하고 있으며….”
“다음.”
주석은 인민들의 대피는 안중에도 없는 듯 보였다.
“ㅇ…예. 계… 계속 보고드리겠습니다.
통칭 악의 대지라 불리는 지형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우한시의 7할 이상을 뒤덮었고, 계속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힐러와 신성 마법을 쓸 수 있는 헌터들을 구하고는 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자국 내에는 그런 인재들이 잘 없습니다.
그리고 또 문제는….”
“…문제는?”
“…자국 내에 이러한 능력을 가진 헌터들이
부름에 응하지 않고 거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뭐…? 거부를 해…? 당의 명을?!”
주석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 그래서 국가 위기라는 명목으로 그들을 강제 징집했고
거부할 경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단죄할 것이라 전했습니다.”
“…일단 잘했어. 괘씸한 새끼들.
이 새끼들이… 개새끼도 주인 손은 안 문다는 데….
실컷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이제 와서 도망을 가시겠다…?”
“….”
“이번 일 끝나면 대대적으로… 물갈이를 좀 해야겠어.
그것들 가족이 됐든, 연인이 됐든 약점 될 만한 거 찾아와.
그리고 그걸로 충성맹세 시켜. 응하지 않는다면 죽여도 좋아.”
“…예.”
“그리고 내가 재난특별지원금 명목으로 지출 허락할 테니까.
외부에서 힐러든 뭐든 그 방면으로 쓸 만한 헌터 놈들 좀 사 와.”
“알겠습니다.”
“쓰고 버릴 수 있는 애들로 사 와. 무슨 말인지 알지?”
“예. 잘 알고 있습니다.”
“후우… 겨우 이깟 일로 흔들리는 모습 보이지 마 다들.
대중화인민공화국의 일원이면 그 일원답게 행동하란 말이야.
우리는 우리의 힘만으로 닥친 위기를 모두 이겨낸다. 알겠나.”
“예!”
“됐어. 다음 안건.”
그렇게 비밀 안가의 밤은 깊어만 갔다.
* * *
같은 시각. 일본.
“요코하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어?!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입이 있으면 말 좀 해보게!”
“…죄송합니다.”
국무총리 관저에 총리 나카가와의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자네, 기자들에게 뭐라 했나?
그녀는 장차 일본을 수호할 신녀이자 성녀라 하지 않았나!
그녀의 힘으로 세상 모든 마물을 다스릴 수 있을 거라 했고!!”
나카가와가 잔뜩 흥분한 모습으로 요코하마에게 소리쳤다.
“…맞습니다.”
“….”
“그렇게 큰소리치더니 지금 저 꼴은 도대체 뭔가!?
뭐? 마물을 다스려? 자네 눈에는 저게 다스리는 걸로 보이나?
다스리기는커녕 오히려 그녀가 마물처럼 되어버렸지 않은가!! 어?!”
그가 TV 스크린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스크린 속 나가노의 모습은 혼란 그 자체였다.
기둥으로부터 뻗어나간 악의 대지는
느리지만 빠르게 모든 것을 삼켜대고 있었고,
마물들은 닥치는 대로 도시를 부수며 활개 치고 있었다.
민간인들과 헌터, 군인과 경찰들 모두가
마물들에게 찢기고 짓밟혔으며, 그들의 피로 땅이 물들어갔다.
여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도시와 다르지 않은 모습.
하지만 나가노에서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는
일반적인 던전 브레이크들과는 양상이 달랐다.
첫째. 마물들을 저지해야 할 헌터가
마기에 미쳐 마물들의 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
둘째. 제아무리 던전 브레이크라고는 하지만,
발생한 마물들의 종류와 수가 상식을 넘어서는 수준이라는 것.
허나 이 모든 것은 단 한 명의 헌터,
히이노가 가진 특성에서부터 비롯된 일이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던전 브레이크 발생 당시,
처음 게이트에서 나타난 마물은 철갑충이었다.
벌레라고는 하지만 그 크기가 웬만한 전차보다도 크고
몸의 두께와 강도는 선박들의 몸체보다도 더 굵고 단단한.
큰 덩치와 막강한 방어력을 바탕으로,
녀석들은 진군을 시작했고 그들의 진군 앞에
도시는 갈리고 부서져 나갔으며 사람들은 죽어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히이노를 비롯한 정예 헌터들이
현장에 투입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히이노는 엠페러급의 헌터로,
매혹이라는 조금은 독특한 능력을 가진 헌터였다.
말 그대로 마물들을 유혹해 그들을 따르게 만드는 능력이 그것.
마물들을 제압할 수 있는 무력은커녕,
일반 성인 여성보다도 나약한 신체 능력을 가졌지만
마물들을 매혹해 그들을 부리는 색(色)의 기운만은 탁월했다.
그녀의 능력은 성별과 연령, 종류와 강함을 막론하고
모든 마물들에게 유효했고 마물들은 그런 그녀를 연인처럼 따랐다.
마물들은 그녀에게 충성하는 것보다는
그녀를 이성으로서 품고 싶고, 안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그녀를 두고 마물들은 미친 듯 싸워댔고,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녀가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 했다.
그녀는 자신을 두고 싸워대는
그들의 모습을 흐뭇해하며 바라볼 뿐,
그들을 말리거나 싸우지 못하게 하지도 않았다.
이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그녀를
요녀(妖女), 혹은 마녀(魔女)라 불렀지만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요코하마는 그녀를 신녀라 불렀다.
덕분에 그녀와 그녀의 마물들에게는
백귀야행단(百鬼夜行團)의 칭호가 붙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엠페러급의 힘과 재능을 가졌다 해도
그녀는 힘을 자각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초보 헌터였다.
또한 S급 게이트에 한두 번 동행한 것이 다일 정도로
고위급 게이트에 대한 경험 또한 딱히 풍부하지도 않았고,
지금처럼 짙은 농도의 마기에도 노출되어본 적 없었다.
그래서일까.
히이노는 마기에 노출되자 이를 흩어내지 못하고 미쳐버렸고,
그녀를 따르던 데스나이트, 다크 셰이드, 오크, 오우거, 트롤,
센티페드 등의 마물들 또한 미쳐 날뛰게 되었다.
덕분에 세상을 구하겠다 큰소리쳤던 그녀는
마물의 앞잡이가 되어 세상을 파괴하게 되었고,
이러한 사실들이 전파를 타고 세계에 퍼져 나가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총리.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녀는 저와 동료들이 반드시 구해내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요코하마가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지금은 소강상태라지만 언제 또 그녀가 미쳐 날뛸지 모르네.
빠르게 해결해야 해. 국제 사회의 이목이 주목되고 있네.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녀를 회수해 와야 하네. 알겠나.”
“명심하겠습니다. 총리.”
“악의 대지라는 건 어디까지 퍼졌나.”
“…나가노의 9할 이상이 그것에 잠식당했습니다.
더 이상 막아낼 수 없다고 판단해 헌터들을 물렸고,
다른 시로 퍼져나가지 않도록 사력을 다해 막아내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총리의 얼굴이 어두웠다.
“더 이상 퍼져선 안 되네. 알겠나.”
“예. 안 그래도 결계에 특화된 헌터들과 제가
결계를 겹겹이 쳐 더 이상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반드시 이 상황을 타개해 보이겠습니다.”
“후우… 명심하게. 대일본의 명예가 자네의 어깨에 달려 있음을.”
“예!!”
“이번 사건만 잘 해결하면 자네와 히이노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본의 영웅으로 만들어주겠네.
많은 부와 명예는 부가적으로 따라오게 될 걸세. 기대해도 좋아.”
“헌터로서 당연한 일을 할 뿐입….”
“됐네. 그런 입바른 소리는.”
“…예.”
“그런 소리를 하고 싶거든 결과를 가져오게.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내고 히이노를 구해왔다는 결과를.
결과 하나 없이 멋진 말만 늘어놓아 봐야 아무 소용없네.”
“…알겠습니다.”
“그래. 이만 가보게.”
“예. 편안한 밤 되십시오.”
인사와 함께 돌아서는 요코하마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