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 * *
“…후 덥구만.”
성용이 갑옷 안으로 바람을 불어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대회고 뭐고 탈진으로 쓰러지겠는데요…?”
애림이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다른 것보다 대회 관리 본부가
이 용암들을 어떻게 구현해냈는지가 제일 궁금하군요.”
선우가 경기장 아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선우의 말대로 경기장 아래에는 오렌지 빛깔의 용암들이
계속해서 끓어 넘치고 있었고, 파도마냥 출렁거리고 있었다.
용암은 단순히 모양만을 본떠 만든 것이 아닌 듯,
뜨겁다 못해 익을 것만 같은 열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고,
시험 삼아 선우가 던진 돌덩어리는 용암에 닿자마자 녹아내렸다.
필드의 모습은 단순했다.
필드의 양 끝에는 깃발이 꽂혀 있는 서른 평 남짓한 대지가 있었고,
양 대지의 사이에는 이와 연결된 수백의 얽히고설킨 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길들의 아래에는 끓어 넘치는 용암들이 있었다.
“후. 이제 살 것 같군. 고맙수.”
형우가 일으킨 차가운 바람에 성용이 땀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별말씀을.”
“그나저나 한성이 너는 그 양복 덥지도 않냐?”
성용이 질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전 괜찮습니다.”
용암에다 돌을 던지던 한성이 담담히 답했다.
“나중에 땀띠 나서 고생한다. 너.”
“괜찮아요.”
“그래. 어련히 알아서 하겄지.”
성용이 더 이상 생각하기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젓고는 휘적휘적 몸을 풀기 시작했다.
칠흑의 조각이 가진 부가 기능과
한성이 가진 한서불침의 힘을 모르기에 저런 반응이리라.
“곤란하군요.”
곳곳에서 튀어 오르는 불똥들을 바라보며 형우가 중얼거렸다.
“왜 그러우.”
“전략을 짜기가 좀… 어렵습니다.”
“음…? 왜?”
좀처럼 우는 소리를 하는 법이 없는 형우였기에
뭔가 있구나 싶었던 성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어왔다.
“지금처럼 몸을 은폐, 엄폐할 공간도 하나 없고
적과 아군의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개활지에서라면
적의 눈을 속이거나 허를 찌르는 전략은 사용하기 힘듭니다.”
“…그건 그렇지.”
“게다가 발아래로는 용암들이 흐르고 있어,
쉽사리 움직이기 어렵기에 더욱 전략을 짜기 힘들고요.”
“…흠.”
“또 하나, 대회 관리 측이
좀 더 흥미로운 게임을 위해 일부러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용암의 고열 때문에 약해진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반이 그리 단단하지 못합니다.”
“그 말은… 그럼…?”
“예. 힘을 크게 줬다간 지반이 부서져 내릴 것이고,
여차하면 용암 속으로 고꾸라져 크게 다칠 것이 뻔합니다.
특히 방패와 해머를 들고 중갑을 입으신 프라임 길드장께서는
다른 분들보다 더욱 이동과 도약, 착지에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아까 바닥 만지던 게 그걸 알아보던 거였수?”
“예.”
“거 참… 곤란하게 됐군.”
“그나마 다행인 점은, 혼란스러운 건 저쪽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형우의 시선 끝에 꽤나 야단스러운 일본 팀이 보였다.
“조건은 같다는 말이겠지요.”
“…그냥 밀어붙이는 건 어떻수.”
“이게 만약 단순 전투라면 저 또한 별 고민 안 했겠습니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깃발을 먼저 뺏는 팀이 이기는 게임입니다.
그리 단순하게 접근하면 안 됩니다.”
“흠….”
“이한성 헌터가 참전한다고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수세에 몰릴 경우 나선다는 뜻일 겁니다.
그러니 그 전까지는 우리 힘만으로 저들을 이겨내야 합니다.”
“쉽진 않겠군.”
“…생각해 둔 게 있긴 합니다만….”
“말해보슈.”
“첫 번째 경기 때 썼던 방법을 살짝 섞어 써볼까 합니다.”
“…?”
“잠시 이리로 모여주시겠습니까?”
형우가 길드장들을 모아 작전을 설명했고,
이를 듣던 한성은 대담하고도 뻔뻔한 그의 작전에 웃음 지었다.
* * *
“경기 시작~~~~~~~~합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사회자의 우렁찬 고함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관중들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고 격렬했으며,
그들이 질러내는 함성만으로도 경기장이 들썩일 정도였다.
한일전이기 때문일까.
“흠. 아무래도 저쪽은 딱히 뾰족한 수가 없나 봅니다.
저희 반응을 지켜보고 그에 맞게 대응하려나 보네요.”
일본 측을 주의 깊게 살펴보던 형우가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우리가 먼저 쳐 드려야지. 하하.”
성용 또한 따라 웃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럼, 갑니다.”
“저도요.”
재권과 애림은 경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선우와 형우, 성용에게로 각종 강화와 버프를 시전했다.
여러 다양한 빛깔들이 그들에게로 스며들었고,
그들의 얼굴에는 충만함과 만족감이 새겨져 있었다.
“갈수록 대단해지는데? 재권 씨?”
성용이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렇습니까. 후후.”
“지금이라면 부산까지도 던질 수 있을 것 같수. 하하하.”
성용은 무슨 생각인지 해머와 방패를 허리춤과 등에 꽂고는,
허리를 몇 번 비틀었고 이내 투포환을 던지는 자세를 해 보였다.
“둘 다 준비되면 말하슈.”
성용이 형우와 선우에게로 눈을 돌리며 중얼거렸고,
둘은 그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 다 됐습니다.”
“벌써?”
형우의 말에 성용이 놀란 듯 반문했다.
“어차피 눈속임용으로 쓸 거라 고위급 마법은 필요치 않습니다.”
“하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성용이 선우를 보며 입을 열었다.
“선우 씨는 어때.”
“언제든지.”
“좋아. 그럼 선우 씨부터 갑시다.”
“예.”
말을 마친 성용이 선우를 들어 올렸다.
성용의 솥뚜껑 같은 손 위로 선우의 두 발이 얹혔고,
선우는 긴장된 표정으로 일본 선수단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턱 당기고, 목에 힘주슈. 기절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예.”
“그럼. 갑니다. 셋, 둘, 하나. 우랴!!!!!!!!!!!”
팡!
인간이 인간을 집어 던진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소리가 한국 측에서 일어났다.
마치 압축된 공기가 터지는 듯한 소리였다.
대포의 탄환이 쏘아지듯 포물선을 그리며
우측에서 날아오는 선우를 보며 일본 측이 당황해할 때쯤,
한국 측에선 다시 한번 큰 소리가 일었다.
팡!
이번엔 형우였다.
좌측에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선우와 달리 샛노란 빛을 띤 전격의 마력장을 두른 채였다.
극한으로 몸이 단련된 근접계 공격형 헌터였던 선우와 달리,
마법계 헌터였던 형우는 공기의 저항을 온전히 이겨내기 어려웠고
무방비 상태의 자신에게 날아올 공격을 막아낼 능력이 없었기에
이를 보호하려 마력장을 두른 것이었다.
“이제 내 차례군.”
성용이 골프 샷의 궤적을 바라보듯,
손을 들어 둘의 날아가는 궤적을 바라보다
만족한 표정을 짓고는 방패와 해머를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잘 지키고 계쇼. 금방 다녀올라니까.”
“알겠어요.”
쿵.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성용이 정면으로 뛰쳐나갔다.
* * *
“뭐야. 저 자식은.”
마사키가 날아오는 선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요코하마. 녀석들의 생각이 뭔지 알겠나.”
마키토가 후방에 서 있는 자를 보며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속전속결로 경기를 끝내기 위함인지,
아니면 뭔가를 숨기기 위한 녀석들의 노림수인지는….
아무래도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가.”
요코하마라 불린 이의 말에 마키토가 인상을 쓰며 답했다.
요코하마는 일본 대표 팀의 사령탑과 같은 존재로,
헌터로 각성하기 이전부터 꽤나 유명한 바둑기사였다.
어릴 때부터 꽤나 유명한 천재 바둑기사.
호리호리하고 얌전한 외모와 다르게
그가 바둑을 두는 방식은 패기 넘쳤고 강건했다.
또한 그는 상대가 누가 되었든지 간에 반드시 이겼고,
상대가 어떤 전략을 들고나오든 간파해내는 불세출의 천재였다.
그래서인지 헌터로 각성한 이후로도,
그는 그의 지략을 이용해 마물로부터 자국을 방어하고
어떻게 공략할지 해법을 찾는 전략전술 전문가로서 활동했다.
불가능이라 판단되던 고위급 게이트의 공략도,
던전 브레이크로 문제가 되었던 지역의 공략도 해냈고,
고위 마물을 잡기엔 턱없이 모자란 헌터 자원을 가지고도
상성과 전략전술만으로도 공략해내는 기염을 토할 정도였다.
게다가 그는 이 방면에서 꽤나 유명한 존재였는지,
거액의 돈을 받고 다른 국가에 초빙되어 전략전술에 대해
강연하거나 해당 국가의 지휘부, 수뇌부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 그의 말이었기에 쉽게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뭐지.”
“저들의 장단에 잠깐 어울려 주십시오.
저들이 무엇을 원하든 곧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가 반드시 캐치해 내겠습니다.”
“알겠다. 저 녀석은 내가 맡지. 갚아야 할 빚도 있고.”
“그러시죠.”
“편할 대로.”
마키토의 말에 마사키는 심드렁하게 대답했고,
마키토는 두 자루의 검을 꺼내들고는 날아드는 선우에게로 향했다.
“마사키 님은 다가오는 저 탱커를 맡아주십시오.
맞서 싸워 이기지 않아도 됩니다. 시간만 끌어주셔도 충분합니다.”
“…그러지.”
마사키는 말과 함께 성용을 보며 씩 웃고는 빠르게 나아갔다.
“저와 나가노는 그럼 저 녀석을 상대하겠습니다.
나머지 두 분께서는 깃발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요코하마가 형우를 바라보며 이어 마이크에 대고 중얼거렸다.
“알겠습니다.”
“나가노. 요격을.”
“예압.”
나가노라 불린 노란 머리의 헌터가
저격수나 쓸 법한 저격용 소총을 꺼내 들고는
형우를 향해 총부리를 겨눴고 스코프에 눈을 가져다 댔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선우의 참격들이 나가노에게 쏟아져 내렸다.
“…이런. 사사키 씨.”
요코하마의 나지막한 말 한마디에,
요코하마와 나가노의 앞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하나 섰다.
카가가가가가강!
후위에서 이를 살피던 탱커가 방패를 들고 둘의 앞에 나서
선우의 일격에 빠르게 반응했고, 나가노의 저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괜찮아요?!”
후위에 있던 힐러 마리가 뛰어와 그들의 상처를 살폈다.
“네. 괜찮습니다. 고마워요. 사사키 씨.”
요코하마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방어구 위에 쌓인 재들을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칫.”
다시 자리를 잡고 공중을 향해
총구를 들이대려던 나가노의 눈에 형우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지…?”
“절 찾나 봅니다.”
흠칫
사사키가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며
방패를 들어 올렸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후속타를 경계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공격은 가해지지 않았다
“…?”
동태를 살피려 방패를 슬쩍 내리자,
사사키의 앞에 슬며시 웃고 있는 형우가 있었다.
“사요나라.”
“…뭐?”
사사키가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형우를 바라보자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와 함께 일본 팀의 발아래로
샛노란 전격이 파지직 하는 살벌한 소리를 내며 거칠게 피어올랐다.
동시에 형우는 모습을 감췄고,
그들의 발아래에서 피어오른 사나운 전격의 무리는
하나의 잔물결이 되어 그대로 그들을 타고 올랐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팀원들의 몸이 크게 떨렸다.
안 그래도 굵게 튀어나온 사사키의 굵은 힘줄은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마냥 도드라져 부들거렸고,
나머지 인원들 또한 고통스럽게 몸을 떨며 소리쳤다.
“이런….”
캉!
“당신의 상대는 접니다. 마키토.”
본진으로 발걸음을 돌리려던
마키토를 향해 선우의 검이 휘몰아쳤다.
‘…뭔가 이상하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선우의 검을 막아냈다.
선우의 검은 얕고 가벼웠다.
자신이 알고 있던 그의 검과는 비교적 거리가 멀었다.
‘뭐지. 뭘 노리고 있는 거지. 마치… 시간을 끄는 것 같….’
쾅!!
마키토의 머리가 복잡해지던 찰나,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콰가가강!
“……?!”
고개를 돌리자 용암 속으로 무너져 내리는 길들이 보였다.
시선을 돌리자 마사키는 상대조차 하지 않고
요리조리 그를 피해 길들을 모조리 박살 내고 있는 성용이 보였다.
게다가 그는 노련하게도 마사키의 힘을 역이용해,
길들을 부서뜨리는 데 그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당황한 마키토와 달리 선우는 담담해 보였고,
그는 그런 마키토를 향해 계속해서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됐수!”
성용이 소리치자, 선우는 지체 없이 몸을 돌려
자신이 딛고 있던 마지막 길까지 부숴버리고는
한국 팀의 본진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이 무슨…?”
황망해하는 마키토의 시선 끝에
한국과 일본 팀의 사이에 놓인 단 하나의 길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