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라스트 엠페러-197화 (197/336)

197화

* * *

펜타곤 지하에 위치한 한 방공호.

어둑어둑한 조명의 방공호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긴 테이블의 양옆으로 앉은 미 국방장관과 주요 상원 의원,

그리고 잔뜩 찌푸린 표정을 한 채 상석에 앉은 미 대통령이 그것.

그들의 눈은 모두 한곳을 향해 있었고,

그들의 시선 끝에는 어떤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영상에서는 한성의 모습과 음성이 들려져 오고 있었다.

“…당신들이 우려하던 일이 생겨날 겁니다.”

흠칫.

보디캠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일까.

카메라를 노려보며 말하는 한성의 모습에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가볍게 어깨를 떨었다.

한성의 눈빛이 그만큼 흉흉하고 살기 가득했기에.

영상이 끝나고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회의실 내 그 누구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충격에 할 말을 잃은 것이리라.

“…여기까지가 제가 보고 들은 모든 것입니다.”

잠깐의 침묵 뒤, 패트릭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쾅!

“이는 우리 미합중국을 향한 도발입니다.

절대 이것을 가볍게 여겨 좌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린 저 경솔한 발언에 대해 책임을 묻고 따져야 합니다.”

국방장관이 책상을 내리치며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맞습니다!”

몇몇 의원들도 그의 생각에 동의하며 소리쳤다.

“어떻게 물을 것입니까.”

대통령 조지 카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야 성명문을 발표하고 군을 배치해….”

국방장관이 호기롭게 말을 이어나가려 하자,

카터가 그의 말을 끊으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군을 움직여서 어떻게 한다는 말입니까?

무력으로 그를 협박이라도 하겠다는 말입니까. 지금?”

“…그야.”

“비록 그가 빌미를 제공했다고는 하나,

우리의 대응이 과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에게 협박…을 한 것도 우리고.”

협박이라는 단어에서 말끝을 흐린 카터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이번 일 때문에

강건과 정부 측의 항의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군을 움직이겠다고요? 그게 말입니까?

왜요? 이한성 헌터와 전쟁이라도 하시게요?”

“…흠흠….”

국방장관이 머쓱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실수는 단 한 번으로 족합니다.

두 번은 없습니다. 다들 명심하세요.”

카터의 말에 회의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후우… 그래. 패트릭 수고했네.

그나저나 지금 현재 아프리카 상황은 어떤가.”

삑.

패트릭이 리모컨을 조작하자, 영상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아프리카의 지도와 붉은 점들이 보였다.

“…보시다시피 빠른 속도로 수복 중입니다.”

“…흠….”

카터와 사람들의 눈이 지도를 향했고,

모두가 동시에 탄성 비슷한 침음을 흘렸다.

그들이 본 것은 나이지리아, 차드, 리비아를 기점으로

왼편에 존재하는 국가 외에 수복이 완료된 아프리카의 모습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남부지역의

짐바브웨와 잠비아, 모잠비크, 말라위는

여전히 마물들로 바글거리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아래에 위치한 나머지 국가들은

한성이 길드장들을 위해 남겨놓은 퀘스트(?) 지역이리라.

“…금일 09시 31분경, 끊겼던 이집트와도 연결되었고,

거기서 버티고 있던 UN군과도 연결되었습니다.”

“…그들의 상태는 어떻던가.”

카터가 중얼거렸다.

“다행히 통신만 끊겼을 뿐,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습니다.

리치 킹의 재밍 때문에 신호가 파훼됐던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행이군.”

“예.”

“신호가 복구되었고, 그들이 무사하다는 건

이한성 헌터가 그들과 접촉했고 그들을 구했다는 소리겠지.”

“예. 맞습니다.”

“후… 그래. 뭐라던가.”

“그것이….”

“편히 말해보게.”

“…금일 09시 20분경. 남쪽 국경 방향에서부터

엄청난 수의 마물들이 방어선을 향해 밀려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UN군과 헌터들은 최후의 항전을 준비했으나,

마물들은 그들을 노리기는커녕 리비아 쪽으로 도망했다 합니다.

마치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다급해 보였다고도 말했습니다.”

“….”

“…그러던 중 몇몇의 마물이 행렬에서 벗어나

UN군이 세워 둔 최후 방어선을 돌파하려 했다 말했습니다.

하나 특이한 건 자신들을 공격하는 UN군은 신경도 쓰지 않았고,

부상을 입었음에도 자신의 몸을 돌보거나 대항하기는커녕,

그저 미친 듯이 방어선을 뚫어내려 했다 합니다.”

“….”

“필사적인 그들의 공격에 방어선이 부서지기 일보 직전,

별안간 이한성 헌터들의 수하들이 나타나 앞에 방벽을 깔았고,

순식간에 마물들을 학살… 했다고 전해 왔습니다.”

“몰이사냥이라도 한 것인가.”

“그런 것으로 추정됩니다.”

‘…헌터 개인의 무력만으로 어떻게… 그 정도 규모의 몰이를….’

카터의 주름이 깊게 파였다.

“계속하게.”

“이에 방어선으로 몰려들었던 나머지 마물들 모두가

리비아 방향으로 도망갔고, 상황은 종료됐다 했습니다.”

“…끝인가.”

“아닙니다. 이한성 헌터와 타우한으로 추정되는 마물이

UN과 이집트군의 곁으로 나타나 부상당한 이들을 치료해주었고

뒤는 자기가 맡을 테니 복귀하라는 말만 남기고 떠나갔답니다.”

“….”

“혹시나 하는 마음에 UN군에 부탁해

드론과 무인 정찰기를 띄워 살펴봤습니다만….”

“…별거 없었겠지.”

패트릭의 말에 카터가 중얼거렸다.

“예. 맞습니다.”

“…역시.”

“이한성 헌터가 지나온 전역을 샅샅이 살피게 했지만….

숨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인지

뭔가를 꾸미고 있다고 할 만한 증거나 정황은 없었습니다.

드론과 무인 정찰기에 탑재된 마력 센서에도 포착되지 않았구요.”

웅성웅성

회의장이 시끄러웠다.

“…후….”

카터가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문질러댔다.

“정말 그에게 다른 속셈은 없었던 건가….”

“…속단할 수는 없겠지만 현 상황으로서는 그런 것 같습니다.”

패트릭의 말에 카터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가만히 있던 벌집을 건드린 셈이 됐군.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했는데. 후우….”

“…죄송합니다. 저의 정보력이 부족했던 탓입니다.”

패트릭이 무거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됐네. 자네 탓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니까.

게다가 자네뿐 아니라 그 누구도 몰랐을 일일세.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하겠나.”

“…죄송합니다.”

카터의 옆자리에 있던 이가 침통한 얼굴로 사과했다.

“아닙니다. 부통령. 상대가 이한성 헌터여서 그렇지,

부통령께서 취하신 행동은 결단코 틀린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다면 지금처럼 행해주시면 됩니다.”

“….”

“지나간 과거는 어쩔 수 없습니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죠.

확신하긴 이르지만, 다른 속셈이 없다는 것에 만족해야겠습니다.

어차피 그를 통제할 방법 또한 없는 것 같고 말입니다.”

카터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후우… 그래서 그의 무력은 어느 정도인가.

이한성의 곁에서 그를 살펴본 자네라면 잘 알겠지.

그것을 알고자 이곳까지 자네를 부른 것이기도 하고.”

카터의 눈이 테이블의 말석으로 향했다.

거기엔 익숙한 실루엣 둘이 보였다.

라이언 나이트와 험프가 바로 그것.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 수준으로는 그의 무력을 측정할 수 없다.”

나이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동감입니다.”

험프가 이에 동의하며 말했다.

웅성웅성.

좌중이 소란스러웠다.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자만하기까지 하던 그였다.

그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고, 고개 숙이지 않던 그.

미 대통령 앞에서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오히려 그를 오만하게 내려다보던 그였건만….

그런 그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다.

당연히 놀랄 수밖에.

“…대략적인 것이라도 좋으니 말해주게.”

“…녀석은 괴물이다. 이제껏 상대해온 그 어떤 존재들보다도 훨씬.”

나이트가 담백하게 답했다.

“….”

나이트의 말에 험프 또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인가?”

나이트의 말에 카터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미국의 국가 전력급 헌터는 오십이다.

그들의 무력은 기껏해야 엠페러 초입에서 상급이 대부분이고,

최상급이라 말할 수 있는 이는 나와 형을 포함, 겨우 여섯뿐이다.”

“기껏에… 겨우라….”

카터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초입이라 할지라도 엠페러급 헌터가 가지는 위상은

핵무기를 보유한 것에 비견될 정도로 크고 위협적이었기에,

엠페러와 ‘겨우’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카터의 시름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나이트가 이를 모를 리 없으니까.

“이한성이 가진 것에 비교하자면 그 표현조차도 사치일 거다.”

“…계속해주게.”

“이한성의 전력은 따로 치고, 그의 수하들부터 말하도록 하지.”

나이트의 말에 카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엠페러 최상급에 달하는 마물 다섯과

중, 상급에 달하는 마물 아홉을 부리고 있다.

또한 언터쳐블급에 달하는 마물 수십도 부리고 있지.”

“그 정도라면… 뭐. 수로는 우리가 앞서는군.”

카터가 중얼거렸다.

“…생각이 얼마나 짧은 것인가. 멍청하긴.”

“입조심하시오. 나이트 헌터!”

상원의원 하나가 나이트를 향해 소리쳤지만,

나이트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고 카터 또한 익숙한 듯

나이트의 이러한 언행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보유한 전력이 그 정도라는 것이다.

게다가 더 큰 전력을 숨겼을지도 모르고,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또한 그의 수하들 앞에서 수는 중요치 않다. 힘의 수준이 다르니.”

“…힘의 수준이 다르다?”

“나와 형이 목숨을 걸고 덤벼도 이한성은커녕,

그의 수하인 리치 킹조차도 제압하지 못할 것이다.

그를 제압하려면 마법계 엠페러급이 최소 수십은 필요할 거다.

그조차도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할 뿐. 승패의 여부는 모른다.

적어도 내가 리치에게 느낀 무력감과 중압감은 그랬다.”

“……뭐?”

“게다가 나머지 마물들 또한…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그들 하나하나만으로도 S급 게이트의 보스 수준은 되니까.”

“….”

카터의 입은 벌어진 채 다물어질 줄 몰랐다.

“뿐만 아니라, 이한성의 곁에는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마물이 있다.”

“보고되지… 않은 마물…?”

“…다크 나이트라 불리는 마물이 그것이다.”

“…?”

카터가 패트릭을 바라보았으나,

패트릭은 자신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보인 적도 없을뿐더러, 외부인들 중에

이를 아는 자는 나뿐이니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

“왜 말하지 않았나.”

“딱히 말할 필요도 없었고, 묻지도 않았으니까.”

“…후. 그래. 계속 말해보게.”

카터가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대답했다.

“그는 데스나이트가 진화한 존재라고 했다.”

“…그런데?”

“난 그자가 뿜어내는 강대한 힘에 이끌렸고

그 힘에 호기심이 일어 그에게 대련을 요청했다.”

“대련이라… 그래서?”

“단 한 번이었다.”

“…뭐가?”

“그저 별거 없는 단 한 번의 휘두름에

난 이를 막아내지도, 쳐 내지도 못한 채 무너졌다.”

“…….”

싸아아.

회의장이 분위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져 갔다.

“나조차 상대가 되지 않는 녀석을 누가 막을 수 있겠나.

그를 저지하려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할지… 끔찍하군.”

“…….”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이트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 그 녀석을 이한성이 힘으로 짓눌렀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

“마물 녀석이 본인의 입으로

내게 직접 이야기한 것이니 거짓은 아닐 테지.”

“….”

“이 정도면 감이 오나? 이한성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

“그렇기에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회유해 아군으로 영입해야 한다 주장한 것이다.

영입을 할 능력이 없으면 그와 친분이라도 쌓으라 한 거고.”

“….”

“그런데… 그런 그에게 호감을 사도 모자랄 판국에,

너희 정부 놈들은 멍청하게도 이를 싸그리 다 망쳐 버렸지.”

“….”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한성은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허튼짓을 할 자가 아니라는 거다.

더군다나 너희들이 저지른 너저분한 일들에 복수할 인간도 아니고.”

“….”

“그러니 다행으로 알고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마라.

한 인간의 손에 미국이 박살 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나이트의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