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라스트 엠페러-185화 (185/336)

185화

* * *

한성이 자신의 세력을 불려 나가는 동안,

길드장들은 계속해서 벨루몬들의 혹독한 훈련을 받아나갔다.

그것이 개인 훈련이 되었든, 단체 훈련이 되었든 간에.

좋은 스승과, 체계적인 교육 커리큘럼(?), 목숨을 건 훈련 덕에

헌터의 끝이라 할 수 있는 엠페러의 영역에 도달한 그들이었음에도

그들은 빠른 시간 내에 강해져 갔다.

자신이 강해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보았고,

약점은 보완하고, 강점은 더욱 살렸으며

스승들로부터 새로운 기술이나 스킬들을 배우고 익히게 되었다.

덕분에 그들의 전력은 상당한 부분 발전하게 되었고,

엠페러 초입으로 가장 격이 낮던 애림과 재권마저도

중급에서 상급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허나 벨루몬들에게 이기지 못하는 것은 여전했다.

레그나토르가 없었더라도 이기지 못했을 것을,

벨루몬과 더불어 최강 전력이랄 수 있는 그가 영입되는 바람에

그들이 이길 확률은 이제 거의 0에 수렴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딪쳤다.

그들의 목표는 대회의 우승이 아니라,

머지않아 쳐들어오게 될 마물들로부터의 생존과

그들로부터 제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것이었으니까.

이런 소박하고도 오만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들은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시간 외에는

미친 듯이 단련하고 수련하고 연습했다.

이들의 간절함이 통해서였을까.

단체 훈련에서도 맥없이 패하던 전과 달리

이제는 벨루몬들을 상대로 10분은 버티게 되었다.

물론, 전력의 차이가 너무 심해 매 훈련마다

벨루몬들 중 하나가 빠져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기뻐했다.

이제는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체되어있던 자신의 힘이

나날이 늘어 가는 게 제 눈으로 보였고,

영원히 이기지 못할 것 같았던 눈앞의 마물들에게

자신이 힘이 조금이나마 통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당연히 기쁠 수밖에.

선우 또한 제대로 된 검술 스승을 만나, 검술 지도를 받게 되었다.

사용하는 검이 다르고 기술이 달랐지만,

선우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는 듯 보였다.

둘의 검이 많이 닮았기 때문이리라.

덕분에 매번 져야 했던 나이트와의 대련에서도

쉽게 지지 않게 되었고, 승패의 비율이 비등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선우의 변화에 가장 많이 놀란 건 나이트라는 후문이 있었다.

4회전과 5회전의 경기는 이런 수련의 성과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패배할 경우 죽이겠다는 벨루몬의 협박 때문이었는지,

한국 팀이 너무나도 손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한성은 아예 나서지도 않았고,

형우의 전략은 제대로 쓰지도 못했건만

상대 국가의 헌터들은 픽픽 쓰러져 갔다.

짧은 시간 안에 너무나 달라진 그들의 모습에

외신과 언론사들이 이에 주목했고 그들을 분석하려 했다.

패배한 국가에서는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관리 본부에 한국 팀의 약물 투여 여부를 검사해 달라 요청했고,

한국 팀은 이를 예상했다는 듯 흔쾌히 받아들였다.

취재진들과 관리 본부 인단, 패배국 대표 모두가 참석한 자리에서

제3국의 검사관이 나와 한국 팀의 머리칼과 소변을 검사했으며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는 것을 실시간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공식적인 검사가 끝나고 물밀듯 밀려 들어오는 취재진들에

한성은 짧고 강한 몇 마디의 말만을 남기고 돌아섰다.

강해지는 데 필요한 것은 약물 같은 치졸한 방법이 아니라,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훈련과 단련이라는 말이 그것이었다.

* * *

“후우….”

잠깐의 휴식 시간.

모든 길드장들이 자신이 속한 허상 결계에서 나와

연무장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꿀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적응될 법도 한데, 아직도 힘들구만….

아무리 마물이라도 그렇지. 저 양반은 지치지도 않나.”

성용이 칸을 바라보며 앓다시피 중얼거렸다.

“전… 진짜 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형우와 재권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술식 하나 못 풀었다고 맞아 죽을 뻔했습니다.”

“…저도.”

“…그쪽도 만만치 않겠구먼.”

성용이 이해한다는 얼굴로 둘을 바라보았다.

“쉴드장은 어떻수. 할 만하우?”

“전 늘 같죠. 뭐. 천천히 가려구요.”

“그렇게 하슈. 그래도 너무 늦진 마슈.

너무 늦으면 우리가 두고 갈 테니까! 하하하.”

“어머. 그래도 프라임 길드장보다는 제가 빠를걸요?”

“그런가? 하하하.”

성용이 볼을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알파 길드장은 어떻수.”

“…죽겠습니다.”

처음으로 앓는 소리를 하는 선우에

길드장들 전원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부가 생겼다며 기뻐하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고,

다른 길드장들에 비해 늦었다며 더욱 열심히 훈련에 임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며칠도 채 되지 않아

파김치가 된 몰골을 한 채 앓는 소리를 하니 놀랄 수밖에.

그도 그럴 게, 레그나토르의 훈련은 무식했다.

처음 훈련을 시작하자마자 레그나토르는

자신의 검을 쳐내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며

단 한 번이라도 막아보라는 오만한 말을 했다.

이에 발끈한 선우가 그의 검을 받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한성마저 휘청하게 했던 그의 힘을

그보다 한참 떨어지는 선우가 막아낼 리 만무했다.

그저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단순한 동작임에도

선우는 단 한 번도 이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볼썽사나울 정도로 나가떨어지길 수십이었고,

그의 힘에 짓눌려 그 자리에 그대로 무릎 꿇은 게 수백이었다.

계속해서 ‘다시’를 외치는 선우를 보며 근성은 있으나

그것뿐이라는 말과 함께 기본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다며,

혹독한 근력 운동만을 시켰다.

평소에 선우 자신이 휘두르던 봉의 무게에

두 배, 세 배 되는 봉을 가져와서는 계속 휘두르게 했다.

팔에 마비가 오고,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에도

그는 조금도 쉴 시간을 주지 않고 선우를 몰아붙였다.

그가 지쳐 쓰러지려 할 때면, 애림을 불러 그를 치료케 했고

밥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그저 봉을 휘두르게만 했다.

시간이 지나자, 힘겹게 봉을 휘두르던 선우도

힘이 붙은 것인지 아니면 요령이 생긴 것인지

그럭저럭 봉을 똑바로 쥐고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레그나토르는 만족한 듯 무식한 단련을 그만두었고,

선우의 검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살피고 조심스레 만졌다.

그렇다 해서 선우의 검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바꾸거나

제 입맛에 맞게, 제 방식대로 뜯어고치려 든 것은 아니었다.

선우가 레그나토르에게 가르침을 받기를 청했고,

그로부터 모든 것을 배우고 바꿀 의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는 한성과 마찬가지로 그와 선우가

걷고자 하는 검의 길이 서로 다르기에

선우의 검을 함부로 흔들어서는 안 된다 했다.

그렇기에 그는 선우가 걷고자 하는

검의 길에서 틀어진 방향을 바로 잡아주었고

앞의 장애물들을 걷어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레그나토르의 무심한 듯 세심한 도움으로

자신의 수행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하나둘 무너지자,

둑이 무너진 댐의 물처럼 선우의 힘은 날이 갈수록 커졌고,

레그나토르의 일격 또한 곧잘 막아내고 쳐낼 수 있게 되었다.

뭐 어디까지나 레그나토르가 봐줬기 때문이겠지만.

다른 이들의 사정도 딱히 다르지만은 않았다.

가장 일취월장한 것은 형우와 재권이었다.

목숨의 가장 직접적인 위협(?)을 받아서였을까.

둘은 마력 운용법이나, 연산, 캐스팅 속도, 마력 배열,

마력 역산 등 모든 영역에 걸쳐 벨루몬의 지도를 받았다.

소위 말하는 1타 강사인 벨루몬이 목숨을 위협하며,

족집게 과외를 해주는데도 만약 실력이 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학생의 문제일 것이다.

당연히 둘의 실력은 가파르게 증가했고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의 양은 크게 급증했으며,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가짓수도 늘어났다.

이런 눈부신 변화에도 벨루몬은 여전히 둘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아크리치도 너희보단 잘할 거라며 구박을 해댔고,

주군의 명만 아니었어도 너희 같은 돌대가리는 안 받았다 말했다.

그러나 그런 원색적인 폭언과 욕설을 듣고 난 뒤에도

둘은 이제 완전히 미쳐버렸는지 그저 싱글벙글이었다.

그가 시쳇말로 소위 말하는 ‘츤데레’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제자인 주제에 어디 가서 맞아 죽지 말라고

절대 방호가 걸려 있는 반지를 휙 하고 던지고 가질 않나,

둘이 그가 숙제로 내준 마법 술식을 풀지 못해 낑낑대고 있으면

머리를 쥐어박으며 알기 쉽도록 천천히 풀이를 해주기까지 했다.

어찌 그를 미워할 수 있을까.

게다가 재권은 벨루몬뿐만 아니라 타우한에게도 배웠다.

벨루몬과 달리 친절하고 따뜻한 그의 수업에

재권은 매우 편하고 즐거워 보였고, 버퍼로서 실력도 키워나갔다.

그로부터 버프 효과의 증대와 효율적인 사용법을 배워

전에 없던 위력과 수준의 버프를 빠르게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전의 그였더라면 해낼 수 없었던 버프들도

이제는 손쉽고 빠르게 해낼 수 있었고,

팀의 전력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반해 애림은 다른 길드장들에 비해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애초에 그녀는 타우한을 만나기 전부터

힐러로서 대성한 존재였으며, 완성에 가까운 헌터였다.

게다가 다른 길드장들과 달리 자신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절대적 마력 양을 늘리고

힐러로서 숙련도를 높이려 봉사활동을 빙자한 수련을 했다.

그러나 그녀 또한 어느 순간부터 벽에 막혀 있었다.

마력의 절대적인 양은 더 늘어나질 않았고,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의 양도 제한되어 있었으며,

사용하는 스킬의 숙련도도 더 이상 늘어나질 않았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고

막막해하던 그때, 타우한을 만나게 되었다.

그를 만나 광역 힐과 마력 회복 등의 기술을 배웠고

마력의 절대적인 총량을 늘리고, 다루는 방법을 배웠으며

좀 더 빠르고, 정확하게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노하우를 배웠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발전이며 몇만, 몇억 금을 주고도

얻지 못할 대단한 발전이라는 것을 그녀 스스로 알고 있었지만

그녀 또한 인간이었기에 욕심이 났다.

게다가 주위 길드장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에 비해

자신의 성장은 더디고 느렸기에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타우한은 그런 애림을 보며 너의 길이 틀리지 않았으니

답답해하지 말고 그저 계속해서 걸어라 말해주었다.

이에 애림은 느리지만 분명한 자신만의 길을 가기로 했고,

누구보다 탄탄하게 제 길을 다지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그런 애림보다도 더 답답한 과정을 겪었던 것은 성용이었을 것이다.

성장은커녕 계속 제자리걸음 중이었다가,

오늘에서야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했으니까.

성용은 훈련이 시작되자마자 칸으로부터

충격을 줄이는 법이나, 방패로 적을 효과적으로 가격하는 법,

효과적으로 상대의 공격을 흘리는 법 등에 대해 배웠고

이를 연습했으며 곧잘 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뒤로 칸은 별달리 알려 주는 것 하나 없었다.

그저 무식하리만치 고강도의 근력 운동을 시켰고

칸의 힘을 밀어내거나 쳐내게 하는 방어 연습만을 시켰을 뿐.

처음에는 별다른 의심 없이 뜻이 있겠지 싶어

그저 시키는 대로 묵묵히 그의 뜻에 따라 미친 듯 훈련했다.

그러나 이것이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자,

칸에게 혹시 이 훈련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냐 물었지만.

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방패를 든 이유가 무엇이냐’였다.

‘…이유…?’

성용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기에.

그저 탱커로서 능력이 각성했기에 방패를 들었을 뿐이며,

자신의 덩치와 강한 힘에 가장 적합한 무구가 방패였기에 들었다.

그런데 방패를 든 이유가 무엇이냐니….

칸은 그리고는 그 이유에 답을 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지금의 훈련을 반복할 것이라 말했다.

그렇기에 성용은 훈련을 받는 와중에도

칸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답이 무엇일지 고민해야 했다.

밥을 먹고, 씻고, 잠들기 직전까지도

이에 대해 고민했고 몇 가지의 답을 간추려 칸에게 대답했다.

‘자신의 능력을 살리기에 가장 적합한 무구가 방패다’,

‘자신의 강한 힘과 덩치에 어울리는 무구가 방패다’ 등

여러 답안을 내보았지만 그때마다 칸은 고개를 저었다.

답답함에 칸에게 답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그저 고개를 저을 뿐 그에 대해선 어떠한 힌트도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항의를 할 수는 없었다.

맞아 죽기도 싫었고, 그에게 나름의 뜻이 있었을 테니까.

몇날 며칠을 고민을 하던 성용이 답답함에 한성에게 찾아가

자신의 머리로는 도저히 해결 못 할 것 같다며 도움을 청하자,

한성은 칸의 의도를 알았다는 듯 씩 웃었다.

그러나 답은 알려 주지 않았다.

문제에 대한 답은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했기에.

힌트를 줄 수는 있다며, 엄지를 들어 길드장들을 가리켰다.

그러나 그것이 다였다.

그 뒤로 어떠한 말도 덧붙여주지 않았다.

‘…길드장들…?’

그는 수행하는 내내 그 손가락의 의미가 무엇일지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꼴딱 밤을 새우고 나서야 그 의미를 찾아냈다.

그리곤 웃으며 칸에게 달려가 자신이 생각한 답을 말했고,

칸은 그제야 정답이라며 마주 웃어주었다.

답은 허무하리만큼 간단했다.

‘지키기 위해서’였으니까.

칸은 방패를 들기로 결정한 자라면

잊어선 안 될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덕목이라 말했고,

성용은 그제야 자신이 맹목적으로 방패를 들어왔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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