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라스트 엠페러-156화 (156/336)

156화

* * *

한성의 결승전 상대가 정해졌다.

한성이 바라 마지않던 라이언 나이트가 그것이었다.

나이트와 샤오란의 대결은 의외로 싱겁게 끝이 났다.

아니지. 싱겁지조차 않았다.

중국 측이 별다른 이유를 대지 않고 기권을 해

싸우기는커녕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승부가 정해졌으니까.

중국 측과 샤오란에 실망하거나

화끈하지 못하다며 욕할 줄 알았던 사람들은 의외로 적었다.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트는 상대 헌터에게

거칠고 독하게 손을 쓰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헌터였다.

조별 경기에서도 상대 헌터의 손가락을 잘라버리거나,

팔 하나를 아작 내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지난해 대회 결승전에서는 러시아 헌터 하나를

반불구로 만들어 놓은 이력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샤오란과 붙게 되면

나이트는 앞뒤 가리지 않고 내지를 가능성이 높았고,

샤오란은 이기든 지든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중국 측은 부상을 입은 샤오란이

개인전 종료 후, 바로 시작하는 단체전까지

부상을 회복하지 못하리라 생각해 기권 카드를 꺼낸 것이리라.

굳이 샤오란을 가지고

위험한 도박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로 보였다.

이는 타당해 보였다.

게다가 개인전 1등이 받는 포인트가 100인 것에 반해,

2등부터 4등까지는 50, 30, 10 정도밖에 되지 않아

굳이 공들여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뒤처진다고 해도 단체전과 마물전에서

충분히 뒤집을 기회가 많이 있었으니까.

또 다른 의견으로는 중국의 자존심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이미 중국에서 촉망받는 헌터인 링 링이

결승전도 아니고 조별 리그에서 한성에게 짓밟혔다.

본인도 아니고 그가 부리는 마물에게….

그것도 엉덩이를 맞으며 엉엉 울기까지 했다.

그런 와중에, 중국을 대표하는 얼굴이랄 수 있는 샤오란이

결승전에 올라가 한성에게 질 경우,

중국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또한 그럴싸했다.

중국 측은 늘 무공을 창시한 샤오란을 홍보하며

강한 중국, 최강의 헌터, 헌터 선진국 등을 표방해왔으니까.

중국 무술의 상징이랄 수 있는 샤오란이 무너진다면

15억 인민과 중국 무술인 및 헌터들의 자존심이 박살이 날 테지.

이에 본부석은 다음 날 치러질 샤오란과 콘스탄틴의 3, 4위전을

본디 샤오란과 나이트가 맞붙었어야 할 저녁에 하자 제의해왔고

중국과 러시아는 이를 수락했다.

중국 측은 더 이상 빼기는 자존심 상하는 데다,

콘스탄틴 정도면 샤오란도 부상 없이 이길 거라 판단한 듯 보였다.

러시아 측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은 입장이었다.

불곰국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했고,

샤오란 정도면 이길 수 있으리라 판단한 듯 보였으니까.

이윽고 밤이 되어 3, 4위전이 시작되었다.

양 선수 모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았고,

당장이라도 상대를 때려눕히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관중들의 환호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고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콘스탄틴은 야수화를 시전해

샤오란에게로 달려들었다.

지축(地軸)을 울리며 달려드는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한 마리 짐승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성난 코뿔소마냥 무식하게 돌진하는 콘스탄틴을 보며

샤오란은 진각(震脚)을 밟았다.

무게가 100kg도 채 되지 않을 샤오란의 발걸음 한 번에

마력석이 섞여 단단해진 필드는 갯벌마냥 푹 파여 가라앉았고

합기(合氣)라도 하는지 샤오란의 주먹에는 기존의 헌터들에게서

본 적 없는 기운이 가득 어리기 시작했다.

마력이라기에는 어색한 기운이.

중국 측이 언젠가 얘기했던 내공이라는 것 같았다.

희미하게 피어오르던 아지랑이는

점차 커져 그 기세가 강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헌터가 아닌 평범한 사람 누구라도

그녀의 주먹에 어린 기운이 보통이 아님을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콘스탄틴 또한 샤오란의 이러한 힘을 인식한 듯

완전히 그 힘이 모여 채워지기 전에 발톱을 세워서는

한성에게 가했던 공격을 감행했다.

번갈아 가며 휘두른 그의 양손으로부터

10개의 발톱 모양 검기가 그대로 샤오란에게 쏘아져 나갔다.

샤오란은 날아오는 날카로운 기운에도

그저 진각을 밟은 자세 그대로 주먹을 들어 올렸을 뿐

별다른 자세나 방어를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모았던 힘을 콘스탄틴에게로 쏟아 냈다.

흔히 말하는 발경(發勁)이라는 것인 듯했다.

나아간 무형의 기운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콘스탄틴의 검기를 모조리 박살 내고는 그 힘과 속도 그대로

콘스탄틴에게로 빠르게 나아갔고 결국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콘스탄틴의 눈이 뒤집히며 쓰러졌고, 그렇게 승부는 끝이 났다.

샤오란은 무술인답다고 해야 할지 쓰러진 콘스탄틴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는 필드에서 내려갔다.

샤오란이 콘스탄틴을 이길 줄 알았냐는 기자들의 끈질긴 질문에

중국 측 대표는 당연한 결과라 말하며 희미하게 웃었고,

애초에 나이트와의 경기에서 기권한 것도 전략적 선택이었을 뿐

딱히 두렵거나 이기지 못할 상대라서 기권한 게 아니라 답했다.

덕분에 중국은 자존심을 챙겼으며,

콘스탄틴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압도적 힘의 차이를 통해

기권한 것이 전략적 선택이라는 그들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보였다.

콘스탄틴의 또다시 의료실의 신세를 져야 했고,

애림의 구박과 모진 말들을 또 들으며 회복을 해야 했다.

파란의 3, 4위전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대망의 개인전 결승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 * *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철컥.

“이야아아! 우리 한성이!”

“한성아! 우리 왔어!”

한성이 대기실 방문을 열자 그곳엔 지민의 안내를 받아

한성을 보러 온 한철과 양화가 있었다.

그들의 양손엔 뭔가가 가득 들려져 있었다.

과일부터 시작해 무식할 정도로 큰 도시락통들이 그것이었다.

“야. 아무리 국제적인 대회라도 그렇지. 뭐가 이렇게 철저하냐.

뭐 우리가 폭탄이라도 들고 왔을까 봐 저러나. 정말….

신원 조회에, 생체 스캔에, 마력 탐지까지… 어휴….

얼굴 한 번 보기 더럽게 힘드네. 그냥….”

“제 말이 그 말이에요. 난 헌터도 아닌데 씨.”

한철과 양화가 투덜거렸다.

“아무래도 모든 국가들이 모이는 행사다 보니

보안에 조금 더 신경을 쓰는가 봐요. 들어오세요. 하하.”

“밥은 먹었냐.”

“아. 네. 먹었어요.”

아빠 같은 한철의 물음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한성이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여기에 평소에 먹던 거 좀 싸 왔다. 먹어.”

“헤에? 이렇게나 많이요? 대회 끝날 때까지 먹겠네.”

한철이 탁자에 내려놓은 보자기는 모두 음식이었다.

냉장고 안에 다 들어갈지도 모를.

“겨우 이거 가지고 뭘.”

한철이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야. 이거 부길드장님이 어젯밤부터 만든 거….”

“거 쓸데없는 소리를.”

양화의 말을 한철이 황급히 막아섰다.

“뭐 왜요!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고.”

“잘 먹을게요. 삼촌.”

한성이 웃으며 말했다.

“흠흠. 그래. 그래.”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답하는 한철이었다.

“그나저나 너 진짜 대단하더라 야.”

양화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뭐가. 또.”

“전 세계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다 모이는 자리잖아.

그런데도 그 사람들 다 이기고 결승전까지 올랐잖아.

이게 대단한 거지. 뭐가 대단한 거야?”

“아이. 운 좋았어.”

“웃기네. 내가 그 마력인지 마나인지 뭔지

한 줌 못 느끼는 평범한 일반인이지만은

그냥 대충 봐도 너보다 쎈 놈은 없어 보이더라 야.”

“대회에 안 나온 사람들도 많아.”

“겸손 떨기는.”

양화가 웃으며 한성을 툭 쳤다.

“그래서 나이트라는 놈은 어때. 싸울 만해 보이냐.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이번엔 한철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어려 있었다.

“붙어봐야 알 것 같아요. 뭐… 질 것 같진 않구요.”

“그래 뭐. 니 말이 그렇다면 맞겠지.

여기서 더 강해진다고 해도 이젠 놀랍지도 않다 야.”

“더 클 건데요? 아직 멀었는데 나?”

“…어유. 그만 커라 그만 커. 어우… 징그러워.”

“누가 보면 한성이 아빠인 줄 알겠네.”

양화가 웃으며 말했다.

“뭐. 아빠라 해도 무방하지 뭘. 아빠랑 다를 게 뭐야.

법적으로 가족은 아니어도,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다 했어.”

한철 또한 그런 양화의 말에 웃으며 대답해왔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어휴. 어련하실까. 덕분에 한성이가 지금 효도하잖아요.

동네 아저씨가 월급을 무슨 대기업 임원 수준으로 받질 않나.

아무 때나 쓰라고 카드를 받질 않나. 뭐… 쓰는 걸 본 적은 없지만.”

“그러게 말이야. 자식 농사 잘 지었네. 하하.”

“하하.”

왜인지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는 한성이었다.

똑똑.

“…면회 시간 1분 남았습니다.”

“어유. 내 정신 좀 봐. 이제 갑시다. 양화 씨.”

“네. 10분 금방이네. 일할 땐 1분이 1시간 같더니.”

양화가 놀란 얼굴로 시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일도 응원 갈 테니까. 잘해. 다치지 말고.”

한철의 말에서 진한 애정과 염려가 느껴졌다.

“네.”

“나이트 그 새끼 또라이라는 소리 많이 들리더라.

위험하다 싶거든, 다칠 것 같다 싶거든 바로 기권해.

전 세계 2등만 해도 충분히 대단한 업적이야. 알았지?”

“네.”

“어유. 잔소리 좀 그만해요. 엄마인지 아빠인지 원.

한성이가 알아서 하겠죠. 얼마나 똑똑한 애인데.”

“알았어. 알았어.”

“한성아 우리 간다. 시합 끝나고 보자. 쉬어.”

“네.”

둘이 돌아가자 방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흠… 나이트 녀석… 아직까지는 안 건드렸나.”

한성의 눈이 날카로웠다.

“벨루몬.”

“예. 주군. 하명하소서.”

“저 둘 모두에게 호위병을 붙여놓도록. 쓸 만한 녀석들로.”

“예.”

“쓸 만한 녀석들이라 했다.”

“예. 주군. 주군께서 신경 쓰시지 않도록

제가 만든 아이들 중 가장 강한 두 녀석을 보내두었나이다.”

“그래.”

한성의 두 눈이 깊어져만 갔다.

* * *

“대망의 개인전 그 결승의 막이~~~~~~ 올랐습니다!!!!!”

앵커의 말과 함께 관중석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고,

그와 동시에 거나하게 폭죽이 터져 올라 하늘을 수놓았다.

앵커와 해설자는 한성과 나이트에 대한 신상과

그들이 이제껏 보여준 기술, 특성 등에 대한 설명을 하며

관중들의 이해를 도왔고 그들의 설명에 맞추어

전광판에는 한성과 나이트의 모습이 비쳤다.

“개인전 우승자에게는 어마어마한 상금과 부상이 주어집니다.”

“말씀하셨다시피 공지한 대로 10억의 상금이 주어지구요.

부상으로 아메리카 대륙 최고의 대장장이 잭 카메로 헌터가 만든

검이 주어지겠습니다.”

“오… 그 잭 카메로 헌터요?”

앵커가 중얼거렸다.

“네. 맞습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 드리자면,

잭 카메로 헌터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도검 장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몇 없는 언터쳐블급 제작계 헌터이기도 하구요.”

“허어… 그가 만든 검이라니… 가치가 상상이 안 되는군요.”

“글쎄요. 가치를 매기는 것 자체만으로도 실례가 아닐까 싶군요.”

“두 헌터들의 싸움도 궁금하지만

빨리 부상으로 주어지는 검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하.”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광고 후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경기가 중계되는 이곳은 대한민국의 서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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