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라스트 엠페러-155화 (155/336)

155화

* * *

“포탈이라고 했나? 분명해?”

“ㅇ…예. 주군. 그렇습니다. 부…분명 포탈이었습니다.”

날카로운 기세의 한성에 녀석이 말을 더듬으며 답했다.

“…계속해봐.”

“예. 그곳에는 수천, 수만에 달하는 포탈이 있었고

그곳에 집결되어 있던 마물들 모두가 그 포탈로 들어갔습니다.

그 포탈이 어디와 연결되어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나이다.

허나 포탈의 사이로 송구하게도 주군과 닮은 종족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제 두 눈으로 확인했나이다.”

“….”

‘대격변의 날이… 그렇게 시작 된 것이었군….’

한성의 눈치를 살피던 잭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후로는 전과 같은 양상으로 포탈들이 생겨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것’은 계속해서 자신의 기운을 마물의 세계에 퍼뜨렸고

끊임없이 마물들을 심연의 절벽 아래로 모았습니다.”

“…모았다라….”

“‘그것’이 펼쳐 놓은 마기가 강해 가까이 접근하지는 못했으나,

미천한 저의 생각으로는… 군대를 만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처음부터 전쟁을 계획하고 있었나….’

“또 하나. 세계수의 권능 때문에 번번이 자신의 힘이 가로막히자

‘그것’은 꾀를 써 자신의 힘을 받아들인 강한 마물들 몇을

세계수의 힘이 닿지 않는 마물의 세계 곳곳에 보냈습니다.”

‘…영악한 놈이로군.’

“그리곤 ‘그것’의 힘을 품은 수하들로 하여금

마물의 세계 곳곳에 자신의 힘을 흩뿌리게 했나이다.

그 뒤로, ‘그것’에 힘에 사로잡힌 마물들은 그의 명을 따랐고

그들로 하여금 그 지역을 지배하도록 했사옵니다.”

“…그래?”

‘야금야금 세계를 좀먹어 갈 계획이었나.’

“후우….”

“그뿐만이 아닙니다.”

“음?”

“‘그것’의 수하가 된 마물들이 그 지역을 지배했다는 판단이 들면

거기에 포탈을 열어 마물들을 포탈 너머로 가게 했나이다.

포탈로 연결된 곳이 어디인지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접근했다가는 힘의 주인에게 들킬 것 같아 가까이 가지 못했나이다.”

“…그랬나.”

‘…그때부터 인간 세상에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한 것일 테지.

‘그것’의 힘이 강해짐에 따라 따르는 마물들도 강해졌을 것이고

모르긴 해도 열 수 있는 게이트도 많아졌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인간 세계에 발생하는 게이트의

수준이 높아지고 그 수가 많아지는 상황이 설명이 된다.’

[퀘스트 : 마신의 흔적을 완료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한성의 미간이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울린 퀘스트 완료 알림.

‘그것’은 역시 마신이라는 뜻인가.

한성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만일 ‘그것’이 정녕 마신이라면 신이 차단한

세계와 세계 사이의 문을 다시 연 목적이 무엇인지.

마신이라는 존재의 정체는 무엇인지.

대격변의 날 이후로 인간들에게 생겨난 힘이

세계수의 말처럼 신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면….

신이라는 자가 인간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세계수는 이 일들을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인지.

여러 가지 생각들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한참의 침묵 끝에 한성이 낮게 중얼거렸다.

“…벨루몬.”

“하명하소서.”

“집으로 가자.”

한성의 눈이 빛났다.

* * *

어두운 밀실 안.

왕좌라 불러도 좋을 만큼 크고 화려한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너무 어둡군….”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어린아이의 그것이었고,

어둡고 칙칙한 밀실과 달리 맑고 또랑또랑했다.

딱.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왕좌의 위로

희미하게 빛이 밝아왔고,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드러난 그의 얼굴은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앳되고 귀여운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8? 9살쯤 되었을까?

그는 잠에 취하기라도 한 듯 몽롱한 표정을 한 채였다.

그는 왕좌의 등받이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는

거의 눕다시피 앉아 왕좌의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피일지 와인일지 모를

음료가 담긴 유리잔이 들려져 있었다.

그는 천천히 유리잔의 목을 잡고 흔든 뒤

향을 맡고 색을 보며 신중히 맛을 음미했다.

백발과 은발의 중간쯤 되는 머리 색에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 정돈된 더벅머리.

단 하나의 잡티도 섞이지 않은 칠흑 같은 검은 눈동자.

오뚝한 코와 피처럼 붉은 입술.

희다 못해서 창백하기까지 한 피부.

흰 셔츠와 검정 반바지, 검정 멜빵에

윤이 나도록 반짝거리는 검은 구두까지.

그는 누가 봐도 귀공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직인가.”

그가 얼굴을 찌푸리며 지루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의 말 한마디에 왕좌의 아래에 있던

마물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소서.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흐음… 그래…?”

“…예.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러는 게 좋을 거야.

애써 키운 너희를 짓이겨 죽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귀엽고 곱상한 외모를 가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꽤나 살벌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에게서 폭사되어 나온 살기와 마기에

마물들은 목이 조임을 느꼈고, 숨을 쉬기조차 어려웠다.

“커… 커억. 며… 명심하겠습니다.”

마물들 중 하나가 힘겹게 대답하자,

소년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압박을 풀며 중얼거렸다.

“13번째 몸이야. 더 이상은 못 기다려.

이것도 얼마 못 버틸 거야. 무너져 내리기 전에 얼른 찾아와.

세계수 그 더러운 계집을 불태워서라도. 알았어?”

“예!!”

“나가봐.”

그가 귀찮다는 듯 손을 들어 휘적거렸고,

이에 다섯의 마물들이 정중히 인사한 뒤 밀실을 빠져나갔다.

* * *

밤늦은 시간, 협회 대회의실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인종도, 성별도, 외양도 모두 다 달랐지만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 한마디 없이

단상 위의 사람을 바라보는 것만은 똑같았다.

“바쁘신 와중에도 모여주신 귀빈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협조에 감사드리며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강건이었다.

“본 협회는 지금까지의 정보를 바탕으로

전령이 보여준 무력 수준이 본대의 극히 일부라 판단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단순히 위협용 블러핑일 확률도 있겠습니다만….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이에 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우리의 현 상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이것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삑.

스크린이 켜지고 그 위로 세계 지도가 띄워졌다.

지도에는 동맹에 참가하지 않는 국가를 제외한

모든 국가들에 색이 하나씩 칠해져 있었다.

“이게… 뭐죠?”

미국 대표가 물어왔다.

“이는 각국에서 보내주신 현재 운용 가능한 군사력,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소비 가능한 식량 보유 현황,

산업 공장들의 유사시 군수 공장으로의 변환 가능 여부,

군인과 예비군의 수, 자국 헌터들의 수와 무력 정보 등을

바탕으로 만든 세계 무력 지도입니다.

보내주신 정보들이 거짓이 아니라면 이는 정확할 것입니다.”

“…놀랍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이렇게나 빨리….”

러시아 대표가 눈을 반짝이며 지도를 바라보았다.

“국가마다 색이 다른 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미국 대표였다.

“이는 마물들과의 전면전이 시작되었을 때,

각 국가의 전쟁 지속 가능성을 표시한 것입니다.”

“…음.”

“전쟁 지속 가능성의 기준이 되는 일자는 일주일입니다.”

모두가 침음을 흘렸다.

“적색은 전쟁 시작과 동시에 무너질 확률이 높은 국가.

황색은 전쟁 시작 시, 타국의 조력이 있으면 생존 가능한 국가,

녹색은 전쟁 시작 시, 자력만으로 전쟁 가능한 국가.

청색은 전쟁 시작 시, 타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입니다.”

“….”

강건의 설명의 대회의실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지도에 청색으로 칠해진 동맹 국가라 해 봐야

미국, 러시아, 영국, 한국, 인도가 다였고

나머지 국가들은 녹색이 사 할, 황색이 삼 할,

적색이 이 할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주일도 버티지 못할 정도라니, 꽤나 절망적인 수치였다.

강건 또한 이러한 분위기를 읽어냈는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보를 단순히 수치로 환산해 만든 것입니다.

변수가 적용되지 않은 결과물이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후.”

강건의 말에도 각국 대표들의 일그러진 얼굴은

좀처럼 펴질 생각을 하질 않았고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침공할 마물의 수준, 헌터와 마물 간 상성, 헌터의 성장 정도,

군사력 증강 여부, 자국 내 식량 비축 여분 등

여러 변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낙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이 수치가 아니라 앞으로의 대비입니다.”

웅성웅성.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러시아 대표가 중얼거렸다.

“최우선적으로 즉각적인 연락 체제를 확립할 계획입니다.

유럽, 중동, 아시아, 오세아니아,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로

6대륙을 나누고 대륙에 속한 국가들 간 핫라인을 설치할 것입니다.

또한 통신 두절 가능성을 고려, 위성 전화도 설치할 것입니다.”

“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사시 멀리 있는 강대국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부족할지언정 인근 국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훨씬 빠를 테니까.

“두 번째로 세계 평화 유지군을 창설할 계획입니다.”

“어떻게 구성하고 이를 유지할 계획이십니까.”

“국가별로 국가전력급의 헌터 혹은

그에 준하는 헌터들과 군부대를 각개로 차출할 겁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군을 구성한 뒤, 도움이 필요한 국가에

이들을 파견해 전쟁을 억제하거나 미리 싹을 자를 계획입니다.”

“허나, 약소국은 그 정도의 전력 손실만으로도

다가올 마물들의 침공을 막아내기 힘들 것입니다.”

페루 대표였다.

“위험부담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필요한 조치입니다.

약소국이라 해서 무조건적인 도움만 바라신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뭐요?”

“우리 동맹의 목적은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생존입니다.

모두가 힘든 시기이고 모두의 희생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리고 그 희생을 강대국가에게만 바랄 순 없습니다.”

“…그건….”

“유지군에 차출된 헌터들은 경험을 통해 성장할 것입니다.

살아서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한층 더 강해져서 돌아가겠죠.

결국 국방력을 증가시키는 데 한몫을 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본인의 국가가 위험에 빠졌을 때 그 어떤 국가보다

빠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이 유지군일 것입니다.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본인의 국가에 도움이 될지.”

“….”

페루 대표가 얼굴을 붉혔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기동력을 갖출 것입니다.”

강건의 말과 동시에 대회의장으로

가로, 세로, 높이 3m 정도 되는 정육면체의 물체가 들어왔다.

한쪽 면에는 복잡해 보이는 기계 장치들이 보였고,

중앙에는 전력 공급 없이도 발광하는 물체가 보였다.

“…이게… 뭡니까?”

미국 대표가 물어왔다.

“통합관리 서버입니다.”

“…서버요? 그… 컴퓨터 서버 말하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근데 이걸 왜…?

“박 실장. 준비를.”

“예. 회장님.”

박 실장이 서버에 PC를 연결하고는 스크린에다 PC 화면을 띄웠다.

거기에는 세계 지도가 놓여 있었다.

“아시다시피 헌터들이 가진 마력의 파장과

게이트, 마물이 뿜어내는 마력의 파장은 성질이 다릅니다.

즉, 구분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렇소만.”

“현재까지는 게이트 생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생성 의심 지역에 사람을 보내거나, 위성을 통한 지속적 관찰,

마력 탐지 기능이 탑재된 센서를 도시마다 세워 변화 탐지….

뭐 이 정도가 다였습니다.”

“…그렇소.”

“따라서 게이트 생성 확인 과정이 늦고, 그에 대한 대처가 늦어

더 큰 피해를 야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래서 좀 더 즉각적이고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게이트와 마물의 마력 탐지를 가능하게 할 서버를 만들었습니다.”

“오오….”

회의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서버 내부에 박혀 있는 마력석은 이한성 헌터의 수하,

리치 킹과 타우렌 주술사의 도움을 받아 만든 것입니다.

탐지 영역을 지구 수준으로 확대하고, 정확성을 높였습니다.

저희 협회가 만든 것이 아니기에 저로서도 그 방법은 모릅니다.

저희가 한 것이라고는 마력석을 중심에 두고 서버를 만든 것뿐.

이것은 한 치의 거짓이 없는 사실이니 제작법을 묻지 마시길.”

“흠….”

“박 실장. 시작해.”

“예.”

박 실장이 몇 번 키보드를 두드리자

아무것도 없던 지도에 수만에 가까운 점들이 나타났다.

지도를 확대하자, 발생한 게이트의 등급과

마물의 수가 세밀하게 표시되었고, 강함의 정도도 표시되었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게이트와 마물들입니다.

방금 미국 시카고 주의 네이퍼빌에 A급 게이트가 생성되었군요.

한번 확인해 보시죠.”

미국 대표를 향해 강건이 말했다.

“…아. 알겠소.”

미국 대표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미국 대표가 뭔가를 묻고 몇 분이 지나자, 답이 들려왔다.

답을 들은 미국 대표는 놀란 표정이 되어 전화를 끊었다.

“…맞습니다. 5분 전에 막… 생겨난 신규 게이트입니다.”

“오!”

“이것으로 우리는 기동력을 얻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나든 그들의 위치와 규모를 파악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유지군을 보내 막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단하군요.”

“허나… 이 정보는 한국만이 독점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미국 대표가 날카로이 물어왔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와 같은 정보들은 저희가 설립한 암호화된 사이트에

5초 단위로 갱신되어 계속해서 업로드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언제든 접속하셔서 확인하고 대응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다음 안건입니다. 유지군 파견 방법….”

대회의실의 불은 밤이 늦도록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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