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라스트 엠페러-153화 (153/336)

153화

* * *

흠칫.

한성을 바라보던 콘스탄틴이

폭발적으로 피어오른 살기에 움찔거렸다.

살기의 주인공을 찾아 두리번거려 봤지만

한성 외에는 이만한 크기의 살기를 내뿜을 만한 존재가

자신의 주위에는 없었다.

더군다나 살기는 분명 한성의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느껴지는 마력의 성질 자체가 달랐으니까.

한성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음산하고 소름 끼쳤고,

인간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마기가 너무나 짙었다.

적어도 자신이 봐온 인간들 중에는

이런 살기를 내뿜을 만한 존재는 없었다.

그런 콘스탄틴의 감이 맞았는지 공간이 급격히 일그러지고

안광이 불타오르는 벨루몬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와!!!!!!!!!!!!!!!!!!!!!!!!!”

벨루몬의 등장에 관중들이 열광했다.

그런 관중들의 반응은 신경 쓰지도 않는지

벨루몬의 눈은 콘스탄틴에게로만 향해 있었다.

“감히… 노린내나 풍기는 짐승 새끼가 주군을… 해하려 들어?

옥체에 상처를 낸 것을 죽는 그 순간까지 후회하게 해주마.

아니… 죽어서조차도 후회하게 해주겠다.”

콘스탄틴으로서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으나,

눈앞의 리치 킹은 자신에게 분노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의 거룩한 진노(震怒)가 자신을 향해 폭사되어 오고 있었으니까.

분명 마력의 저항력이 극도로 높은 자신임에도

그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마력에 소름이 끼치고 피부가 따가웠다.

‘…이게… 일개 리치의 힘이란 말인가? 미친….’

콘스탄틴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주군 제게 저 짐승 새끼를 가를 기회를 주소서.

저놈을 죽인 뒤 갈기갈기 찢어 제 성에 걸어두겠나이다.”

한성의 몸에 상처가 나서였을까.

아니면 또다시 한성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평소보다 더욱 격정적인 벨루몬이었다.

콘스탄틴을 향한 벨루몬의 살의가 여과 없이 한성에게로 전해졌다.

한 치의 섞임도 없이 명백한 살의였다.

한성으로서도 쉬이 받아내기 어려운 순수한 살의.

“좀 과하군….”

부르지도 않았는데 튀어나온 벨루몬을 보며

한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 승부다. 네가 나설 일이 아니야.

네 도움을 받을 만한 수준의 대상도 아니고.”

“…뭐?”

장본인을 눈앞에 두고 뻔뻔하게 말하는

한성에 기가 찬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콘스탄틴이었다.

“허나….”

당장이라도 콘스탄틴을 찢어 죽일 기세를 보이던 벨루몬이

한성의 말 몇 마디에 바로 꼬리를 만 강아지가 되었다.

“됐다고 했다. 쯧. 그건 그렇고

내가 시킨 심부름은 모두 다 하고 노는 것이냐.”

“이미 명을 이행했나이다. 주군.

아마 제가 나머지 녀석들 중에 가장 빠를 것이옵니다.

주군께서 하실 일은 그저 행차하시어

그들에게 주군의 존재를 보이기만 하시면 될 것이옵니다.”

“그래…? 빨리 끝내고 가서 봐야겠군. 물러가 있도록.”

“…예. 주군.”

감히 콘스탄틴을 상대로 등을 돌린 채 이야기하던

벨루몬이 그제야 콘스탄틴을 향해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그럴 수도 없겠지만….

만약 네놈이 주군께 큰 상처를 입히게 된다면

즉시 너의 가죽을 벗기고 살점을 저밀 것이다… 그 뒤에….”

벨루몬의 두 눈에서 하늘을 가를 듯한 푸른 불꽃이

강하고 짙게 피어올랐고 음성은 분노 때문인지 꽤나 떨리고 있었다.

“뭐… 뭐라는 거냐. 저주라도 거는 것이냐?”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강한 살기와 말들에 움찔한 콘스탄틴이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기운을 끌어올리며 방비했다.

“그만.”

벨루몬이라면 충분히 자신이 내뱉은 말을 이행하라 생각한

한성이 속이 메스꺼워져서는 벨루몬의 말을 막아섰다.

“가.”

“…지엄하신 왕의 명을 받듭니다.”

그제야 사라지는 벨루몬이었다.

“…뭐지?”

갑자기 리치 킹 하나가 나타나

살기를 내뿜더니 뭐라 말을 내뱉고는 사라졌다.

콘스탄틴의 입장에서는 황당할 노릇.

“죄송합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녀석이 심부름을 끝냈다고 보고하러 왔나 봅니다.

우리… 어디까지 했죠? 이제 슬슬 끝내고 가겠습니다.

해야 할 일이 생겨서 말입니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말이 한성의 입에서 나왔다.

‘스… 슬슬 끝내겠다고…?’

한성이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한성의 건방진 말에 벨루몬과 한성의 이름을

쉼 없이 연호하던 좌중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심지어 중계를 해야 할 앵커부터 해설자마저도 모두.

“…건방진….”

콘스탄틴의 이마에 핏줄이 불뚝 돋았다.

“…고통스럽게 짓밟아주마.”

“그럼. 갑니다.”

대답한 한성의 양손에는 어느새 단검이 들려 있었다.

* * *

“으아아아악!!!!!!!!!!!!!!!!!!!!”

콰장창!!!!!!!!

콰가가각.

“이한성 불러와!!!!!!!!!!!!!!!”

병실이 꽤나 시끄러웠다.

병실에는 환자복 차림으로 난동을 부리는 콘스탄틴이 있었다.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붕대가 칭칭 감긴 양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의자도 아니고 자그마치 침대를 들어 휘두르는 터라

요원들과 의사 및 힐러들은 가까이 접근하지도 못한 채

멀찍이 떨어져 그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이반 콘스탄틴 헌터! 진정하세요!”

“이한성 데려오라고!!!!!!!!!!!!!!!!!!”

맹목적으로 한성을 데려오라며 외치는

그의 모습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붉게 충혈된 두 눈에 입가 가득한 게거품까지.

정말 그의 모습은 잔뜩 흥분한 맹수의 그것과 비슷했다.

“어떻게 됐어요? 내가 그랬죠. 난리 칠 거라고.”

“오… 오셨습니까.”

애림이었다.

“거봐. 내 그럴 줄 알았어. 비켜 봐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난동을 막아서기 위해 파견된 가드들이

애림의 안위를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괜찮아야죠. 안 괜찮으면 어떻게 해요. 비켜 봐요.”

“예… 옙.”

자신이 애림의 앞을 막아서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가드가 황급히 비켜서며 길을 터주었다.

“다 나가 계시겠어요? 제가 처리할게요. 이분은.”

“그… 그래도.”

대회 관리 측 요원과 가드, 러시아 측 헌터들과 요원들이

모두 난색이 되어 눈치만 보며 애림을 바라보았다.

“얼른요. 콘스탄틴 헌터 막을 수 있는 사람 있어요. 여기?”

“….”

“다 나가봐요. 얼른. 제가 말려 볼 테니.”

“아… 알겠습니다.”

하나, 둘 빠져나가자 병실에는 여전히 진정하지 못하고

잔뜩 독이 올라 핏발 선 눈을 한 콘스탄틴과

그를 차분한 눈으로 바라보는 애림만이 남아 있었다.

“너 뭐야. 이한성 데려와!!!!!!”

쾅!!!!!!!

콘스탄틴이 아무렇게나 집어던진 의자 하나가

애림에게 향했으나 어느새 소환했는지 거북 껍질 모양의

마력이 애림 앞에 막처럼 솟아나 의자를 쳐냈다.

캉가가강….

떨어져 나간 의자가 바닥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찰칵.

마지막 인원이 빠져나가고 문이 닫히자,

애림이 의자를 주워 아무렇게나 앉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곧 떨어질 겁니다.”

“…뭐?”

멍한 콘스탄틴을 보며 애림이 턱으로 그의 팔을 가리켰다.

“팔 말입니다. 애써 붙여 놨더니 다시 떨어지겠네요.”

“…?”

무슨 소리인가 싶어 자신의 팔을 바라보던

콘스탄틴의 눈에 붕대가 붉게 물드는 것이 보였다.

툭… 투둑.

“끄아아아악!!”

갑자기 몰려드는 고통에 콘스탄틴이 소리 질렀다.

콘스탄틴이 비명을 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투둑 소리와 함께

두 팔은 힘없이 떨어져 내렸고 다시 한번 피가 쏟아졌다.

“후우… 내가 그러니까 힘쓰지 말라 했죠?”

그제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콘스탄틴을 바라보던 애림이

천천히 일어나더니 팔 하나를 주워 콘스탄틴에게로 걸어갔다.

“편안한 안식이 그대와 함께하기를… 그레이트 힐.”

팔을 환부에 가져다 대고는 조용히 중얼거리는 애림.

애림의 힘에 창백하던 콘스탄틴의 얼굴은 점점 제 색을 되찾았고,

피는 멎었으며 끊어졌던 신경과 근육들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이것도 잠시 잠깐이에요. 충분히 안 쉬면 제대로 안 붙어요.

내가 그랬잖아요. 회복도 안 된 몸으로 무리해서 마력을 쓰거나,

필요 이상 힘쓰면 신경과 근육들이 터져 다시 갈라질 거라고.”

“크윽….”

“한 번 더 난동 부리면 힐 안 해 줄 거예요. 알았어요?

다른 힐러가 온다 해도, 나만큼 완벽하게 붙이진 못해요.

괜히 이상하게 붙여서 근육이나 신경이 뒤틀려도 괜찮으면

계속해서 난동 부리시든지요. 잘 판단해요. 두 번은 없어요.”

“크윽… 알겠….”

“…진작에 그럴 것이지. 괜히 사람들 피해 주고 말이야.”

애림이 그의 말을 가볍게 끊었다.

그럼에도 그는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혼나지는 않을까 하며 애림의 눈치를 살폈다.

흉폭하던 맹수는 어느새 한 마리 가엾은 강아지가 되어

엄마 개에게 혼이 나고 있었다.

“이리 와요. 나머지 하나도 마저 붙이게.”

“…여… 여기.”

떨어진 자신의 팔을 주워 순순히 가져다주는 콘스탄틴이었다.

“편안한 안식이 그대와 함께하기를… 그레이트 힐.”

“…고… 고맙소.”

“알면 됐어요.”

톡 쏘고 일어서는 애림이었다.

“아. 그리고 이한성 헌터한테 고마워하세요.”

“…무엇을 말입니까.”

콘스탄틴의 미간이 크게 찌푸려졌다.

“생각해봐요. 만약에 라이언 나이트였으면

콘스탄틴 당신 팔 두 쪽으로 끝났겠어요? 더했을걸요?

그리고 이렇게 깔끔하고 붙이기 좋게 잘라줬을까요? 아닐걸요?

아예 못 쓰게 만들거나 불구로 만들었을 겁니다. 내 말이 틀려요?”

“…하… 하지만.”

속으로는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 자존심 때문에

쉬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콘스탄틴이었다.

“그뿐인지 알아요? 이한성 헌터가 얼마나 배려해줬는지 알아요?”

“…그… 그게 무슨.”

“첫째. 당신 체면이 있으니 멋있는 모습 보일 수 있게

그때까지 제대로 된 반격 하나 하지 않고 기다려 줬어요.

이한성 헌터가 제대로 힘썼으면 야수화 쓰기도 전에 쓰러졌어요.

알아요? 아니지. 본인이 더 잘 알겠지.”

애림의 기관총 같은 말들에 기가 질려버린 콘스탄틴.

“둘째. 야수화 때문에 흥분해가지고 이지(理智)를 잃고

못난 모습 보일까 걱정돼서 그쪽 배려해서 기절시켜준 거예요.”

“….”

“또 하나 더. 여기까지 당신 업고 온 사람도 이한성 헌터예요.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어디서 오라 마라예요.

그게 무슨 태도에요. 맞아요. 아니에요.”

아이를 혼내듯 타이르는 애림의 말에

커다랗던 콘스탄틴의 어깨가 추욱 처지며 줄어든 듯 보였다.

“…마… 맞소.”

“힘의 차이는 본인이 더 잘 느꼈으면서

괜히 짜증 나니까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나 주고 말이야.

그거 민폐예요. 민폐. 알았어요?”

“…예.”

“다른 사람들 들어오면 사과하세요. 알았어요?”

“예….”

“그리고 나중에 다 낫고 나서도 이한성 헌터하고

다시 한번 대련하고 싶으면 말해요. 내가 주선해줄 테니.”

“꼬… 꼭 좀 부탁합니다.”

콘스탄틴의 눈이 소 눈알만큼이나 커졌다.

“치료받는 거 보구요.”

짝짝.

“해결됐어요. 들어와서 정리해 주세요.”

애림의 박수 소리가 들리자 살며시 문이 열리고

동태를 살피던 요원과 가드들이 들어와 어질러진 병실을 치웠다.

“사과.”

“미… 미안합니다.”

“괘… 괜찮습니다.”

애림의 말 한마디에 사과를 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었음에도 애림은 그저 흐뭇하다는 듯 웃었다.

“그럼. 침대에 올라가서 쉬고 있어요.”

“ㅇ…예.”

이날을 기점으로 혀 하나로 이반 콘스탄틴을 눌러버린

애림에게 대들거나 함부로 대하는 헌터들은 더 이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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