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라스트 엠페러-151화 (151/336)

151화

* * *

‘…어느 틈에….’

나이트의 눈이 번뜩였다.

분명 지금쯤 자신의 발아래에는 짓이겨져

피떡이 된 채 신음하는 선우가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막상 발이 짓이긴 것은 흙바닥뿐이었다.

‘어떻게 한 거지. 느끼지도, 인식하지도 못했다. 괴물이 아닌가.’

자신의 형인 험프조차도 불가능할 움직임.

그러나 그는 해냈다.

“…뭐냐 이한성.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나이트가 으르렁거리듯 한성에게 말했다.

“이미 정신을 잃은 사람이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승자는 너다. 짐승도 싸울 의지가 없는 대상에게 이빨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빨을 감춰라. 실격패 당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선우를 안아 올린 한성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심판.”

“네… 네!!”

“판정.”

한성의 말에 관중석에 정신이 팔려있던 심판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판정을 위해 선우에게 다가왔다.

“이… 임선우 선수 기절. 전투 속행 불가능. 승자 라이언 나이트!!”

“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나이트!! 나이트!! 나이트!!”

평소 같았으면 관중들의 환호에 승리 포즈를 취하거나

귀에 손을 가져다 대며 더 큰 환호를 이끌었을 나이트가

이번엔 왜인지 그러지 않았다.

한성이 몸을 옮기려던 그때 나이트가 말을 걸어왔다.

“아직도 그 생각은 변함없나.”

“무엇을.”

한성이 건조하게 대답했다.

“내 밑으로 들어오는 것 말이다.

압도적인 내 무력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내 대답은 같다.”

“나 네놈이 현명하다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

뭐 어찌 되었든 간에 신중하게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난 가지고 싶은 것은 반드시 가진다. 그것이 무엇이든.”

“….”

“품에 안겨 있는 공주님은 화풀이이자 본보기다.

가볍게 몸이나 풀 생각이었는데 어찌나 뻗대던지….

순간적으로 네놈 얼굴이 생각나서 힘을 좀 과하게 줘버렸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네놈 주변 사람들에게서 일어날지도 모르지.

예를 들면… 곽한철 지부장이라든가….”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그제야 한성이 고개를 돌려 나이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 어려 있었다.

“그럴 리가 있나. 다만 알아 두라는 것이지.

그만큼 난 네놈이 탐나고 가지고 싶다는 걸 어필하는 거다.”

나이트가 빙글빙글 웃으며 답했다.

“그 누구라도… 내 사람을 건드렸다간

넌 죽어서도 고통받게 될 거다. 약속하지.”

그 말을 끝으로 한성은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음…?”

뭔가 시원함을 느낀 나이트가 발을 내려다보자

무언가에 깔끔하게 잘려 나간 발 보호대가 보였다.

“…기대하지. 이한성.”

한성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중얼거린 나이트가

이내 몸을 돌리고는 선수 대기실로 발을 옮겼다.

* * *

“으음….”

“형! 괜찮아?!”

“괜찮수? 이제 좀 정신이 드우?

아니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쉴드장!”

쾅!

병실이 꽤나 시끄러웠다.

시간으로 따지면 하루 가까이 기절해있던 선우가 깨어나자

지환과 성용이 소리를 지르다시피 선우의 안부를 물었기에.

지환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고,

성용은 허겁지겁 문을 열고는 애림을 찾으러 달려 나갔다.

“형. 형… 괜찮아? 나 알겠어?”

“음… 지환이냐?”

선우가 힘겹게 눈을 뜨며 물어왔다.

“어. 어 나… 나나 지환이야.”

어지간히 당황했는지 지환이 말을 더듬어가며 대답했다.

부상은 당했을지언정, 입원을 할 정도로

선우가 다쳐본 적은 없었기에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괜찮아… 환자 취급 안 해도 돼. 으음….”

“왜왜왜. 누워 있어. 왜 일어나려고.

형 꼬박 하루 누워 있었어. 좀 더 쉬어. 응?”

선우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지환이 다급하게 이를 말리며 선우를 눕히려 했다.

“괜찮아. 임마. 형 아직 안 죽었어.”

“그… 그래?”

“으으음….”

몸을 일으킨 선우가 말끔히 치료된 몸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된 거냐?”

“어. 그게….”

지환이 머뭇거리며 답을 하지 못했다.

“…내가 진 거냐.”

기절하기 전 기억을 더듬으며 선우가 중얼거렸다.

“응….”

“역시 그랬나.”

“….”

“명월은?”

담담해 보이는 선우의 모습에 속으로 적잖이 놀란 지환이었다.

누구보다 자존심 강한 선우였고, 패배가 익숙지 않은 선우였기에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철봉을 휘두를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리라.

“어… 그게… 부러졌어. 복구는… 불가능할 거라 하더라.”

“…역시.”

이불을 잡은 선우의 손이 떨렸다.

찰칵.

“천검. 괜찮아요?”

문이 열리고 주치의와 애림 성용이 모두 밀어닥쳤다.

“…네. 괜찮습니다.”

“우선. 간단한 검사부터 해봅시다.”

간단한 인지 검사와 동작 반응을 검사한 주치의는

모두 정상이라며 진단해왔고 후유증이 있을지 모르니

당분간은 입원해 있으면서 지켜보자 했다.

애림은 주치의의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선우의 곁에 앉아 선우의 몸에 이상이 없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속에서 곪거나 터져나간 상처는 없는지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끊임없이 선우의 몸으로

힐을 밀어 넣으며 회복을 돕고 있었다.

찰칵.

남아 있는 인원이라고는 선우와 지환, 성용과 애림이 다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쓰러진 뒤로는 기억이 없는데.”

“그게….”

지환이 머뭇거렸다.

“나이트가 쓰러진 선우 씨 머리를 짓밟으려 했수.

까딱하면 큰일 날 뻔했는데 다행히도 한성이가 구해줬고.”

“역시 그랬군요.”

“어젯밤 자정에 대진표가 발표 났수.

한성이는 이반 콘스탄틴 선수와 경기가 있어서 갔고.”

“그랬군요. 끄응… 신세 졌군.”

“후우….”

애림이 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좀 어떻수?”

성용이 물었다.

“괜찮아요. 문제없어요. 찢어진 근육들도 완벽하게 아물었구요.

빠르면 하루, 늦어도 이틀 뒤면 활동 가능할 것 같아요. 후후.

만약 이한성 헌터가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큰일 났을 거예요.

뇌 쪽은 제아무리 저라도 완벽하게 회복시킬 순 없으니까.”

“그렇습니까. 치료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머. 아니에요. 치료는 제가 한 게 아닌걸요?”

애림이 손사래 치며 중얼거렸다.

“…네?”

“제가 알파 길드장님 치료하러 병실에 들어왔을 때,

이한성 헌터가 타우렌 주술사를 불러서 치료를 마친 뒤였어요.

제가 한 것이라고는 예후가 좋은지 살피는 게 다인걸요.”

“…그렇습니까? 참… 신세를 많이 졌군요. 전.”

“나중에 이한성 헌터 보면 고맙다고 하셔야겠어요.”

“…그래야겠습니다.”

“선우 씨 어찌 되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슈?”

성용이 다행이라는 듯 웃었다.

“걱정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우리 사이에 죄송할 게 뭐 있수. 별 이상 없으면 됐수.

그나저나 나이트 그 새끼 내 그 지랄 할 줄 알았어. 내가.

하여튼 눈부터가 미친놈 눈깔이더라. 아주 그냥….”

“흐흠….”

지환이 헛기침을 했고 선우의 낯빛이 어두워진 것을 본

성용이 황급히 말을 마치며 사과했다.

“어이고. 미안하게 됐수. 흠흠.”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수련이 부족한 탓이니까요.”

“뭐가 형이 수련이 부족해. 형 뒤에 관중들 다칠까 봐

형이 온몸으로 막아내다가 그렇게 된 거잖아.

형이 안 막았으면 방호 다 부서지고 경기장 무너져 내렸어.

못해도 몇백은 죽어 나갔을 거라고. 아니야?

네티즌들도 형 영상 보고 나이트가 노린 거 아니냐고 그래.

내가 이거 대회 관리 본부에다가 정식으로 제소할 거야.”

지환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내 생각도 그렇수. 비열하기 짝이 없는 자요.

내가 협회장 노인네한테 말해서 정식으로 항의하도록 할 거요.”

“맞아요.”

성용과 애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진 것은 진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그의 계략이었고 제가 그 함정에 빠졌다 해도 말이죠.

그게 아니더라도 전 그를 이기지 못했을 겁니다.”

“…어?”

지환의 눈이 커졌다.

“그는 강해. 게다가 영악하기까지 하지. 그래서 무서운 자야.

이한성 헌터가 그와 맞붙게 된다면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선우가 중얼거렸다.

“괜찮을 거요. 한성이는. 하하하.

한성이가 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거든 난.”

“그렇겠죠. 후후.”

“아 참. 한성이 십 분 뒤에 경기 있을 텐데?”

성용이 자연스레 TV를 켰다.

“개인전이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본선 준결승전 두 경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경기는 곧 있을 이한성 헌터와 이반 콘스탄틴 헌터 간,

두 번째 경기는 오후에 라이언 나이트 선수와 샤오란 선수 간

대결이 그것이 되겠습니다.”

“네. 맞습니다. 이번 대결로 결승 진출자가 정해지게 될 거고,

별다른 사항이 없는 한 내일 결승전이 치러질 예정입니다.”

“이번 개인전은 작년과 다른 룰이 적용된다죠?”

“네. 맞습니다. 개인전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1~4위 선수들에게 포인트를 차등 지급하고

이것을 단체전, 마물전 결과와 합산하는 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별 예선전 준우승자 4명에게도 점수가 주어집니다.”

“그만큼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네. 그렇습니다.”

“말씀 감사드립니다. 광고 후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경기가 중계되는 이곳은 대한민국의 서울입니다.”

* * *

“아. 그렇습니까? 그거 다행입니다. 좀 이따 가겠습니다. 네.”

삑.

형우가 밝은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알파 길드장이 정신을 차렸다고 합니다.

별다른 이상도 없고 회복도 순조롭다 하구요.”

“그거 다행이군요.”

“신세 졌다고 꼭 갚겠다는 말을 전해 달라 하시네요. 후후.”

“알파 길드장님답네요.”

한성이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후후.”

형우도 다행이라는 듯 웃으며 답했다.

“그나저나… 준비는 하셨습니까?

대답이 어떠할지는 말씀하지 않아도 알 것 같습니다만….”

“뭐… 이제 아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하하.”

“…그럴 것 같았습니다.”

형우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의 능력은 야수화입니다.”

“야수화요?”

“예. 야수화요.”

“그… 뭐 늑대인간처럼 변신하고 그런 건가요?”

“네. 뭐 비슷합니다.”

“오오… 재밌겠는데요?”

“그를 상대로 재밌다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흥미로워하는 반응의 한성을 보며 형우가 중얼거렸다.

“여하튼 계속해서 말씀드리자면, 그는 파이터입니다.”

“파이터라.”

“중국 측의 헌터들처럼 체계적으로 무술을 배운 것은 아닙니다.

단지 어릴 적부터 암흑가의 뒷골목에서 험난하게 살아서 그런지,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주먹을 쓰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주먹을 쓰는 게 편하다는 반응을 보여 왔다고 하구요.

최근에는 삼보와 킥복싱 등의 무술을 연마 중이라 하더군요.”

“그렇군요.”

“게다가 그의 기본적인 육체 스펙도 대단합니다.

야수화를 사용하지 않은 순수한 신체 능력만으로도

A최상급 게이트를 홀로 클리어할 수준이라고 하니 말 다 했죠.”

“호오.”

“그런 그가 야수화를 시전하게 된다면

단순 완력과 방어력만으로는 라이언 나이트조차도

그에게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할 겁니다.”

“그래요?”

나이트조차 압도하는 완력이라.

“게다가 그의 야수화가 무서운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것이 그가 가진 고유한 능력인지 아니면,

야수화가 가지고 있는 부차적 능력인지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만

마력에 면역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것 참. 대단하군요.”

“…대단하군요라니… 참….”

담백하기 그지없는 대답에 기가 찬 형우였다.

“그렇게 쉽게 얘기할….”

“이한성 선수, 이반 콘스탄틴 선수 올라가시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스텝의 안내에 한성이 웃으며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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